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9화 〉 핏물로 뒤덮인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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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 없으나 분명 그가 분명하리라 그런 그가 충혈되어 완전히 빨갛게 물든 눈을 부라린다. "크르릉.." 이성의 끈이 날아간 것처럼 나직이 울어댄다. 그러며 지독한 분노를 쏘아대며 그것이 몸을 날렸다.
프리실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급히 몸을 날려 피해냈다. 가히 눈을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이윽고 그것이 프리실라가 있던 곳에 주먹을 쳐댄 순간 쾅! 하는 거대한 폭음이 이어졌다. 구덩이가 마구 뒤흔들릴 정도였고 폭탄이 터진 것 마냥 파편이 튀었다. 그러며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 프리실라는 잠시 그의 기척을 잃고 말았다.
곧 기척을 되찾았으나 바로 코앞이었다. 먼지를 뚫고 짐승의 주먹이 바로 코앞에 이르렀다.
헉하고 헛바람을 삼켰다. 곧장 고개를 틀어 피해냈으나 살짝 뺨을 스쳐 지나갔다. 피가 확 튀었고 얼얼함이 치밀었다. 그러나 프리실라 역시 그대로 당하지 않았다. 그녀도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검을 강하게 움켜쥐고 이대로 몸을 회전에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동시에 검 끝에 맺힌 푸르스름한 기운이 거대한 얼음의 기둥을 만들어 쏘아졌고 단번에 키메라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크아아악!" 고통에 겨워 소리친다.
옆구리를 꿰뚫은 뾰족한 얼음 기둥에 그것은 더욱 난폭하게 발버둥치며 얼음 기둥을 깨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프리실라에게 몸을 날려 손을 뻗어냈다. 아무리 다쳐도 그 몸놀림은 오히려 더 빨라진 듯하다. 더욱이 한껏 버려진 열 개의 손톱이 마구잡이로 흉측한 궤적을 그리며 쏘아졌다. 어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몰랐던 그녀는 몇 번이고 바닥을 굴렀다.
콰콰쾅! 키메라의 손톱이 스쳐 지나간 바닥은 흉측한 상처로 가득했다. 파편이 튀어 끊임없이 프리실라를 괴롭혔다. 그러는 사이 에일린과 샤오 룬이 도착했다. 둘이 동시에 몸을 날렸고 프리실라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두르는 키메라의 뒤로 향해 각기 검을 휘둘렀다.
"핫!"
짤막한 기합성 뒤, 촤아악! 섬뜩한 소음이 이어지고 검 끝에는 묵직한 감각이 실렸다. 덩달아 키메라의 등 뒤로 흉측한 상처가 고스란히 남았고 피가 분수처럼 튀었으나 그것은 통 쓰러지지 않았다. 크르릉.. 목을 긁어대는 것처럼 울어대며 시선을 뒤로 돌렸다.
충혈 된 두 눈이 증오를 담아 번뜩였다. 그러던 찰나 셋은 그의 몸을 보며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분명 깊은 상처였으나 별안간 상처 부위에 뿌연 연기가 나오더니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그리고 키메라가 된 정은 비아냥 섞인 울음과 함께 한 차례 포효를 내질렀고 다시금 몸을 날렸다. 전보다 훨씬 빨라진 몸에 그 위용이 어마어마했다.
간신히 검을 들어 막아냈으나 손이 저릿했고 몸이 밀려나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치고는 했다. 그나마 프리실라의 검 끝에 맺힌 얼음 기둥이 쏘아지며 정을 막아대고는 했으나 아무리 키메라를 상처 입혀도 금세 치유되고는 했다. 심지어 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한기가 뻗어져 그것을 뒤덮어 얼려버렸으나 그마저도 잠깐이었다. 금세 얼음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때 프리실라는 오랜만에 거대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치 갈라도에서 겪었던 기형 괴물을 마주한 것처럼, 그리고 악마 포마트를 마주하며 느꼈던 공포가 엄습했다. 그러나 절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쿵쿵! 울려대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바로 앞에 선 키메라가 전부가 아니었다.
크르릉.. 사방에서 울음소리가 퍼졌다. 프리실라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러며 보게 되었다. 개미굴처럼 퍼진 통로 끝에서 한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을 대부분 기형적인 외관을 가진 키메라였다. 그러나 유독 하나의 키메라가 눈에 익숙했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그것도 몹시 익숙했던 존재가...
거대한 거미의 몸을 가진 채 모습을 드러냈다. 애써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굳이 부정하려던 프리실라의 마음과 달리 어느덧 넋이 나간 듯이 에일린의 입가가 뻐끔뻐끔 움직였다. 그녀는 나직이 몸을 떨며 그의 이름을 달싹였다.
"다이크... 슈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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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터 오를 시간이다. 그럼에도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에 찌는 듯한 태양은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조금씩 가신다. 그 아래 드리워진 참상은 아무리 모래 폭풍이 휘몰아쳐도 이번에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더욱이 비명과 절규도, 날붙이가 한데 엉키며 번쩍이는 마찰음조차 쉬이 멈추지 않았다.
"쯧쯧..."
다른 곳보다 높다란 모래 둔덕 위에서 참혹한 광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참상을 바라보며 짧게 혀를 찬다. 그 옆으로 비센트 라이노가 서 있다. 전장은 막상막하로 보였다. 휴센 역시 이번 전투를 최후로 생각했을까? 대대적인 군사를 몰고 왔다. 지금은 막상막하라 할지라도 결국, 국가를 상대로 전면전을 펼칠 정도로 그 수가 충분치 않음을 슈른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멀리서 한 무리의 기사들이 더 밀려오고 있다. 펠록을 탄 선발대에 이어 휴센의 정예 기사들이 분명하다. 아무래도 정예병까지 도착하게 된다면 승기는 확실히 기울 것임을 슈른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아니, 오히려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는 사막에 볼일은 없기에 슈른은 미련없이 뒤로 시선을 틀었다. 그곳에 한 무리의 흑기사가 더 있었고 한 흑기사가 하늘을 향해 활을 들어 보였다. 끝이 뭉툭한 것으로 효시가 분명했다. 그리고 사내는 연달아 하늘에 세 번의 효시를 발사해 소리를 겹치게 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슈른은 미련없이 뒤로 돌아서며 말에 올라탄다.
전장 상황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모습에 비센트 라이노는 자그마한 미련에 전장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조금씩 빛이 새 들어오는 사막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핏빛의 강이 흐르고 그 아래 무수한 시체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먼 곳에서 있는 구덩이를 보았다. 쿵쿵.. 구덩이 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은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더 선명해지는 포효 소리가 이어진다.
비센트 라이노도 언뜻 보았다. 저 아래 슈른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아도 흑기사들이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슈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비센트 라이노는 다시금 구덩이로 시선을 틀었고 이내 돌아섰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다이크 슈리엘이 자꾸만 기억에 남았다. 한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내였다.
화려한 가문과 아름답고도 현명한 아내, 능력 있는 아이들... 부와 명예를 독식한 가문.
전쟁을 종식한 영웅의 가문으로 황가와 피가 이어지지 않았으나 가문의 수훈 하나만으로 기어코 공작의 직위에 오른 가문이었다. 전대 가주부터 시작해 지루드 슈리엘이 정점을 찍었고 기어코 다이크 슈리엘이 한낱 무가이자 검가에서 더 나아가 중앙 귀족 회라는 귀족 중에서도 귀족, 엄연한 상원에 수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영광이 오랜 시간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하이란 제국의 역사보다 더 오래가지 않을까? 그들의 역사는 어쩌면 쉬이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 끝이 너무나 허무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어찌 이렇게 망가져 버렸을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너지고 말았을까?
아무리 자신이 바란 일이라고 하지만, 다이크 슈리엘의 비참하고도 굴욕적인 몰락은 차마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생각해본다. 슈리엘 가문을 가장 정점으로 이끌었던 지루드 슈리엘의 죽음과 함께 이렇게 급속도로 몰락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유진 슈리엘, 어쩌면 그가 슈리엘 가문에 몰락과 악운을 몰고 온 것은 아닐까? 비센트는 재촉하는 슈른을 따라 말에 올라탔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뒤로 향한다. 그러며 다시금 유진 슈리엘을 떠올린다.
기어코 그가 슈리엘 가문의 새로운 가주가 되었다고 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덩달아 좋지 않은 소문도 많다. 여느 슈리엘 가문의 가주와 다르게 제법 많은 소문의 휩싸여 있으나 한편으로는 슈리엘 가문이 한 번도 이룩하지 못한 또 하나의 명성을 달성하기도 했다.
"갈라도.." 나직이 갈라도라는 단어를 되뇌고는 했다. 그것은 유진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명성을 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명성은 곧 악운으로 다가왔다. 보통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더욱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명예를 얻어야 했다. 갈라도의 유산은 유진 슈리엘이 갖기에 너무나 과분했을 테다. 그것을 탐하다가 끝끝내 배가 터져 죽는다.
마치 과분한 식사를 한 뱀처럼 주제를 모르고 감히 삼켜선 안 될 것을 삼켜 기어코 배가 터져 죽는 것처럼, 비참한 최후가 유진 슈리엘에게 일어나고 말았다. 그래, 그는 탐해선 안 될 것을 탐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벌을 받는 것이리라..
안타까움에 혀를 찬다. 그리고는 이내 시선을 틀어 슈른을 마주했다. 잔뜩 흥분해 있다. 그가 이렇게까지 전율에 이르고 희열감에 취해 있는 건 처음 보는 듯하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룬 듯하다. 동료들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은 매정함, 아니 숭고한 희생이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그가 말했다.
"드디어 때가 되었네 비센트! 우리는 곧장 제국으로 갈 것이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달성하는 것이네."
한껏 들뜬 목소리는 굳이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비센트 역시 싱숭생숭한 마음에 차마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더욱이 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에는 잠시 지난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고는 했다. 참으로 비참하고도 비굴하고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말이다.
물론 이 역시 슈리엘 가문과 악연으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엘리스가 떠오르고는 한다. 듣기에 휴센에 있다고 들었는데...
간혹 그녀의 소식을 종종 듣고는 한다. 그러다가도 마치 상처처럼 남은 마리아가 떠오르고는 한다.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했다. 엘리스를 떠올릴 때마다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고는 한다. 어쩌면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이번에 다시 제국으로 돌아간다면 그 기억이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비로소 잃었던 것을 되찾으러 간다는 생각에 슈른 마냥 기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딘가 모르게 싱숭생숭한 마음은 마냥 좋아할 수 없다. 어쩌면 너무나 허무하게 끝난 복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짐하지 않았던가? 반드시 다이크 슈리엘을 직접 두 손으로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말이다. 그러한 목표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누가 알았을까...
하물며 그가 키메라가 되었을 줄이야...
씁쓸함이 밀려온다. 알 수 없는 아쉬움에 재촉하는 슈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손을 잡는다. 슬쩍 시선을 틀자 마리앙이 있었다.
그녀를 마주하고 다시금 슈른을 마주한 비센트는 이상하리만큼 불길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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