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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366화 (366/972)

〈 366화 〉 루키 : 백재성42

* * *

과학 서적에 나온 백악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 독특한 생태의 방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무식한 물량이었다. 우리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 것을 전략으로 설정한 듯 공룡 몬스터는 쉴 새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공룡 몬스터가 그 크기와 형태에 어울리지 않게 약하다는 것이었다. 사냥 난이도를 굳이 책정하자면 7랭크와 8랭크 사이 정도일 것 같다. 물론, 이 정도도 마냥 쉽다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6랭크가 일반 던전 헌터의 종착점이란 것을 상기하면, 이곳에 등장하는 공룡 몬스터의 수준은 아주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풍기는 분위기에 비해서 약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강약이란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라,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보다 더 강한 상대 앞에서는 약자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 파티는 이 레벨 하우스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우리와 달리 김선욱 파티는 사냥이 거듭될수록 상당한 피로를 호소했다. 그들의 평균 랭크는 8랭크에 불과했으니까. 어쩌면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잘한 거다.

“자, 잠시 쉬었다 가죠.”

파티장인 김선욱은 동료 파티원을 치료해주느라 기력을 모두 소모했다. 장하나는 질렸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몬스터는 이미 모두 처치했는데, 괴물을 보는 눈빛이다.

우리 파티는 몇 차례의 전투에도 불구하고 체력을 온전히 보존했다. 무식하게 높은 마나량과 체력, 그리고 탁월한 전투 센스 덕분이다.

더군다나, 이 레벨 하우스에서 순도 높은 사냥을 하면서, 던전 헌터로서의 경험도 출중하게 쌓았다. 이곳은 우리에게 훌륭한 성장의 발판이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정말 9랭크 맞아요?”

장하나가 던진 질문에 수진이는 눈웃음을 지었다. 우리의 수준은 아무리 얕잡아 보아도 족히 7랭크는 넘었다. 수진이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은요.”

생각해보니, 수진이는 선천적인 마나량 부족 때문에 던전 헌터가 되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다른 던전 헌터의 경외를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이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란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하루살이 야설작가 인생에서, 한국에서 가장 돈 많이 버는 고소득자 계층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게 다 유닉스 큐브 덕분이다. 유닉스 큐브를 주운 월하산 쪽으로 하루에 세 번씩 절해야겠다.

“크아아아앙!”

5분도 쉬지 못했는데 시끄러운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후방에서 울려 퍼졌다. 이 주변은 저 몬스터의 영역인가보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광활한 공룡의 땅은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구역마다 그곳을 소유한 집단이 있다. 그 집단은 우리가 자기들 땅을 침범할 때마다 우리를 공격해왔다.

“저기를 봐요! 익룡이에요!”

하늘에서 우리 주변을 빙빙 배회하던 익룡 떼가 갑자기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과학책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깃털이 달린 닭 같은 새끼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흉흉한 분위기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익룡 못지않았다.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익룡 떼는 마치 먹잇감을 노리고 호수로 다이빙하는 물총새 같았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기세는 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위협적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5t 트럭을 마주한 기분이다. 우리가 헌터가 아니었다면, 당장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저놈들! 합공하는 건가?”

연지가 인상을 쓰며 외쳤다. 지금까지 다른 종족의 공룡 몬스터가 합공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오던 익룡들이 도저히 혼자 공격해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파악한 것 같다.

새대가리 새끼답지 않은 똑똑한 분석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놈들은 새대가리였다. 그래서 놈들은 합공이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늘은 내게 맡겨!”

수진이가 허공을 향해 두 손을 활짝 펼쳤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맹렬하게 돌진하는 익룡보다도 훨씬 더 사나운 기세가 수진이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수진이 뒤에 있던 김선욱 파티의 딜러인 이민혁이 반사적으로 흠칫거리며 물러날 정도였다. 누가 지금의 수진이를 보고 마나 부족에 시달렸던 낙제생 헌터라고 생각할까? 정말이지 대견스러운 성장이다.

“제트 스트림!”

허공에서 튀어 오른 물대포는 마치 동양의 용을 물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그것은 숫자를 믿고 우리에게 쏟아지는 익룡 무리의 기세조차 주춤하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선두의 익룡 무리가 물대포를 맞았다. 제트 스트림의 강력한 수압은 타격당한 익룡의 전투 의지를 완전히 꺾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추락시켰다.

날개가 부러진 고무동력기처럼, 매서운 기세를 불태우며 우리에게 쏟아지던 익룡 무리가 떼로 추락했다. 삼천궁녀 대신 수많은 익룡 떼가 지상으로 다이빙했다.

물론 제트 스트림 한 번으로 모든 익룡 무리를 커버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수진이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진이는 처음 사용했던 마나보다 더욱더 많은 마나를 끌어올렸다. 마치 거대한 배의 주 엔진에 시동이 걸린 것 같았다. 수진이는 작은 숨결과 함께 다음 공격을 전개했다.

“헤비 레인!”

수진이가 가지고 있던 막대한 양의 마나가 증발하였다. 그와 동시에 수진이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순간적인 마나 고갈을 느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진이는 의지를 다잡고 제대로 균형을 잡았다. 수진이의 눈동자에 깃든 강력한 전투욕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쉬이이이이이이이!

쉬이이이이이이이!

하늘에 검은 비구름이 형성되더니, 비가 떨어졌다. 주변 수십 미터에 한정된 집중 호우다. 고작 수십 미터에 불과하지만, 수진이는 막대한 마나를 대가로 기상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기적은 다음 공격을 위한 전주(??)일 뿐이었다.

두 손을 활짝 펼치고, 양팔을 양옆으로 내밀며, 수진이는 다시 한번 마나를 가동했다. 이미 하나의 기적을 일으킨 수진이는 또 다른 기적을 우리가 보는 앞에서 만들어냈다.

주변에 내리던 빗방울이 허공에 뚝 하고 멈춘다.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에는 수진이의 마나가 담겨 있었다.

대가리 나쁜 익룡들도 이것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이변이라는 것을 파악했는지, 공격의 활시위를 돌렸다. 그들은 우리에게 돌격하는 대신, 다시 허공을 빙빙 돌며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그들이 택해야 할 선택지는 멀리 도망가거나, 아니면 목숨을 걸고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크림슨 샤워!”

수진이의 외침과 동시에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작은 빗방울이 세상에서 가장 예리한 바늘이 되어 익룡 무리를 급습했다.

빗방울 하나하나에 수진이의 마나가 들어 있었고, 그것은 깃털 달린 익룡의 피부를 관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께에에에에엑!”

“끼이이이이익!”

하늘에서 익룡이 피를 흩뿌리며 떨어진다. 그들은 하늘의 존재답게 하늘 위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더군다나 그것들이 추락하는 지점에는 우리를 노리던 공룡 무리가 있었다. 공룡들은 세찬 울부짖음과 함께 이리저리 발을 굴리며 추락하는 익룡 떼를 피했다.

“하아...! 하아...!”

수진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헤비 레인과 크림슨 샤워는 둘 다 엄청난 마나를 소모하는 테크닉이다. 원래의 수진이라면 지금 선보인 기술 중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수진이에게 체력 회복용 대추야자를 쥐여주었다. 체력이 방전되었을 때는 역시 이게 최고다. 수진이는 그것을 깨물어 먹었다.

“이건, 언제 먹어도 맛있어~”

얼굴에 드러난 피로한 기색이 금세 사라졌다. 수진이는 내게 얼굴을 쓱 내밀었다. 칭찬해달라는 기색이 얼굴에 환하게 서려 있었다.

“뽀뽀!”

“응? 여기서?”

“당연하지. 다른 것도 많이 했잖아.”

수진이가 씩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이건 조금 고민된다. 지금 내가 수행 중인 강제 퀘스트에 의하면 나는 어떠한 성적인 행위도 하면 안 되다. 뽀뽀는 과연 패스일까?

←강제 퀘스트→

●추행 그만!

’레벨 하우스’를 나가기 전까지 성관계를 포함한 일절의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

※강제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다.

←강제 퀘스트→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는 말자.’

나가면 뽀뽀 말고 딥키스를 잔뜩 해줄 것이다. 일단, 여기서는 거절이 맞다.

“나가서 해줄게.”

“아잉! 갑자기 왜!?”

이유를 설명해주려는데 속상해하는 수진이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가학적인 장난기가 들었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땀 냄새 나서.”

“내, 냄새나!? 진짜?”

수진이는 킁킁 자신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내게서 열 걸음 정도 물러났다.

“진짜 냄새나네. 가까이 오지 마!”

“흐음. 그런데, 우리가 그런 거 부끄러워할 사이인가?”

나와 수진이는 이미 서로의 모든 것을 확인했다. 보통 커플이라면 기겁을 하면서 공중제비를 돌 만한 플레이를 수도 없이 섭렵했다.

“네가 그렇게 직접 말하니까 의식되잖아! 이런 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휙 저었다. 저런 수진이의 모습이 꽤 신선하다. 원래는 리나가 보여줄 법한 모습인데.

“저, 커플질 중에 염장 질러서 죄송한데, 아직 상황 안 끝났어요.”

리나가 여전히 건재한 지상의 공룡 몬스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제 끝내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ㄴ 쩌내. 저거 못해도 7랭크 정도 아님?

­저기 따라다니는 파티가 7랭크라는데? 그럼 못해도 저 파티는 6랭크 정도 될 듯

­개쩌네. 6랭크 되려면 최소 10년 이상 보내야 하는 거 아님? 쟤네들 나이 몇이냐?

­ㅁㄹ. 근데 틀딱은 아닌 듯.

­그것도 모름. 던전 헌터는 액면가로 평가하면 안 됨. 그 KHC 마스터 40살인 거 앎?

­ㄹㅇㅋㅋ 얼굴로 판단 못 하지. 근데 늙은 것 같진 않다.

호석은 여전히 동영상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현재 레벨 하우스에 남은 파티는 8개였다. 그중 5개의 파티에서 사망자가 나왔고, 1개의 파티는 괴멸 직전이었다.

“그나마 희망이 있는 쪽이 여기인가? 백재성 파티와 한승진 파티.”

­ㄹㅇ 개쩐다 저게 다크니스 컨트롤임?

­자연계 어빌리티 중에서 파괴력 최강임. 괜히 테러범 새끼들이 저걸로 중국 헌터 협회 대가리 딴 게 아님

­ㅆㅂ 몬스터가 그냥 믹서기 넣은 것처럼 갈리네.

­다른 파티원 ㅅㄲ들은 다 병풍인데 혼자 쓸어 담음. 진짜 개사기캐네 ㅋㅋㅋㅋ

한승진 파티는 밀림 방을 탐사하는 중이었다. 그들 앞에는 괴수 원숭이 괴물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을 처리하는 것은 단 한 사람, 한승진이었다.

­다크니스 커터

손짓 한 번으로 수많은 어둠의 칼날을 만들어 낸 한승진은 파티에게 돌진하는 수많은 괴수 원숭이를 모조리 도륙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위압감 가득한 광경에 호석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현재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파티는 한승진 파티였다. 실시간 시청자가 무려 2억 명을 돌파했다. 심지어 단기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서버가 한 번 다운되었는데, 우튜브에서 귀신같이 추가 서버를 증설했다. 역시 돈맛을 제대로 아는 미국 기업다웠다.

­한승진 진짜 졸 잘생겼네. 나랑 같은 한국인 맞냐?

­ㅋㅋ 분명 서양 피 섞였을 듯. 저게 어떻게 동양인한테 나오는 기럭지임?

­뭐래 병신이. 한승진 토종 한국인임.

한승진 파티의 주인공은 당연 한승진이였다. 어지간히 잘생겼다는 영화배우를 압도하는 한승진의 외모는 여자는 물론 남자도 감탄할 정도였다.

게다가 다크니스 컨트롤을 사용해서 나타나는 적을 시원스럽게 해치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SF 영화의 주인공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수많은 시청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물론, 그 돈은 한승진의 주머니가 아닌 중계자의 주머니로 들어갔지만.

(‘승진 애긔 뽜이어~!!!!’님이 5만 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승진 애긔 뽜이어 : 우리 승진이 던전 뿌셔 우주 뿌셔 ㅜㅜ!!!!

한승진 파티가 워낙 돋보적인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긴 하지만, 백재성 파티도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단, 백재성 파티의 주인공은 재성이 아니라 그 여자들이었다.

­여긴 좀 여자들 좀 비춰주지 무슨 쩌리 새끼들만 ㅈㄴ 비춰주냐.

­누가 촬영하는거임?

­ㅁㄹ 누가 그러던데 몬스터로 촬영한다 함?

­ㄹㅇ? 그게 가능함?

(‘다육이 엄마’님이 10만 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다육이 엄마 : 우리 딸이 저기 갇혀 있어요! 제발 모두 딸의 무사 귀환을 빌어주세요!

­네, 빌어드렸습니다~

­천국 가라고 빌어드렸음 ㅋㅋ

­쪼잔하게 10만 원 가지고 그러냐? 100만 원 쏘고 말하셈.

­미친 새끼들 ㅈㄴ 많네. 저거 실황 아님?

­실황이면 어쩌라고 ㅋㅋ 돈 많이 버는 새끼들 다 뒤지면 좋겠다.

­저 단발머리 보x 보고 싶음.

­페도충 나가 뒤져

­저게 페도냐? 별 병신 새끼를 다 보네 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은 굉장히 살벌했다. 호석은 작게 신음했다.

똑똑!

누군가 그의 사무실에 노크했다. 호석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누구십니까?”

“접니다. 과장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헌터 협회 교육과 과장인 김민영이었다. 샤기컷의 청발을 휘날리며 사무실로 들어온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본부장과 눈을 마주쳤다.

“아, 김 과장님.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이 파티 때문입니까?”

호석은 라이브 방송 화면이 나타내는 백재성 파티를 가리키며 말했다. 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추천한 파티가 이리되었으니,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네요. 과장님. 혹시 저들을 구출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있다면 저도 진작 썼겠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던전이 빨리 열리기 기도하면서 그들의 선전을 구경하는 것뿐입니다. 뭐,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점은 이 파티는 그래도 꽤 오래 버틸 것 같다는 것이로군요.”

호석은 씁쓸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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