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2/17)

01. 홀로 다른 행성에 버려진

박 여사가 죽었다.

스스로 읍내 병원을 찾아 입원한 지 3일 만이라고 했다. 보호자 연락처란에 지서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어 연락했다고, 어떤 관계냐고 묻기에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딸이라고 대답했다. 의사는 지서에게 유언은 없었으며 고통스럽지 않게 떠났을 거라고 위로했다.

간호사가 박 여사가 남긴 것이라며 쪽지 한 장을 건넸다.

[그 애에겐 알리지 말 것.]

메모 아래엔 밑줄에 별표까지 되어 있었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말하진 않았지만 누굴 지칭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박 여사의 진짜 딸. 그리고 지서의 친모.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그렇게 아끼던 큰딸인데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곧장 상가를 꾸렸다.

고인, 박화순 여사.

상주, 딸 이지서.

……딸.

차마 입에 담기가 어색했다.

고3, 지서가 서울의 대학에 합격하자 박 여사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헛바람이 든 채 서울 물 먹었다가 애나 배 올 것이 분명하다며 여기서 농사짓고 살다가 적당한 남자 만나 시집이나 가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단 한 푼도 내줄 수 없다고, 돈도 없이 서울 가서 너 같은 애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 같냐고, 술집이나 전전할 것이 뻔하다며 시대착오적인 폭언을 퍼부었지만 지서는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각오했던 반대였다. 학비와 기숙사는 장학금으로 해결했고 소액이지만 매달 학교에서 용돈도 나오니 거리낄 게 없었다. 나머지는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해 충당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서의 이 고집은 박 여사를 닮은 걸지도 모르겠다.

“계집애가 피골이 상접해서는. 얼굴도 허예서 남들이 보면 네가 저승사자인 줄 알겠다. 가서 한술 뜨고 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장례식장을 차리는 동안 간섭하면서 훈수를 두던 슈퍼 집 여자가 혀를 차며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산송장이 따로 없구먼. 이리 와. 육개장 아주 맛있게 끓였어.”

됐다는데도 그녀는 장례식장의 가장 구석에 지서를 앉히고 밥상을 차려 주었다. 푹 끓인 육개장과 흰쌀밥, 그리고 여름 밑반찬들이 지서의 앞에 차례대로 놓였다. 익숙한 메뉴였다. 어릴 적, 박 여사가 종종 해 주곤 했던 반찬이었다.

“얼른 먹어 봐. ……춥니? 에어컨 좀 줄일까?”

“아뇨. 괜찮아요.”

“입술이 새파란데 뭘.”

여자가 심술맞은 어조로 말하고는 어딘가에서 담요를 찾아 와 지서에게 건넸다. 낡고 해진 꽃무늬 담요에선 여름 햇볕 냄새가 났다.

상조 회사를 부르겠다는 지서의 말에도 그녀는 정성이 다르다며 동네 사람들과 직접 음식을 마련해 주었다. 이 더운 여름에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육개장을 끓이는 그녀를 보니 고마운 마음 반, 부담스러운 마음 반이었다. ……아니, 아니다. 고마움은 30, 부담은 70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스무 살에 무연을 떠난 이지서는 이제 호의를 받아도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의심할 만큼 세상에 찌들었다.

“밥 더 말아 먹어. 더 팍팍.”

수저를 들 힘도 없는데 먹나 안 먹나 감시하는 눈매가 제법 집요하고 끈질겨 지서는 밥을 조금 말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별로 배 안 고파요.”

계속 잔소리를 하는 게 귀에 거슬려 냉랭하게 대꾸하자 슈퍼 집 여자, 현숙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휴, 계집애가 독해 가지고 성질머리는 아직도 그대로네. 너 여태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거 알지?”

“안 나와서요.”

지서는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육개장 국물을 떠 입에 넣었다. 새로 끓였는지 따끈했다.

“한 마디를 안 져, 한 마디를.”

현숙의 말에 지서는 못 들은 척 밥을 먹었다. 배가 고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음식이 입에 들어오자 오히려 허기가 졌다. 그러고 보니 밥다운 밥을 먹는 게 얼마 만인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침은 출근길에 산 커피 한 잔, 점심은 자리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때우며 일을 하곤 했다. 맛 때문에 먹는 게 아니라 살려고 먹었다. 본부장 주도하에 팀장 직급자 점심 회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속도가 느린 지서는 반도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부분이 남자들이라 음식이 나오고 나서 5분이면 식사가 끝이 나니 여자인 지서는 자신만 기다리며 먹는 걸 빤히 보는 게 싫어 수저를 내려놨다. 게다가 음식이 입에 맞지도 않았다. 이게 다 박 여사 때문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지서가 서울로 진학하겠다고 선언한 후 악다구니를 써 가며 싸웠음에도 박 여사는 그녀의 끼니에 집착했다. 방금 전까지 죽일 것처럼 화냈으면서도 밥은 꼭 챙겨 주었다. 솜씨가 좋은 편인 박 여사에게 길들여진 탓인지 지금껏 사 먹은 음식으로 만족을 얻은 적이 드물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허기진 상태에 익숙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무언가를 배불리 먹어 본 기억이 드물다.

“맛있지?”

현숙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

진짜 맛있었다.

한차례 손님을 치르자 진이 빠졌다. 대충 정리를 한 지서는 구석에 앉아 휴대폰을 확인했다. 하와이행 항공권 취소 내역 문자, 호텔은 환불이 불가하다는 문자, 부고를 들은 회사 사람들의 형식적인 위로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서가 기다리는 문자의 답은 아직 없었다.

“너 뒤도 안 돌아보고 마을 뜨더니 그래도 성공했나 보다. 오는 사람들 다 이거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라.”

현숙이 테이블마다 놓인 장례 물품을 보며 중얼거렸다. 종이컵이나 수저, 젓가락 같은 일회용품에는 ST그룹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부고를 전하자 회사에서 보내 준 것이었다. 스퀘어의 모기업이 알아주는 대기업, ST그룹이니 시골 노인들의 흥미를 끌 법했다. 스퀘어는 몰라도 ST그룹은 알 테니 말이다.

“이렇게 잘난 애를 왜 이 작은 마을에만 가둬 두려고 했는지. 노인네 심보 지랄맞아 가지고는, 좋게 서울 보내 주고 자주 연락하면서 지냈으면 외롭게 저세상 안 갔을 거 아냐.”

현숙이 혀를 차며 행주로 테이블을 닦았다. 몰인정하다고 지서를 비난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저한테 욕하실 줄 알았는데요.”

“욕? 네 욕이야 많이 했지. 그리고 저 노인네 매정하다고 흉도 많이 봤어. 나한텐 둘 다 똑같아.”

현숙이 박 여사의 영정 사진 쪽으로 턱짓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장례식장은 제법 북적거렸다. 찾아올 사람이 없을 것 같아 하루만 하려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3일장은 해야 한다 주장했고 지서는 그에 따랐다. 처음 치르는 상이니 간섭이 신경에 거슬려도 말을 듣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지서와는 그렇게 죽어라 싸웠으면서 주변 사람에겐 인심이 넉넉했는지 장례식장을 찾는 조문객들이 꽤 많았다. 게다가 무연리 사람들이 알아서 조의금을 받아 주고 손님 대접에 나서 주니 혼자인 지서 입장에선 고맙기도 했다.

“3일장 하길 잘했지? 손님 많을 거랬잖아.”

“그러게요. 엄마는…….”

지서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박 여사에게 엄마라는 호칭을 쓰는 게 어색했다.

“박화순 여사는 저한테만 매정했나 봐요.”

박 여사와 그녀의 큰딸은 서로 많이 닮았다. 하지만, 지서의 생김새는 그 두 사람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자신은 생부를 많이 닮았다고, 박 여사와의 언쟁 중에 들었던 것 같다. 아마 그 때문에 박 여사가 더 지서를 매몰차게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지서의 생부는 딸의 신세를 망친 죽일 놈일 테니까. 싸울 때면 박 여사는 지서의 얼굴만 봐도 복장이 터진다고 성질을 부려 대곤 했다.

“그러게. 왜 너한테만 그랬을까. 정작 당신의 진짜 자식은 장례식도 안 찾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는지 현숙이 나직한 어조로 대꾸하며 지서에게 믹스커피를 타서 내밀었다.

“제 친모 아시죠.”

친모. 입에 잘 담지 않는 단어다. 지서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꾸욱 짓누르며 말했다.

“알지. 여고 동창이었으니까.”

“박 여사는 하지 말랬는데 그래도 친딸이니까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요. 전화 안 받아서 메시지도 남겼는데…….”

지서는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분명 봤을 텐데 여전히 답은 없었다.

“안 올 건가 봐요.”

탁, 지서가 던지듯 세게 휴대폰을 내려놓자 맞은편 테이블의 손님들이 두 사람 쪽을 힐끔거렸다. 박 여사의 의중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여자는 진짜 자식이니 마땅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부고를 전했다. 하지만 여자에게선 알았다는 메시지 한 통조차 없었다.

“왕래하고 지냈니?”

“필요할 때만요.”

일방적인 통보를 ‘연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친모가 누군지는 대학 때 알았다. 방학이 되면 잠깐 무연에 내려왔는데 우연히, 정말 우연히 박 여사의 수첩에서 여자의 연락처를 발견했다. 그 광경을 본 박 여사는 잘 살고 있는 네 언니 등골 빼먹을 생각 하지 말라며 연락처를 찢어 버렸고 머리 좋은 지서는 한 번 본 걸로 주소며 전화번호까지 다 외워 버렸다. 사실, 그녀가 평온하게 넘어갔더라면 친모의 연락처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지서는 제 자식한테 해될까 봐 바들바들 떠는 박 여사가 싫었다. 그래서 그 사건 후로는 더 그녀를 찾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대학 때 누군지 알았어요. 그 후에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처음 봤구요.”

지서가 스퀘어에 입사하자 친모가 만나자며 연락을 해 왔다. 이유는 명확했다. 스퀘어의 오너가 여자의 남편이다.

첫 만남에 그녀는 대뜸 무슨 의도로 입사했냐고 물었고 포기할 것을 강요했다. 사실 어느 정도 의도한 바는 있었다. 스퀘어에 들어간다면 여자에게 연락이 올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입사가 확정되자마자 연락을 했다는 건 자신의 동향을 늘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 입을 막으려 들었다는 건 지금의 남편은 그녀의 과거를 모른다는 뜻이겠지. 차라리 지서를 모른 체했다면 여자가 원하는 대로, 평생을 남남으로 그렇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땠니.”

그 물음에 지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 안 봐도 알겠다. 사람 쉽게 안 변한다고 걔가 좀 많이 이기적이야.”

친모에 대해 어마어마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이었다.

“저랑 하나도 안 닮았던데요.”

“넌 네 아빠를 빼다 박았어.”

네 아빠.

엄마라는 말보다 더 어색했다.

지서는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친부는 살아 있어요, 아님 죽었어요? 뭐 하는 사람인지 아세요?”

“왜, 궁금해?”

현숙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지서를 향해 물었다. 지서 성격에 누군가에게 캐묻는 게 의외라고 여긴 듯했다.

“살아 있어. 가끔 뉴스에 나오니까.”

지서가 대답 없이 바라만 보자 그녀는 흔쾌히 답해 주었다.

가끔씩 친모만큼이나 친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호기심이었을 뿐 애틋함은 없었다. 부모에 대한 절절함이나 그리움보다는 그냥, 어쩌다 한 번 생각하고 마는 딱 그 정도의 궁금증이었다.

“나중에 궁해지면 여쭤볼게요. 찾아가서 돈이나 뜯어내죠 뭐.”

지서가 성의 없이 심드렁한 어조로 말하며 다시 한번 휴대폰을 확인했다. 여전히 친모에게선 답이 없었다. 이전에 보낸 부고 문자를 그대로 복사해 재전송했다.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싶어 고집스럽게 연달아 다섯 번을 재전송하고 나서야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라는 거대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괴롭히고 싶었다,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눈물도 많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우는 위선적인 여자를.

친모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본다. 처음엔 돈으로 회유하려 했고 그다음엔 윽박지르며 겁을 주었고 마지막엔 눈물을 흘리며 감정에 호소했다. 뭐라고 했더라. 예쁘게 잘 컸구나 우리 딸, 엄마가 다 잘못했어. 평생을 널 그리워하며 살았으니 제발 엄마를 용서해 줘.

하지만 의도와 결론은 분명했다. 자신을 위해 입 다물고 조용히 사라져 달라는 뜻이었다.

여자가 내민 돈을 지서는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챙겼다. 물론, 입사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약속과 다르지 않냐며 발작하듯 울부짖던 여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확실히 친모는 지서와는 정반대의 부류였다. 타고나길 무덤덤한 탓인지, 박 여사와의 긴 싸움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지서의 감정은 늘 고저가 없다. 반면에 친모는 감정적이며 논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친모를 닮았다면 스스로가 싫을 뻔했다.

“저, 근조 화환 배달 왔는데요.”

그때,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거기 앞에 놔 주세요.”

지서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대꾸했다. 회사에서 보낸 것인 듯했다. 몸을 일으켜 장례식장 입구로 나서자 그동안 받은 화환이 꽤 됐다. 어디 상인회, 어디 부녀회, 어디 이장. 지서는 나란히 놓인 화환을 보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박 여사는 지서 빼고 다 친한 듯했다.

“두 개입니다. ST랑…… 이지윤 씨가 보낸 거요.”

이지윤.

지서의 시선이 이지윤이라고 쓰인 근조 리본에서 멈추었다.

“지서야, 이거 설마…….”

따라 나온 현숙이 화환을 살피며 물었다.

“네.”

친모의 개명 전 이름이다. 이름을 바꾸고 과거를 지운 여자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ST그룹의 일원이 됐다.

“세상에. 얘도 진짜 자기 엄마 장례식인데…….”

현숙의 한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서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의 입금 알림 메시지였다. 이주애, 1,000만 원.

“저, 이거 수령 확인 사인 해 주셔야 되는데요.”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배달 기사가 지서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얘, 지서야.”

자신을 부르거나 말거나, 지서는 낮게 숨을 고르며 근조 리본을 천천히 눈으로 더듬어 나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기 와서 다른 사람의 위로를 들어야 하는 쪽은.

‘이지윤.’

이 여자였다.

몸 안의 피가 차게 식었다. 반복해서 리본의 문구를 읽자 식은 피가 이번엔 차게 얼어붙었다. 경멸, 혐오, 분노. 갖가지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얼음 조각이 그녀의 내장을 마구 난도질했다. 속이 뒤틀리고 거북하다.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지서는 간신히 참는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사모님, 당신 남편이랑 아들 찾아가서 다 뒤집어엎어 놓기 전에 전화받아요.]

지서는 빠르게 메시지를 입력해 전송했다.

“ST에서 보낸 건 여기 그대로 놔 주시고 이지윤 씨가 보낸 건 가시는 길에 버려 주세요.”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배달 기사가 내민 확인서에 사인을 하며 말했다.

“네에?”

“버려 달라고요.”

당황한 기사를 향해 지서는 다시 한번 침착하게 반복했다.

“어, 그건 좀…….”

“됐어요, 그럼. 가 보세요.”

“지서야 일단 진정하고…… 어머, 얘가 왜 이래!”

지서가 상복 소매를 올려붙이고 화환의 지지대를 잡아 들었다. 꽃을 고정한 철사가 살갗을 찔렀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찌르는구나. 피가 나는구나. 그러한 사실만 인식될 뿐이었다.

과시욕이 심한 여자답게 화환의 크기가 제법 컸다. 분명 무게도 상당할 테지만 분노의 힘인지 생각보다 가벼웠다. 기사는 꽃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가져왔겠지만 망가져도 상관없는 지서는 흰 국화 더미를 질질 끌었다. 이깟 꽃이나 보내고, 돈으로 치워 버리겠다고. 늘 무덤덤한 지서였지만 속에서 화가 끓자 목뒤가 뻐근해졌다. 눈앞에 있다면 여자에게 마구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서는 문밖, 분리수거장에 화환을 처박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표면이 거친 지지대와의 마찰로 손바닥에 나무 가시가 박히고 생채기가 났다. 쓰라리고 아팠다.

“나예요.”

지서가 전화를 걸자 이번엔 신호가 채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단지 전화를 받았을 뿐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한테 과거 들킬까 봐 무섭긴 한가 봐요. 이렇게 바로 전화받을 줄 알았으면 진즉에 협박할걸.”

전화 속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다. 흐트러진 숨소리만 들렸다.

“그렇다고 자기 엄마 장례식에 얼굴도 안 비치고 근조 화환 보내는 미친 딸은 또 처음 봤네.”

― 오늘 집안 행사가 있어서 그래. 발인하는 날도 못 갈 거 같고 눈치 봐서 한번 내려갈 테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닙니다, 사모님.”

지서의 말을 끝으로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여자가 입을 열었다.

― ……태하한테는, 태하한테는 절대 연락하지 마.

“하면? 왜, 내가 당신 아들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겁나?”

손가락을 타고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지서는 휴대폰을 옮겨 잡고 상복 자락에 손을 닦았다. 따라 나온 현숙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현기증이 났다.

“얌전히 기다려요. 그 잘난 집구석에서 알몸으로 쫓겨나게 해 줄 테니까. 당신 엄마 장례 치르고 나면 아는 기자들한테 싹 다 메일 돌리고 당신한테 소송도 걸 거야. 지금 당장 최태하 비행기 타고 한국 오게 할 거야!”

여자가 무어라 소리쳤지만 지서는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곧바로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팽개쳐 버렸다. 거슬려. 전부 거슬린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던 지서는 한순간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 비틀거렸다. 어지럼증이 엄습하고 시야가 아래위로 뒤섞였다. 숨이 찼다.

“은기야! 여기! 얼른 와서 얘 좀 말려 봐!”

현숙이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의 힘이 풀리며 쓰러지려는 찰나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양어깨를 잡아 부축했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누군지 확인하려 했지만 가로등 불의 역광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꽤 커다란 실루엣을 보고 남자구나 추측할 뿐. 의식이 희미해지고 호흡이 버거웠다.

“숨 천천히 쉬어요.”

남자는 지서를 자신의 몸에 기대게 하고는 호흡이 편하도록 자세를 잡아 주었다. 입가에 무슨 봉투를 댄 것도 같았다.

“얘 왜 이러는 거야?”

“과호흡 같아요. 안으로 옮길게요.”

남자가 꽤 손쉽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 서서히 정신을 잃어 가는 와중에도 허공에 뜬 느낌이 불안해 지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맞닿은 자리에서 높은 체온이 느껴졌다.

“지서 씨, 내가 하는 말 들려요?”

누구야. 누군데 날 아는 거야.

“호흡 천천히.”

체내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자 지서의 몸이 차가워졌다.

“마시고, 내쉬고. 잘하고 있어요.”

숨을 몰아쉴 때마다 남자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괜찮아, 잘하고 있어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장례식장 바로 옆 응급실로 옮긴 건지 병원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데 이제 괜찮다는 듯,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을 완전히 감싸 잡았다. 낯설었지만 어쩐지 안심이 돼 지서는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옅은 비누 향이 코끝을 스친다.

점차 숨 쉬는 게 편안해진다.

과호흡으로 쓰러지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아침이었다. 수액을 맞은 덕인지 몸이 지나치게 개운했다. 수면 마취에서 깨어나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이렇게 푹 잠을 잔 게 너무나 오랜만이라 지서는 아주 잠깐, 박 여사의 죽음이 꿈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꿈이라기엔 입고 있는 옷은 여전히 검은 상복이었고 손의 상처는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쓰라리고 아팠다.

깨어난 지서를 본 간호사가 드레싱을 했다며 당분간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라는 설명과 함께 처방전을 주었다. 흰 붕대가 겹겹이 감겨 있는 손을 조금 움직이자 저리고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하필이면 오른손이라 일할 때 방해가 되겠네, 이런 생각을 하다 이 와중에도 일 생각을 하는 자신이 어이가 없어 조소했다.

병원 앞 약국에 들어가 처방전을 내밀었다. 중년의 여성 약사는 지서에게 혼자 상 치르느라 고생한다며 꽤 비싸 보이는 드링크를 온장고에서 꺼내 주었다. 약사는 울지 말고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고, 네 엄마는 네가 슬퍼하기보단 빨리 털고 일어나 씩씩하게 잘 살길 바랄 거라는 위로의 말을 하며 박 여사에 대해 아는 티를 냈다. 지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약사는 그녀가 실의에 빠져 울다 쓰러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실망하겠지. 지서는 다른 말은 목 아래로 삼키며 고맙다 인사했다.

장례식장을 향해 걷는데 하늘이 지나치게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올려 보자 지서는 자신이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만히 하늘을 보며 약사가 건네준 드링크를 마셨다. 입 안에 쓴맛이 맴도는 것이 이 드링크 탓인지, 울지 못하는 자신에게 울지 말라며 위로하던 약사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아서인지 알 수 없다.

단순히 눈물을 슬픔의 척도로 삼아 박화순과 이지서를 가늠하기엔 서로를 향한 무수한 결락과 감정적 공백이 존재했다. 문득, 지서는 이 기분을 인간의 어휘로 표현한다면 ‘공허’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되는 거리인데도 목덜미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여름의 태양이 제법 뜨겁다. 어쩌면 저 햇볕에 눈물이 죄다 말라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수분은 증발하고 눈물의 염분만 몸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럼 난 소금 인형인가.

작게 중얼거리며 지서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장례식장에 돌아왔을 때 못 보던 남자가 지서를 대신해 상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키가 훌쩍 크고 몸이 제법 단단해 보였지만 얼굴은 앳된 티가 가시지 않았다. 지서는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저 애였다. 화를 못 이기고 뒤로 넘어간 그녀를 진정시키던 남자.

“좀 더 쉬지 왜 나와.”

테이블을 치우던 현숙이 지서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왔다.

“손님 계속 오는데 자리 지켜야죠.”

박 여사라면 지긋지긋하지만 어차피 장례가 마지막이니 마무리는 자신의 손으로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이번 개편을 잘 마무리한 것처럼, ‘박화순’이라는 프로젝트를 잘 끝내고 싶었다.

“은기가 손님맞이하고 있으니까 방에 들어가서 쉬어. 네가 꼭 인사해야 하는 손님이면 부를 테니까.”

“……누구예요?”

지서는 누군가와 인사하는 남자를 향해 눈짓하며 물었다.

“감나무 집 손자. 너도 쟤 어렸을 때 몇 번 봤을 텐데.”

감나무 집 할머니라면 몇 년 전 부고를 듣고 조문을 갔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집 손자는 기억에 또렷하지 않았다.

“지 할머니랑 같이 너희 노인네하고 놀아 주고 그랬어. 할머니 죽고 통 못 봤는데 어쩜 저렇게 근사하게 자랐담.”

현숙의 얘기를 들으며 지서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동네 할머니들을 달래 주는 남자, 은기를 훑어보았다. 키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몸이 좋았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가 이 동네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훤칠하니 잘생겼지? 대학교수님들 아들이라 그런가 참 잘 컸어. 외국에 있는데 부고 듣고 여기까지 왔나 봐.”

“그러게요. 고맙네요.”

“몸 쓰는 일 해서 맨날 다칠까 봐 걱정이지. 얼마 전엔, 어디랬더라? 햄트링? 햄스트링? 영어라 기억이 잘 안 나네. 아무튼 거기 다쳤다고 해서 우리 영감도 한걱정을 했다니까.”

“네에.”

지서는 적당히 대꾸하면서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몇 살일까. 소년이라 부르기엔 나이가 좀 있어 보였고 청년이라기엔 앳된 느낌이었다. 총명하게 생겼는데 몸 쓰는 일을 한다니 의외다.

신체 밸런스가 꽤 괜찮다. 팔다리가 길어 훤칠하고, 모델처럼 비율도 좋고. 피지컬은 위압적이었으나 둔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검은 정장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붙은 근육의 실루엣이 대단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은기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귀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슬금슬금 다시 그녀를 보고는 입 모양으로 ‘괜찮아요?’ 묻는다. 지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은기는 ‘다행이다.’ 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웃자 볼에 오목하게 우물이 졌다. 눈 아래도 작게 파이며 인디언 보조개가 만들어진다.

무해한 미소였다.

입관부터 발인까지, 박화순 여사와의 작별은 순조로웠다.

화장터에서 지서는 활활 불타는 화덕으로 들어가는 관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거기까지 따라온 현숙은 우는 시늉이라도 하라며 그녀의 허벅지를 찔러 댔다. 하지만 정말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진짜 끝이구나. 짧은 탄식만 나올 뿐이었다.

극심한 슬픔의 흔적이 없는 상주를 두고 몇몇 조문객들이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며 수군거리는 것을, 그녀 역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애써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일이든 각자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지서는 자신의 방식대로 박화순이라는 한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고 싶었다.

……애증.

역시 애증이라는 말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박 여사에 대한 지서의 마음속 저울은 사랑과 증오를 쉴 새 없이 오갔다. 30여 년에 걸쳐 쌓아 온 이 감정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내리기 힘들었다.

평생을 그리워했던 친딸에게 배웅조차 받지 못한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알리지 말라고 한 건지. 그래도 정말 사랑한 딸이라면 마지막 순간만큼은 곁에 두고 싶었을 것 같은데. 여전히 박화순이라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은기라는 그 아이 역시 박화순 여사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켰다. 옆집 손자까지 발인을 지킬 정도라니, 역시 그녀는 지서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겐 넉넉한 사람이었다. 지서는 자신에게만 고약했던 박 여사의 성질을 떠올리며 납골당에서 몇 분쯤 봉안함을 노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언가 울컥 올라와 지서는 입술을 꾹 깨물고 황급히 돌아 나갔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박 여사와의 수많은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배앓이를 할 때마다 배를 쓰다듬으며 안아 주었던 그 따뜻한 품이, 미술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퍼부었던 폭언이, 빛바랜 단편 필름들이 천천히 재생된다.

분명 죽음을 예감했을 텐데 당신은 왜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홀로 임종을 맞이하면서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의 마지막 얼굴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납골당의 긴 복도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건물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 때문인지 길게 그늘진 실내는 빛이 많지 않아 스산했다. 서늘한 온도 탓에 소름이 돋아 지서는 잠시 멈춰 서서 팔을 문질렀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창으로 움직였다. 창밖, 뜨거운 태양을 받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넘실거린다. 멍하니 보다가, 순간 시야가 어지럽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그녀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납골당 밖으로 나가자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커다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역광 때문에 형체만 보였지만 그녀는 한눈에 은기를 알아보았다. 그는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서는 저도 모르게 은기를 빤히 훑어보았다. 눈매는 순한데 눈썹과 턱선은 각이 져 제법 남자다웠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큰 키가 더 실감됐다. 190cm 정도 되려나. 요즘 애들이라 그런지 발육이 좋다.

체격이 컸지만 느리거나 굼뜬 느낌은 없었다. 아직 학생일 텐데, 저 정도 피지컬이면 가끔 일 때문에 연락을 주고받는 기획사에 소개해 줘도 좋을 것도 같고.

지서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챘는지 통화를 하던 은기가 그녀 쪽을 힐끔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지서는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미소를 지었다. 얼핏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가 외국어 같았다. 영어는 아니고…… 발음의 느낌이 독일어 계열 같은데 독일어는 아니다.

은기는 상대에게 무어라 말을 하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중요한 통화를 하는 눈치였는데 지서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끝나셨어요?”

“네.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했는데…… 은기 씨, 애써 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크게 한 일도 없는걸요. 계속 할머니 찾아봬야지 했는데 돌아가셔서…….”

“엄마가 은기 씨 많이 예뻐했다면서요.”

“……네.”

그러고 보니 그의 눈가가 붉었다. 울었나 보다.

“엄마도 은기 씨가 와 줘서 많이 고마워하셨을 거예요.”

지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은기가 머리를 푹 숙였다. 우는 건지, 그는 잠시 그렇게 가만히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고 지서는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멀리서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부딪칠 때마다 나뭇잎이 쓸려 가는 소리, 먼 곳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울음소리. 유족이라면 저게 정상이겠지. 가만히 생각하던 지서는 팔을 올려 머리를 하나로 모아 잡고 목덜미에 배어 나온 땀을 닦았다. 이제 진짜 여름인지 검은 상복이 조금 더웠다. 후끈하고 끈적한 공기. 도시에선 느끼기 힘든 낯선 종류의 더위다.

바야흐로 여름.

무연에 오자 계절의 흐름이 실감되었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은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서는 머리카락을 모아 잡고 있던 손을 내리며 특유의 미소를 띠었다.

“덥네요.”

그녀의 말에 은기의 시선이 천천히 미끄러진다.

“……네.”

그가 나직하게 말하고는 작게 덧붙였다.

“너무…… 덥네요.”

미묘한 어조였다.

“아, 은기 씨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음, 저 어렸을 때요.”

대답이 묘했다.

“미안해요. 기억이 안 나서. 그리고 장례식 도와줘서 고마워요.”

형식적으로 대꾸하며 지서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봉투를 꺼내 은기에게 건넸다. 이게 뭐냐는 듯 그의 눈이 커졌다.

“수고했어요.”

짧게 말하며 그녀가 미소를 짓자 은기의 표정이 묘해졌다. 좋다거나 감사하다거나 하는 호의적인 느낌은 분명 아니었다. 본인 생각보다 봉투가 얇아서 그런가. 그래도 꽤 넉넉하게 넣었는데.

“음.”

은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곤 잠시 뜸을 뜰이다가 한숨 쉬듯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무연리로 갈 거죠? 태워 줄게요.”

그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엷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약속이 있어서요.”

거절하며, 은기는 지서의 시선을 피했다.

왜 그럴까. 길게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은기는 대체로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는데 지금은 불편한 기색이었다. 잠시 궁금증이 일었지만 지서는 애써 두 번 권하지는 않았다.

“그래요 그럼. 조심히 가요.”

은기에게 인사하고 지서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쩐지 그가 자신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서는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숙을 태워 납골당을 빠져나갔다. 산 중턱에 위치한 곳이라 큰 도로까지 가려면 커브가 심한 길을 꽤 오래 돌아 나가야 했다. 산을 내려가는 데만 차로 10분 이상 걸릴 텐데, 저 아래까지라도 데려다주겠다고 할 걸 그랬나. 은기를 떠올리던 지서는 애써 생각을 지워 내며 차창을 조금 열었다. 습기 찬 바람을 타고 풀 냄새가 진동했다.

“어머, 저거 은기 아냐?”

반 정도 내려갔을 때 현숙이 도로 한가운데를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거리가 꽤 될 텐데 벌써 여기까지 내려올 정도면 걸음이 빠른가 보다.

“너 매정하게 애 두고 왔니?”

“본인이 거절했어요.”

지서는 나직이 답하며 은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넓은 어깨가 부드러운 생김새와는 다르게 직각으로 딱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차 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로가로 피해 주었다. 한 번 더 물어볼까 싶어 그의 옆에 차를 세우려 하는데 낮은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서럽게 느껴졌다.

“뱀 나오겠네.”

지서가 작게 중얼거리며 클랙슨을 누르려던 찰나, 힐끔 뒤를 본 은기가 몸을 완전히 돌려 외면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확실히 느껴졌다. 무시하는 거다.

“은기 태워 가자.”

“약속 있대요. 제가 불편한가 봐요.”

지서가 단호히 말하자 현숙이 무어라 작게 구시렁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서는 괜히 심술이 나 일부러 더 속도를 내 은기를 완전히 지나쳤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송곳처럼 따가웠다. 나뭇가지가 차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지랑이 퍼지듯 정신없다. 지서는 하늘을 바라봤다. 온통 짙은 초록으로 뒤덮였다.

여름이 진동한다.

은기의 휘파람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무연리에 다다를 무렵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구름이 꼈다. 산에 둘러싸인 지서의 고향은 날씨가 변덕맞기로 유명하다. 같은 마을 안에서도 어디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어디는 해가 쨍하기 일쑤라 주민들은 기상청 예보보다 자신의 무릎을 더 신뢰하곤 했다.

마을 초입, 길 한쪽에 세워 둔 간판이 지서의 눈에 들어왔다. 무연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설명해 둔 것이었는데 녹이 슬고 낡아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 문장만큼은 선명했다.

무연無緣.

아무 인연이나 연고가 없음.

이곳에 올 때마다 보던 것인데 오늘따라 더 눈에 띄었다.

“내 얘기네.”

지서가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응? 뭐가?”

조수석에 앉아 졸던 현숙이 눈을 뜨며 물었다. 그녀는 이런 외제 차는 TV에서 보고 실제론 처음 본다며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잠이 든 차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서가 적당히 넘기자 현숙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실없는 잔소리를 이어 나갔다.

“그래도 은기가 도와줘서 망정이지. 역시 집에 남자는 하나 있어야 해. 봐라, 든든하잖니.”

남자라니. 그러기엔 은기는 많이 어린 느낌이다. 완전 애송이.

“어쨌든 호상이야, 호상. 노인 보냈으니 앞으로 네가 신경 쓸 일도 없을 거고, 이제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가면 딱이지 뭐. 내가 중신이라도 서 줘?”

“사양할게요.”

지서가 단칼에 자르자 현숙은 쉽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요즘 아가씨들은 결혼 안 하고도 잘 산다더라. 이런 으리으리한 차 끌고 다닐 정도로 능력 있으면 혼자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남편이고 자식새끼고 없으면 허전한데 막상 옆에 있으면 골치야.”

“네, 그럴 생각이에요.”

나직이 대꾸한 지서는 현숙을 슈퍼 앞에 내려 주었다. 도와줘서 고맙다며 미리 준비한 봉투를 건네자 현숙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보통 이런 반응이 정상일 텐데, 고은기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얼굴을 한 건지 모르겠다.

“삼우제 챙기는 거 잊지 말고!”

“네, 알아서 할게요.”

“가끔 내려와! 동네 사람들 다 말은 안 해도 네 생각 많이 하니까!”

“네에.”

성의 없이 대꾸하며 지서는 차를 출발시켰다. 박 여사의 집에 들러 정리한 후 바로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니 현숙과의 만남도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마을은 많이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비포장도로였던 흙길은 아스팔트를 깔아 매끈해졌고 비가 샌다던 이장 댁은 촌스러운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딱 그 정도의 변화였다.

슈퍼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마을의 가장 외진 곳에 있는 박 여사의 집이자 지서가 자란 집이 보였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산에 둘러싸인 곳에 위치한 까닭인지 벌써부터 사위가 어두웠다. 주차를 하고 라이트를 완전히 끄자 주홍빛 가로등만이 그녀를 비춘다.

페인트칠을 다시 한 것인지 빨갛던 철문이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그 문을 밀고 들어가자 끼이익, 듣기 싫은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 박 여사와 심하게 다투었던 기억이 이어진다. 그녀는 집을 나서는 지서의 등에 대고 외쳤다. 네 언니한테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박화순 여사는 끝까지 지서의 친모를 ‘네 언니’라고 칭했다. 정말 지독한 고집이었다.

지서는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하지만, 어둡고 습했다. 전등을 켜려다 그냥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집에선 익숙한 냄새가 났다. 가끔씩 떠올렸던,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때로는 그리워했던 그 냄새. 지서는 무릎을 세우고 몸을 웅크렸다. 갑자기 한겨울이 된 것처럼 오한이 들어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창밖에선 천둥소리와 함께 비가 내렸다. 거센 빗줄기가 요란하게 창을 때리고 번개가 칠 때마다 일순 집 안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공허와 무기력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마음에 둔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평생을 싸우며 든 미운 정 때문인지 그녀를 보내고 나니 가슴에 구멍이 생긴 느낌이었다.

지서는 살면서 어떤 종류의 소속감도 느낀 경험이 없었다. 늘 스스로가 적을 둔 곳 없이 그저 흐르는 대로 떠다니는 물 같다고 생각했다. 빗물이었다가, 실개천이었다가, 강물이었다가, 바다로 갔다가. 그 과정을 반복하며 홀로 외롭고 지겨운 삶을 이어 가겠구나 생각하면 덜컥 불안해지기도 했다. 그 불안을 지우기 위해 일에 몰입해 봤지만 손에 남는 것은 많지 않았다. 흐려진 마음의 틈을 헤집어 보니, 씁쓸한 깨달음만 보였다.

결국 누구도 내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도 내 것이 아니었다.

“무연, 무연…… 무연.”

몇 번쯤 소리 내어 되뇌어 본다.

이제 정말 이 마을과의 모든 인연이 사라져 버렸다.

홀로 다른 행성에 버려진 무연고자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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