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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3화 (3/972)

〈 3화 〉 인간 : 백재성­2

* * *

분명히 불빛이다. 광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적막한 밤의 산속에서 무엇이 불을 뿜는 것일까?

혹시라도 야행성 몬스터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라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 것이다. 헌터가 아닌 나는 이 어두운 밤에 야행성 몬스터의 발을 따돌리고 도망칠 능력이 없다.

그런 위험한 생각이 들었지만, 불빛으로 향하는 내 발은 멈추지 않았다. 저것이 야행성 몬스터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불빛은 뿜어져 나오지만, 일렁거리거나 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생명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저것이 몬스터의 불빛이었다면, 이미 나는 공격당해 죽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호전성이 대단히 강하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빛이 나오는 곳으로 움직였다.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위험한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야밤에 불빛을 내는 이상한 물체가 산에 똑 떨어져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상황이다.

“해골이 밤에 빛을 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혹시, 살해당한 사람?”

야행성 몬스터만큼이나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다. 월하산은 시체를 매장하기에는 너무 작은 산이다.

아무리 생각이 없는 살인마라도 이곳을 사체 은닉 장소로 선택하지는 않으리라. 더군다나 이렇게 등산로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더욱더.

그리고 지독한 시체 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시체 냄새를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나이지만, 그런 것쯤은 구분할 수 있다.

아주 천천히, 불빛이 나는 그곳으로 다가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의외의 물체였다. 나는 그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 얼굴을 가져갔다.

그것은 내 주먹과 비슷한 크기의 주사위였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주사위처럼 생긴 무언가였다.

“이건 뭐지?”

주사위의 한 면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강렬한 불빛은 아니지만, 제법 멀리서 볼 수 있을 정도의 분명한 불빛이다. 물론, 지금이 밤이기에 이 불빛이 더 돋보이긴 하지만.

나는 천천히 그것에 손을 가져갔다. 만약 이게 진짜 주사위라면, 내가 살면서 본 주사위 중에서 가장 큰 주사위일 것이다.

“매끈한 촉감… 금속으로 만든 건가?”

주사위의 표면은 제법 차가웠다. 매끈한 금속의 표면인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다만 겉면이 놀라울 정도로 잘 연마되어있다는 것을 만지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물건이다. 나는 그것을 들어 올렸다. 주먹만 한 크기의 물건인지라 무게를 얕보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무거웠다. 거의 5kg은 넘는 것 같다. 그다지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은 나에게는 한 손으로 들기 부담스러운 무게다.

“왜 이렇게 무거워.”

나는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것이 말로만 듣던 ‘트리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사위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런 내 행동보다 빠르게 무언가가 나를 습격했다.

“으악!”

밝은 빛이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밝은 빛이 나를 비추고 있다. 빛은 하늘에서 뻗어 나왔다. 놀라움보다 당황스러움이 앞선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가렸다. 갑자기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내 전신을 덮친다. 어렸을 적에,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느꼈던 감각이다. 피크에 도달한 롤러코스터가 엄청난 속도로 수직 하강할 때 가슴에서 느껴지는 그런 자극이었다.

“뭐….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직업의 특성상, 다른 사람보다 상상력이 더 풍부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처럼, 하늘에서 내리비추는 밝은 빛 때문에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간신히 실눈을 떴다. 그런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어어!?”

생각을 흘리는 버릇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도, 지금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누구나 이런 비명을 흘렸으리라.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점점 작아지는 지면이었다.

“뭐…. 뭐야!?”

아니, 하늘을 난다는 표현은 조금 부적절하다. 정확히는 어떤 것에 의해서 하늘로 끌려 올라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나는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SF소설의 도입부가 떠올랐다. 별을 관측하던 주인공의 머리 위에 UFO가 나타났고, 그것이 쏘아 내린 불빛이 주인공을 납치한다는 내용이었다. 꽤 인상적인 도입부라 내용이 생생히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늘로 딸려 올라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지상의 주택과 건물들은 이윽고 콩알만큼 작아지더니 아예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내 주위로 뿌연 안개가 지나갔다. 정확히는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다.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는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다. 너무나 이상한 상황에 현실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몸은 대기권을 한참 지나서 더욱더 위로 올라갔다.

가슴을 짓눌리는 이상한 감각을 제외하고는 조금도 불편한 곳이 없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 이렇게 높은 곳을 맨몸으로 버티는 것은 무리다. 과학적인 근거를 대라면 곤란하지만, 아무튼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윽고 대기권을 넘어서 우주로 넘어왔다. 지상에서 떠올라 우주로 올라오기까지, 시간상으로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푸른 지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게 경외감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아름답기는 했지만, 지금 겪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초월적인 자연물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

“응? 저건…?”

그 대신이랄까? 내 눈을 사로잡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의 크기는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내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내가 얼마 전에 읽었던 SF소설의 도입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주인공을 납치한 우주인은 지구인의 유전자를 개량해서 슈퍼 솔저를 만들고자 한 사악한 외계인이었다. 주인공은 그런 외계인의 우주선에서 어찌어찌 살아남아서 탈출하고, 특별한 힘을 가진 채, 지구에 귀환해서 영웅적인 행보를 남긴다.

뭐, 5장까지 읽다가 말아서 결말은 모르지만, 아무튼 초반에 무진장 고생하는 내용이다.

“저건… 우주선?”

어쩌면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지구를 제치고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지구보다는 작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우주선이었다. 도저히 지구의 기술력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초현실적인 디자인의 물체였다.

나를 인도한 빛은 그 우주선에서 나오고 있었다.

*­*­*

“끙. 여기가 내부인가?”

우주선 내부로 들어왔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우주선의 빛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을 뿐이다.

나는 이전에 읽었던 SF소설이 떠올라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UFO로 납치되자마자 수면 가스를 마시고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무려 30년 후에 잠에서 깨어난다. 물론, 소설의 시간으로는 30년이지만, 단 몇 줄의 문장으로 그것을 묘사한다.

“내부는… 뭐랄까. 엄청 현대적… 아니, 미래적이네.”

나는 거대한 홀 같은 곳에 서 있었다. 이곳이 우주선의 현관에 해당하는 곳일까?

현관이라고 하니, 조금 이상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배의 갑판 정도일까? 아무튼 굉장히 넓은 공간이다.

조명이 촘촘한 간격으로 켜져 있어서 주변을 식별하는 것은 무리가 없었다. 공간은 하얀색과 검은색 배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흰색이 많았고, 검은색이 드문드문 사용되었다. 잘못 사용하면 정신병원처럼 느껴질 수 있는 배색인데, 굉장히 절묘한 센스 덕분에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응? 이 주사위는 아까 그거네.”

내 앞에는 내가 조금 전에 주운 주사위가 있었다. 정확히는 주사위의 형태를 한 무언가지만. 자세히 보니 정육면체의 면에는 주사위 눈금 따위는 없다. 이러면, 주사위라고 칭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다.

“던전의 트리거는 아닌가? 아니, 혹시 여기가 던전일 수도…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헌터가 아니라고 해도 일반인 수준의 상식은 가지고 있다. 혹시 여기가 던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다행히 나를 습격하는 몬스터는 없었다. 아직 없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없는 것일까? 고작 한 단어 차이지만, 내 미래가 달라진다.

트리거란 특별한 던전으로 인도하는 물건이다. 사실, 여러 뜻을 가진 단어지만, 주로 그런 뜻으로 쓰인다. 트리거를 이용해서 입장할 수 있는 던전을 인스턴트 던전이라고 한다. 만약, 이 주사위가 트리거라면, 이 거대한 우주선이 인스턴트 던전인 셈이다.

“하지만, 인스턴트 던전은 우리 세계와 단절된 이세계의 어딘가라고 들었는데… 여기는 일단 지구 상공인 것 같고. 인스턴트 던전은 아닌가?”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일반인 수준이라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스턴트 던전보다는 외계인의 우주선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물론, 인스턴트 던전도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니, 외계인의 우주선 테마의 인스턴트 던전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아무래도 추가적인 정보가 더 필요하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일단 움직여야겠군.”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러 오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지구와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다. 나는 일단 이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내 심장은 정상적인 심박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평정을 찾았다는 증거다.

제대로 생각해보면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내 호기심은 두려움을 앞섰다.

나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고 상황을 판단하기로 했다. 이곳은 넓은 홀이지만 사방에 문처럼 보이는 것이 수두룩했다. 마치 개미굴의 중앙에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곳이 우주선의 가장 중앙 부분일지도 모른다.

우우우우웅!

갑자기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울리는 그 소리는 나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소리의 진원지는 이상한 주사위였다. 그것은 내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듯 기묘한 소리를 내며 덜컥덜컥 움직였다. 평정을 유지하던 내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솔직히 엄청나게 놀랐다. 오줌이 마려웠다면 바로 지렸을 것이다. 나는 원망의 눈초리를 담아 주사위를 바라보았다.

우우우우웅!

그것은 기묘한 소리와 함께 조금씩 공중으로 올랐다. 나는 놀라운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우주선 납치를 경험한 입장에서 놀라움의 눈길을 보낼 정도로 신기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집중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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