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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487화 (487/972)

〈 487화 〉 신입생 : 요한12

* * *

“그런데, 너는 이런 곳을 어떻게 안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선배가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좋은 징조다. 선배가 나를 더욱더 강하게 의식한다는 뜻이니까.

“원래 인간은 정보에 민감하거든요. 약한 만큼 다른 부분에서 벌충해야죠. 자세한 건 영업 비밀이에요.”

“혹시 나쁜 일을 하는 건 아니지?”

“물론이죠. 애초에 이 개다래 열매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요. 그나저나 선배. 마계 좀 둘러봤다 갈까요? 그냥 돌아가기 아깝잖아요.”

“미안하지만 다음에. 지금은 일단 네로한테 이 열매를 줘야 할 것 같거든. 병세가 생각보다 심해서 말이야.”

“끙. 아쉽네요. 다음에 꼭 같이 둘러보는 거예요.”

지금은 일단 한발 물러날 때다. 스칼렛 선배는 네로에 관해서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회는 또 올 것이다.

지금 뿌린 씨앗은 훌륭하게 발아되어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으로 필 것이다. 나는 기회를 봐서 그 꽃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고간으로 피가 흘러 거기가 빳빳하게 발기되었다.

*­*­*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2주가 지났다. 검술과 수업 중, 가장 힘든 수업은 역시 베른하르트의 기초 검술 수업이었다.

연무장에 모인 검술과 학생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연무장을 달리고 있었다. 기초 검술 수업은 연무장 100바퀴를 달린 후에 시작한다. 아무리 아인족의 기본 스팩이 뛰어나다고 해도 터무니없이 하드코어한 시작이다.

“기초 체력도 안 되는 녀석들이 검술을 배우겠다고 설치지 마라! 거기 뒤처지는 너! 빨리 일어서 걸어!”

베른하르트는 연무장을 뛰는 학생들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뒤처지는 학생의 엉덩이를 목검으로 콕콕 찔렀다. 낙오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의 달리기가 끝날 때까지 기마자세로 기다려야 한다.

“흐에에엣! 네!”

체력이 약한 종족은 벌써부터 뒤처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종족이 천계의 천사족, 마계의 그림자족, 중간계의 어인족 등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육체 능력보다 마법 능력치 특출난 종족이다. 보통은 마법부로 많이 가는데, 드물게 무투부로 오는 이들도 있다. 안타깝지만 베른하르트를 검술 교사로 만난 것은 그들에게는 뼈아픈 일이었다.

반면 기초 체력이 매우 높은 천족이나 마족, 호인족 등은 벌써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에서부터 종족간의 유불리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연무장 100바퀴를 끝까지 돈 것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나도 있었다.

“허억…. 허억…. 원래 인간 놈들의 체력은 어인족보다 조루지 않냐?”

“저 인간이 특별한 거겠지. 젠장! 죽을 것 같아!”

“쌈박질 잘하기로 유명하던데…. 벌써 벌점이 40점이 넘었다는 소문이 있어.”

“킥! 징벌동에나 가면 좋겠네.”

“엄살피우지 마라 녀석들아! 그럼, 준비 운동을 끝냈으니, 본격적으로 수업 시작하겠다!”

베른하르트의 수업은 매우 하드코어했다. 연무장 100바퀴 돌기를 준비운동이라고 평하는 것에서부터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기초 검술이란 수업의 이름에 걸맞게 열심히 허수아비를 두드리며 자세 훈련을 했다.

기초 훈련은 고된 편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한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B급 루트 스킬 ‘소드 마스터리’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루트 스킬

[소드 마스터리1Lv] (B급)

검을 다루는 원리를 파악한다.

←스킬→

KHC를 익힌 나는 권각술을 기본으로 하는 근접전을 펼친다. 그렇다고 이렇게 검술을 익히는 것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라이트 세이버와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술은 다른 창작물에서도 유용하게 쓰이지.’

그래서 수련하는 의욕이 났다. 다른 학생들은 짜증을 팍팍 부리며 허수아비를 두들겨 팼지만, 나는 베른하르트의 탄탄하고 섹시한 육체를 훔쳐보며 스킬 숙련도를 올렸다.

학생들 9할이 지쳐 떨어지고 나서야 수업이 끝났다.

“좋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아, 그리고 요한. 너는 잠깐 나 좀 보지.”

갑작스럽게 베른하르트가 나를 불렀다. 지금 타이밍에 일어나는 이벤트가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하며 떠올려보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적어도 원작 소설에는 이쯤에 베른하르트와 엮이는 이벤트는 없었다.

‘내 행동 때문에 스토리가 변한 것이로군.’

원작에서 빈츠 카트먼이 맞춰야 할 수수께끼를 맞췄다. 그리고 원작 초반에 요한은 인간답게 베른하르트의 초 하드코어 수업에 정신을 못 차리고 빌빌 긴다. 그에 반해, 지금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수월하게 수업을 듣는다.

‘흠…. 생각보다 스토리가 크게 비틀렸을지도 모르겠군.’

원작과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은 내게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원작의 요한처럼 무력하게 초반을 보내는 것은 딱 질색이다.

수업이 끝나고, 베른하르트를 따라 그녀의 연구실로 갔다. 혹시라도 므흣한 이벤트가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아직 나에 대한 호감도가 그만큼 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베른하르트는 아무에게나 벌리는 걸레가 아니다.

“들어와라. 별것 없는 곳이다.”

베른하르트의 연구실은 무투부 교정의 교무관에 있었다. 책이 빼곡히 차 있는 서재가 가득한 스칼렛 선배의 집무실과 달리, 그녀의 연구실에는 검술 교본 몇 권이 올려져 있는 책상과 의자가 전부였다.

사람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연구실이었지만, 베른하르트와 잘 어울렸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검술 교본 몇 권이 전부다.

“거기 앉아라.”

“네. 무슨 일인가요?”

“긴장하지 마라. 다른 애들 없는 곳에서 이야기하려고 부른 것뿐이야. 지금 네 벌점 현황이 어떻게 되지?”

아. 그것 때문인가?

걸어오는 시비를 피하지 않더니 어느새 벌점이 야금야금 쌓였다. 원작의 요한보다 훨씬 많이 쌓였다.

학생 수첩을 꺼내 내가 받은 벌점을 확인했다. 42점이었다.

“42점입니다.”

“벌써 그렇게 쌓였군. 아마 학교 역사상 기록적인 수준일 거다. 벌점 50점이면 징벌동 행인 거 알고 있나?”

“네. 가능하면 안 가고 싶은데요.”

“잘 생각했다. 징벌동은 끔찍한 곳이지. 나도 너처럼 전도유망한 학생을 징벌동에 보내고 싶지는 않구나.”

베른하르트는 검술 교사인 동시에 1학년 생활 주임이다. 생긴 것과 잘 어울리는 직책이다.

“벌점을 줄일 방법이 몇 가지 있다. 가장 간단한 것은 교내 봉사지. 학기 초부터 학생에게 교내 봉사를 추천할 줄이야. 너란 놈은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벌점 관리는 조금 귀찮다고 해도 하는 것이 좋다.

“하겠습니다.”

“좋아. 잘 생각했다. 그럼, 이번 주 토요일에 다시 여기로 오도록.”

오호. 이건 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베른하르트와 단둘이 보내는 주말이라니. 오히려 내가 봉사 받는 기분이다.

“알겠습니다.”

베른하르트에게 고개 숙이며 연구실을 나갔다. 므흣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플래그를 세울 계획을 짜야겠다.

*­*­*

토요일이 되었다. 나는 베른하르트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녀의 연구실을 다시 찾았다.

베른하르트는 평소와 같은 검은 스포츠 브라에 레깅스 차림이었다. 같은 옷을 몇 벌이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옷을 잘 안 갈아입거나.

‘만약 그렇다면 저 레깅스에 베른하르트 성분이 엄청나게 농축되어 있겠군…. 슬쩍 할 수 없나?’

언제 보아도 너무 잘 어울리는 복장이다. 목검을 어깨 위에 비스듬히 세운 베른하르트는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했다.

“이렇게 아침부터 만나니 반갑군. 수업은 들을 만 한가?”

“물론입니다.”

“다른 애들은 아닌 것 같더군. 뭐, 그래도 수업 강도를 낮출 생각은 전혀 없지만.”

베른하르트는 학생에게 자신을 맞추는 스타일이 아니다.

“오늘 처리할 일은 숲의 말벌을 제거하는 것이다. 블러드 호넷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

“흡혈 말벌 말씀인가요?”

“들어봤군. 말 그대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말벌이다. 모기보다 몇 배는 위험한 놈이지. 한 번 쏘이면 이틀 밤낮을 앓아누울 정도로 고열에 시달린다. 엘프나 수인 쪽 애들이 숲을 자주 이용하니, 이런 건 미리미리 제거해야지.”

베른하르트는 유리병이 잔뜩 든 커다란 가방을 등에 멨다. 그것 외에는 변변찮은 장비도 챙기지 않았다.

말벌집 제거는 베른하르트의 즐거운 취미 중 하나다. 말벌주를 좋아한다고 소설에 짤막하게 언급된 적이 있다. 호탕한 외모처럼 베른하르트는 아카데미에서 알아주는 애주가다.

‘술과 섹스는 매우 친한 형동생이지. 어쩌면, 오늘 기회가 있을지도….’

베른하르트가 앞장섰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베른하르트가 가볍게 말하긴 했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아카데미에서 제법 멀었다. 우리는 거의 1시간 이상을 걸었다.

아카데미가 있는 거대한 섬인 실낙원은 작은 공국 수준으로 크다. 그리고 이 섬에는 거대한 숲이 있는데, ‘안식처’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저기 보이는군.”

좌우로 씰룩거리는 베른하르트의 빵댕이를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잘 갔다. 코박죽의 충동이 몇 번이나 일었지만, 간신히 인내했다.

“와우. 커다란 숲이네요. 저기 가게도 있어요.”

숲의 입구에는 상당히 큰 카페가 있었다. 거기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이 엘프나 수인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마실 걸 사주지. 커피 좋아하나?”

“네. 힘을 써야 하니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시고 싶네요.”

“나와 취향이 맞는군.”

우리는 캐러멜 시럽을 듬뿍 넣은 달콤한 커피를 들고 숲에 들어갔다. 울창한 초록이 가득한 숲은 은은한 숲내음을 풍기며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베른하르트의 모습은 산림욕을 즐기는 느긋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눈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 숲에도 기연이 몇 개 있잖아?’

안식처는 소설에서도 꽤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다. 주인공 요한은 여기서 몇 가지 기연을 얻는다.

‘그걸 적절하게 이용하면 베른하르트의 점수를 딸 수 있겠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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