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7화 〉 악마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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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저음에 매력적인 사내였으나 외견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본래 엘리시움의 규율이라면 단정하고도 차분함이 덕목으로 있다고 할 수 있었으나 오랜 사막 생활에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칼, 안경도 알이 살짝 금이 가 어딘가 꾀죄죄한 모습으로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더욱이 어딘가 모르게 초조해 보이는 모습에 버릇처럼 연실 땀을 닦아내 제법 긴장한 듯한 그의 모습에 유진은 엷은 미소로 화답했다.
"기다렸습니다. 터너 사제님."
말마따나 기다리고 있었다. 교단과 가족을 위해 휴센에 왔으나 하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이 마탑에서 궁전에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조금은 불안하고도 한편으로는 안식처를 사막으로 뒤덮었던 그를 몰아낼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내비쳤다.
마침 그가 어색 얼굴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툭툭 닦아내더니 두툼한 서류 가방 같은 것을 탁상 위에 올렸다.
군데군데 해져 있는 가죽 가방으로 여기저기 먼지며 모래가 가득했다. 더욱이 쇠로 된 잠금장치는 대부분 녹이 슬어 있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욱이 꽤 묵직해 보였다. 그는 어지러이 잠겨 있는 가방의 잠금장치를 하나하나 풀면서 말을 덧붙였다.
"니플하임 님에게 들으면서 정보를 찾아보곤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탑의 엉덩이가 무거운 마법사들조차 무척 흥미를 내비치던 것 같더군요, 오랜만에 마탑을 벗어나려고 하나 궁전은 아직 외부인의 방문을 받지 않고 있어서... 아쉬워하더랍니다. 아아! 그리고 엘리시움에서도 여러 정보를 보내주었지요."
열린 가방에 수북하게 쌓인 종이들 사이에 심지어 무척 오래된 파피루스와 같은 것도 있는 듯하다. 그는 몇몇 종이를 꺼내 바닥에 깔아 보고는 한다.
살짝 상기된 모습이다. 사막의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긴장해서 그럴까? 연실 땀을 흘리고 또 흘러내리는 안경을 추켜올리는 그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조금 전의 차분함은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유진을 비롯해 주변에 모여든 이들은 그가 바닥에 깔아놓은 여러 종이 속 빼곡히 쓰인 의미 모를 글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있었다. 대신 두 사서만이 흥미를 느끼고는 터너가 깔아놓은 종이들을 바라보고는 했다.
복잡하게 얽히고 얽힌 역사서와 비슷해 보인다. 시대마다 악마를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을까? 같은 내용도 다른 시대에는 다르게 표현하기에 터너 신부는 쏟아낸 종이들을 시대는 달라도 비슷한 주제에 맞춰 모아두고는 했다.
이윽고 그가 마지막 다른 하나의 종이를 꺼내 보며 다시 시선을 틀어 보았다.
"갈라도의 언어입니다. 요안나 님께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꺼낸 자료들은 전부, 여러 시대에 나타난 악마들을 적은 글들입니다. 물론 자료가 많이 소실되었지요. 특히 갈라도는 고작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한장의 종이를 들어 유진에게 보였다. 마침 유진의 시선도 종이에 이르러 니플하임 곁에 있는 요안나에게 닿자 그녀는 무척이나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다. 이내 터너가 한 뭉치 종이를 꺼내 유진의 앞에 이르려 말했다.
"포마트란 존재는 갈라도 말고도 그 이전 시대 그리고 더 가까운 시대에서도 종종 등장했지만, 그다지 많은 정보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갈라도의 역사가 사라지면서 많은 부분이 소실된 게 아닌가?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일단 알아낸 정보는 역병과 저주의 악마, 그림자 속에 숨어 역병과 저주를 퍼트리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본래 이름은 없었으나, 창세기 스스로 포마트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불렀다고 합니다."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함이죠."
유진이 말을 받자 조금은 호들갑스러웠던 터너의 행동이 뚝 멈추고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나직이 미소를 그리자 그는 버릇처럼 땀을 닦아내고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흠칫 놀라 되물었다.
"혹시 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파리해진 안색이다. 조금은 두려움이 묻은 듯하다. 유진은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미 그 이상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므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한낱 악마가 아닌 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 포마트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을, 그리고 저주, 혹은 역병을 뿌려 갈라도를 기형 괴수의 도시로 만든 것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감히 엘프조차 드워프조차 막을 수 없었지요. 하물며 갈라도의 마지막 왕까지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라' 저는 라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결국, 그에게 태양을 건네받았습니다. 아직도 내 몸에 있습니다. 태양과 함께 포마트 역시 그림자처럼 내면에 있습니다. 호시탐탐 저를 노리고 있어요. 저는 이런 설명은 필요치 않아요. 어떻게 그를 소멸할 수 있죠?"
"그랬군요... 그래요. 그랬던 겁니다. 아아!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터너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는 분주하게 놀리던 손을 멈추고는 벌떡 자리에 일어서 주변을 서성거리며 몇 번이고 "그랬군요. 그랬어요. 이미.. 아아!" 라는 탄신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윽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쏠린 시선을 보며 말했다.
"소멸이라.. 자고로 오래전부터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태양, 즉 빛이었습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연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악마가 소멸하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갈라도가 그 역사를 증명하지요. 어째서 악마는 소멸되지 않고 이 땅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가? 그것은 공생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또 땀을 닦아낸다. 유진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그의 말을 기울이자 난처하다는 듯이, 마저 말을 덧붙였다.
"빛이 있으면 언제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그 아래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흔히 칠죄종이 있지요. 오래전부터 우리는 인간 본래의 욕심을 악마라 불렸습니다. 악마는 그러한 감정으로 태어난 존재이지요. 그 말은 즉, 악마는 소멸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신이 소멸하지 않는 이상, 인간이 소멸하지 않는 이상,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러한 욕망을 먹고 살아가는 악마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러한 욕망으로 발전했습니다. 마법, 기적, 주술, 수많은 것들이 전부 욕망에 의해 파생된 겁니다."
무거운 한숨이 터지며 터너 신부가 제법 진중한 얼굴로 흐르는 땀을 꾀죄죄한 소매로 닦아내며 마저 말을 덧붙였다.
"그림자에서 태어나, 스스로 신이라 칭하며 이름까지 창제한 악마, 그리고 역병과 저주라는 끔찍한 힘의 주인, 아아! 그는 애초에 소멸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악마를 소멸하려면 이 땅 위에 완전무결한 존재이자 희로애락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들만 있어야 합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무의 형태여야 욕망을 먹고 살고 그림자를 먹고 사는 그들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고 세상은 허무가 될 수 없으니까요."
한숨 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나직이 말을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유진 슈리엘님 그것을 소멸할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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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은 방, 답답한 분위기 끝에 터너는 주변인을 바깥에 내보냈다. 방안에 남은 건 니플하임과 요안나였다. 둘은 아무래도 약을 제조하느라 남은 듯했다. 무언가 자그마한 자기와 같은 것과 함께 정령을 이용해 불을 붙여 약을 달이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방안이 점점 지독한 약제 냄새로 가득했다.
그들 앞에 터너 신부는 버릇처럼 꾀죄죄한 소매로 땀을 닦아내며 두꺼운 책을 하나 꺼내 유진의 앞에 보여주었다.
책은 겉표지도 바래져 손때가 가득했다. 본래 갈색 가죽으로 된 겉표지 같았으나 살짝 누렇게 떠 있었고 종이도 누렇게 바래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나름 조심스럽게 다룬 흔적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책을 다루는 그의 손길도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터너 신부가 보여준 부분에 익숙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에 나타난 그는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나 산양의 머리, 양의 팔과 다리를 가진 존재, 그리고 섬뜩한 두 개의 뿔, 하나하나 기억난다. 두 개의 뿔 중 하나가 자신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러나 살아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천운이 닿아 살아났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하물며 터너 신부도 그 얘기를 듣고 심각한 표정을 하며 연실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가 종이를 몇 장 넘겼다. 이윽고 빙의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악마가 빙의하기 위해서는 제법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흔히 알기에 마녀의 주술처럼 여러 사전 주문과 더불어 빙의할 목표의 피 혹은 살점과 같은 것이 필요하죠, 물론 그러하기 위해서라도 닭의 피라던가 혹은 애저의 피,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의 피가 필요하기도 하답니다. 물론 그러며 고대 주술을 부려야 하겠지만, 아마 사막의 마녀를 제외하고는 그런 고대 주술을 아직 알고 있는 마녀는 없을 겁니다. 하물며 악마가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하지 않을 테죠, 그리고 두 번째 갓 죽은 자의 몸에 자신의 피를 묻혀 잠식하는 방법입니다. 악마가 가장 흔하게 이용하는 방법이고 아무래도 유진 님께서 당한 방법이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선이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한다. 그러다 문득 그에게 당한 상처가 아려오는 듯하다. 더욱이 그때의 기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는 한다. 설마 그때 죽었던 걸까? 뿔이 심장을 관통한 순간, 세상이 점멸했다. 그 이후로 어떠한 기억도 없었다. 그러나 뒤늦게 깨어나서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비껴갔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설마 이미 나는 죽었다는 걸까? 아아! 애초에 죽었으나 이 목숨 그의 고집과 욕망이 붙잡고 있었다는 걸까?'
한 번의 죽음 그리고 회귀, 그리고 또 한 번의 죽은 나는 무엇인가? 별안간 쓴웃음이 입가에 걸쳤다. 그러며 마저 책을 바라보던 찰나 니플하임이 다가와 뜨겁게 달인 약을 건넸다. 역할 정도로 쓴 내가 진동했다. 유진은 오랜만에 만난 니플하임을 향해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약을 받아들였다.
"사실 너에게 줄 약은 없어, 그나마 독기를 누그러트리는 정화 초를 비롯해 기운을 북돋아 주는 약이 전부야. 그것은 너의 감정을 먹고 살고 있어, 네가 괴로워하고 고통에 잠기고 아파할수록, 그것은 더욱 세력을 넓혀 차근차근 널 삼켜낼 거야."
이윽고 그녀가 세계수 잎을 하나 더 건넸다. 여전히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불현듯 유진도 깨닫고 언제나 품에 넣고 다니던 세계수 잎을 찾으려 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어디론가 떨어트렸을까? 싶었으나 곧 그렇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건넨 세계수 잎이 나풀거리며 손에서 벗어난 순간 , 잎이 유진의 몸에 닿았다. 그러자 검게 물들었다. 세계수 잎은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분명 내면에 태양은 강해졌어요... 그런데 왜."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도 더욱 짙어지는 법이지요, 원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인간의 욕망은 더 거대해집니다. 심지어 악마를 저주하고 원망하는 것조차 그에게 양분이 됩니다. 특히 그러한 존재는 숙주의 감정 상태에 강력한 힘이자 생명력을 얻습니다. 숙주가 괴로워하면 할수록, 두려워하면 할수록, 원망하면 할수록.. 그 세력을 확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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