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17)

06. 행방行方은 그녀도 모른다

뜨거워진 체온, 거친 호흡, 살갗에 배어 나온 땀.

“그만…….”

은기가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힘을 주어 그의 페니스를 조였다. 은기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보다 한참 작고 약한 지서를 떼어 놓는 것은 꽤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며 뜨거운 숨을 토해 낼 뿐이었다.

은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붉어진 눈가가 자극적이다. 몸은 이렇게 큰데 눈은 소년처럼 맑아 도리어 지서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를 망치고 싶다.

“지서 씨…….”

은기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녀의 몸이 달았다. 덩달아 숨이 가빠지고 체온이 그의 온도를 닮아 갔다. 그녀의 어깨에서 맴돌던 은기의 손이 점점 아래로 향했다. 골반을 배회하던 커다란 손은 이내 그녀의 셔츠 안으로 들어와 몇 번이고 등허리를 매만졌다. 지서가 페니스를 자극할 때마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며 그녀의 허리를 세게 움켜쥐었다. 아팠지만 오히려 그 고통이 흥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슴…….”

지서가 눈을 감고 신음하듯 입을 열었다.

“가슴 만져도 돼.”

남자의 손이 그녀의 브래지어 안으로 성급하게 파고들었다. 그가 젖가슴을 움켜쥐는 순간, 기이한 감각이 그녀의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은기가 지서를 잡아 침대에 눕혔다. 체중을 실어 그녀를 위에서 누르고 힘으로 속박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곤 허겁지겁 지서의 상의만 끌어 올리고는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속살에 닿자 그녀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알지만 낯선 감각. 시야가 크게 출렁거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휘발된다. 그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늘 차갑고 건조하게 가라앉아 있던 마음속 무언가가 천천히 부유한다. 소리 없이 뒤섞이다가 순식간에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은기가 상체를 일으켜 그녀를 내려다보며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훑어 올렸다. 불투명한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다시 앞으로 쏟아진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에 음영을 만들어 냈다. 나른한 눈빛이 지서를 꼼꼼히 훑어봤다. 그녀는 그 시선이 지나간 자리마다 감각이 예민하게 날을 세우는 것을 느꼈다. 제법 남자다운 선 굵은 눈썹, 그리고 그 아래 매끈하게 그린 듯한 눈이 사나운 이채를 띠며 그녀를 응시했다. 완벽하게 성욕에 사로잡힌 눈빛을 확인하자 묘한 희열에 몸이 뜨거워졌다.

눈빛과 분위기는 앳되었는데도 날카롭고 강인한 느낌이 나는 것은 눈썹과 높은 콧날, 각진 턱선 때문일까.

길고 단단한 목과 널찍한 어깨, 작게 오르내리는 탄탄한 흉곽. 지서 역시 매끈하고 건강하게 근육이 자리 잡은 그의 몸을 시선으로 마음껏 음미했다. 오른쪽 복부에 난 상처와 멍 자국마저 관능적이다.

다시 몸을 굽힌 은기가 조급하게 그녀의 가슴에 입을 맞추고 살갗을 깨물었다. 지서는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날것의 감각에 집중했다. 그가 브래지어도 제대로 벗기지 않고 젖가슴을 크게 물어 깊게 빨았다. 입 안 가득 부드러운 살을 머금고 오물거리자 통증 섞인 쾌감이 그녀의 몸 여기저기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유륜을 동그랗게 덧그리며 배회하던 혀가 유두를 건드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남자의 머리카락 안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부드럽게 손에 감기는 감촉. 지서의 시야가 좁아지는 순간.

“아!”

은기가 기습적으로 유두를 깨물자 좁아졌던 시야가 갑자기 넓어지며 천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찌릿한 통증이 야릇해 지서는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유두를 잘근잘근 씹는 감각. 몸 안에서 폭죽이 터진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목 안을 긁는 소리를 낸다. 위협적이다.

“은기야, 잠깐만.”

후크를 풀지 않은 브래지어 때문에 예민한 피부가 아파 왔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못 들었는지, 그만두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인지 은기는 다리에 힘을 주어 지서를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하고는 집어삼킬 듯 거칠게 가슴을 깨물고 빨았다. 마치 그에게 심장을 물어뜯기는 기분이었다. 지서가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녀의 의지는 소용없었다. 아니, 오히려 허벅지에 닿은 그의 페니스가 점점 더 몸집을 키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읏, 은기야, 은기야…… 잠깐만, 잠깐만.”

지서가 연달아 부르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힘이 느슨해졌다. 은기가 몽롱한 얼굴로 지서를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아……, 아파요? 제가 아프게 했어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던 주제에 순식간에 눈빛이 유순해졌다.

“아니, 괜찮아. 나 이게 너무 조여서.”

“죄송해요.”

은기가 풀 죽은 목소리로 사과하며 얼른 지서를 일으켜 앉혔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센지 제법 키가 큰 지서를 어린아이 다루듯 한다.

지서는 팔을 등 뒤로 돌려 후크를 풀어냈다. 가슴을 압박하던 것이 사라지고 젖가슴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정신없이 빨아 대던 왼쪽 가슴이 타액과 붉은 멍으로 물들었다. 고통인지 쾌락인지 모를 감각이 아직도 몸 안을 맴돌았다.

“우리 조금만 천천히 하자.”

“……네.”

지서의 말에 은기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서는 자신의 바지를 벗기 위해 버클을 풀다가 문득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은기를 보았다. 바지는 허벅지까지 내려가고 드로어즈는 축축하게 젖어 안 입은 것만 못해 보였다. 게다가 앞섶이 팽팽하게 부풀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게 안간힘을 쓰며 참는 눈치다. 힘들 것이다. 이미 그녀의 손에 자극받아 발기한 상태이니 자위라도 하고 싶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서 자신의 속도에 맞추려 애쓰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벗겨 줘?”

바지를 벗고 속옷 한 장만 걸친 지서가 은기의 옆에 앉아 그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 아뇨. 제가 벗을게요.”

그리 말하곤 재빨리 바지를 벗어 한쪽에 던져두었다. 드로어즈를 벗을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그러다 은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반쯤 문이 열린 욕실로 들어갔다. 세면대의 물소리. 손이라도 씻는 모양이다.

“혹시 콘돔 있어?”

욕실에서 나온 은기에게 지서가 물었다. 그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스포츠 백에 손을 넣어 콘돔 한 움큼을 쥐어 꺼냈다. 종류도 다양하다. 이 정도면 일주일 내내 섹스만 해도 다 못 쓸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많아?”

그 물음에 은기는 우물쭈물 대답이 없었다. 다만 목덜미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은기 씨.”

지서가 경직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키스는 처음이고 섹스는 아니야?”

그녀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그치는 말투였다.

“아니에요! 저……, 저 섹스도 처음인데.”

은기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 네덜란드에 있을 때 받은 건데 쓸 일이 있을 거 같아서.”

뭐야.

그래서 굳이 챙겨 왔다고?

“한번 자 보고 싶어서 나 꼬신 거니?”

“……네. 아, 아니, 아니요. 그러니까, 섹스도 하고 싶고, 연애는 더 하고 싶고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건데…….”

은기가 어수룩하게, 하지만 제법 당당하게 말하며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에게선 비누 냄새가 났다.

“지서 씨도 제가 수작 부리는 거 알았잖아요.”

은기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저 어설프잖아요. 다 알면서 받아 준 거 아니에요?”

알았지. 알기야 했지만.

“진짜예요. 믿어 주세요.”

은기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웅얼거렸다. 지서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가 귀여워 보이다니, 웃긴 일이었다.

“저 계속해도 돼요?”

은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눈치를 보면서도 눈빛을 반짝거리는 게 안달 난 기색이 역력했다.

“응.”

지서의 수락이 떨어지자 은기는 누구보다 빠르게 그녀를 잡아 침대에 눕히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저지하고는 턱짓을 했다.

“앉아. 내가 올라갈래.”

“네에.”

은기가 얌전히 침대에 앉자 지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허벅지 위에 마주 보도록 올라탔다. 엉덩이 아래, 그의 탄탄한 허벅지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벗겨 놓고 보니 확실히 알 것 같다. 온몸이 근육질이지만 은기는 특히 허벅지가 축구 선수처럼 잘 발달했다.

은기가 맨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어리광 부리는 것처럼 머리를 들이밀고 지서의 뺨에 자신을 것을 비비다가 쪽 소리 나게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지서는 그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엷게 웃었다.

그녀는 무언가에 휩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계획을 짜고 계산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는 타입. 그래서 이 섹스 자체가 지서에겐 성급한 충동, 혹은 욕구에 휩쓸리는 행위였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키스해 줘.”

상관없겠지. 한 번쯤은 실수해도 괜찮을 것이다.

은기가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몸을 바싹 밀착했다. 곧이어 서로의 입술이 맞닿고 그녀의 입 안으로 그의 혀가 들어왔다. 남자의 혀가 그녀를 옭아맨 채 비비고 핥고 빨아 댔다. 호흡이 격렬하게 얽히고 잔잔하던 수면이 급류로 변해 갔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은 부지런히 그녀의 유두를 만지고 꼬집다가 손 전체를 사용해 주무르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갈수록 힘이 강해졌다. 조금 아팠지만 지서는 굳이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힘 조절을 못 한다는 것은 흥분했다는 뜻. 오히려 거칠고 사나워진 모습으로 덤벼드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해도 되는 거 맞죠?”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달콤한 말 한마디에 귓가에서 시작된 찌릿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졌다. 그녀는 문득 처음 그와 키스했을 때가 떠올랐다. 붉었던 귀, 어설픈 몸짓. 그게 불과 며칠 전이더라.

“……응.”

지서 역시 뚜렷하게 갈라진 그의 가슴 근육을 간질이듯 더듬었다. 양손 엄지로 그의 유륜을 둥글게 문지르며 피부를 자극하자 은기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안달 내는 몸짓. 아슬아슬하게, 하지만 분명히 느끼도록 그의 유두를 슬쩍 건드리자 남자의 뜨거운 호흡이 그녀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못 참겠다는 듯 은기의 손이 지서의 목덜미를 감싸 뒤로 당겼다. 그녀의 턱이 들리자 은기가 고개를 틀고 입술을 먹어 버릴 기세로 각도를 엇갈려 겹쳤다. 입맞춤이 더 깊어졌다. 점막이 접촉할 때마다 물기 어린 소리가, 서로의 목 안에서 울리는 신음이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움직임이 격렬해질수록 얇은 속옷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 지서가 허벅지에 힘을 주어 성기를 자극하자 남자의 목 안에서 쇳소리가 났다. 지서는 은기의 양손을 잡아 자신의 엉덩이에 가져갔다. 확실히 손이 크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감싸 꽉 움켜쥐며 주물렀다. 한참 동안, 지서의 온몸을 만져 대던 은기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 가볍게 들고는 손쉽게 속옷을 벗겨 냈다.

남자의 앞섶은 터질 것처럼 한층 더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가 드로어즈를 잡아 내리려 했지만 페니스가 사납게 발기한 탓에 쉽지 않았다. 지서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속옷을 벗기자 성기가 튕기듯 솟아오르며 그녀의 배에 뜨거운 체액이 튀었다. 짙은 욕망의 냄새가 훅,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 불과 몇 분 전 손으로 잡았을 때도 꽤 크다고 느꼈는데 완전히 발기해 핏대가 선 페니스는 은기의 키와 피지컬만큼이나 어마어마하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아래가 젖어 드는 느낌이다.

지서는 방바닥에 나뒹구는 콘돔 중 하나의 박스를 뜯어 침대에 쏟았다. 은기가 그것을 집어 들고 찢으려 했지만 지나치게 흥분한 탓인지 비닐 하나조차 제대로 벗기지 못했다. 이래서야. 지서는 픽 웃으며 그에게서 콘돔을 빼앗아 이로 찢었다.

“그냥 있어. 해 줄게.”

지서가 콘돔을 씌우기 위해 페니스를 잡자 은기가 숨을 멈추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괜히 놀리고 싶다.

“은기 너 얼굴 엄청 붉어.”

나긋하게 말하며 지서는 그의 성기를 아래에서부터 손끝으로만 슬쩍 더듬어 올라갔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아슬아슬한 접촉에 은기가 깊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그의 목덜미에 선 핏대를 따라 흘러내린 땀이 넓은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한여름 높아진 온도와 습도 탓에 실내의 공기가 후텁지근하다.

“빨리요, 빨리해 줘요.”

간신히 쥐어짜듯 말한 은기가 지서의 어깨를 슬쩍 눌러 재촉했다. 땀이 밴 타인의 살갗이 맨어깨에 닿았지만 그녀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질척한 감각이 잠들어 있던 신경들을 모조리 깨우는 느낌이었다. 대낮, 한여름의 섹스. 날것 그대로 노출된 것 같은 이 위험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왜?”

은기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바라보자 지서가 물었다.

“예뻐서요.”

“……뭐야.”

실없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지서는 어쩐지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기분이었다. 섹스할 때의 남자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도 저 별것 아닌 말에 반응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멍이 너무 심하게 들었는데.”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빨리해요.”

그의 목소리가 조급하다.

콘돔을 완전히 씌우고 다시 올라타려는데 은기가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 자신의 아래에 가두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지서는 멍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확실히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은기는 어딘가 모르게 위협적이다. 그게 피지컬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른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단정하고 말간, 싱그러운 외모가 이성을 잃고 짙은 색욕에 빠진 모습이 이질적이다. 자신이 그를 남자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지서의 기이한 정복욕을 부추겼다.

“넣고 싶어요.”

은기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는 몸을 굽히며 말했다. 잡아먹힐 것 같은 기분. 처음 은기가 키스 마크를 남겼던, 아직도 옅게 자국이 남아 있는 목덜미가 욱신거렸다.

“넣게 해 주세요.”

은기가 재차 애원하자 지서는 대답 대신 다리를 조금 벌렸다. 그러자 그가 몸을 겹쳐 왔다. 이내 몸으로 은기의 무게가 느껴지며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한동안 맥이 뛰는 부분을 씹어 대더니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귓불을 깨물며 숨을 헐떡였다. 체구가 큰 어린 짐승이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지서는 손으로 그의 뺨을 감싸 쥐고 가볍게 건드리며 말했다. 은기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응?”

되묻자 그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의 초점은 흐리고 몽롱했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무릎을 잡았다. 은기는 그녀의 무릎에 입을 맞추고는 사타구니 안쪽에 깊고 짙은 키스를 했다. 입술이 속살을 자극할 때마다 지서의 내전근이 움찔거리며 긴장했다. 은기의 혀는 계속해서 미끄러져 올라왔다. 아슬아슬하고 끈질겼다.

그러다 일순, 몸이 반쯤 허공에 뜨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빠듯하게 아래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아찔한 감각이 이어졌다.

이걸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오감을 넘어선.

“지서 씨.”

타인의 세계에 완전히 편입되어 흡수되는 순간을.

은기는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지서를 멍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그녀의 눈을 보면 입술을 보고 싶다. 키스를 하고 싶은 동시에 저 흰 젖가슴을 머금고 원껏 빨며 탐하고 싶다. 품 안에 끌어안고 싶은 동시에 온몸 구석구석 만지고 싶기도 하다.

무섭다.

“왜?”

밤마다 상상만 했던 욕망을 남김없이 끌어모아 다 퍼부으면.

“……예뻐서요.”

그녀가 깨질까 봐.

살면서 신체적 한계를 느낀 경험은 별로 없었다. 타고난 피지컬, 강한 체력, 노력으로 만든 기술. 하지만 이 작은 여자 앞에선 한계를 느낀다. 경기에서 쏟아붓던 것들을 수치화해 반으로 줄이는 것이 은기에겐 또 다른 한계였다.

치솟는 아드레날린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녀의 과거 속 남자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부터 뜨거워지던 피가 이제는 펄펄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맞은 상처는 강렬한 성적 자극과 흥분 탓에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이 정도의 타박상은 경기 중에도 흔히 발생했다. 코뼈가 골절되고도 90분 풀타임을 다 소화한 적도 있다. 그러니 요령껏 맞아 준 상처의 통증 따위가 이 성욕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상처를 볼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에 스치는 우울함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은기는 지서의 몸을 감싸 자신의 아래에 가두었다. 시선의 각도가 바뀌자 머리카락에, 역광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지서의 몸이 그의 앞에서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은기는 항상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본다. 키가 크기 때문에 이는 지서가 아닌 타인에게도 적용되지만 유독 그녀에게만큼은 이 시선의 각도가 더 특별하다. 이마의 작은 곡선, 그 경계에 자리 잡은 정갈한 눈썹과, 그리고 그 아래, 긴 눈매가 만들어 낸 예각. 그녀의 시선이 은기 자신에게로 향할 때면 그 날카로운 각도는 아주 조금 동그랗게 변한다. 미세한 변화라 타인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은기는 안다.

햇빛 때문에 시야가 지나치게 밝다. 넓은 거실 창은 불투명하긴 했지만 누군가 두 사람의 은밀한 행위를 훔쳐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아니…… 사실 처음 만난 후 내내 지서를 훔쳐보고 있는 것은 은기 자신이다. 여자의 가느다란 몸은, 연약하지만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섬세한 생김새는 그에게 이상한 관음증을 부추겼다.

상상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매일 밤 머릿속으로 했던 음란한 상상들, 그럴 때마다 가졌던 지독한 죄책감도 지금 눈앞의 광경 앞에선 모두 무가치한 허상에 불과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어깨와 가슴 아래로 쏟아지자 은기는 그마저도 눈에 담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적나라한 모습. 단전에 단단하게 뭉쳐 있던 열기는 이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신에겐 10밖에 되지 않는 힘이어도 그녀에겐 버거울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은기의 피지컬은 일반적인 범주에서 한참을 벗어났고, 그래서 늘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었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조급하게 굴면 안 되는데 마음은 다급하기만 했다.

은기는 지서를 똑바로 응시했다. 허락의 의미인지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가 벌어지며 그의 굵은 허벅지를 감쌌다.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그녀의 위로 상체를 숙였다. 살짝 무게를 싣자 그녀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은기는 모르는 척 그녀의 목, 예민한 피부에 입술을 붙이며 혀로 핥았다. 간지러운지 그녀가 못 참겠다는 듯 몸을 뒤척였다.

“은기야, 은기야…… 잠깐만, 잠깐만.”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간신히 멈췄다. 강제로 욕망을 저지당한 기분이 썩 달갑지 않았지만 눈앞의 지서를 보며 애써 속도를 줄여 본다.

여유롭고 능숙하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어설프고 힘만 세서 그녀가 싫어하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다.

“지서 씨.”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본다. 마음속으로도 그 이름을 여러 번 반복하자 거짓말처럼 조급함이 사라진다.

삽입의 순간, 은기는 눈을 감았다.

어두워진 그의 하늘에 별이 많아진다.

지서는 살짝 고개를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콘돔에 싸인 커다란 페니스가 자신의 몸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다시 시선을 올려 은기를 응시했다. 약에 취한 사람처럼 그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익숙하지만 낯선 감각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삽입이 깊어지는 순간이면 자신의 내벽이 진득하게 남성을 붙잡고 조여 대는 느낌이 이질적이었다.

은기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손등으로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늘 맑다고 생각했던 두 눈의 안광이 지금까지 지서가 봐 왔던 빛과는 확연히 달랐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바꿔 지서 쪽으로 몸을 굽혔다. 파고드는 각도가 달라지며 결합이 깊어졌다.

“하읏, 잠깐…… 잠깐만.”

자극이 강해지자 지서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서는 손을 뻗어 그의 가슴팍을 밀어 내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미약한 힘 따위 바위처럼 단단한 남자의 몸에는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도리어 은기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것을 옭아매 깍지를 꼈다. 그러곤 단단하게 붙든 손을 짓누르며 좀 더 그녀에게로 자신의 무게를 실어 쳐올렸다.

“지서 씨…….”

서로의 몸이 닿을 때마다 땀이 밴 피부가 질척이며 끈끈하게 달라붙었다. 호흡이 부족해 정신이 혼미했다.

“나 죽을 거 같아요. 아…… 미치겠어.”

은기가 그녀의 귓가에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말하는 도중에도 미친 듯이 허리를 쳐 대는 바람에 지서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진저리 쳤다. 고통인지, 쾌락인지 모를 것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넘쳐흘렀다. 몸을 쑤셔 대는 뜨거운 불기둥이 정신까지 헤집었다. 남은 손으로 가슴팍을 치려 했지만 보잘것없이 단숨에 붙들려 머리 위로 결박됐다. 덫에 걸린 초식동물 같았다.

“은기야, 너무, 너무 깊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온몸이 저릿하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눈가가 뜨겁다. 그가 페니스를 꽉 욱여넣자 울음 섞인 신음이 잇새에서 터져 나왔다. 저도 모르게 턱이 들리고 주체 못 할 쾌감에 몸이 덜덜 떨렸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허리가 들리고 다리가 그의 어깨에 걸쳐졌다. 은기가 두 팔로 양옆을 짚고 자신의 안에 가두자 지서는 몸을 뒤틀어 움직이며 벗어나려 노력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지서의 허리둘레 정도 될 만큼 두껍고 단단한 허벅지가 꽉 힘을 주어 몸을 옭아매자 전신의 압박감이 상당했다. 강인한 골격, 건장한 신체. 타고난 피지컬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힘으로 그를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한계까지 빠져나간 성기가 다시 끝까지 짓누르며 들어왔다. 그 박자에 맞춰 몸이 들썩이고 부딪힌다. 쾌락과 함께 남자의 몸이 자신의 전신을 타박할 때마다 지서는 어쩌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말을 하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흘러나오는 것은 흐느끼는 신음뿐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일방적인 욕망이 아무런 완화 장치 없이 몰려왔다. 차마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 지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진득한 열기를 품은 공기와 질척한 습기가 예민해진 피부에 엉겨 붙었다. 강렬한 성욕의 냄새가 코끝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분명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낯설었다. 이성을 잃고 무기력하게 휩쓸리는 자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에 흔들리는 몸이.

말이 안 된다. 이건, 말도 안 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지서의 눈가에 열이 몰렸다. 이내 눈물이 맺혀 아래로 떨어졌다. 왜 우는지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파요?”

지서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은기가 페니스를 완전히 빼내며 물었다. 갑자기 몸 안이 텅 빈 느낌에 지서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아픈 걸까. 아니, 그건 아닌데. 아, 모르겠어.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왜 울어요. 싫어요?”

은기가 그녀의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려 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싫으면 안 할게요.”

아니, 아니야.

말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살살 하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

그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박고 중얼거렸다.

“나만, 지서 씨, 나만 이렇게 좋아요?”

난 너무 좋아요. 아프면 참을게요. 미안해요. 은기가 두서없이 아무렇게나 말하자 지서가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다독였다.

“은기야.”

지서는 간신히 목을 긁어 소리를 내며 그를 불렀다.

“나 일으켜 줘.”

그녀의 말에 은기가 지서의 등에 팔을 감고는 손쉽게 안아 세워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싫어서 그런 거 아냐. 네가 너무…….”

속삭이며, 아직도 거대하게 발기해 있는 성기를 보자 은기가 얼굴을 붉혔다. 혈관이 도드라진 채 빳빳하게 선 모양이 어마어마했다. 지서는 그의 페니스를 잡아 자신의 입구로 가져갔다. 어리다는 게 이런 건가. 막 섹스를 시작했을 때처럼 그의 성기는 여전히 뜨거워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지서는 천천히 은기의 허벅지 위로 내려앉으며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댔다. 빽빽하게 내부를 채우는 감각은 여전히 버거웠다. 조금 전보다 더 삽입감이 깊었지만 자신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선 차라리 이 체위가 나았다.

지서가 은기의 뒷머리를 감싸 자신을 바라보게 당겼다. 시무룩하게 아래로 처진 눈가에 입을 맞추자 경직되어 있던 눈매가 조금은 느슨해졌다. 지서는 가진 체력을 끌어모아 몸을 아래위로 움직였다. 치골에 그의 음낭이 닿는 감각이 야릇하다. 점막과 점막이 스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귓가를 적신다.

지서의 속도를 파악했는지 은기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러 감쌌다. 견갑골에서부터 등허리까지 몇 번이고 길게 쓰다듬던 손이 그녀의 엉덩이에서 멈추었다.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엉덩이를 주무를 때마다 지서의 몸에 힘이 들어가고 내벽이 그의 페니스를 쥐어짜듯 압박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은기가 뜨거운 신음을 토해 냈다.

“괜찮아요?”

그가 묻자.

“응.”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일일이 물어보고 관찰하는 은기를 보자 지서는 괜히 웃음이 났다.

“왜 웃어요.”

“응?”

소리 내지 않은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물음에 고개를 들자 은기가 집요한 시선으로 지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별로야? 그래서 그래요?”

그 질문에 지서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반응을 멋대로 판단했는지 은기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언뜻 서러워 보이기도 했다.

“처음이라 그렇잖아. 섹스 처음 하는데…… 하아, 어떻게, 사람이 처음부터 다 잘해요.”

여기서 더 잘하면 누굴 죽이려고.

하지만 속상해하는 은기의 얼굴을 보자 말이 바르게 나오질 않았다. 어쩐지 놀리고 싶었다. 이 커다란 남자애가 자신 앞에서 절절매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넌 뭐가 그렇게 속상하고 서러운 걸까.

“나도 알아요. 나 무식하게 힘만 센 거.”

어른스러운 것 같다가도 이럴 때 보면 또 영락없는 그 또래의 어린애 같다. 지서는 양손으로 그의 뺨을 감싸 쥐고 아이에게 하듯 쪽 소리가 나게 뽀뽀했다.

“그럼…… 그럼, 지금부터라도 잘해 봐.”

지서의 도발에 은기가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가만 보면 순한 것 같으면서도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다.

어느새 은기의 손이 그녀의 아랫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배를 더듬던 손이 갈비뼈와 옆구리 구석구석을 주무르다가 젖가슴에서 멈추었다. 은기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동그랗게 감싸고 힘을 주어 누르자 살덩이가 그의 손 모양을 따라 마구 뭉개졌다. 흥분으로 부푼 유두가 비벼지자 지서의 입술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엉덩이를 괴롭히는 손길, 가슴을 만져 대고 유두를 꼬집는 감촉, 아래를 쑤셔 대는 페니스, 귓가를 간질이는 뜨거운 숨.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으읏.”

지서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젖꼭지가 빨리고 씹히는 느낌이 적나라했다. 집요한 남자는 가슴의 살덩이까지 크게 입에 물어 흡입하다가 입술을 모아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빨기를 반복했다. 그 감각에 익숙해질 무렵엔 혀로 유륜을 핥아 대고 치아로 잘근잘근 씹어 댔다. 계속되는 자극에 지서의 무릎에 힘이 들어가고 몸이 들썩였다. 언제부터인가 은기는 아래에서부터 느릿하게 쳐올리며 그녀의 몸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지서의 허리가 아래로 낮아졌다가 위로 솟아오르길 반복하며 흔들렸다. 삽입도 애무도 느리기 짝이 없어 오히려 더 자극적이었다.

그렇게 동시에 어느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 그의 허리가 빠르게 튀었다.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속도가 빨라지자 지서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뒤로 젖혀졌다. 은기가 팔로 그녀의 등을 받치며 침대에 눕혔다.

지서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그의 움직임에 몸을 내맡겼다. 탁탁, 몸이 부딪칠 때마다 아래에서는 젖은 소리가 났다. 간신히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로 은기의 얼굴이 보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이 지서를 응시했다. 충혈되어 붉어진 눈엔 욕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뚝뚝, 은기의 턱을 타고 떨어진 땀방울이 그녀의 가슴팍을 적셨다. 민감해진 감각 탓에 그 땀방울이 피부에 닿아 아래로 흘러내리는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거칠게 쳐올리던 은기가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완벽하게 박자가 일치하자 지서의 등줄기에서부터 찌릿한 무언가가 일순 폭발하며 시야가 하얗게 흐려졌다. 뜨거운 무언가가 배 속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절정, 그리고 사정. 은기의 몸이 잘게 떨리며 경련하듯 바들거렸다.

은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 몸 위에 자신의 것을 겹쳤다. 맞닿은 가슴, 심장이 요란하게 뛰는 게 생생했다.

지서는 잠시 그의 무게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의 온도에 몸이 잠겨 들었다. 어쩐지 머리가 맑아지고 후련해졌다. 고작 섹스일 뿐인데,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저지른 실수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함보다는 개운함이 더 컸다. 분노와 고독, 오래 묵은 공허와 외로움이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공기가 덥고 습해 불쾌지수가 높은 날씨였지만 정사의 여파로 지친 지서는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겼다. 아니, 오히려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볼을 비볐다. 또 하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안으며 나른한 섹스의 여운을 즐기는 눈치였다.

“몸에 왜 이렇게 흉터가 많아.”

가슴팍이며 배, 옆구리까지 수술 자국과 옅은 흉터가 많았다.

“아, 운동하다가요.”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하길래.”

지서의 말에 은기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미소 지었다.

이제 널 어쩌면 좋을까.

너에게 나는, 나에게 너는 어떤 감정인 걸까.

생각하다, 생각하다, 지서는 그냥 눈을 감았다.

“자요? 밥 먹어야 하는데.”

자는 것을 확인하는지 커다란 손그림자가 그녀의 눈 위를 오간다.

미소 섞인 목소리. 부드럽고 포근한 향기.

지겹고 귀찮을 만큼 사랑받고 싶다가도.

“지서 씨. ……이지서.”

사랑을 지키는 것보다 마음을 죽이는 것이 더 쉽다는 걸 이제는 안다. 시작조차 하기 전에 끝을 내는 게 더 쉬운 일이라는 것도.

“지서야.”

뺨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춘 은기가 이마를 쓰다듬다가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편안해 오히려 덜컥 겁이 났다.

“너 왜 반말이야.”

지서가 눈을 뜨며 말하자 은기가 희게 웃었다.

“저 한 번만 더 하면 안 돼요?”

그가 몸을 깊게 겹치며 졸랐다. 지서는 승낙의 의미로 말 대신 그의 손가락 끝을 살짝 깨물었다. 별것 아닌 몸짓에도 은기는 몸을 떨며 반응한다.

마음이 표류한다.

행방行房은 그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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