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8화 〉 중사 : 백재성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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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대대 전투 중대원은 모두 개인실을 사용한다. 우리에게 할당된 방은 약 5평 정도였다. 혼자 쓰기는 나쁘지 않았다.
방에는 침대와 책상, 의자, 그리고 작은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리고 함내 호출을 들을 수 있는 작은 스피커가 천장에 설치되어 있었다. 방의 크기나 형태는 모두 똑같았다. 군대니까 당연한가?
“각자 방 확인했으면 다시 중대실로 모여라. 이제, 본격적으로 보직 돌림판 할 테니까.”
보직 돌림판?
이름만 들어도 뭔지 대충 감이 온다. 학창 시절에 미화부장, 보건부장, 도서부장 정한 것처럼 각자가 맡을 직책을 정하나 보다. 물론, 아무런 의미가 없던 그 시절보다는 나을 테지만.
우리는 다시 중대실에 모였다. 중대장님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중대실 구석에 있는 서랍에서 커다란 판때기 하나를 꺼냈다. 판때기의 상단에는 3중대 전력 현황판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이는 것과 같이 중대장은 나야.”
“중령이 중대장밖에 안 되나요?”
황철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하긴, 중령은 중대장 달기는 너무 높은 계급이긴 하다. 물론, 제1 상륙대대는 던전 헌터 부대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하하. 그렇지 뭐. 참고로 대대장님은 준장이야.”
우리 대대장도 별 달고 있구나. 별을 두개 씩 단 타군 영감들이 가득한데, 그정도는 되야 자존심 상하지 않겠지.
“자자. 일단, 보직은 부중대장, 행보관, 장비반장, 정찰조장, 화력반장이 있거든. 원하는 거, 골라 가시라.”
이렇게 대충 보직이 정해져도 되는 걸까?
게다가 이름은 반장이지만 휘하에 지휘하는 병력이 하나도 없다. 뭐, 이름이라도 기분 내라는 뜻이겠지.
의문이 가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저 행보관! 행보관 할래요!”
“좋아. 황철민 중사. 행정보급관 당첨…. 현황판에 써놓자.”
황철민이 가장 먼저 행보관을 가져갔다. 저런 띨빵한 놈이 행보관이라니. 3중대의 미래가 어둡다.
“흐음….”
리나는 의외로 신중하게 생각했다. 분위기를 봐서 그렇게 신중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이 장비반장은 뭔가요?”
“어. 그냥 통신병이라고 생각하면 돼. 물론, 통신병보다는 취급해야 할 장비가 조금 많긴 해.”
“그럼, 제가 이걸 할게요.”
“오케이. 통신.. 아니, 장비반장은 안리나 중사….”
리나는 장비반장을 선택했다. 장비반장하고 한 짝으로 붙어다닐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럼, 제가 부중대장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보직을 선택한 사람은 한승진이었다. 녀석과 잘 어울리는 직책이다.
“오호. 좋아. 그 유명한 한승진 중사가 자처해서 내 오른팔이 되다니.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중대장님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전력 현황판에 한승진의 이름까지 올라갔다. 남은 것은 정찰조장이랑 화력반장이다. 뭐든 별로일 것 같은데.
“정찰조장, 하겠습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장군기가 자신의 보직을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남은 화력반장이 되었다.
뭐, 이름은 뽀대 나서 나쁘지 않군.
“좋아. 그럼 현황판에 써 놓고…. 잠깐, 기다려 봐. 모두 휘장 줄게.”
“휘장도 있나요?”
리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뭔가, 생각보다 본격적이다.
“응. 어깨 쪽 주머니에 붙이는 거야. 7층에 오바로크 하는 가게 있거든. 옷 수선 가게인데, 이탈리아 사람이 운영해. 그냥 가져가서 옷하고 휘장 보여주면 알아서 오바로크 해줄 거야. 부대에서 나중에 계산해 주니까, 돈은 안 줘도 돼. 오늘 근무 끝나고 바로 가져가서 박아.”
중대장님은 서랍에서 여러 개의 휘장을 꺼내서 우리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러고 보니, 중대장님의 어깨 주머니 부분에도 휘장이 달려 있었다. 날개가 달린 장검 두 자루가 X자로 겹쳐진 휘장이다. 아마 지휘자 휘장이겠지.
한승진의 부중대장 휘장은 날개 달린 장검 한 자루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모습이었다. 황철민의 행정보급관 휘장은 횃불과 탄창이 그려져 있었고, 리나의 장비반장 휘장은 벼락 모양의 신호를 내보내는 안테나 그림이었다.
내 휘장에는 커다란 대포가 한문 그려져 있다. 직관적으로 화력반장이란 느낌이 딱 오는군.
“후우.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휘장을 보자 책임감이 느껴졌는지 리나가 작은 목소리로 걱정스러운 말을 했다. 리나라면, 단순한 군대일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것이다.
“자. 그럼, 각자 보직을 정했으니까, 더 중요한 걸 해야 할 시간이야.”
중대장님는 전력 현황판을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또 다른 전력 현황판이 그려져 있었다. 아까는 중대장, 부중대장 같은 것이 쓰여 있었다면, 이번에는 탱커, 딜러, 힐러와 같은 단어가 적혀 있었다.
“우리가 던전에서 일 많이 하는 거, 다 알지? 그래서 포지션을 알아야 해. 포지션은 이미 정해져 있지. 내가 탱커, 한승진 중사, 안리나 중사, 황철민 중사, 장군기 중사가 딜러, 백재성 중사가 힐러야.”
아마 중대 편성 자체가 우리의 클래스를 고려해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중대장님은 전력 현황판에 각자의 포지션에 맞게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게 보통이긴 한데, 긴급 상황에 팀을 둘로 나눠야 할 때가 있거든. 그때를 대비해서 알파팀과 베타팀을 미리 정해야 해.”
6명을 둘로 나누면 3명, 3명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리나랑 같은 조가 돼야 한다!’
이건 무조건이다. 나는 손을 들어 강력하게 주장했다.
“저는 리나랑 같은 조가 되고 싶습니다!”
“뭐야.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야?”
중대장님이 눈을 흘리며 말했다.
설마, 저 새끼. 리나에게 음흉한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순직하고 2계급 특진을 하게 될 텐데.
“저랑 리나는 사회에서 같은 파티였어요. 그래서 서로에 관해서는 빠삭하죠. 합이 아주 잘 맞는다 이 말입니다.”
이건 사실이다. 이 중에 나와 리나만큼 궁함이 잘 맞는 사람은 없으리라.
우리는 인간으로서도, 헌터로서도 잘 맞는다. 리나가 슬쩍 주변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재성 중사 말이 맞아요.”
“흠…. 뭐, 좋아. 사회에서 같은 파티였다면, 확실히 믿고 맡길 수 있겠지. 그러면, 부중대장하고 백재성 중사, 안리나 중사. 이렇게가 베타팀인 거야.”
중대장하고 부중대장은 원래 나뉘나보다.
뭐, 황철민 저 새끼보다는 한승진이 더 낫긴 하다.
팀 편성이 휘리릭 끝나자, 중대장님은 서랍장에서 두꺼운 실무 교범을 꺼내 들었다.
“자자. 오늘부터 너희들이 공부할 거야. 이쪽 전술 교범은 부중대장, 여기 행정관리 교범은 행보관, 아, 그리고 안리나 중사랑 백재성 중사는 잠깐 나 좀 따라와. 장비 소개시켜줘야 하니까.”
흐음. 뭔가 귀찮은 혹을 달아버린 것 같군.
***
안석호 중령이 나와 리나를 끌고 간 곳은 장비실이라 적혀 있는 방이었다. 그 방 앞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
“수진아! 지수야!”
수진이랑 지수였다.
“우와! 오빠도 저처럼 장비반장 하셨나 보네요!”
지수가 신이 나서 말했다. 두 사람 옆에는 날렵한 인상의 여군이 서 있었다. 중대장님이 그녀를 소개시켜주었다.
“4중대장 조미숙 중령이야.”
조미숙 중령의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외모는 평균 이하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으며 무엇보다 피부가 나빴다. 보기만 해도 수세미처럼 거칠거칠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다.
흠…. 역시 군대는 있을 만한 곳이 못 된다.
“여기는 장비실이야. 여기 있는 생체인식 패널에 지문이랑 홍채 찍고 들어갈 수 있지. 암호 장비도 취급하고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중대장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장비실 문을 열었다. 장비실 안에는 나무 선반이 많았다. 거기에는 무거워 보이는 군용 장비가 가득했다. 우리가 훈련 때 사용한 유도 장보나 통신 장비도 있었다.
“이게 장비반장이 쓰는 통신기야.”
중대장님이 백팩에 꽉찰 것 같은 커다란 공중 전화 같은 장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짜 전화처럼 숫자패드가 달려있다.
“내가 아까 준 교범에 사용법하고 관리법 나와 있거든. 1주일 이내로 숙지해 놓도록 해. 그리고 이거랑, 이거랑, 또 이거랑….”
리나와 지수가 관리할 장비는 크고 작은 것을 더해서 10개가 넘었다.
“자. 다음은 화력반장들. 따라 오세요.”
4중대의 화력반장은 수진이였다.
“후후. 나랑 재성이는 마음이 잘 맞네.”
수진이가 화사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뭐, 내가 선택해서 화력반장이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잘 맞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어쩌면 나와 수진이는 같은 보직을 맡을 운명이었을지도?
“여기가 화력창고야.”
화력창고는 장비실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그 안에는 장비실과 마찬가지로 선반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여긴, 철제로 된 선반이었다.
“이거 바주카포 아니에요?”
“아. 그건 대몬스터 로켓이야. 근데, 어차피 그거 안 써.”
“네? 왜요?”
“로켓탄에 마나 스톤을 박아 넣어야 하는데, 거기에 쓸만한 마나 스톤 가격이 1억이 훨씬 넘어서 말이야. 크큭! 돈다발을 쏘는 거지. 로켓탄 생산이 3년 전부터 아예 중단되었을걸? 탁상행정의 결과물이지.”
아하! 경재성이 씹창이라는 거구나.
일반인이라면 쓸만 하려나?
아니, 애초에 일반인은 강력한 마나를 방출하는 무기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구나.
“너희들 무기는…. 여기 이 기관총하고 대전차 로켓. 이것도 교범 보고 확실히 공부해 둬.”
공부는 싫지만, 무기는 제법 삐까삐까해 보인다. K1보다는 역시 이런 기관총이 더 멋있긴 하다. 물론 들고 다니기는 좀 귀찮겠지만. 그냥 인벤토리에 넣으면 안되려나?
이것저것 하느라 어느새 퇴근 시각이 되었다. 장비를 확인한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퇴근한 후에도 열심히 공부하라고. 내일, 시험 볼거야.”
중대장님이 그렇게 말해서 일단 책은 폈다. 근데 빼곡한 기관총의 재원을 보자마자 머리가 아파온다.
이런 거, 굳이 알 필요 있을까? 애초에 군생활 하면서 기관총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
‘애초에 기관총 사격 스킬도 있는데, 이렇게 책 붙들고 있는 것은 낭비지.’
그냥 책 덮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나 한숨 때려야겠다. 오늘은 너무 많은 것을 머리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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