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1화 〉 후계자 : 종칠11
* * *
금접루
하남 시내에서 이보다 유명한 기루는 많지 않다. 고절한 무공을 지닌 무림인이나,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고관대작, 황금을 산처럼 쌓은 장사꾼 등, 무력, 권력, 금력이 빼어난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무력 충돌을 피하기 좋지.’
아무리 경우 없는 무림인이라고 해도 금접루에서 사고를 치지는 않는다. 제정신이 박힌 무림인이라면.
금접루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어마어마한 인맥이다. 혹여라도 금접루에서 사고라도 터져서 영업을 중지하면 어마어마한 적을 두게 되는 것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리라.
대전을 끝내고 금접루에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 아직 정오가 되려면 반 시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녀석이 이곳을 접선 장소로 정한 것은 단순히 삼장로의 시선을 따돌리기 위함이 아니야.’
복면을 쓴 거수자는 금접루에 출입하지 못한다. 녀석은 내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곳을 약속 장소로 잡은 것이다.
물론, 놈의 생각대로 놀아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얼굴을 들키지 않고 녀석과 접선할 방법은 이미 마련했다.
기루는 단순히 기녀들과 놀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금접루는 기녀도 최고지만 음식도 최고다. 여기를 다니는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음식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
소홍주와 가벼운 식사를 시켰다.
은자 열 냥 어치 식사다. 금접루는 자연스럽게 폭리의 폭리를 취했다. 애초에 그 정도 값을 치르지 못한다면 이곳에 얼쩡거릴 수 없다.
“식사 나왔습니다.”
소홍주는 꽤 먹을만 했다. 싸구려 술과 다르게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식사로 나온 오향장육은 간만 세고 맛이 단순했다. 현대의 고급 음식이나 솔라리 월드 세계에서 주방장이 나를 위해 직접 만든 요리에 비할 바가 못했다.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맛은 기대 이하였다. 슬그머니 접시를 치웠다.
‘왔군.’
마로는 정오에 딱 맞춰 기루에 들어왔다. 평소에 쓰던 검은 죽립은 쓰지 않은 채였다. 그걸 쓰면 금접루에 들어오지 못한다.
차기 마교의 교주답게 녀석에겐 귀티가 줄줄 흘렀다. 나를 응대할 때와 다르게 점소이의 움직임이 빠릿빠릿해진다. 누구라도 마로 앞에서는 그렇게 될 것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어서 오십시오! 예약 하셨습니까?”
“주향이란 이름으로 예약했다.”
“네이~! 창가의 지정석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놈의 기루에 왔음을 확인한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음식값을 치르고 기루를 나왔다. 이제, 녀석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마로는 자리에 앉아 술과 소면을 시켰다.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조금 있다 몸을 격렬하게 쓸 텐데 위장을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고 기감을 움직였다. 기루 내부를 은밀하게 살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고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동은 멍청한 짓이다. 그는 은밀하게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무림인은 없군.’
정오라 그런지 기루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용호쟁패를 관람하러 갔다. 나라 녹을 받아먹는 관리들은 일할 시간이다. 기루에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은 대부분이 상인이었다.
“손님.”
건장한 점소이가 그에게 다가왔다. 음식이 담긴 쟁반은 들려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이걸 손님께 전해달라고….”
점소이가 건넨 것은 작은 종이쪽지였다. 상단에서 사용할 법한 고급 종이를 접은 것이다. 마로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쌍흑색마의 쪽지가 분명하다.
“이걸 누가 보냈지?”
“그,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검은 복면을 쓴 괴한이 손님께 이걸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검은 복면을 쓴 괴한…. 그가 나를 어떻게 말했지?”
“정오가 되면 귀공자 같은 분이 기루를 찾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
한 방 먹었다. 놈은 자기 생각보다 훨씬 치밀했다.
마로는 점소이가 건넨 쪽지를 펼쳤다. 그 안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뒤에서 기다림
“하아….”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음식이 나오지도 않았다.
마로는 바로 먹지도 않은 음식값을 치르고 기루를 나섰다. 커다란 기루의 뒷마당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혹시라도 자신을 쫓는 삼장로의 사냥개들과 만날세라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삼장로의 치밀함에 여러 번 데인 마로는 주의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왔군.”
성별도, 나이도, 성격도, 외모도, 그 어느 것도 짐작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자신을 맞아주었다. 어제의 그 남자가 팔짱을 끼고 자신 앞에 서 있었다. 예의 복면도 그대로였다.
“오늘 날씨가 참 좋군.”
그의 말에 마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물찾기하기 딱 좋은 날씨다.”
“장보도는 가져왔지?”
“물론이다.”
이야기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마로는 한 시도 때 놓지 않았던 장보도를 꺼내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약도 같은 장보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지. 발 달린 보물이 언제 도망갈지 모르니까.”
“잠깐.”
마로가 상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삼매진화로 태웠다.
“그건 뭐지?”
“전서부(?書?)다. 원시적인 법기지.”
향 하나가 채 못 탈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체구가 마로보다 머리 하나가 작은 사람이다. 얼굴에 여우 가면을 썼기에 정확한 성별은 알 수 없었지만, 어깨까지 기른 머리카락과 아담한 몸집으로 미루어 보아 여자가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제삼자의 등장에 복면의 남자가 고개를 까딱하며 마로에게 설명을 구했다.
“내 시종이다. 믿을만한 사람이다.”
“시종이라. 삼장로의 밀정일 확률은?”
그의 말에 대답한 것은 마로가 아닌 시종이었다.
“그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은 능구렁이 밑에서 일할 바엔 혀를 깨물고 자결하겠습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것이 날카롭게 벼려진 한 자루의 비수를 연상시켰다.
“말이야 뭔들 못하겠어? 영악한 삼장로라면 자기를 욕하는 법을 가르쳐줬을지도 모르지. 아니, 분명 그랬을 거야.”
“그녀의 신분은 내가 보증한다. 그녀가 삼장로의 졸개일 리 없다.”
마로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믿겠어. 어차피,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 슬슬 움직이지.”
“장보도가 가리키는 장소가 어딘지는 아나?”
“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 보물찾기는 한두 번이 아니란 말이지. 장보도 해독에는 자신 있거든. 따라와라.”
***
나와 마로는 낡은 절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탱이의 절이다.
하남 시내의 남쪽 외곽에 위치한 이 절은 폐쇄된 지 100년은 지나 보였다. 건물 곳곳은 을씨년스럽게 무너지거나 금이 가 있었다.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발자국이나 분변의 흔적도 있었다. 방치된 지 오래 되어서 들짐승들의 휴식처로 전락한 것 같다.
‘마로의 시종이라. 원작에도 나온 인물이로군.’
이름은 끝끝내 나오지 않지만, 마로의 시종은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마로를 보좌하는 충직한 부하로 나오며, 끝까지 그를 믿고 따르는 인물이다. 창작물에 하나씩 있는 충직한 알프레드형 캐릭터랄까.
‘게다가 일신의 무공도 상당하지.’
마로의 시종인 그녀는 훗날 마교의 시종장이 되어 교주인 마로를 보좌한다. 업무적으로 그를 돕기도 하고, 그의 경호를 책임지기도 한다. 마로를 위해 지저분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는 당연히 마로보다 강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고수로 묘사된다. 이 시점이라면 현 정파의 후기지수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저렇게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꼴림이 배가 되는군. 몸은 리나처럼 빈약하지만…. 그게 또 색다른 맛이지.’
더군다나 그녀는 마로의 충신이다. NTR하기 저보다 더 좋은 사냥감도 없다.
검은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한다.
어떻게 흘러가야 그녀를 따먹을 수 있을까?
“장보도가 가리키는 곳이 바로 여기인가? 어째서 여기지?”
마로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보도 가운데 쓰여 있는 십(?)자 보이지? 이건 십(?)이 아니라 목(?)이야. 세월이 흐르면서 지워져서 십자로 보이는 거지.”
“하지만, 이곳과 나무가 무슨 상관이지?”
“여기 터를 봐봐. 이 절은 목비사(???)란 곳인데, 원래 여기에는 천 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었어. 백 년 전, 정파와 사파의 분쟁으로 절이 불타고 나무가 잘렸지.”
“그렇군. 그 정도로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면, 표식으로 여기기는 충분하겠군.”
“장보도의 상태를 보면 이건 대략 300년 전에 만들어진 거야. 이걸 만들 당시에도 나무는 오래되었을 거야.”
“이 절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라…. 하지만, 단순히 바깥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겠군. 그랬다면 이미 다른 누군가가 가져갔겠지.”
“그렇게 대놓고 보물을 두면 장보도를 만들 필요도 없지.”
나는 절의 남쪽 주춧돌이 있는 부분을 팠다. 땅을 얼마 파지도 않았는데 깡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철로 된 작은 문이 지면에 숨겨져 있었다. 생긴 것은 맨홀 뚜껑 같았다.
“비고로 이어지는 문 같군. 잘 숨겨놨어.”
마로가 직접 문을 열었다. 수백 년 동안 열리지 않았던 강철 문은 이미 녹이 슬대로 녹이 슨 상태였다. 그러나 마로가 내기를 운용하자, 쇠를 긁는 거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들어가지.”
문이 열리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마로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마로가 앞장섰다. 당연하게도 지하에는 불빛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세 명은 모두 무림인이다. 안구를 내공으로 강화해서 밝은 시야를 얻었다.
“좁고 습하군.”
석벽으로 된 좁은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코를 자극하는 곰팡내는 이곳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렸다. 바닥 곳곳에 난 이끼 때문에 발밑이 미끄러웠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이끼를 밟고 자빠질 만큼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 사람은 없다.
“통로가 길군. 단순히 영약이나 신기를 숨길 생각으로 만든 공간인가? 그런 것치고는 묘하게 넓어 보이는데.”
마로는 주변을 살피며 이곳의 용도를 추측했다.
겉으로 보리는 모습은 매우 단순한 지하실이었다. 문파에 하나씩 있는 지하 뇌옥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함정은 없을 거야. 설령 있다고 해도 이미 고장 났겠지. 어떤 기관 진식도 기한이 영구한 것은 아니니까.”
“단정하듯 말하는군. 신중치 못한 태도다. 천 년이 지나도 작동하는 기관진식이 있다.”
“그건 예외적인 경우지.”
원작을 아니 확신할 수 있는 것뿐이다. 물론, 그걸 모르는 마로에게 아무리 말해봤자 소귀에 경 읽기겠지만.
우리는 침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움직였을까?
우리의 앞에 두 갈래 갈림길이 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