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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441화 (441/972)

〈 441화 〉 특별 사업 지정자 : 백재성10

* * *

미국 헌터 협회 관광은 꽤 유익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예정에 없던 1랭크 던전 헌터, 스미디 워벤 (제거) 맨 젠슨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이름 참 더럽게 긴 새끼네.

관광을 마친 우리는 에버렛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 가이드의 기가 막힌 빵댕이에 코박죽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에버렛과 지수, 주은과 함께 4P를 했다. 머레이는 그 옆에서 딸을 잡았다.

“만족스럽군.”

난교를 끝낸 후, 여자들은 침대 위에 뻗어버렸고, 나는 간단한 산책이라도 할 겸 혼자 아파트를 나섰다.

언어팩 덕분에 영어를 마스터했기 때문에 누가 따라붙을 필요가 없다. 혼자 편하게 이국땅을 여행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경험이리라.

LA는 엄청나게 큰 도시였다. 마천루가 드물지 않게 눈에 들어오며, 거대한 도로에는 자동차가 어지러이 돌아다닌다. 길을 걷는 사람 중에는 외국인도 많았다. 나 같은 동양인도 적지 않았다.

“식당이라도 들어가 볼까?”

도시 구경을 나왔는데, 딱히 할 것이 없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이리저리 발 닿는 곳으로 갔다.

근사한 냄새를 따라 거대한 쇼핑센터로 들어가니, 식당이 가득한 거리가 나타났다. 몇몇 식당 앞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맛집 가이드인 골드 스타 인증이 붙은 입간판이 서 있었다.

“우와! 저거, 젤리 도넛이잖아.”

여기서 젤리 도넛을 보다니, 이건 참을 수 없다. 나는 당장 가게에 가서 도넛 한 박스를 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로피컬 버라이어티다. 가격은 5달러밖에 안 했다.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설탕을 아주 범벅이로 뿌렸군. 하나만 먹어도 잠 못 잘 것 같네.”

역시, 미국의 음식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도넛을 씹으며 길거리를 걷는데,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젊은이.”

씹고 있던 망고 도넛을 삼켜 목에 밀어 넣은 후, 고개를 돌린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가진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고 있는 티셔츠에 ‘I’m still young!!!’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그야말로 틀니들이나 입을 것 같은 옷이로군. 나이는 70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저 부르셨나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관광객이로군. 잠깐! 어디에서 왔는지 맞혀보겠네.”

치매 걸린 노인인가? 무시하고 지나가려다가,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보여서 한마디 했다.

“어디 맞춰 보시죠.”

“흐음. 중국인은 아니로군. 그들은 억양에서 너무 티가 나거든. 자네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데, 혹시 이민자 2세인가?”

“전혀요.”

“그래. 일본 아니면 한국이야.”

“한국이에요.”

“젠장! 내가 맞춰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노인은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찍으며 성을 냈다. 어처구니가 없는 새끼로군. 뭔가,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느낌이 슬슬 풍긴다.

“갑자기 왜 시비입니까?”

“아, 시비처럼 들렸다면 미안하네. 내가 이제 슬슬 은퇴할 나이라, 이렇게 일할 시간에도 놀고 있거든. 근데, 이게 좀 심심한 게 아니란 말이지. 후계자란 놈이 꽤 똘똘해서 터치할 것도 없고 말이야. 자네 같은 젊은이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내 낙일세.”

“못된 버릇이네요. 저 바쁩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군. 그거 젤리 도넛 맞지? 취향 참 괜찮은 젊은이로고!”

그는 자연스럽게 내 도넛 박스에서 도넛을 가져갔다. 이 새끼가. 제일 맛있어서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두었던 코코넛 도넛이다.

“이 젤리 도넛은 내가 어렸을 때도 있었지. 그런데 그때는 지점이 동부에만 있었네. 망할 보스턴 놈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유일하게 부러운 거야. 음냐음냐…. 역시 맛있군.”

“아니, 영감님이 선 넘네? 뜨거운 맛 좀 보고 싶어요?”

“젊은이가 도넛 하나에 쩨쩨하게…. 좋은 카르마 쌓았다고 생각하게.”

“그런 거 안 믿어요. 믿어도 의미 없어요. 난 안 죽을 거예요.”

“킬킬!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뭔가 이상한 노인이다. 깐죽거리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다른 세계선이었다면, 흠씬 두들겨 패줬을지도 모른다.

“못마땅한 얼굴이군. 무슨 치매 노인이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드나?”

“정확히 맞히셨네요. 혹시 텔레파시라도 사용하십니까?”

“껄껄! 그런 거 없어도 자네 표정 읽으면 다 알 거네.”

노인은 손뼉을 치며 밉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도넛에 대한 보답으로 좋은 거 알려주지. 자네 같은 혈기 왕성한 관광객이 아주 좋아할 만한 거네.”

“뭐, 관광 가이드라도 해주시렵니까?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

“좋은 엄마를 두었군. 나는 때때로 엄마가 그리워. 몇십 년 전에 먼 곳으로 떠나셨거든.”

“할아버지 엄마가 살아 있다면 그게 더 소름 돋을걸요. 헌터라면 몰라도.”

“낄낄. 그렇지. 따라오게.”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 걸었다. 뭔가, 이상한 노인네다. 내가 톡 하고 치면 부러질 것 같다. 나는 노인에게 흥미가 생겼다.

“어디 갑니까?”

“그걸 알려주면 재미없지.”

혹시 무슨 범죄 조직의 두목인가? 입고 있는 촌스러운 옷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모른다. 살짝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내 호기심이 우선이었다. 어차피 나는 여차하면 몸을 뺄 수 있는 수단이 굉장히 많다.

그는 나를 이끌고 천천히 걸었다. 목적지는 도심에서 살짝 떨어진 곳이었다. 다만, 멀지 않았다. 도심 외곽이라기보다 번화가 뒤편이란 느낌이다. 주변을 보니, 극장 간판 같은 것이 가득하다.

“여긴 뭐죠? 무슨 어깨에 라디오 든 흑인들이 존나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인데.”

“저 친구 말하는 건가?”

“You went to Cranbrook That's a private school. What's the matter, dawg? You embarrassed?”

실제로 어떤 흑인 남자가 어깨에 라디오를 이고 랩 배틀을 하고 있었다. 존나 주변하고 어울리긴 하다.

“여기가 LA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리긴 하지. 그래서 말인데, 저 피자 가게에서 파는 디트로이트 피자가 또 끝내주게 맛있네.”

“개소리 그만하시고 여기엔 왜 끌고 오셨습니까? 랩 배틀 하라고요? 저, 음치예요.”

“아니, 랩 배틀은 여기 있는 흑인들에게 맡겨두게. 우리는 저것 때문에 왔지!”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헐벗은 여자가 섹시한 포즈로 기다란 봉을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간판이 있었다. 저건 설마….

“스트립 클럽이네!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으면 이런 것 좀 먹어봐야 하지 않겠나?”

“제에엔자아앙! 믿고 있었다고!”

씨발, 이렇게 좋을 수가.

깜빡했는데, 스트립 클럽 방문은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솔라리 월드나 극검천선에서 창관 마니아였던 나지만, 현실의 스트립 클럽은 그것과 다르다. 이건, 현실이다. 현실!

“존나 좋군요.”

“킬킬! 마음에 들 줄 알았네. 들어가 보자고.”

“얼마나 하나요?”

“저기는 내가 애용하는 곳이라 말이지. 입장료는 걱정하지 말게. 댄서들에게 줄 팁이나 챙기게.”

“젠장. 겨우 100달러 밖에 없어요. ATM 없나?”

“그 정도면 충분하네. 무슨 돈다발 뿌릴 거 아니면.”

“남자가 그 정도는 해야죠.”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스트립 클럽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어깨 형님이 입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그런 건 없었다.

“뭔가, 그냥 좀 어두운 바 같은 느낌이네요.”

내부는 의외로 내 생각과 달랐다. 조명이 어둡다는 것만 제외하면 평범한 칵테일 바 같았다. 무대는 어디 있지?

“저기 커튼 친 곳이 무대일세. 뭐, 마시고 싶은 술 있나? 내가 사겠네.”

“제일 비싼 거요.”

“에잉. 썩을 놈.”

툴툴거리면서도 노인은 술을 샀다. 생각보다 좋은 새끼였구먼. 그냥 미친 틀딱인 줄 알았는데, 마음이 통한다.

“근데, 할배는 고추 섭니까? 이 나이 동안 이런 곳에 오게?”

“크흑…! 내가 결혼을 못 해서…. 이런 곳에서라도 울분을 풀어야 하지 않겠나?”

“거 젊었을 때 여자 꽤 후릴 것 같은 얼굴인데, 왜 결혼을 못 하셨습니까?”

“하하! 너무 방탕하게 산 죄지. 아, 마침 공연 시작할 것 같군.”

커튼이 올라간다. 무대는 패션쇼 무대처럼 앞으로 톡 튀어나온 형태였다. 무대 끝에 폴이 박혀 있다. 술을 든 관객들이 삼삼오오 무대 주변으로 몰린다.

“의자는 없나? 불편하네요.”

“이런 건 서서 봐야 제맛이네. 아, 너무 무대 가까이 가면 저기 저 보안 요원이 제지할걸세.”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바 테이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저래 봬도 헌터니까,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걸세. 가끔씩 멋 모르는 관광객들이 곤욕을 치르거든.”

“미국은 헌터가 저런 일도 합니까? 참, 특이하네요.”

“과거 데모닉이었던 놈이지, 알겠지만, 한 번 데모닉으로 찍힌 헌터는 죗값을 치뤄도 어디서든 잘 받아주지 않거든.”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모닉이 되었을 정도라면, 상당히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다. 단순히 절도 같은 거로 데모닉으로 지정되지 않는다.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나온다. 아래쪽은 거의 끈팬티 같다. 요염한 몸짓으로 살랑살랑 걸어오는 스트립 걸에 무대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우와! 바니걸도 있네. 존나 꼴린다. 나중에 애들한테도 입혀봐야지.”

바니걸은 특히 꼴렸다. 상의가 칼라와 손목밴드뿐이어서 가슴이 훤히 보였고 망사 스타킹이 섹시한 분위기를 가중시켰다.

토끼귀는 역시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귀엽게 뿅 튀어나온 꼬리도 마음에 들었다. 와꾸가 아주 살짝 아쉽지만…. 뭐, 복장이 저리 마음에 드니 큰 흠결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트립 걸들은 무대에 나와 폴을 잡고 춤을 췄다. 껴입은 스트립 걸들은 옷을 벗었고, 이미 헐벗은 복작으로 나온 여자들은 교태스러운 몸짓으로 분위기를 달구었다. 스트립 걸 하나가 천천히 무대에서 내려온다.

“팁을 줄 수 있네. 이때는 가벼운 터치 정도는 괜찮네.”

나는 마이크로 비키니를 입은 스트립의 수영복 아래쪽에 100달러를 끼워주었다. 슬쩍 엉덩이도 만졌다.

씨발, 수술이잖아. 하긴, 출렁거리는 모습이 부자연스럽긴 했다. 뭐, 이런 곳에서는 어쩔 수 없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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