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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482화 (482/972)

〈 482화 〉 신입생 : 요한7

* * *

첫 수업답게 오늘의 검술 수업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다른 수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은 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업의 개요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베른하르트는 손에 쥔 목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육체가 갑옷이나 다름없는 그녀는 전형적인 전투계 마족이었다. 구릿빛 피부를 장식처럼 덮은 상처는 고목의 줄기에 난 세월의 훈장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녀에게 그 상처는 훈장과 다름없으리라.

저 요망한 암컷은 자신이 튼튼한 빵댕이를 흔들 때마다 얼마나 많은 남자의 가슴을 흔드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수련하고 왔는지, 땀을 흠뻑 흡수한 베른하르트의 레깅스는 그녀의 엉덩이를 더욱더 도드라지게 했다. 각도가 좋으면 도끼 자국도 보일 것 같았다.

“너희들은 1년 동안 연약한 육체를 단련하고 검술이란 놈이 대관절 어디서 뭐 하는 놈인지 배울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베른하르트의 붉은 입술을 향했다. 그녀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뇌리에 박으려는 듯 엄청나게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녀의 레깅스에서 시선을 떨칠 수 없었다. 불어 터질 듯 팽창한 저 레깅스를 당장이라도 찢어서 안의 내용물을 탐하고 싶다.

“완벽한 검술을 단련하는 것은 장수종의 일생을 바쳐도 달성이 불가능한 위업이다. 혹여라도 이 수업으로, 또는 아카데미의 짧은 수업 과정으로 검술의 극의를 깨우치겠다는 멍청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아카데미 사무처에 퇴학 신청서를 제출하기 바란다!”

맹수 같은 레온하르트의 시선이 내 쪽에서 멈췄다. 혹시, 엉덩이와 보짓살을 훔쳐보던 것을 들켰나?

놀라서 시선을 돌리며 시치미를 뚝 뗐다. 다행히 레온하르트는 내가 자신의 둔부를 관음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이 수업의 목표는 분명하다. 검술이라는 대양에 빠져 죽지 않도록, 물에 뜨는 법을 배울 것이다. 명심해라. 대양을 정복하려 하지 마라. 그것은 스스로 심마에 빠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알겠나?”

““““”네!”””””

남녀 할 것 없이 우렁찬 학생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 다음 시간도 여기에 맨몸으로 집합한다. 따로 준비물은 없다. 궁금한 점 있나?”

베른하르트는 입가에는 미소를 뜬 채, 매서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녀에게 감히 질문하는 간 큰 학생은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해산!”

1교시 수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시간이 빈 다른 학생들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아카데미 탐방을 하며 친목을 다졌다. 나는 학생회관 쪽으로 움직였다. 스칼렛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다.

“멈춰라. 여긴 학생회관이다. 학생회 스태프만 입장할 수 있다.”

어제와 달리 입구를 지키는 학생 한 명이 있었다. 어제가 입학식 때문에 특별했던 것이지, 평소에는 경비를 서는 학생이 한 명씩 있다.

수업도 빼먹고 경비라니. 웃기는 일이지만, 아카데미에서는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학생회 멤버에게 학생회는 어지간한 수업보다 훨씬 중요하다.

경비 서는 녀석의 교복을 보니 이비츠 기숙사의 엑스트라였다. 학년은 당연히 나보다 위일 것이다. 아직, 학생회에 가입한 신입생은 없을 테니까.

‘학생회관 문지기는 학생회 중에서도 말단 핫바지나 하는 일이지.’

그러나 그 말단 문지기라도 하기 위해서 줄 서는 것이 아카데미의 현실이다. 배움은 뒷전으로 하고 대감마님의 앞마당에 기웃하는 피라미들이 넘쳐난다.

학생회에 들어가 권력자 자재의 똘마니 짓을 하는 것은 배경 없는 이들이 가장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다. 이건,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지.

“만나기로 약속한 분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응? 누구지?”

“스칼렛 선배입니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문지기 학생이 내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이건 또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이야?’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서기님이 너 같은 신입생과 약속을 잡았다고? 정말이냐?”

“그럼요. 속고만 사셨나요?”

이쪽에서 당당하게 나오니까, 문지기의 얼굴에도 ‘그런가?’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학생회 서기라면 학생회에서 권력으로는 톱 파이브 안에 드는 자리다. 말단 중의 말단인 문지기는 서기의 손님에게도 빌빌 기는 신분이다.

“끙. 일단 말을 전해보지.”

그는 품 안에서 작은 소라고동을 꺼냈다. 통신용 매직 아이템이다. 학생회 멤버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현실의 휴대전화처럼 쓰인다.

“네. 서기님. 랄프입니다. 지금 밖에 서기님과 약속을 잡았다는 녀석이 있는데요. 오라클 기숙사의 신입생 같습니다. 네. 네. 아, 들여보내라고요? 알겠습니다.”

그는 통화를 끊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수상한 부랑자를 보는 눈빛이었다면, 이제는 상급자를 맞이한 표정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태세 전환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서기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이걸 가지고 가시지요.”

심지어 후배인 나에게 말까지 높였다. 문지기가 나에게 준 것은 파란색 보석이 달린 목걸이였다. 학생회관 손님이라는 증표다.

씨발, 학생회관에 들어가는데 무슨 군부대 들어가는 것처럼 검문하고 자빠졌다. 뭐, 그만큼 학생회의 권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어제 내가 그냥 학생회관에 들어간 것은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일이었다.

파란색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학생회관에 발을 들였다. 어제 와봤기 때문에 지리는 훤했다. 서기실은 회관 3층 복도 끝이다.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똑! 똑!

서기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크리스털처럼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려 있어. 들어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엄청난 숫자의 책이었다. 서기실의 크기는 약 20평 정도로 개인 집무실치고는 과하게 컸다. 예전에 내가 살던 원룸보다 크다.

근데, 그 집무실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책장이 가득했다. 두꺼운 양피지를 잔뜩 모아서 제본한 하드커버부터 학생회에 관한 서류를 뭉쳐놓은 것 같은 얇은 페이퍼백까지, 그 종류는 무척 다양했다.

스칼렛 선배는 서기실의 중앙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옻칠을 잔뜩 한 것처럼 진한 갈색의 집무 테이블에는 수십 장이 넘는 서류가 쌓여 있었다. 세 가지 색깔의 잉크 통이 책상 귀퉁이에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고급스러운 깃펜이 한 개씩 꽂혀 있었다.

누가 여기를 보아도 서기의 집무실이란 것을 깨달을 것 같다.

스칼렛 선배는 사인하던 손을 멈추고 깃펜을 잠시 내려놓았다. 보석처럼 빛나는 스칼렛 선배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안녕하세요 스칼렛 선배님.”

“역시 너였구나. 우리가 벌써 그렇게 살갑게 이야기할 정도로 가까웠나?”

“냐옹~!”

집무실 창가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일광욕을 즐기던 네로가 귀여운 울음과 함께 스칼렛 선배의 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스칼렛 선배는 오른손으로 네로를 쓰다듬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반응이 너무 차가운 거 아니에요? 저는 스칼렛 선배와 조금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데요.”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어.”

“이제부터 조금씩 알아가자고요. 우와! 그게 모두 처리해야 하는 서류인가요?”

책상 위에 쌓인 두둑한 서류 쪽으로 이야기의 화제를 돌렸다. 학생회 임원은 권력이 많은 만큼 처리할 일도 많다. 소설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아카데미 학생회 서기란 온종일 집무실 책상에 앉아 격무에 시달리는 직책이었다.

그럼,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스칼렛 선배는 범인을 비웃는 굉장한 인재다. 남들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을 써도 진도 따라잡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녀뿐만 아니라 학생회 임원 대부분이 먼치킨 천재다.

“2~3시간이면 모두 처리할 수 있는 분량이야. 그보다 왜 나를 찾아왔지?”

“너무 딱딱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신입생. 나는 혹시 네가 소란 피울까 봐 만난 것뿐이야. 보아하니 시답지 않은 이야기 하려고 온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제대로 문전박대 하라고 말해둬야겠네.”

“하하. 그러지 마세요. 제가 어떤 소식을 가지고 왔는지 아신다면 깜짝 놀라실걸요.”

원래 스칼렛 선배와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다. 시기로 따지면 1학기 기말고사쯤일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다. 지금 내 목적은 스칼렛을 학기 초반부터 철저히 공략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략법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미없는 장난이 아니었으면 좋겠네. 네가 시간을 뺏지 않았다면 9장의 서류를 더 검토할 수 있었을 거야.”

“검은 개다래 열매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어요.”

지체 없이 떡밥을 풀었다. 말을 들은 스칼렛 선배의 머리카락은 삐죽 선 것 같았다. 딱딱하게 경직된 안면 근육이 지금 그녀가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분명히 표현했다.

스칼렛 선배가 갑자기 집무실 책상을 강하게 탁하고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 뭐!? 정말!?”

선배답지 않은 방정맞은 태도다. 원작에 묘사된 것과 거의 똑같다. 초롱초롱하게 치켜뜬 눈은 네로와 닮았다.

“아무렴 제가 선배 앞에서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할까요?”

“자, 잠깐! 내가 검은 개다래 열매를 찾는지 어떻게 알았지!?”

“어제 그 고양이를 보고요. 제가 고향에서 길고양이 좀 길러봤거든요. 그 아이, 백반병에 걸렸죠?”

이빨 털기 시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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