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헌터 : 백재성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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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깃털을 가진 괴조, 세이렌. 개체에 따라서 정신을 어지럽히는 노랫소리로 헌터를 홀린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 되면 아무리 운이 좋아도 우리 이 파티원으로 죽이는 것은 무리다. 아마 모두 몰살당했겠지.
우리가 이번에 세이렌을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여러 천운이 겹친 덕분이었다. 요한 씨를 죽인 녀석은 우리를 얕봤고, 내가 가속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놈은 세이렌 중에서도 약한 개체였다. 만약, 이 조건 중 하나라도 뒤틀렸다면 우리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었으리라.
“죽였다! 우리가 세이렌을 죽였다!”
요단강 나루터 입구까지 와서 간신히 돌아온 것이 몹시 기쁜 듯 금발 고추 새끼는 만세를 부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 새끼는 세이렌을 잡는 데 도움이 1도 되지 않았다. 차라리 요한 씨 대신 저 새끼가 희생양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능력치가 운에 몰빵된 모양이다. 나는 운에 수십 포인트를 투자해도 저렇게 안 되던데….
“이렇게 된 이상 더 던전을 탐사하는 것은 완전히 무리겠네요. 일단, 이곳을 탈출하죠. 곧 있으면 하피 무리가 다시 공격해 올 거예요. 어쩌면 또 다른 세이렌이 공격할 수도….”
리나 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주장은 정확하다. 일단, 이 빌어먹을 곳을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요한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체를 수습할 수도 없다. 취객의 토사물처럼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시신이라 상황이 급박하지 않아도 수습하기는 힘들었겠지만.
나는 시체 조각에서 요한 씨의 던전 헌터 신분증을 꺼냈다. 던전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처리 절차에 관해서 간략하게 배웠는데, 이걸 벌써 활용할 줄은 몰랐다.
신분증을 수습한 후 스마트폰을 꺼내서 시체 사진을 찍는다. 요한 씨 부모님이 봐도 이 고깃덩어리가 아들이란 것은 알지 못하겠지만, 일단 규정이니 사진을 찍었다. 남은 가족에게 심심한 애도를.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훌륭한 헌터였다.
던전 안에서는 통신이 안 된다. 던전의 기묘한 마나 파장 때문이다. 특수한 통신 장비로 통신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건 협회 차원에서 공략하는 던전에서나 쓰인다. 장비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대부분 위험한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인데, 워낙 희귀해서 일반인은 구매할 수도 없다. 협회에서 직접 장비를 관리한다고 들었다. 바깥과 통화가 가능하다면 진작 이상 상황에 관해 물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무슨 일일까? 분명, 이 던전은 이런 수준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수진이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작게 중얼거렸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우리가 모두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게…. 던전에서는 일상적으로 이변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던전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경우는 많지 않을 텐데…. 설마, 던전에 변이가 일어났나?”
던전에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인류는 아직 던전에 관하여 아주 작은 부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여긴 협회에서 직접 관리하는 던전이라 변수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래저래 알 수 없는 일뿐이다. 오늘 비싼 대가를 치르고 교훈을 얻었다.
“일단, 나가죠. 신분증도 찾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포메이션은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그 뒤로 수진이 너랑, 황…. 씨, 마지막으로 리나 씨가 오시죠.”
나는 졸지에 힐러에서 탱커가 되었다. 우리는 대형을 갖춰서 움직였다. 표식을 찾지 않아도 되고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야 했기에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하피 무리가 금세 우리에게 따라붙었다.
“일곱 마리야! 역시 이상해!”
“쳇! 재성 씨! 탱킹 가능하신가요?”
리나 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이건 찬스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면 리나 씨에게 포인트를 딸 수 있을 거다. 미래를 위해서 착실하게 포석을 쌓자.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일곱 마리 하피가 일행에서 떨어진 나를 순식간에 에워쌓다. 여기까지 오면서 어깨너머로 보았던 요한 씨의 기술을 카피하면서 하피의 이목을 끌었다.
“여기다!”
두 팔을 붕붕 휘두르며 하피의 어그로를 끌자 대가리가 나쁜 녀석들은 나에게 돌진했다. 녀석들이 근접한 순간, 나는 밝은 빛의 구체를 만들었다.
“모두 눈 감아! 태양권이다!”
연수를 기다리며 고추를 긁적이면서 익힌 기술이다. 기술이라고 하기는 뭐한 게 그냥 라이트 컨트롤을 사용해서 빛의 구체를 만드는 것이다. 다만, 엄청나게 밝은 빛을 빠르게 만들면 지금처럼 상대의 시야를 빼앗는 잡기를 쓸 수 있다.
“꿰에에에엑!”
순식간에 시력이 마비되자 놈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나는 빛의 구체를 없애고 홀리 에로우를 장전했다. 지금 나는 동시에 3개의 홀리 에로우를 사용할 수 있다. 내 앞에 만들어진 성스러운 화살은 하피 한 마리를 향해 날아갔다.
퓨숙! 퓨숙! 퓨숙!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 그리고 모가지에 정확히 화살을 박았다. 다소 낭비라고 보일 수 있지만, 어중간하게 공격해서 살려둘 바에 완벽하게 숨통을 끊는 것이 더 확실하다. 내 뒤에서 물의 화살과 흑색의 체인이 날아와 다른 하피를 공격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금발 고추 새끼도 주먹을 쥐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세이렌처럼 고공비행하며 상대를 농락하는 비행 몬스터를 상대로는 한없이 무력하지만, 이렇게 지상에서 비비적거려주는 하피를 상대로는 저 새끼도 어떻게든 1인분은 할 수 있다. 씨발, 그나마 다행이다. 이것도 제대로 못 하면 뚜껑 열렸을 것이다.
우리는 손쉽게 하피 일곱 마리를 사냥했다. 인원이 하나 줄었는데, 오히려 전투는 더 쉬워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성장했다는 증거다. 더군다나 계속 하피와 싸웠기 때문에 그들에게 익숙해져서 더 쉽게 잡았다.
‘이런 것만 보면 확실히 소득 있는 훈련이긴 하군.’
물론, 그 대가로 너무 비싼 것을 지불한 것이 문제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던전 입구로 움직였다. 두어 번의 습격이 더 있었고, 그 후에 던전 입구에 도착했다.
***
연수원은 한바탕 뒤집어졌다. 연수 과정에서 헌터가 사망한 것은 거의 10년 만이라고 한다. 던전의 이변은 협회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하긴, 예상했다면 우리를 거기로 밀어 넣었을 리가 없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헌터 협회 서울 지부로 돌아왔다. 남은 연수 일정은 모두 취소되었고, 사건 조사에 들어갔다. 덕분에 나와 수진이는 일주일 내내 헌터 협회 서울 지부에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 사건을 진술해야 했다. 동일한 내용의 진술을 일주일 동안 거의 열 번은 한 것 같다.
사건의 진상 조사 내용은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조사 결과, 던전 변이가 일어났고, 그에 따라 던전의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결론이 났다. 던전 변이는 말 그대로 던전이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변하는 것은 던전의 지형이 될 수도 있고,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가 될 수도 있다.
던전 변이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던전 변이로 인해 던전의 난이도가 변하는 것은 몹시 드문 일이라고 한다. 변이가 일어나서 지형이 바뀐다거나 몬스터가 바뀌어도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게 약 1주일간의 조사가 끝나고, 우리는 속성으로 나머지 교육을 듣게 되었다. 사실, 남은 교육은 대부분 이론 교육인지라, 헌터 협회 서울 지부에서 간략하게 나머지 과정을 이수했다. 신입 연수를 마쳤지만, 뭔가 큰일을 보고 뒤를 안 닦은 것처럼 기분은 싱숭생숭했다.
아무튼, 연수를 마쳐서 드디어 던전에 출입할 수 있는 정식 던전 헌터가 되었다. 랭크는 10이지만 이건 차차 올라갈 것이다. 연수를 마친 당일, 나는 수진이와 실제 던전 탐사 계획을 의논했다.
“벌써 던전을 탐사하게? 이제 막 연수가 끝났잖아.”
땀에 흠뻑 젖은 수진이가 내 아래쪽에서 말했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 구멍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대답했다.
“연수에서 얻은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빠르게 탐사하고 싶어서. 어차피 탐사는 언젠가는 해야 하잖아.”
“흐으응~♥. 막 가버려서 엉덩이 구멍 민감한데….”
“그래서 이렇게 마사지해주는 거야. 내 마사지 어때?”
“마사지라니…. 엉덩이 마사지는 들어본 적도 없어.”
“정확히는 똥구멍 마사지지. 내가 만들었어.”
쫀쫀한 수진이의 똥구멍을 조몰락거리니 갑자기 리나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리나 씨의 보지도 궁금하지만, 그만큼 똥구멍도 궁금하다.
리나 씨 똥구멍은 어떻게 생겼을까? 수진이처럼 예쁜 국화잎처럼 다물어져 있을까? 아니면 작은 조개처럼 귀엽게 다물어져 있을까? 생각만 해도 자지가 움찔거린다.
“흐응~♥ 후우우…! 만약, 던전을 탐사한다면 우리 둘로는 힘들 텐데? 다섯 명은 있어야 하잖아?”
“다섯 명까지는 필요 없고 세 명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탱딜힐해서.”
3인팟도 5인팟만큼은 아니지만, 꽤 흔한 편이다. 안전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언제나 인력이 부족한 던전 헌터 업계에서 적은 인원수로 파티를 구성하는 일은 흔하다.
3인팟을 하면 내가 힐러나 탱커를 할 수 있다. 수진이를 딜러로 고정하면, 힐러, 혹은 탱커를 한 명만 구하면 된다. 힐러는 구하게 빡세니까 어떻게든 탱커를 구하면 될 것이다.
“어플로 간단히 파티를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일단, 적당한 던전을 찾아봤는데, 수도권으로 조금 내려가면 우리가 갈만한 던전이 있더라고.”
우리 수준에 맞으면서 수익률이 확실한 던전에 가려면 차를 타고 약 40분 정도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재성이 네가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흐으응~♬ 나는 우리 서방님만 따를 테니까~♥”
수진이의 동의를 얻자마자 나는 어플로 모집공고를 냈다. 던전의 위치와 탐사 날짜, 시간을 적고 원하는 클래스를 정해서 업로드하면 된다.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람이 올린 공고를 보니, 역시 힐러나 탱커를 찾는 게시글이 가득했다. 딜러를 찾는 게시글은 아예 없었다.
5인팟이 가장 흔했고, 그다음으로 3인팟, 아주 드물게 7인팟도 있었다. 3인팟 구인글은 생각보다 적었다. 물론, 내가 사용하는 어플은 초보 던전 헌터용이라 그런 것도 있다. 아무래도 초보들은 주로 뭉쳐 다니니까.
그렇게 모집공고를 내고 다시 수진이와 열락의 시간을 시작했다. 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좆질을 하자 결국 수진이는 조수를 뿜으며 기절했다.
이거, 너무 불이 붙었네. 신입 연수 끝난 것이 너무 기뻐서 스퍼트를 올린 것이 문제였나?
기절한 수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데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내가 올린 모집공고에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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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노연지
어빌리티 : 머터리얼 컨버션
랭크 : 9
클래스 : 탱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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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집공고에 지원한 지원자의 스펙이다. 이 어플은 안타깝게도 확인할 수 있는 스펙이 매우 적었다. 나머지는 직접 만나서 확인하라는 건가? 사진조차 첨부되지 않아서 얼굴도 알 수 없다. 지원자 스펙 아래쪽에 연락 가능한 이메일과 전화번호가 있었다. 이름을 보면 여자인 것 같다.
그나저나 머터리얼 컨버션? 이건 뭐지? 내가 아는 어빌리티는 아니다.
내가 아는 어빌리티는 극히 한정적이다. 이럴 때 쓰라고 인터넷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 어빌리티를 검색했다.
“머터리얼 컨버션…. 물질 변환 능력. 신체의 일부를 변환하는 능력이지만, 드물게 신체 이외의 물질에 간섭해서 변환할 수 있다. 이 능력을 활용해서 부상 부위를 정상 부위로 변환하여 힐러로 활약하는 헌터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한 자릿수일 정도로 매우 극소수. 대부분의 헌터는 탱커가 된다.”
물질 변환이라.
언뜻 들으면 사기적인 능력이지만, 사실 이런 능력들 대부분이 영 어정쩡한 능력이다. 사기가 될 정도로 단련하는 것이 힘들거나 제약이 많다. 마치 내가 가진 타임 마스터리 스킬 같이. 나는 일단 이 사람에게 연락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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