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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626화 (626/972)

〈 626화 〉 짐꾼 : 요한1

* * *

다음 세계로 어떤 곳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은 세계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유인(아카데미 유일의 인간 인간이라고요?) 세계에 들어왔다.

아유인 세계는 검술 수련을 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하렘물 라이트노벨답게 아름다운 히로인도 많다. 공략해야 하는 히로인이 하나둘이 아니다. 게다가 난 이 세계에서 많은 밑밥을 뿌리고 있다.

“요한. 왔어?”

아유인 세계에 돌아오자마자 스칼렛 선배의 호출을 받았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데이트 신청이면 좋겠지만, 그건 김칫국이겠지. 아마, 학생회 일로 부른 것 같다. 지금 나는 어엿한 학생회 일원이니까.

지난 중간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나는 학생회에 가입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학생회의 지하조직인 일수회(一手會)를 사실상 집어삼켰다. 지금 나는 일수회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중이다.

“네. 스칼렛 선배가 저를 따로 부르다니 의외네요.”

스칼렛 선배는 오늘도 아름다웠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고귀한 영애 같았다.

“사적인 내용이 아니야. 학생회 일로 불렀어.”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입맛이 조금 쓰다. 지난번 데이트 이후로 나를 의식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 스칼렛 선배의 가드는 단단하다.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선배의 청발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사파이어빛 눈동자에는 자신감이 그렁그렁했다.

학생회 서기관인 그녀는 학생회에서 가장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학생회 위원들이 제 권력을 위해 활동하거나 높으신 분의 눈에 들기 위해서 보신에 최선을 다하는데 반해, 스칼렛 선배는 순수하게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해 일을 한다. 그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이 학생회가 그나마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학원제가 다가오고 있어.”

“학원제라. 그것 때문에 부르신 건가요?”

“맞아. 신입생이긴 하지만, 너도 학원제에 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물론요. 아카데미 학원제는 유명하잖아요.”

학원제(???)

말 그대로 매년 학원에서 열리는 축제다. 학원제는 운동회, 서클 성과 발표회와 함께 매년 돌아오는 아카데미의 빅 이벤트다.

“우리 아카데미는 학년별로 학원제 실행 위원회를 신설해서 학원제를 진행하고 있어. 학년마다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서 원하는 대로 행사를 진행할 수 있거든.”

“그렇군요. 스칼렛 선배가 저를 부르셨다는 것은 제가 1학년 실행위원이 되었다는 뜻인가요?”

“학생회 소속이라면 누구나 실행위원이 될 수 있어. 학년끼리 알아서 위원장을 선출하고 행사를 계획, 실행하는 것이지. 다른 학년의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룰이야.”

“말 그대로 자치권이로군요.”

“그래. 1학년들에게는 이게 학생회 위원으로서 첫 번째 평가인 셈이지.”

학원제를 원만하게 진행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학생회 내의 평판이 갈릴 것이다. 시험이라는 스칼렛 선배의 표현은 매우 정확했다.

“그러니까, 너도 미리 준비하고 있어. 보통 지금부터 학원제를 준비하거든.”

“저를 걱정해서 조언해주신 것이로군요. 새겨듣겠습니다.”

“따, 딱히 걱정한 것은 아니야. 너는 알아서 잘하겠지.”

아닌 척 하지만, 나를 걱정해서 미리 조언해줬다는 점에서 나를 의식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티 났다.

역시, 데이트 이후로 스칼렛 선배는 나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좋은 변화다.

“학원제 준비는 생각보다 복잡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통합하는 것도 일이고. 너도 알다시피 학생회에는 에고가 강한 녀석들이 많아서 의견 조율부터 난항이거든.”

“그렇겠네요. 점심 메뉴 통일하는 것도 전쟁일 텐데 학원제 행사 조율은…. 끔찍하겠군요.”

“늘상 그렇지. 빈말이 아니라 진짜 전쟁을 한판 치러야 한다니까.”

오히려 전쟁이라면 낫다. 싹 쓸어버리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니까.

“그럼, 할 말은 끝이야. 가 봐.”

“너무 매정한 거 아니십니까?”

“아까 말했잖아. 사적인 일로 부른 게 아니라고. 할 말은 다 했어.”

스칼렛 선배의 축객령에 서기관실을 나왔다.

학원제 준비라….

기획하고 싶은 행사는 많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을 치워야 할 것 같다. 스칼렛 선배가 미리 조언해주신 덕분에 준비할 시간은 많아서 다행이다.

*­*­*

학원제가 곧 다가온다는 것은 일반 학생들에게도 들뜬 분위기를 가져다주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수업 시간에 그런 이야기가 은근히 주변을 떠돌았다.

특히나, 1학년 새내기들의 기대감은 다른 학년보다 더 컸다.

“입학하고 첫 학원제잖아. 엄청 기대 되는 걸.”

“우리 학년은 뭘 할까?”

“들어보니까, 1학년은 보통 간단한 노점 위주로 한다고 하더라고.”

“축제 때 클라리안 양이 오신데. 마계에서 엄청 유명한 디바 말이야.”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는 교사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검술 교사인 베른하르트가 눈살을 찌푸리며 사담을 나누는 학생에게 목검을 겨누었다.

“축제로 기쁜 것은 알겠지만, 너희는 그렇게 여유롭게 잡담할 성적이 아닌 것으로 아는데? 검을 들고 집중해라.”

““네, 넷!””

학생들의 기대감으로 기숙사에도 활기찬 분위기가 전염될 무렵, 학생회 내에서도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었다.

1학년 학생회 위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학원제 준비를 위해서다.

‘절반 정도는 신고식에서 봤던 얼굴이로군.’

회의실에 모인 1학년 학생회 위원은 40명 정도였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았다. 일전에 일수회(一手會) 신고식에서 보았던 학생이 절반 정도였다.

“모두 모인 것 같군.”

기다란 직사각형 테이블 귀퉁이에 앉은 녀석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머리에 검은 뿔이 난 놈이다. 외견을 보니 악마족인 것 같다.

안면이 없는 놈이다. 마법부 학생인 듯하다. 교복은 템페스타 교복이었다.

“알다시피 우리는 이번 회의 주제는 학원제다. 선배들의 도움 없이 우리끼리만 해야 하는 일인 만큼 쉽지 않겠지만, 잘해보자고.”

악마족 녀석이 혼자 폼을 잡았다. 그 주변에 앉은 놈들은 녀석의 눈치를 보았다. 권세를 가진 놈이 분명하다. 원작에 저런 놈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남자라서 그런가? 생각이 안 나네.’

내 기억에 없을 정도라면 스토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 놈은 아닌 것 같다.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재력도 고만고만한 수준이겠지. 주변 놈들이 눈치 보는 것을 보면 카리스마는 있는 것 같다. 원작에 나오지 않은 잠룡이란 건가?

“우선 실행위원장을 뽑는 것이 우선이겠군.”

실행위원장

녀석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주변 분위기가 달라졌다. 학생회에 입학한 입장에서 처음으로 가질 수 있는 요직이다.

학원제 기간 동안 반짝 일하는 실행위원장이 무슨 요직이냐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 고학년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면 학생회 내에서 출세는 떼 놓은 당상이다. 그리고 그 연줄은 아카데미 바깥 사회에서도 계속 이어지겠지.

악마 남자 새끼의 카리스마에 눌린 녀석들도 위원장 자리는 욕심이 나는지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

“방법은 역시 투표가 좋겠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난한 방법이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 대부분은 일수회 소속이었다.

일수회를 사실상 장악한 나는 절반 이상의 득표를 확보했다. 투표라면 분명 내가 당선될 것이다.

그러나 악마 남자 새끼는 투표라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방법에 동의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녀석은 팔짱을 끼더니 주변을 천천히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중요한 학원제 실행위원 자리를 인기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야.”

“투표만큼 공평한 방법이 어디 있다고 그래?”

“인기 많은 사람이 꼭 유능한 사람이라는 법은 없지.”

녀석이 그렇게 반대 의견을 피력하자 슬금슬금 놈에게 동의하는 놈들이 나타났다. 투표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다.

“젝키 말이 맞아. 투표로는 그 사람의 자질을 알 수 없잖아.”

“역시, 이런 쪽으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위원장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 조직을 많이 운영해봤는데….”

“행사를 총괄하는 것이라면 상단에서 일해 본 사람을 뽑아야지. 우리 아버지는 천계에서도 유명한 상단의….”

“그냥 뽑기로 뽑으면….”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스칼렛 선배의 말대로 이 학생회 놈들은 에고가 너무 강했고,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용!”

젝키라고 불린 악마 놈이 테이블을 쿵 하고 내려치자 혼란스러웠던 회의실 내부에 정적이 감돌았다. 녀석은 악마족 특유의 카리스마로 분위기를 지배했다.

“이런 식으로는 결론이 안 나와.”

녀석이 의장 행세를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귀찮은 진행을 떠맡아주는 것은 고마웠기에 하고 싶을 말을 하게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의견과 의견이 끝없이 대립할 것 같으니, 가장 직관적이면서 명확한 방법이 좋을 것 같군. 결투 말이야.”

놈이 결투라는 말을 입에 올리자 조금 전까지 자기주장을 열심히 피력하던 녀석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제, 젝키. 위원장을 결정하는데 결투는 좀…”

“애초에 선출하자는 방법도 모두 제각각이잖아. 의견과 의견이 대립하면 결국 힘으로 우열을 가릴 수밖에.”

아카데미 학생다운 야만적인 발언이었다. 대놓고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 있어?”

녀석이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를 하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반박 의견을 내려던 학생들은 슬그머니 손을 내리며 고개를 깔았다.

침묵은 긍정이다. 나 역시 침묵으로 긍정했다.

‘내게 불리한 조건이 전혀 아니니까.’

“처음으로 의견이 통합된 것 같군.”

젝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투의 심판은 선배들에게 부탁하면 될 것이고…. 후보로 나올 사람 있나? 물론 나는 나갈 거야.”

젝키의 말에 모두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권력욕에 눈을 반짝였던 몇몇이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손을 들지 않았다. 젝키라는 놈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나오는 사람이 없다면....”

“나도 출마하지.”

젝키의 말이 끝나기 전에 손을 들었다. 녀석의 매서운 눈빛이 나에게 꽂혔다. 그러나 전혀 쫄지 않았다. 무섭기는커녕 눈깔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 난다.

“요한. 가장 유명한 1학년이 입후보하다니. 영광이로군.”

녀석은 자꾸 아까부터 자기가 당선이라도 된 것 마냥 이야기하고 있다. 내 소문을 잘 못 들은 것 같다.

“너에 관한 헛소문이 우리 기숙사에서도 유명해. 확인할 좋은 기회겠군.”

녀석은 결투 전부터 패배 플래그를 세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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