〈 1305화 〉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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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릿한 고통이며 녹초가 된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이윽고 쏘아진 검을 몸을 비틀어 피해냈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고는 있는 힘껏 검을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검 끝에 한기가 폭사하더니 검을 쏘아낸 암살자의 몸을 고스란히 뒤덮고 말았다.
콰르릉! 거대한 폭음이 이어졌다. 그러며 쏟아지는 한기 속 반짝이는 얼음 알갱이는 한편으로는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다. 마치 별 가루가 쏘아지는 듯했다. 그런 경이로운 광경에 잠시 암살자조차 움찔하며 달려드는 자세에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한편 폭사하는 한기와 얼음 알갱이에 뒤덮인 암살자는 몸에 별안간 새하얀 서리가 맺히더니 검을 뻗은 자세로 그대로 굳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풀썩 쓰러진 순간, 퍼석! 하는 무언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온몸이 그대로 산산조각이나 버렸다. 마치 동상이 깨어진 듯한 모습이다. 그러한 모습에 그녀를 마주한 한 암살자의 걸음이 주춤하게 되었다.
암살자 역시 저항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을까? 생각보다 꽤 애를 먹는 이들을 보았을 때, 그가 몸에 사선으로 걸친 활을 뽑아들었다. 그러더니 품에 하나의 화살을 뽑아들었다.
화살 촉이 뭉툭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프리실라는 뒤늦게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 다급히 몸을 날렸다. 어떻게든 화살이 쏘아지는 걸 막아내려던 찰나 마침 다른 암살자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고 검을 휘둘렀다. 흠칫 놀란 그녀는 그대로 몸을 굴러 피해냈다.
결국, 지체된 순간 화살은 기어코 시위를 벗어나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러며 쉬이이이익! 하는 뾰족한 소리가 도심에 퍼져 멈춘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꽤 여럿의 기척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프리실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며 주변을 살폈을 무렵 바로 앞에 한 암살자가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며 얼굴에 착용한 반다나를 벗었을 때, 화상에 당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본래 암살대의 1번대 분대장 염이었다. 이어 다른 암살자가 똑같이 반다나를 벗자 드러난 모습은 쿤과 똑 닮은 사내라 흠칫 놀랐다.
그러나 더 젊다. 아직 청년의 모습에 벗어나지 못한 모습은 쿤과 비슷하나 엄연히 달랐다. 그는 정이었다. 쿤의 아들이자, 암살 대에서도 2번대 대장..
그가 앞으로 나서더니 비릿한 조소를 머금어 말했다.
"지금을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아쉽게도 그 망할 녀석은 없지만, 미끼가 될 만한 년을 발견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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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염은 함께 복수를 꿈꾸었다.
정이야 두말할 것 없었고 염 역시,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쿤의 죽음은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러며 느꼈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말이다. 그만큼 쿤의 존재는, 때론 무자비하고 매정하며 섬뜩하기까지 했던 쿤의 존재는 염에게 생각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그때부터 무뚝뚝했던 염조차 분노를 품고 말았다.
지난 국경 도시 카밀에서 느꼈던 치욕을 갚아주고 싶었다. 얼굴에 반이 화상을 입게 되어 그 고통이 치밀 때마다 그는 분노와 증오를 키웠고 작금의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 정 역시 그러했다. 아버지 쿤은 그에게 질투과 시기심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그에게 자신은 평범한 아들이라 할 수 없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아들이었다. 쿤은 친아들을 싫어했다. 정 역시 쿤을 싫어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동경했고, 그를 시기했다. 그리고 그와 같아지고 싶어했다.
전투 부대인 흑기사가 되지 않고 암살 부대로 오게 된 것도 쿤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또한 그를 동경하며 그를 넘고 싶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 교단에서도 가장 강한 존재가 죽어 버렸다.
지루드 슈리엘과의 동귀어진, 그러나 그것은 실패였다. 쿤에게 내려진 임무는 한낱 기사 한 명을 죽고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더 큰 계획과 임무가 있었다.
정은 그 임무를 위임받았다. 그러며 다짐했다. 작금의 임무를 위임받아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그러며 증명해 보이겠다며, 쿤이 이룩하지 못한 임무를 자신이 성공함으로써 쿤을 뛰어넘겠다고 말이다. 살아생전 그를 넘지 못했지만, 늦었더라도 그를 어떻게든 뛰어넘어 보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비로소 지금에 이르렀다.
복수의 시작이자 임무의 시작이 바로 이 여인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보석, 갈라도의 유물이었다. 그것을 빼앗음과 동시에 여인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복수심, 무엇보다 자신에게 치욕을 준 유진 슈리엘을 향한 복수의 첫걸음이 될 생각을 하자니 벌써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너의 목을 잘라 그 녀석에게 절망을 심어주겠다!"
쏘아진 궤적이 이어진다. 프리실라는 간신히 막아내길 반복한다. 그러며 틈틈이 빈틈이 보일 때마다 칼을 찔러넣었다. 그다지 어려운 임무가 아니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저항이 꽤 거세다. 더욱이 그녀가 보이는 저 기이한 힘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힘이었다.
한창 교단에서 그 비밀을 파헤치려 했던 갈라도의 유물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전과 같은 실수를 면하기 위해서 정은 잠시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그러는 사이 지원군이 다가온다. 열댓 명에 동료들, 쿤의 죽음으로 분노와 증오로 물든 그림자 사이를 파고들어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워진다. 조소를 머금었다. 당황한 이들을 마주하며 검을 움켜쥐었다.
이윽고 몸을 날려 기이한 힘을 토해내는 여인의 미간을 노렸다. 쒜액 파공성이 터지며 쏘아진 궤적은 깔끔했다. 그간의 정수가 검 끝에 고스란히 담겼다. 어떠한 소음도 내지 않았다. 오직 거대한 살의만 담아 쏘아 보냈다. 이윽고 궤적이 여인의 미간을 꿰뚫을 기세로 쏘아질 무렵이었다.
별안간 무언가 데구루루 굴러 왔다.
당황한 궤적이 흔들리고 말았다. 그런 허술한 공격에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여인이 검을 쳐냈을 무렵, 정은 볼 수 있었다. 바닥을 구르는 구술을, 마법이 담긴 구술이었다.
본디 아티펙트라고 불리는 꽤 비싼 물건이 분명했다. 그리고 대여섯 개의 구슬이 잠시 빛을 뿜어대더니 펑! 하는 소음과 함께 연기가 폭사하기 시작했다. 정의 표정이 당혹스럽게 물들었다. 그러나 메케한 연기는 금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어쩔 수 없이 반다나로 다시 입과 코를 막았다.
다급히 목표의 행방을 쫓으려 할 때, 갑작스레 염이 몸을 날렸다. 정은 염의 행동을 주시하고 이윽고 그의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
"적이 도망쳤다!"
누군가 참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목표물을 이끌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차마 생각지 못했다. 이들에게 또 다른 지원군이 있을 줄이야. 심지어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이러한 물건을 비롯해 잽싼 몸놀림으로 보아서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존재가 목표물을 강탈해 갔음이 분명했다.
정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비로소 복수의 첫걸음인데, 누군가 방해한 것이다. 울분이 치밀었다. 분노가 치밀며 강하게 땅을 내디뎠다. 그러는 중에 목표물은 빼곡히 들어선 도심의 골목길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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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죠? 게다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막상 따라가고 있으나 정체를 알 수 없다. 하물며 고집스러운 침묵은 여전히 답답함을 자극했다. 그녀는 차분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기어코 또 어디론가 향해 내달렸다.
노골적인 무시일까? 물론 위협적으로 사위를 좁혀오는 이들의 추격은 끈질겼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뒤를 쫓는 이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듯하다. 이제는 사방팔방에 추격대가 있는 듯했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한참 꼬불꼬불 갈지 자로 이어진 골목에 끝에 비로소 도로변이 모습을 드러냈으나 어느덧 교단의 암살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편 정체 모를 여인은 딱히 동요하는 것도 없이 다시금 왔던 길을 되돌아서 난생처음 보는 길목으로 빠지거나 또한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고는 했다. 그럴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길에 프리실라 역시 자주 성도에 이르렀으나 이러한 길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대로변을 제외하고 애초에 이런 길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만큼 메디테움은 보통의 대도시보다 두세 배는 커다랗다고 할 수 있었고 그러한 도심에 점점 인구가 밀집되기 시작했다. 기어코, 빼곡히 들어선 주거 구역에 이렇게 골목길이 미로처럼 중구난방으로 난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근래에 이르러 땅값이 비싸지고 덩달아 메디테움에 인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국가에서도 타지 사람을 더는 받지는 않고 있으나 매해 많은 인구가 새롭게 태어나는 도시가 또 메디테움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어느 도시보다 출산율에 있어서는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도심이기에 이렇게 층층이 빼곡히 들어선 주택이 많아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그림자가 깊어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의문에 여인을 쫓던 프리실라 역시 평소 메디테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집들을 보게 되었다. 사뭇 여기가 성도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몹시 비루하고도 초라한 가옥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지붕은 판자가 전부였고 벽은 돌이 다 헤져 있기도 했으며 심지어 벽돌로 이루어진 벽면이 휑하니 뚫려 있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간간이 어둠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건 몹시 빼빼 마른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악취가 진동했다. 비로소 이곳이 슬럼가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고 프리실라 역시 슬럼가는 처음이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행색의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늦은 밤이라 할지라도, 빼빼 마르고 군데군데 땟국물이 가득한 이들이 더러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간신히 숨만 몰아쉬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요란에 호기심을 내비치다가도 금세 시큰둥해지고 말았다.
본래 알던 메디테움과는 사뭇 다른 곳으로 평범한 주택과 슬럼가의 주택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극심했다. 프리실라의 표정이 절로 굳어지고 말았으나 지금은 동정과 연민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한참을 내달렸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꼬불꼬불한 길목을 타고 이르렀을 때였다.
별안간 의문의 여인이 일행을 데리고 온 곳은 사방이 막힌 골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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