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74화 (74/972)

〈 74화 〉 용병 : 데릭 워커­5

* * *

드르르륵!

거대한 석문은 육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우리 세 사람의 힘을 합쳐 간신히 문을 열었다. 문은 돌바닥을 긁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우리는 문 너머에 있는 화려한 대전(大?)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곳은 망자가 가지기에는 너무나 호사스러운 방이었다. 층고는 족히 십 미터가 되었고, 방의 넓이도 수백 평은 가뿐히 넘을 것 같았다. 신하 수십 명이 기립할 수 있는 넓따란 공간을 따라 아름다운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었고, 방의 끝에는 권력자를 위한 옥좌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화려한 방의 상석에 위치한 옥좌도 평범한 옥좌는 아니었다. 일단 사람이 앉기에는 너무 컸다. 족히 다섯 사람이 너끈하게 앉을 수 있는 크기다. 이 정도면 의자가 아니라 소파다. 이 옥좌를 차지한 망자의 왕은 거인족인 것 같았다.

옥좌가 이렇게 큰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옥좌 위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황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관이 있었다. 이 방의 그 어떤 조각상이나 예술품보다도 많은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관이었다.

“우와…. 여기가 무덤이에요? 무덤처럼 보이지는 않네요. 이 무덤의 주인은 죽어서도 살아있는 인간처럼 지내고 싶었던 걸까요?”

세라가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은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었다. 먼지 한 톨도 없는 것이 바로 어제까지 사용되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음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망자의 대전이었다.

“반가운 손님이로군. 아니면, 어리석은 도굴꾼인가? 여기까지 온 인간은 참으로 오랜만이야.”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천장에서 들렸다. 루나는 눈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들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휘이이익!

천장에서 거대한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는 생명체가 있다. 그것은 요란한 날갯짓과 함께 통치자의 관이 안치된 옥좌 앞에 착지했다. 저것이 바로 이 던전의 최종 보스 몬스터이자, 죽은 통치자의 최후의 가디언, 스핑크스다.

“망자의 안식처에 온 것을 환영한다. 영웅, 혹은 도굴꾼들이여. 이곳은 오로지 강력한 힘과 영민한 지혜를 가진 인간만을 허락하는 장소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여기에 왔던 이들은 둘 중 하나가, 혹은 둘 다 부족해서 빠져나가지 못했지. 과연 그대들은 어떨까?”

루나는 듀얼 블레이드를 들었고, 세라도 전투 자세를 취했다. 스핑크스는 독수리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우리를 맞이했다.

“쉬지 못하는, 망자의 묘지기여. 오늘 그대에게 안식을 선물해주기 위해 왔네.”

“후후. 안식이라. 좋은 울림이로군.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수천 명의 인간의 원한을 제물로 소환된 나에게 영원의 안식을 선물하는 것은 몹시 어려울 것이다.”

“그렇겠지. 하지만, 어렵지 않으면 재미없지 않은가?”

“그도 그렇군. 재미있는 인간. 그럼 간다.”

스핑크스의 날개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바람이 살을 벨 듯이 날아왔다. 이것만으로도 몸의 균형을 잡기 힘든데, 스핑크스의 입에서 뜨거운 불꽃이 발사되었다.

“크아아아!”

불꽃은 칼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날아왔다. 브레스 계열의 공격은 대부분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방어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말해준 대로 조각상을 이용해서 피해라!”

이 대전 곳곳에 있는 조각상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사막에서 드물게 채취되는 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이 조각상들은 뛰어난 내열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스핑크스의 불꽃을 피하는 훌륭한 장애물이 된다.

쿠쿠쿠쿠쿠!

우리는 각자 조각상을 하나씩 선택해서 불꽃을 피했다. 스핑크스의 불꽃은 조각상을 뚫지는 못했지만, 뜨거운 열기는 그대로 느껴졌다. 용광로를 가까이서 보는 것 같은 따끔따끔한 열기다. 이걸 직빵으로 맞았다면, 바로 리타이어다.

“접근하겠습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민첩한 루나가 닌자처럼 움직였다. 사방에 널린 조각상을 교두보 삼아 빠르게 스핑크스에게 접근했다.

“놀라운 속도로군. 과연, 그 속도라면 내 불꽃이 미치지 못하겠어!”

스핑스크는 공격을 바꾸었다. 그는 힘찬 도약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숨을 흡하고 들이마셨다.

“소닉붐이다! 모두 귀 막아!”

“우아아아아아아!”

스핑스크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 괴성으로부터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루나는 빠르게 조각상 뒤로 몸을 피하고 귀를 막았다. 스핑크스의 소닉붐은 데미지는 약하지만, 다양한 상태 이상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강력한 공격이다. 기절, 이명, 어지럼증과 같은 전투력을 하락시키는 여러 디버프를 건다.

귀를 막고 머리를 땅에 처박았지만, 강렬한 음파의 울림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클럽 스피커를 수백 배 강화하면 이럴까? 전투기가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 느낌이다. 다행히 우리는 빠른 대처 덕분에 소닉붐의 디버프를 받지 않았다.

“오호. 훌륭한 대처로군. 마치 미래를 아는 듯이 행동하는구나.”

“부히힛! 그쪽의 공격이 너무 단조롭기 때문이지. 이제 우리의 차례다!”

스핑크스는 두 번의 패턴을 보여준 다음 잠깐 경직 상태가 된다. 힘을 많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묘하게 현실성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 경직 상태는 저놈의 공격 패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스핑스크는 바로 이때, 문제를 내기 때문이다.

“아직 내 차례다! 너희들의 힘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지혜를 시험하겠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너희들의 영혼은 내 주인이 있는 황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눈빛으로 루나와 세라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문제는 내가 풀면 된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인 생명체가 무엇이냐!?”

“그런 몬스터가 있나요?”

스핑크스에게 돌격하던 세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현대인들에게는 너무 쉬운 퀴즈지만, 확실히 정답을 모르면 아리송할 것 같긴 하다.

“부히힛! 너무나 쉬운 문제로군. 그것은 바로 인간이지!”

“어째서 그렇지?”

“막 태어난 인간은 네 발로 걷고, 다 자란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며, 안식을 맞이할 무렵의 인간은 지팡이를 짚으며 세 발로 걷지. 그러니 인간일 수밖에!”

“으윽!”

문제를 맞히면 스핑크스의 방어력이 소폭 하락하며 완전 경직 상태에 걸린다. 루나와 세라는 동시에 슬래셔 커터와 레이피드 클로를 사용했다.

스핑크스의 양옆구리에 루나와 세라의 공격이 동시에 작렬했다. 나도 다크니스 에로우로 스핑크스의 머리를 노렸다. 우리 세 명의 공격이 적중했지만, 보스 몬스터답게 놈은 바로 쓰러지지 않았다.

“으아아악! 제법이로군! 하지만, 아직이다!”

경직 상태에 풀린 스핑크스는 공중을 날아서 루나와 세라를 떨쳐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착지해서 오른쪽 앞발로 땅을 두드렸다.

“깨어나라! 왕의 군세여! 씨쌰쏘쎼!”

스핑크스는 발을 구르며 괴상한 주문을 외웠다.

“미라 군단이다! 조심해라!”

갑자기 바닥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나더니, 미라 전사와 미라 주술사가 되었다. 능력치는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과 똑같다. 우리는 사냥 경험을 바탕으로 손쉽게 미라 군단을 요리했다. 주술사를 우선 공격하고 천천히 전사를 쓸어버린다.

스핑크스는 다시 브레스를 준비했다. 꼬붕이를 소환하고 필살기를 쏘는 단순한 패턴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패턴이다.

“모두 조각상 뒤로 숨어라! 브레스다!”

“쿠와와와와와!”

자신이 소환한 미라 군단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대범한 브레스다. 우리는 간신히 몸을 피했다. 놈의 브레스 덕분에 미라 군단의 태반이 죽었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우리도 함께 구워질 뻔했다. 그래도 두 번의 공격을 흘려냈으니, 다시 우리의 공격 타이밍이다.

“루나! 세라!”

““넷!””

“크흑! 만만치 않은 침입자들이로군! 다시 지혜를 시험하겠다! 서로가 서로를 낳는 두 자매가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부히힛! 그것은 바로 낮과 밤이지. 낮은 밤을 낳고 밤은 낮을 낳는다.”

“이이잇! 이것까지 맞추다니!”

루나와 세라의 공격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두 사람도 스핑크스의 위협적인 공격에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확실히 장기전이 되면 우리가 불리했다. 단 한 번이라도 녀석의 공격에 노출되면, 바로 사망할 수 있으니까.

“우우우우우!”

경직 상태에 풀린 스핑크스는 구슬프게 울었다. 소닉붐처럼 큰 소리는 아니지만, 이것 역시 위협적인 음공이다. 심장을 찌르는 구슬픈 소리로 망자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디버프다.

“모두 귀를 막아라!”

““넷!””

스핑스크는 구슬프게 울면서 거대한 몸을 날려 세라를 덮쳤다. 세라는 녀석의 돌진을 피하려고 했지만, 스핑크스가 한 발짝 빨랐다.

“꺄악!”

“세라!”

루나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한 발짝 느리다. 나는 타임 엑셀러레이션을 발동했다.

“흐윽! 다크니스 에로우!”

스킬을 사용하느라 놈의 저주에 노출되었지만, 상태 이상에 20%의 저항력을 갖는 멘탈 레지스턴스 스킬 덕분에 공격을 전개할 수 있었다. 내 어둠의 화살이 스핑크스의 두 다리에 꽂혔다.

“끄아아아악!”

그 덕분에 놈의 울음도 사라졌다. 공격당할 뻔한 세라는 몸을 움직여 오히려 반격을 전개했다. 루나도 그에 동참했다.

“레이피드 클로!”

세라의 날카로운 손톱이 스핑크스의 목을 할퀸다. 동시에 루나의 듀얼 블레이드도 스핑크스의 뒷덜미를 덮쳤다. 연약한 부분에 치명타를 입은 스핑크스는 괴성을 지르며 물러났다.

“끄으으윽! 아직…! 아직이다! 문제를 내겠다! 크게 태어나서 작아지고, 그러다 다시 커지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림자다! 아침에는 크지만, 정오에는 작아지고, 오후에는 다시 커지다가 밤에는 사라지지. 이제 황천으로 꺼져라! 망령의 파수꾼!”

나는 남은 힘을 모조리 짜내서 다크니스 에로우를 날렸다. 그것이 세라가 공격했던 녀석의 목덜미에 정확히 꽂혔다.

“끄아아악! 영면이라니…! 이 스핑크스가 드디어 현세의 저주에서 풀려나는 것인가!? 하지만, 너무 원통하다. 마지막까지 관을 지키지 못하다니…! 이럴 바에는 모두와 함께 가주마! 이 거대한 피라미드가 우리의 무덤이 될 것이다!”

놈의 발악이 시작되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