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4화 〉 이별 준비
* * *
이별 준비
최후에 가까워진 서로의 몸은 한데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엘리시아의 교성은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들렸고, 그 내면의 울림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아스라이 사라지기 전에, 한 차례 더 몸을 털 때마다 그녀의 몸은 너울 치듯 다가와 오싹오싹 떨린다. 그리고 또 너무나 많은 응어리가 담긴 교성을 내지르고는 한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향한 강한 염원을 내비친다. 너울 치는 감각에 그대로 몸을 맡기며 물로 가득한 그녀의 내부를 탐했다.
하얀 여체를 핥고 또 코를 묻어 깊게 숨을 들이켰다. 부끄러움일랑 모른 채, 한 마리 암캐가 된 듯 엎드린 여인을 마주하고 탐하고 유린했다.
완벽에 가깝다.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완벽에 가까운 여체는 하얗게 빚어진 도자기처럼 보였다. 조금의 잡티도 없다. 근래, 다시 검을 들어 탄력적인 근육이 자잘하게 새겨져 그 아름다움을 유지했다.
아직 전과는 다르나 그래도 가까워지고 있다. 하물며 전보다 민감해진 반응은 격렬했고 너울 치는 그녀의 몸은 오히려 더 황홀하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도 나쁘지 않다. 자잘한 근육은 부족하나 매끈한 피부에, 깊은 협곡이 들어선 등허리는 길게 쭉 뻗었고 적당히 살집이 오른 둔부는 먹음직스럽게 익어 있다. 체액은 넘쳐 흐를 정도로 고여 썰물과 밀물처럼 나아가며 단내를 풍겼다.
곳곳에 꽃향기처럼 체취가 선명하게 풍겼다. 백금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심장을 아릿하게 할 정도로 짙은 꽃 내음이 풍겼다. 퀴퀴한 체액의 비릿함을 아스라이 삼켜내는 향기에 중독될 듯하다.
문득 갈증을 느꼈다. 땀방울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시큼한 땀내가 솔솔 풍겼다. 갈증이 극심해진다. 헐떡임이 거칠어진다. 교성은 더욱 뾰족하게 쏘아져 아스라이 사라졌다.
허리를 굽혀, 혀를 내밀고 협곡에 고인 땀방울을 훑었다. 혀끝에 닿는 짭짤함은 더 큰 갈증을 유발하나 참을 수 없다. 그녀의 체향이 가득 담겨 있다. 바닷물처럼 짜나, 꿀물처럼 달다. 아이러니함이 가득 찬 그녀의 여체를 천천히 음미하며 구석구석 핥아내고는 한다.
짐승이 된 거 같다. 며칠 갈증을 느낀 개처럼 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충분히 받아 주었다. 서서히 적나라한 살결의 마찰음이 짙어졌다. 그녀의 입가에 아아아 하는 교성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맺혔다. 울고 있었다. 그 흐느낌이 그녀의 내부에 느껴졌다. 아랫배를 가득 채운 뜨거움 사이로 적지 않은 떨림이 전해졌다.
"유진.."
헐떡이는 음성에 반응한다. 등허리를 타고, 어깨를 지나 그녀를 마주한다. 서로 찰싹 달라붙었다. 고개를 틀자 시선을 마주했다. 자연스레 입술을 훔친다. 그녀의 손길이 얼굴을 감싸 안는다. 유진의 손길도 그런 그녀를 탐한다. 미끄러지듯 움직여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타고 미끄러지길, 둔부를 타고 완벽하게 이루어진 곡선을 지나 가슴에 이르렀다.
풍만한 젖가슴, 어머니를 닮아 점점 더 풍만해지는 젖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남은 하나가 격렬하게 흔들거렸다. 유진은 남은 손으로도 격렬하게 흔들리는 젖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 사이를 파고드는 부드러움과 탄력감을 만끽했다.
손바닥에 비벼지는 딱딱한 봉우리 끝에 감각을 즐겼다. 살짝 꼬집기도 했고 장난감처럼 간지럽히기도 했다.
"아아아아!" 격렬한 반응이 터진다. 몸을 털며, 땀방울을 후두두 떨어트렸다. 그러는 사이 이어진 키스는 더욱 끈적끈적해진다. 그녀의 타액은 여전히 달았다. 그리고 향긋했다. 치명적이었다. 그녀의 체내는 따스했다. 어머니의 품처럼, 자궁처럼 따듯했다. 교성이 더욱 커진다. 허리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흔들거렸다.
다시금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다. 유진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거칠게 허리를 틀었다. 퍽퍽, 격렬한 마찰음 사이로 최고조에 이른 헐떡임이 뒤를 쫓았다.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땀방울이 흩날렸다. 성기 끝이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유진... 유진.."
이름을 부르짖는 소리가 교성 사이로 격렬해졌다. 동시에 전신에 수만 가지 감정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다가왔다. 그녀의 감정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의 감정일까...
점점 더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격렬해졌다.
유진 역시 허리 안쪽에 저림이 최고조에 이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소리쳤다. "유진!" 처절하고도 애절한 비명과 함께 몸이 털썩 쓰러진다. 덩달아 유진도 강하게 허리를 쳐올리는 순간 눈앞이 번쩍하며 새하얗게 물드는 듯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이 뜨거운 감각, 한 번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발버둥...
자궁에 파고드는 뜨거운 체액은 다시금 자궁을 새롭게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솟구치는 뜨거운 물결을 음미하며 숨을 헐떡인다.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그녀의 내부에 발발 떨고 있는 성기의 전율 어린 감각을 만끽했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 이 뜨거움을 평생 느끼고 싶다.
느끼면 느낄수록, 미련이 남는다.
그러나 언제나 이별이 따라오고는 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건 당연지사였다. 아쉬움과 함께 성기를 빼낸 순간, 왈칵 역류한 정액이 그녀의 하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야릇하다. 그리고 또 우아하고 아름답다.
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을 마주했다. 시장이 터질 것처럼 뛴다.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는 사이 이번에는 프리실라가 성기를 깔끔하게 청소해준다. 에일린이 다가온다. 짤막한 입맞춤을 하며 품에 안겼다. 그리고 비틀비틀, 가랑이 사이로 정액을 넘쳐 흘렀다.
마침 엘리시아가 품에 안겼다. 세 여인의 체취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체온은 같았다. 그리고 내면도 같았다.
그렇게 서로가 하나가 되어간다. 그러며 돈독해지는 유대 속에 행복은 강렬하나 그만큼 불안함도 컸다. 아아! 그렇지 않아도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그만 이별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땀을 흘리며 이 쾌락의 여운을 조금만 더 느껴보려 하고 있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견디고 싶어 했다.
"사랑해..."
전염병처럼 퍼지는 목소리는 똑같은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끝끝내 목소리 끝에는 물기가 맺혔고 그 울림에 떨림은 점점 더 커지기도 했다. 기어코 응어리진 무언가가 폭발한 듯이 유진 역시 눈물을 흘리며 세 여인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하나가 되었음을 만끽했다.
시간이 멈췄으면 하나 애석한 시간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 유진은 여인들을 영혼에 새겼다. 그들도 영혼에 그리고 자궁에 사랑하는 이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느꼈다. 다시금 씨앗이 피어올랐음을....
모를 수 없었다. 분명히 채워진 씨앗이 발아할 테다.
흔적이다. 과분하게도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는 그 고집으로 빚어진 흔적, 그 흔적으로 이들은 자신을 잊지 않으리라...
괜스레 눈가에 눈물이 터지려는 걸 꾹 눌러 참는다.
/////////
늦은 새벽, 유진이 눈을 떴다. 새근거리는 여인들의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서로 맞닿아 하나가 된 것처럼 따듯함이 밀려왔다. 포근함 속에 작금의 나른함을 음미하고 싶다. 그러나 다가오는 여유는 끝이다. 무거운 한숨과 함께 쓰게 웃는다. 한숨이 통 멈추지 않았다.
조심스레 양옆에 여인들을 끌어당겼다.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들의 몸에서는 자신의 체취가 섞여 있었으나 본래의 향긋함은 잃지 않았다.
다행히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금 더 향을 음미했다. 그래, 잊지 않도록, 절대로 잊지 않기 위해..
각자의 입술에 입술을 맞추고는 자리에 일어섰다. 불현듯 찬기 밀려온다. 아! 그들의 품과 바깥은 전혀 다른 세상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는다. 미련이 남는다. 내면에 포마트의 유혹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꿈을 꾼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꿈을 꾼다. 아니 꿈이 아니다. 그건 악몽이었다. 그 악몽 속에 포마트는 지금의 온기 속에 푹 잠들라고 했다. 그 말을 무시하고 또 무시해도 포마트는 고집스러웠다.
결국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여인들을 위해 불씨가 약해진 벽난로에 장작을 더 넣고 불을 키웠다.
다행히 온기는 금세 한기를 금세 밀어냈다. 창밖을 보았다. 아직 눈이 내리고 있다. 봄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인데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은 멈추지 않았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기에 물러가지 않는가? 어째서 겨울은 떠나지 않고 있는가?
언 땅은 녹지 않는다. 소복이 쌓인 눈조차 녹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고, 사라질 시기다. 그래 이 흐름조차 지나갈 것이다. 그러며 새로운 시간이 다가올 테고..
언제고 언 땅은 녹기 마련이다. 쌓인 눈 아래에 파릇한 싹이 돋아날 것이며 그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드러설 것이다. 그래 시간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를 것이다. 유진은 눈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잠시 봄날의 하이란을 떠올렸다.
'과연 그날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드넓은 평야, 파랗게 물든 들판을 꿈꾸었다. 그러며 옷을 입었다. 비척비척, 행동이 이상하리만큼 무겁고 느릿했다. 아무래도 미련이 남는가보다. 몸이 가고 싶어하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가야만 한다. 알고 있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였다.
다시금 여인들을 보았다. 여전히 미동이 없다. 그러나 새근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진은 무슨 말을 할까 싶다가도 차마 할 수 없었다. 미련이란 것이 생각보다 무거워 발목을 잡을 테다. 어쩌면 저들도 그럴 테다. 여기서 다시 서로 마주하면 그 미련이 더욱 커져 차마 놓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진은 조금은 멍하니 또 오랫동안 세 여인을 마주했고 이내 웃었다.
웃으면서 말한다.
'다녀올게..'
미련처럼 남을 목소리를 입안 가득 머금다 다시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내 복장을 챙기고 방을 나섰다.
로아나가 나와 있었다.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다. 조용한 것으로 보아 로아나도 몰래 나온 듯하다. 그녀의 자그마한 손끝에는 잉크 냄새가 난다. 오랜 시간 편지라도 쓴 듯하다. 유진은 그런 로아나의 모습을 보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목이 메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곧 빛으로 산화해 검으로 변했다. 그녀도 이별 준비를 끝냈구나.. 아무런 말도 없었다. 칭얼거리지도 않았다. 회유하지도 않았다. 그저 검이 되었다.
유진은 그녀를 허리춤에 매달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건물과 도심은 고요했다. 늦은 새벽이었다. 아직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여관은 너무나 고요했다. 그렇게 1층에 가까워졌을 무렵. 별안간 기척이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잡아끌었다.
1층 외진 곳에 이르렀다. 아! 어머니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