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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756화 (756/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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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인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프엘프의 마을이다. 산적을 만난 이후에는 별다른 이벤트 없이 일사천리로 마을에 도착했다.

하프엘프 마을은 산속에 숨겨져 있었다. 콘스트라 산에 숨겨진 엘프 마을 수준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우연으로라도 찾기 힘든 곳이었다. 주변에 던전에 3개나 있는 깊은 산에서도 꽤 깊숙한 곳에 숨겨진 마을이었다. 아이템의 인도가 아니었다면 절대 찾지 못했을 것이다.

“저희도 여기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마을 분위기는 엘프 마을하고 비슷하네요.”

미르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하프엘프 마을은 목가적인 분위기의 시골 마을이었다. 나무를 사용해서 지은 작은 집 10가구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며, 집집마다 제법 큰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텃밭에는 이런저런 다양한 채소가 열려 있다. 무척이나 한적하며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마을 입구로 다가가자 무언가가 우리를 맞이했다. 사람은 아니었다. 매다.

“끼이이이익!”

매가 하늘 높이 날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홀리 미사일을 쏴서 격추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는 않았다. 저 매는 마을의 재산일 것이다. 당장 마을에 볼일이 있는데, 안 좋은 인상을 남길 필요는 없다.

“홀홀. 인간 상인이 올 시간은 아닌데, 누구인가?”

매가 이방인의 존재를 알리자 하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초로의 엘프가 나왔다.

뾰족한 귀만 보면 영락없는 엘프였다. 실제로 미르네와 생김새가 거의 비슷했다. 엘프끼리는 하프와 순혈을 잘 구분하는 것 같지만, 인간인 내 눈에는 둘 다 똑같았다.

“엘프 마을에서 온 손님이로군. 따로 언질 받은 것이 없는데, 어언 일로 왔나?”

하프엘프의 물음에 미르나가 한 발 앞으로 나와 일행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저는 여왕님의 딸, 미르나라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해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으음. 귀한 손님이었군. 나는 이 마을의 족장인 카르틴이라고 하네. 환영하네. 일단 들어오게.”

카르틴은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 마을에서 가장 큰 집으로 들어갔다.

가장 크다곤 하지만 엄청나게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마을의 저택은 다 고만고만했다.

촌장의 집이지만 다른 집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여유롭고 한적한 시골집이었다. 마당에서 닭을 몇 마리 기른다는 점을 제외하면 크게 눈에 띄는 부분이 없었다.

“들게.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카르틴은 우리에게 차를 대접했다. 수상한 약을 탄 것 같지는 않아서 차를 받아 마셨다. 상쾌한 향이 코끝을 감돈다. 맛이 매우 좋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내 혀에도 잘 받았다.

“여왕님은 안녕하신가?”

“어머님은 언제나처럼 정정하십니다. 아마 500년은 더 사실걸요?”

“500년이라. 인간보다 까마득하게 많이 사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순혈의 수명은 무시무시하군. 우리 하프들은 300년도 버거운데 말이네.”

하프엘프는 순혈보다 수명이 짧다. 게다가 성년의 모습을 죽기 직전까지 유지하는 순혈 엘프와 달리 하프엘프는 나이에 비례해서 몸이 천천히 늙는다고 한다.

아마, 카르틴의 나이는 200대 후반 정도일 것이다. 곧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가 분명하다.

‘집 이곳저곳에서 짙은 약초향이 나는군. 이 차도 약초를 달인 것이겠지.’

주방의 끄트머리에는 커다란 솥단지가 보였다.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밥을 지어 먹기에는 지나치게 큰 단지였다. 다른 일에 활용하는 도구가 분명하다.

‘카르틴은 분명 연금술사다.’

어렵지 않은 추론이었다. 그의 집에는 연금술의 흔적이 많이 보였다.

막 채취한 약초에서 나는 진한 약향이라든지, 서재에 꽂혀 있는 고풍스러운 책이라든지, 벽을 장식한 족자에 새겨진 마법진 따위가 그것이다. 그가 오컬트 물건을 수집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아니라면 십중팔구 연금술사겠지.

그는 높은 확률로 칠색초를 다룰 줄 알 것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상당한 내공이 느껴졌다. 뭣도 모르는 나에게도 말이다.

“여왕님께 이 카르틴도 강녕하다고 말 전해주게. 내가 직접 마을로 가기에는 껄끄러운 점이 많아서 말이야.”

엘프의 선민사상은 자신들의 피를 절반이나 이어받은 하프엘프에게도 여지없이 작동한다. 카르틴이 껄끄럽다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리라.

“이해합니다. 어머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미르나와 카르틴은 본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다. 요즘은 어떤 꽃이 잘 재배된다는지, 이 산에서는 어떤 약초가 많이 난다든지 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였다.

옆에서 듣고 있으니 절로 졸음이 왔다. 엘프의 대화는 지루한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렇게 된 걸세. 뭐, 이런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슬슬 본론으로 가지.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서 왔다고?”

드디어 본론이었다. 대화가 시작하고 1시간이 넘었다. 참으로 지독한 영감이었다. 그걸 받아주는 다른 엘프들도 지독했다.

“네. 칠색초를 이용해서 치료제를 만들려 합니다.”

“칠색초라…. 확실히 칠색초는 희귀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아이지. 자칫 잘못 사용했다가는 끔찍한 독약이 완성되니 말이야.”

그런가?

그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칠색초를 막무가내로 사용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귀한 아이템을 허공에 날릴 뻔했다.

“징로님께서는 칠색초로 치료제를 제조하실 수 있습니까?”

“물론, 가능하네.”

카르틴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칠색초 따위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시원스러운 대답 뒤에 붙는 말이 있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지.”

“돈을 원하십니까?”

“이 서비스는 비매품이네. 돈으로 살 수는 없지.”

세상에 비매품은 없다. 더 비싼 가격만 있을 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격은 얼마든지 쳐 드리겠습니다!”

“흐음. 이쪽의 인간 손님이 필요한 물건인가 보군. 하지만, 방금 내 말은 협상의 고지에 오르기 위한 포석이 아닐세. 지금 우리에겐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이 필요하거든.”

“다른 것이요?’

“마을에서 500m 정도 위로 올라가면, ‘산군’이란 괴물이 살고 있네. 녀석을 퇴치해주게. 녀석이 거기에 터를 잡고 나서부터는 약초를 제대로 캘 수 없어서 말이네.”

돈이 아니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건가.

돈으로 깔끔하게 해결되면 좋았겠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정석적인 게임 퀘스트 스토리 같아서 오히려 더 신이 났다.

“산군인지 뭔지를 당장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저희만 믿으십시오!”

“허허. 좋은 패기로군. 하지만, 얕보지 말게. 순혈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하프들도 나름 자부할만한 실력은 갖추고 있네. 그러나, 그 산군은 도저히 퇴치할 수 없었네. 놈은 보통 몬스터가 아닐세.”

상투적인 경고였다. 그리고 나는 경고에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산군을 잡으러 가기 전에 잠깐 마을 구경을 했다. 카르틴이 직접 마을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러나 의외로 볼 것이 없었다. 10가구 정도밖에 없는 작은 마을이라 그렇다. 마을 구성원도 다 닳은 늙은이들이었다.

“젊은 애들은 모두 인간 도시로 떠나지. 이런 따분하고 귀찮은 곳에서 살려고 하는 아이는 이제 없다네.”

카르틴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현실의 시골과 비슷했다.

‘쳇! 하프엘프 마을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김칫국만 마셨잖아. 미녀가 한 명도 없다니!’

순혈 엘프 마을은 여기와 다르면 좋겠다.

휴식을 취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동했다.

산군은 마을에서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 터를 잡았다고 한다. 우리는 카르틴이 준 약도를 따라 산군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역시 하프들은 인간처럼 무능하군. 몬스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남에게 손을 빌리는 꼴이라니. 꼴사나워.”

라노아는 하프도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카르틴 앞에서는 자중했지만, 마을을 나서자마자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방심 금물.”

“맞아. 하프들도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마법에 재능이 있잖아. 그런 하프들이 처리하지 못했다면 보통 몬스터가 아닐 거야.”

미르나가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라노아는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꿨다.

“흥! 보나 마나 그 촌장처럼 비전투 계열만 줄줄 있어서 그렇겠지.”

라노아를 포함한 엘프 일행은 거친 산길을 제집 안방 드나드는 것처럼 쉽게 걸었다.

산군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쉬웠다. 마을에서 카르틴이 준 약도를 따라서 1km 정도 걷자 커다란 발톱의 흔적이 박힌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군이 자신의 영역을 표신한 것 같다.

“......발자국.”

룬룬이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굉장히 커다란 발자국이 이곳저곳에 찍혀 있다. 발자국만 봐도 몸 길이가 5m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더 될 수도 있고.

“여기가 녀석의 영역이로군! 그런데 생각보다 잠잠한 것 같소!”

리바이가 자신있게 의견을 냈다.

“이렇게 몸뚱아리가 큰 놈이라면 활동 반경도 꽤 넓겠지. 그 하프엘프 촌장이 약초 채집에 방해가 된다고 했을 정도니까, 놈의 영역은 반경 10km는 가볍게 넘어갈 거야.”

“어떻게 하지? 발자국을 추적할 수 있겠어?”

미르나가 룬룬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격수인 룬룬은 정찰대의 추격 전문가를 겸하는 모양이었다. 룬룬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 하지만, 불필요.”

“응? 추적이 불필요하다고?”

“......저쪽에서 올 것.”

미르나의 말이 맞다. 산군이라는 거만한 호칭을 가지고 있는 놈이라면 제 구역을 멋대로 침범한 인간과 엘프를 가만히 둘 리 없다.

카르틴은 분명 녀석 때문에 약초 채집이 힘들다고 말했다. 얌전히 제 구역에서 처박혀 사는 놈이라면 하프엘프인 카르틴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의뢰도 하지 않았겠지.

“좋아. 그러면 여기서 기다릴까?”

미르나가 나를 바라보며 허락을 구했다. 그러자 라노아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저 인간의 허락을 맡을 필요는 없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다. 살의 스택이 30개 정도 쌓였다.

“......식사 시간.”

그러고 보니 점심도 먹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좋아 밥이나 먹을까.”

“괜찮을까? 밥 먹는 중에 산군이 나타나면 어쩌려고?”

“우리가 누구야? 마을을 수호하고 여왕님을 보좌하는 ‘산 정찰대’잖아. 하찮은 마수가 나타나면 쓱싹 구제해버리면 되지.”

라노아는 자신감이 대단했다. 미르나는 못 미더운 표정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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