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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247화 (247/972)

〈 247화 〉 제자 : 백재성22

* * *

세상 만사가 그렇듯, 결전의 날은 바르게 다가왔다. 머레이가 에버렛에게 고백하기로 한 바로 그날이었다. 머레이의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중요한 날이었다.

머레이는 아침부터 몸을 깨끗이 씻었다. 원래 평소에도 항상 청결을 유지하는 그였지만, 오늘은 보통 때보다 배는 신경 썼다. 결국 샤워를 두 번이나 했다.

왁스로 머리를 넘기고, 특별한 날에만 사용하는 좋은 향수를 뿌렸다. 옷은 캐주얼하게 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장은 오버였다. 핏이 워낙 좋아서 아무거나 입어도 어울렸지만, 오늘 입은 옷은 몇 날 며칠을 고생해서 골랐다.

최근 에버렛과의 관계가 냉랭하긴 했지만, 머레이는 그것을 에버렛의 일시적인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지식을 익히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그런 스트레스에서 오는 일시적인 변덕은 자신과 에버렛이 쌓은 깊은 인연을 이기지 못한다. 분명 오늘의 고백이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 전환점이 되리라. 머레이는 굳은 믿음을 마음속에 간직했다.

아침은 혼자 먹었다. 에버렛은 오늘도 재성, 수진 일행과 아침을 먹었다. 머레이는 어느 순간부터 일행에게서 소외된 것 같았다. 그녀에게 다가갈까 했지만, 관두었다. 고백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지,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이 평소처럼 쉽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따라 에버렛의 얼굴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저녁에 있을 고백을 다시 상기하며, 머레이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거는 대신, 에버렛을 눈으로 흘끗거렸다. 자신에게는 별로 보여주지 않았던, 햇살처럼 환하고, 맑은 시냇물처럼 투명한 미소가 에버렛의 얼굴 위에 나타나 있었다. 머레이는 저런 미소를 본 적은 손에 꼽았다. 그중 한 번이 그녀가 각성했을 때다.

갑자기 아침부터 술이 땡겼다. 아침에는 아무리 목이 타도 알코올을 마시지 않던 머레이였지만, 오늘은 드물게 맥주를 한 잔 마셨다. 평소에는 맛있었던 샐러드가 오늘은 유난히 맛이 없었다.

고백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 것이 분명해.

머레이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뇄다.

오늘 일정은 완전 프리했다. 협회에서도 마지막 날이라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해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에버렛은 재성과 함께 다녔다. 재성도 평소에 하던 훈련을 오늘은 안 하는 것 같았다. 머레이는 에버렛의 주위를 맴돌며 말을 걸 타이밍을 잡았지만, 좀처럼 틈이 나오지 않았다.

‘하아…. 오늘따라 왜 이러지. 그냥 다가가서 말 걸면 되잖아.’

마침, 재성과 에버렛이 딱 좋게 떨어졌다. 머레이에게 온 기회였다. 그는 심호흡하고 에버렛 앞으로 나섰다. 그때, 누군가가 에버렛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오늘 저랑 퍼레이드에서 같이 노시겠습니까?”

봉두난발 한 머리를 한 험상궂게 생긴 남자였다. 머레이는 그 남자가 이전에 재성과 시비가 붙은 사람이란 사실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인사불성이 돼서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그 남자다. 이름이 분명 봉진수라고 했던가?

“관심 없어요.”

에버렛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칼 같은 반응에, 머레이의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그래, 저게 평소의 에버렛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에버렛의 즉답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에버렛에게 집적거렸다.

머레이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자신은 말을 못 걸고 있는데, 저런 수준 낮은 녀석이 에버렛에게 집적거린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같이 놀죠. 외국에서 왔으면 여기 잘 모를 거 아니에요.”

“당신보다 잘 알 걸요?”

“하핫! 성격이 고양이 같으시네. 나랑 잘 어울리네요.”

머레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두 사람 앞으로 나왔다. 에버렛과 남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머레이 쪽으로 향했다. 머레이는 최대한 화를 눌러 담고 침착한 목소리로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쯤 하시죠.”

“뭐야. 당신은?”

그러나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머레이의 노려보았다. 밀리는 기세를 손톱만큼도 보여주지 않는다. 여러모로 귀찮은 상대였다. 이런 상대는 무시하는 것이 답이다.

“에버렛. 가자.”

머레이는 에버렛의 손을 거칠게 잡았다. 에버렛은 의외로 반항하지 않았다. 지금은 무례한 남자를 쫓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디서 왜 겐세이야? 상도덕도 없어?”

남자는 단단히 화난 얼굴로 머레이에게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콧김을 씩씩 내뿜는 것이 산에서 내려온 성난 멧돼지 같았다. 머레이는 피식 웃으면서 주먹을 들었다.

“한국의 헌터는 강하지만, 너 같은 쓰레기는 미국에도 넘쳤어. 알량한 힘 자랑하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꺼져.”

“이 새끼가!”

남자는 참지 못하고 머레이에게 달려들었다. 생긴 대로 발화점이 낮은 남자였다. 이미, 머레이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상황이 그려져 있었다.

머레이는 어빌리티를 사용했다. 그의 어빌리티는 유명한 강화계 어빌리티인 바디 스트랭스였다.

머레이는 자신에게 달려든 남자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리고 그 손을 부러뜨릴 기세로 팔을 쥐었다.

“육체파로군! 나도 힘싸움 하면 지지 않거든!”

봉진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팔을 움켜쥔 머레이의 팔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서로가 서로의 팔을 잡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힘싸움을 시작했다.

‘근력이 장난이 아니군! 그런 쪽 어빌리티인가!?’

머레이는 예상외로 강하게 나오는 남자의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러나 아예 힘 싸움으로 밀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 혹시 싸우는 겁니까!?”

협회 직원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봉진수는 고개를 들어 정장을 입은 협회 직원을 확인하더니 ‘쳇!’ 하고 팔을 뗐다. 머레이 역시 그를 놓아주었다. 봉진수는 머레이의 위아래를 한 번 훑어보더니, 거칠게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다.

(머레이. 고마워.)

에버렛은 미소를 지으며 머레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머레이의 뺨이 붉어졌다. 이 미소다. 자신은 이 미소를 위해 인생을 바칠 수도 있다.

(별것 아니야. 그냥, 네가 곤란한 것 같아서.)

(후훗. 이런 복장을 하면 다른 건 다 좋은데, 저런 사람이 너무 많은 게 탈이네. 뭐, 그래도 여자로서 매력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에버렛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머레이는 거기에 뭐라고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굳이 여기서 그녀와 말다툼을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정상적으로 대화하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오늘 밤에…. 약속은 잊지 않았지?)

(아, 물론. 불꽃놀이지? 기대되네.)

에버렛의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약속을 입에 담자 머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자신과의 약속을 까먹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녀는 착실하게 약속을 기억했다. 머레이는 바지 주머니 속에 든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마지막 밤은 예정된 행사는 작은 축제였다.

연수원 앞에는 꽤 큰 야시장이 들어섰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은 물론, 기념품, 게임, 즉석 초상화, 체험 활동 부스 등등이 들어섰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워크숍에 온 헌터뿐만 아니라, 관광객과 인근 주민에게도 개방되었다.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서 축제 분위기가 물씬 달아올랐다.

먹을 것도, 즐길 것도, 볼 것도 많았지만, 머레이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였다. 바로 고백이다.

머레이는 야시장이 열린 곳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으로 향했다. 주변에 주차장이 있는 곳인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곳이 조용히 불꽃놀이를 감상하기에 최고의 포인트라고 한다. 던전 헌터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였다. 높은 곳에 있어서 축제가 한창인 야시장이 잘 보였다.

야시장을 구경하는 사람 중에는 커플도 제법 보였다. 남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을 즐기고 게임을 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입에 미소가 떠오를 정도로 행복한 광경이었다. 머레이는 그 커플의 얼굴에 자신과 에버렛의 얼굴을 새겼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고백을 성공해야지. 긴장하지 마. 계획했던 대로만 하면 돼. 에버렛은 분명 내 고백에 응해줄 거야.’

고백을 위해 준비할 것이 있었다. 촛불을 하트 모양으로 그렸고, 주변 나뭇가지에 풍선을 매달았다. 작은 현수막도 준비했다.

너무 과하게 준비한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대체로 모자란 것보다 과한 것이 낫다. 머레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준비한 멘트를 연습했다.

(에버렛…. 내 작은 별, 내 유일한 태양. 너와 함께…. 남은 내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어. 너는 나를 완성해. 사랑해. 음…. 역시, 이건 아닌 것 같군.)

(너는 내 작은 세계야.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는 나의 아이돌이었어. 결혼해 줘.)

준비한 멘트는 10개가 넘었는데, 직접 연습해 보니,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머레이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서툴렀다. 정작 머레이는 그 사실을 느끼지 못했지만.

한참을 고민한 그는 결국 담백한 멘트로 가기로 했다.

(진심으로 사랑해. 나와 결혼해 줄 수 있겠니?)

무릎을 꿇고, 다이아 반지가 든 케이스를 건네며, 구혼한다. 프러포즈의 정석이다. 정석이 정석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예행연습을 한 머레이는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복잡한 것보단 이게 낫군.)

괜한 미사여구를 쓸 필요가 없다. 수식어를 처낸 단문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머레이는 그렇게 멘트를 몇 번 더 연습했다. 슬슬 그녀가 올 시간이다.

‘에버렛과 결혼하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녀는 완벽한 여자야. 그리고 나도 그녀에게 완벽한 남자지. 우리는 정말 환상의 한 쌍이 될 거야.’

결혼한 미래를 생각하면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우리 자식은…. 오오! 이건, 너무 이르나? 하긴. 우린 아직 젊으니까. 그리고 둘 다 던전 헌터니까, 늦게라도 자식을 가질 수 있지. 아이를 가지려면…. 에버렛과 관계를 맺어야겠지?’

머레이는 에버렛의 알몸을 떠올렸다. 아직까지는 상상의 영역이지만, 곧 현실이 될 것이다. 그도 남자인지라, 에버렛의 알몸을 생각하면 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이런 잡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더 중요한 게 있잖아!’

머레이는 머리를 흔들며 상념을 떨쳤다.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다. 한순간의 음심(?心)으로 이벤트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오늘 행사의 피날레인 불꽃놀이를 슬슬 시작해 보겠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헌터님, 관광객님, 그리고 지역 주민 여러분. 우리 함께 카운트 다운을 해볼까요!?”

“““““네에에!”””””

(응? 에버렛이…. 올 때가 됐는데?)

야시장 쪽에서 행사 진행자의 요란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 드디어 축제의 메인이벤트인 불꽃놀이가 시작할 시간이다.

“그럼! 불꽃놀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백부터 갑니다! 시이이이이작~!”

“““““백! 구십구! 구십팔! 구십칠! 구십육!”””””

“카운트 다운, 길지 않아?”

“몰라, 여기 전통이래.”

이번 고백의 하이라이트는 불꽃놀이다. 하늘을 수놓은 낭만의 불꽃이 자신의 고백을 완벽하게 만들 것이다. 애초에 이번 고백은 불꽃놀이를 중심으로 짜인 계획이었다.

“““““팔십칠! 팔십육! 팔십오!”””””

머레이는 초조하게 카운트 다운을 들으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예정대로라면 그녀는 5분 전에 도착했어야 한다.

(에버렛은 약속을 어긴 적은 없는데….)

“““““칠십이! 칠십일! 육십!”””””

남은 시간이 머레이를 압박했다. 초조해진 그는 결국 에버렛에게 전화했다. 통화음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이십오! 이십사! 이십삼!”””””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무의식적으로 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초조함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머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카운트 다운은 제로를 향하고 있었다.

띠리리링!

전화기가 울리자 머레이는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에, 에버렛!)

“서울중앙지검의 오명균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고객.. 아니, 선생님의 명의로 사기 사건이 발생해서 저희 쪽에 삼백만 원을 송금해야….”

“퍽유 마더 퍼커! 유 배드에스 바스타드 비치!”

“““““셋! 둘! 하나! 와아아아아!”””””

펑! 펑! 펑! 펑! 펑!

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형형 색깔의 아름다운 불꽃이 검은 밤하늘을 도화지 삼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렸다. 어떤 여자라도, 저런 하늘을 바라보며 고백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 고객님. 그, 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조용한 곳에서..”

“니 애미라고!”

머레이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그는 기다렸다. 그러나 불꽃놀이가 완전히 끝나고, 구경꾼들이 사라질 때까지, 에버렛은 오지 않았다.

*­*­*

머레이는 에버렛의 방에 찾아갔다. 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일까?

그는 방문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전화를 아무리 해도 받지 않았다. 신변에 이상이 없다면 설명되지 않는 일이다.

머레이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여자 층의 다른 여자들이 방문을 두드리는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머레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에버렛! 안에 있어!? 문 좀 열어 봐!)

끼이익!

문이 열렸다. 머레이는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방이 몹시 어두웠다. 머레이는 스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었다.

(불 켜지 마!)

어둠 속에서 에버렛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버렛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머레이는 화가 나기보다 안심이 됐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에버렛에 대한 분노보다 혹시라도 그녀가 잘못되었을지 걱정이 더 앞섰다.

머레이는 침착함을 되찾으며, 어둠 속의 에버렛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에버렛! 깜짝 놀랐어. 우리 약속했잖아! 왜 나오지 않았어? 그리고 이 방, 너무 어두워. 불 좀 켤게.)

(내가 켤게.)

치익!

라이터 불꽃이 허공에서 피어올랐다. 머레이는 갑작스러운 불꽃에 깜짝 놀랐다.

(뭐 하는 거야?)

라이터 불꽃은 촛불을 밝혔다. 갑자기 웬 촛불일까? 머레이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탓!

깜깜한 방을 밝히는 불이 켜졌다. 그 순간, 머레이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에버렛의 방에는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곳에는 ‘Surprise!’라고 쓰여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촛불이 꽂힌 커다란 케이크가 있었다. 머레이는 무릎을 꿇었다.

(에, 에버렛….)

기뻐서가 아니다. 머레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축하해 머레이! 오늘은 네가 차이는 날이야.)

커다란 케이크의 정체는 에버렛이었다. 그녀는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엉덩이를 위로 들어 올리는 천박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몸이었다. 항문에는 작은 촛대가 꽂혀 있었고, 온몸은 생크림과 과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심지어 몸에는 타투도 있었다. 에버렛의 몸은 말 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케이크였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음란한 케이크였다.

(이게…. 무슨….?)

“어라?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것치고는 기뻐 보이지 않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인가?”

낯익은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머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재성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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