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5화 〉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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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닮은 아이를 낳으면 좋겠네."
"그래? 난 너와 닮은 아이를 만나고 싶어. 물론 너처럼 욕심 많고, 무모한 사람은 싫어. "
서로 킥킥 웃는다. 그러며 다시금 입술을 맞추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인다. 다시금 들려오는 교성과 함께 거칠어진 숨소리가 섞인다. 성기 끝이 금세 간질간질한 느낌이 치밀기 시작했다. 귀두 끝이 이미 정액으로 가득 찬 자궁 구에 닿아 맞물린다.
몸이 움찔움찔 떨린다. 기분 좋은 교성 사이로 짤막한 입맞춤은 끈적끈적하게 변하고는 한다. 그러는 사이 서로의 손은 깍지를 끼며 시선을 마주했다. 시선이 몽롱하게 풀려 있다. 씻고 온 몸이 금세 땀으로 흥건해지며 시큼한 땀내가 퀴퀴한 정액 냄새 사이로 파고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 사이에 풍기는 체취가 더 농염해지는 듯하다. 아아 참을 수 없다.
세 여인의 주술과 같은 유혹에 아무리 몸이 지쳐도 거부할 수 없게 했다. 키스가 점점 더 농익어진다. 서로의 입술을 물고 빨고, 혀가 한데 겹친다. 타액을 나누며 입 주변이 침으로 흥건해지고는 한다. 그러던 잠시 그녀가 잠시 키스를 멈추고 귓가에 속삭였다. "한 다섯은 낳을 거야. 그러니까. 부디 힘내주세요 주인님."
문득,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착각일까? 흠칫 놀라며 그녀를 마주하나 그녀는 다시금 농염하게 웃었다. 그리고 또 허리를 거칠게 흔들며 욕구를 토해냈다.
아무래도 오늘은 쉬이 잠들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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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프리실라는 오랜만에 마구엘과 만났다. 그러나 대화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저 평범하고도 간단한 안부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충분했다.
조금은 어색하고도 무거운 침묵 속에 나직이 건네는 안부로도 충분함을 느꼈다. 차를 홀짝이던 차에 마침 마구엘이 묻는다. "원하는 바를 이루어 행복하더냐?" 프리실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행복해." 라는 말을 했다.
마구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침묵했다. 차를 홀짝였다. 냉랭한 표정에 살며시 미소가 걸치는 듯 보였다. 그 역시 충분하다는 듯하다. 그러며 여전히 무뚝뚝하게 그러한 마음을 잃지 마라. 라는 다소 무심히 대답으로 대화를 끝냈다.
프리실라는 쓰게 웃었다. 오랜만에 만나 제법 할 말이 많으리라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없었다. 그저 안부를 묻고, 지금처럼 행복하다는 말만으로 서로에게 몹시 충분했다. 무엇보다 나직이 전해지는 미소에 유독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걱정은 생각보다 무거웠으나 지금에 이르러 안도하고 있다. 동생의 행복에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프리실라는 피식 웃으며 다시금 창밖에 송송 내리기 시작한 눈을 보았다. 그때였다. 별안간 노크소리에 흠칫 놀라 시선을 틀었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차를 홀짝여 메마른 입술을 축이고는 "드, 들어오세요." 라는 말을 했다. 마침 문이 열리며 한 하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그녀가 들어왔다.
사라 드 셀리엘..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은 상태로 방에 들어왔다. 긴장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어머니를 마주하는 건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벌떡 자리에 일어서 그녀를 맞이했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뒤로 여전히 오만한 자태로 다가온 그녀는 에스코트해준 하녀에게 무심히 나가 보라는 말을 했다. 하필 마구엘조차 하인과 함께 방을 나서니, 방안은 아무도 방해받지 않게 둘만 있게 되었다.
어색한 공기가 농밀해지는 듯하다. 무엇보다 프리실라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새로운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으나 오늘따라 찻주전자가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조르륵.. 손이 떨린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린다. 다행히 찻잔에 물은 넘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안도하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그녀도 나름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서로 마주하며 잠깐의 공백을 느꼈다.
마침 그녀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홀짝인다. 그런 어색한 공백 끝에 마침내 프리실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지내셨나요 어머니? 셀리엘은 여전히 잘 있겠지요.."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는다. 그러며 나직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래, 잘 지내고 있었지. 정세는 안정되는 참에 잠시 여유가 있었단다. 그러니 이곳에 이르렀지.. 북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있단다. 네가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 그렇군요..."
다시금 이어진 어색한 침묵 끝에 프리실라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입술을 꾹 깨물며 괜스레 복잡해진 머릿속을 차분하게 정리하려 했으나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어색한 분위기는 점점 더 숨통을 조여오듯이 다가오고 있으니 괜스레 마른침을 꿀컥 삼키며 찻잔만 홀짝인다.
이러다가는 이뇨감이라도 느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어색한 오빠 마구엘과 대화하면서 차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 더 어색한 어머니와 있으니 차를 석 잔이나 마셔도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했다. 이럴 때 유진이었다면 과연 어떤 주제를 꺼낼까 싶기도 했다. 그때였을까? 놀랍게도 어색한 침묵은 그녀가 먼저 깨었다.
"임신했다고 들었는데.."
"아... 네! 저도 근래에 알게 되었어요.."
"그렇구나."
대답은 고작 그게 전부였다. 흔한 축하 말도 없었다. 그저 남의 일인 것처럼 평범하게 "그렇구나" 라는 말로 다시금 어색한 침묵이 일었으나 그러며 차를 홀짝이기를, 다시금 찻잔을 내려놓고는 그녀는 뜻밖에 말을 했다.
"네가 한 약속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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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부우웅...
겨울, 하얗게 물든 도시를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도 마을은 깨어날 생각이 없는 듯이 적막하다. 죽은 듯이, 아무도 없는 듯이, 고요한 도심은 평소보다 더 적막에 잠겨 있었다. 쏟아지는 눈에 파묻혀서 그럴까?
프리실라는 갑판 위에서 그들이 잠깐이지만 편히 쉴 수 있었던 셀리엘 가문의 별장을 보았다.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독 눈에 띄었다. 고지대에 위치해서 그럴까? 아니면 그 어느 곳보다 더 웅장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저택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마구엘과 함께 그녀가 있다. 그러며 그녀가 했던 말을 상기한다.
'네가 한 약속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단다.'
셀리엘 가문의 핏줄을 거부하며 반드시 행복해 보이겠다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호언장담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다짐을 받아들였다.
어찌 잊을까? 당연하게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약속을 이행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행복하나 아직이다. 더 시간이 흘러 고대하던 아이가 태어난다 한들 그럼에도 나는 행복할까?
사라 드 셀리엘은 염원대로 북부의 패자가 되었다. 원하는 바를 이룩했다. 그러나 그녀의 욕심은 여전히 내면 깊은 곳에서 들끓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여전히 너는 내 무기란다.' 말마따나 '프리실라', 라는 무기를 이용해 슈리엘 가문을 그녀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여과 없이 말했다. 대륙 곳곳에 불온한 움직임이 아직 진정되지 않아 국경이 열리지 않았으나 나라가 진정되기 시작하면 사절단과 함께 교역이 다시 활발하게 이어질 테다.
슈리엘 가문과 셀리엘 가문이 한데 합쳐지게 되었다.
자신 때문이다. 그게 사라 드 셀리엘의 무기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건 그녀의 말대로 미래가 흘러간다면 말이다. 프리실라도 여전히 믿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모두와 함께, 휴센의 궁전에서 보았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휴센의 왕처럼 또한 그의 왕비처럼 서로를 위하는 그런 가족이 되고 싶다.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되리라 믿었으나 그녀는 그런 자신의 바람을 비웃듯이 말했다. 마치 최후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 최후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정말 그럴 수 있으리라 믿니?'
물론 되묻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별다른 이유를 담아 묻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 그녀와 호기롭게 약속했던 때와 다르게 시간이 흐르고, 또 상황이 바뀌니 이상하게도 대답할 수 없었다. 프리실라는 조심스레 배에 손을 얹었다.
무거운 한숨을 뒤로 멀어지는 저택을 보았고 그곳에 서 있는 어머니를 마주했다. 그러며 생각했다.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그녀의 말에 '분명 그럴 수 있어요.' 라고 대답하지 못했을까? 북부에 이르러서 그럴까?
눈발이 조금은 잠잠해졌으나 여전히 먹구름 가득한 도시라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불길함 속에 우울증이 도지는 듯하다. 그러며 옆에 선 유진을 슬쩍 보았을 때, 그 불길함은 최고조에 이르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이어진 장난스러운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진중한 모습 속에 담긴 슬픔은 마치, 더는 이 장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움과 슬픔과 고통이 역력한 모습에 프리실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침 그가 시선을 틀었다. 그러며 그려주는 미소에 프리실라도 조금은 어색한 미소를 건넸으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두려움을 좀체 어찌할 수 없었다. 다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
지금 당장 붙잡지 않으면 아스라이 사라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러며 묻고 싶다. 저번에도 물었으나 차마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던 그 대답을 반드시 듣고 싶어진다.
'네가 생각하는 방법이 뭐야... 그들을 막을 방법이 도대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야?'
마른침을 꿀컥 삼킨다. 바짝 마른 입술은 불길함이 맴돌고는 한다.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며 머뭇거린다. 이상하게도 물어선 안 될 것 같다. 아니 물을 수 없었다.
너무 실망할 것 같다. 진실을 알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그래.. 무서웠던 것 같다.
"왜 그래?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혹시 또 멀미하는 거야?"
마침 그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프리실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며 어느샌가 하나의 점으로 보이는 북부의 항구 도시를 마주했다. 서서히 사라지고 만다. 숨을 쉴 때마다 뿌연 입김이 불안하게 흔들거린다. 걱정이 극에 달한다. 움켜쥔 유진의 손을 더욱 꽉 붙잡는다.
그래도 사라질 것 같아 이 알 수 없는 불안함을 좀처럼 다스릴 수 없다. 그때였다. 마침 그가 품에 안아 주었다. 따듯하고도 듬직한 가슴에 잠시 얼굴을 묻었다. 그러며 숨을 몰아쉰다. 갑작스레 밀려든 불안함과 두려움을 달랜다. 이윽고 그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쉬쉬.. 마치 아이를 달래듯이 보듬어 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