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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600화 (600/972)

〈 600화 〉 배우 : 데릭 워커22

* * *

로스턴 후작가는 들려오는 위명만큼이나 대단한 본가를 가지고 있었다. 성이라고 해도 믿길만한 큼지막한 대저택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로스턴 후작가는 장원이 따로 없지만, 폭넓은 교역으로 케겐 일대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다만, 그것도 옛말이고 지금의 대에 이르러서 과거에 벌어두었던 것을 거의 다 까먹었다고. 새삼 현 로스턴 후작의 무능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로스턴 후작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광기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저는 그보다 더 집착이 강한 사람을 한 명밖에 보지 못했어요.”

“오호라. 그게 누구죠?”

“그건 비밀…. 아, 저기 사람이 나오는군요.”

후작가의 입구를 지키는 위병에게 설산의 마녀가 찾아왔다고 알리자,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깔끔한 집사복을 입고 왼쪽에는 외안경을 쓴 남자가 우리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기별도 없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셔서 주인님께서 조금 놀라셨습니다. 일단, 안으로 드시죠.”

“빨리 온 것은 미안해요. 재료가 다 갖춰져서 더 미룰 이유가 없었졌어요.”

“아닙니다. 주인님도 거래가 빨리 성사된다면 좋아할 겁니다. 이미 재료를 준비했고요. 그런데 이쪽 분은….”

집사가 내 쪽으로 눈을 돌린다. 예정되지 않은 손님이니 경계하는 것은 당연지사.

나는 미리 마녀와 입을 맞춘 대로 신분을 밝혔다.

“제자입니다.”

“오호. 설산의 마녀님도 제자를 키우셨군요. 주제넘는 말일지 모르지만, 마녀님의 제자라는 이미지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분이신데….”

“정말 주제넘는 말이로군요.”

마녀는 의외로 단호하게 집사를 나무랐다. 집사는 고개를 숙이며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죄송합니다. 늙어서 그런지 실언이 잘 나오는군요.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집사의 인도에 따라 휘황찬란한 정원을 거닐었다. 뭐랄까, 아름답긴 한데 실속 없는 정원이다.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이 구석구석에서 보인달까. 가세가 기우는 것이 이런 곳에서 확인되는구먼.

이렇게 보니 로스턴 후작이 베넬리아 가문을 필사적으로 짓밟으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원래 정치계에서는 상대를 죽이면 내가 올라가는 법이다. 경쟁자를 완벽히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건재함을 알릴 수도 있고, 상대방의 세력을 흡수할 수도 있다.

로스턴 후작은 그 나름대로 가문의 재건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본인이 말아먹은 가문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이쪽입니다.”

나와 마녀는 모든 귀족 가문에 하나씩 있는 응접실에 안내되었다. 응접실만큼은 대귀족의 저택이라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벽면 곳곳을 장식한 몬스터 박제가 조금 으스스하긴 했지만, 저런 쪽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름 높게 평가하리라.

나는 전혀 아니지만.

잠시 기다리자, 응접실 문이 다시 열렸다. 들어온 것은 단정한 정통 복장 차림의 메이드였다.

쿨롱 영지의 내 메이드들은 전체적으로 복장이 짧아서 눈요기가 잘 된다. 그런데, 여기 메이드들은 모두 길쭉길쭉한 치마를 입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훌륭하게 배색된 코스튬은 19세기 영국으로 그대로 돌아가도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외모는 모두 아쉬운 편이었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 보이는 여자도 있는 것을 보면, 로스턴 후작은 여색을 그다지 밝히지 않는 것 같았다.

“차를 내어왔습니다. 주인님이 곧 오실 겁니다.”

능숙한 솜씨로 차를 따르는 메이드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 성의 애들도 이런 쪽으로 교육 좀 시켜야겠다. 너무 방중술 교육만 시키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메이드가 따라준 타를 홀짝이고 있으니, 로스턴 후작이 나타났다. 노예 거래소에서 본 것과 별반 차이 없는 모습이었다.

“흐흠! 오랜만입니다. 마녀님.”

“그렇네요. 그동안 격조하셨는지요?”

우아한 손길로 찻잔을 내리는 설산의 마녀. 묘하게 이 응접실의 분위기가 마녀 쪽으로 더 기운 것 같다. 마녀는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 로스턴 후작을 대하는 것 같았다. 물론, 말투는 정중하기 그지없었지만.

“저야 늘 편안하지요. 요즘 좋은 일이 잇달아 일어나서 입이 귀에 걸릴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쪽 분은…?”

“제자입니다.”

마녀의 말에 로스턴 후작은 별다른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이 준비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마녀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로스턴 후작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가두고 있습니다.”

“제가 요구한 조건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재료가 맞겠지요?”

“그렇습니다. 남자는 동정, 여자는 처녀. 이쪽에서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게다가 마나의 농도도 적당하고 귀족 가문의 자재들이니 먹는 것도 충분히 잘 먹었겠죠. 마녀님이 보시면 바로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역시 후작님은 유능하십니다.”

“하하! 과찬입니다. 그럼, 바로 보러 가실까요?”

로스턴 후작은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함께 후작을 따라 저택 위로 올라갔다. 후작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저택 3층의 복도 끝 방이었다.

두꺼운 자물쇠로 출입을 봉인한 방이다.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바로 여깁니다.”

로스턴 후작이 직접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방문을 열자 방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 안쪽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귀한 손님을 모시는 방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가구도 모두 고풍스러웠고, 테이블이나 의자, 거울, 각종 장식품까지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심심하지 말라고 보드게임도 놓여 있었다. 의외로 로스턴 후작은 배려심이 좋은 놈이었다.

“흐읏!”

방 안에 있던 한 쌍의 남녀가 우리를 보며 깜짝 놀랐다. 편한 복장의 이리나 베넬리아와 브라운 베넬리아였다.

“어떻습니까!? 마녀님! 이 둘입니다!”

로스턴 후작의 말에 설산의 마녀는 그 둘에게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이 마치 유령이 움직이는 것 같아서 조금 으스스햇다.

아니, 디멘X가 날아다니는 모습인가?

키스를 당하면 영혼을 빼앗길 것 같아서 머리가 아찔해진다.

마녀가 누나인 이리나에게 손을 뻗었다. 특별히 빠르거나 날카로운 움직임이 아니건만, 이리나는 마녀의 손길에 저항하지 못했다. 마녀는 이리나의 손을 낚이채서 로브 아래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아얏!”

이리나가 짧게 신음했다. 마녀가 이리나의 손가락을 깨문 것이다. 마녀는 바로 이리나의 손을 놓아주었다.

“확실히 좋은 피로군요.”

피를 맛봐서 상태를 확인한 건가?

원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으스스하군.

“재료로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바로 제조를 시작하죠.”

“으하하! 역시 만족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가시죠! 공방을 준비했습니다. 어이! 두 사람! 따라와!”

“저 둘은 제가 데려가죠.”

마녀가 로브 안쪽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주머니 속 내용물을 두 남매에게 훌훌 날렸다. 그것은 황색의 가루였다. 가루를 흡입한 두 남매의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오호. 그건 뭐죠?”

“최면 가루입니다. 정확히는 환각 가루지만, 사용하는 방법이 따라 이렇게 쓸 수도 있죠.”

“굉장히 유용해 보이는군요.”

로스턴 후작은 저 가루에도 욕심이 나나 보다. 그러나 마녀가 매몰차게 대꾸했다.

“연금술의 지식이 없는 사람이 쉽게 다룰 수 있는 물건은 아니랍니다.”

“쩝. 그런가요?”

“공방으로 가죠. 안내해주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로스턴 후작이 준비한 공방으로 향했다. 공방은 저택의 지하실에 마련되어 있었다.

감옥을 만들어도 좋을 것처럼 습습하고 퀴퀴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처녀의 피로 와인을 제조하는 미치광이가 한두 명 정도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딱 마음에 드는군요.”

다만 설산의 마녀는 마녀답게 이런 곳이 더 좋은 모양이다. 공방 안쪽에는 커다란 솥을 비롯한 약물 제조에 쓸 수 있는 수많은 도구가 가득했다. 각 잡고 제대로 만든 공방이다.

“마녀님. 그것의 제조에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재료만 있다면 한 시간 안에도 가능해요.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하죠.”

마녀는 로브 안에서 지금까지 준비한 재료를 모두 꺼냈다. 내가 구해온 분열 파리의 눈알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가장 먼저, 설산의 만년설을 녹일 거예요.”

유리병 안에 담긴 소복한 눈을 솥에 넣는 마녀. 그녀는 작업하면서 일일이 혼잣말로 설명하는 버릇이 있었다. 훌륭한 설명충이로군.

“물을 녹이는 것은 반드시 용암꽃의 꽃잎으로. 세 닢이면 충분하죠.”

피처럼 붉은 꽃잎을 솥에 넣는다.

“이대로 약 10분간 가열. 푸르스름하기 직전의 불꽃이면 충분하겠죠.”

마녀가 솥 쪽으로 손을 뻗자, 그 아래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스턴 후작이 눈웃음을 지으며 감탄했다.

“역시 훌륭한 솜씨로군요. 마녀님이라면 전설의 비약,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과찬이에요. 모든 연금술사의 목표인 엘릭서를 제조하는 것은 저에게도 아직 꿈의 꿈이랍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는 로스턴 후작과 설산의 마녀. 왠지 나만 깍두기가 된 것 같다.

내 옆에 있는 두 베넬리아 남매는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서 있었기에 나는 가만히 마녀가 황금사과를 제조하는 것을 기다렸다.

“그런데, 건강한 피는 언제 넣는 것입니까?”

로스턴 후작이 두 베넬리아 자매를 바라보며 물었다.

“피는 마지막의 마지막이에요. 비약을 완성하는 최후의 재료죠.”

그렇게 마녀는 착실하게 모아온 재료를 소진하며 비약을 제조했다. 솥에 든 액체는 처음에는 붉은색이었다가 이내 푸른색이 되고, 다음은 초록색이 되었다.

“좋아요. 마지막이에요. 이제 여기에 건강한 피를 넣으면 돼요. 아주아주 건강한 피일수록 효과가 좋은 법이죠.”

“우하하! 드디어 완성이로군요! 이 비약만 있으면, 저도 완벽한 미남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날 거예요.”

마녀가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다음 순간, 마녀의 손이 로스턴 후작 쪽으로 부드럽게 휘둘러졌다.

“켁!”

후작의 몸이 쓰러졌다. 당혹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을 본 마녀가 싱긋 웃었다.

“제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피는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고. 완벽한 비약을 위해서는 로스턴 후작, 당신의 피가 가장 적정할 것 같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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