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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 종칠
땡중이 죽자 주변 공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승려 수십 명이 가부좌를 틀며 불길한 주문을 외우고 있다.
나는 그들을 정리하기 위해 라이트 세이버를 들었다. 그때, 둥근 재단 가장 바깥쪽에서 가부좌를 틀던 땡중들이 일제히 각혈한다.
“쿨럭! 우리의 부름을 받아들였다! 태양의 자비에 이 몸을 바치노라!”
“““태양의 자비에 이 몸을 바치노라!”””
각혈한 땡중들이 일제히 쓰러진다. 놈들은 죽었다. 재단에 이끌린 어떤 존재가 놈들의 생명을 거두어간 것이다. 정확히는 놈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친 것이지만.
“태양의 자비에 이 몸을 바치노라!”
재단 바깥에서부터 시작해서 땡중들이 각혈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꼭 둥글게 원형으로 설치한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의식을 치루던 놈들이 모두 쓰러졌다. 쉰 명에 달하는 술법가들이 일제히 제 목숨을 바쳤다. 재단의 중심에서 불길한 무언가가 스물스물 모습을 드러낸다.
‘좋지 않군.’
콰득!
갑자기 재단 바닥에서 거대한 이빨이 나타났다. 그 이빨은 재단 중앙에 쌓인 시체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수심 아래에서 매복하던 상어가 수면 위의 물고기를 집어삼키는 것 같다.
콰드득! 콰드득!
거대한 입은 단번에 시체를 집어삼켰고, 그것을 으득으득 씹었다. 시체를 삼킨 존재는 검고 둥글게 생긴 기묘한 생명체였다. 그것이 풍기는 폭력적인 기운은 이 공간의 모든 불길함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나는 그 존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원작에서도 언급된 놈이다.
탐(貪).
모든 것을 삼키는 탐욕의 괴물.
*-*-*
작은 강가에 드리워진 작은 조각배.
반짝이는 달빛을 반사하는 호수의 풍경은 그림에 나올 것같이 아름다웠다.
한 청년이 그런 조각배 위에서 낚싯대 하나를 걸쳐두고 누워있다. 손을 깍지 껴 머리를 받치고, 다리를 꼬아 누운 청년의 모습은 호수의 풍광만큼이나 매우 여유로웠다.
강태공의 후손처럼 보이기까지 한 청년은 낚싯대가 흔들리기 시작했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낚시가 아니라 편안한 휴식이었으니까.
“존명.”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호숫가에 은은히 울린다. 분명 조각배 위에는 청년 혼자 있었건만, 검은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흑의의 남성이 어느 순간 조각배 위에 올라타 있었다. 목소리로 봐서는 중년인 정도로 보였다.
그 중년인은 여유롭게 누운 청년의 앞에 부목했다. 그러나 청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중년인이 말을 이었다.
“백석문(白石門)의 문주, 도원강을 처리했습니다.”
중년인의 보고에 청년이 슬쩍 고개를 든다.
“백석문?”
청년처럼 앳된 목소리다. 모습과 목소리로만 봐서는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뀌어야 할 텐데, 두 사람의 상하관계는 보이는 것처럼 명확했다.
청년의 반문에 중년인이 말을 이었다.
“지난달에 교주님이 직접 멸문시킨 문파입니다. 서안에서 제법 이름난 문파입니다.”
“음…. 기억날 것 같기도 하고 말 것 같기도 하군.”
“절정 고수가 다섯이나 있는 문파였는 데, 기억에 지워버리시다니. 그들이 들었다면 죽어서도 억울해서 제대로 저승에 못 찾아갔을 겁니다.”
“무너뜨린 문파나 죽인 사람 얼굴은 금방 기억에서 지워버리니 말이야. 그런 것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낭비니까. 죽은 사람과 멸망한 문파는 변수가 아니니까.”
청년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가만히 두었다면 구파일방을 추격하는 강력한 문파로 성장했을 겁니다. 눈치 빠른 문주가 도망쳐서 일을 곤란하게 만들었는데, 다행히 놈을 암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정보가 흘러나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잘했군.”
청년이 낚싯대에 손을 가져갔다. 낚싯바늘이 드리워진 수면 위에는 달이 비치고 있었다. 청년은 마치 달을 낚는 것 같았다.
첨벙!
낚싯대를 들어 올리자 힘차게 꼬리를 흔드는 잉어가 줄에 딸려왔다. 잉어를 낚은 청년은 미련 없이 잉어를 호수에 풀어주었다. 호수 수면에 커다란 파문이 인다. 파문은 호수가 거울처럼 비추던 달을 지워버렸다. 중년인이 말을 이었다.
“빙궁에서의 계획 역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하지?”
“일추원이 부추겨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했습니다. 빙궁은 이번 달을 버티지 못할 겁니다.”
“확실한가?”
“성공 확률은 7할 정도입니다. 설령, 멸문에 실패하더라도 향후 30년 이상 봉문해야 할 겁니다. 실패를 대비해서 밀정을 심어두었습니다.”
“훌륭하군.”
“교주님. 솔직히, 빙궁 따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됩니다. 놈들은 세외의 오랑캐 세력 아닙니까? 적을 늘리는 것보다 중원 통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놈들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러니, 멸문시킬 뿐이야.”
“......빙궁의 저희 영월신교를 파악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놈들의 정보력이 그정도라니…. 빙궁에 대한 평가를 수정해야겠군요.”
중년인이 청년에게 두꺼운 두루마리 하나를 건넸다.
“요주인물들의 신상 정보를 모두 적어놨습니다. 정파, 사파, 마교를 아울러 차세대 중원의 지각을 변동시킬 이들입니다. 본교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필히 처리해야 할 대상입니다.”
청년은 천천히 두루마리를 살폈다. 두루마리에 적힌 신상정보는 매우 정확하고 자세했다. 영월신교의 정보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영월신교는 정보력만으로도 개방이나 하오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개방과 하오문 내부에 심어 놓은 교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마로. 마교의 후계 서열 5위라. 지난번에 마교 쪽에서 주의해야 할 인물은 삼장로라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삼장로는 영악한 능구렁이입니다. 그의 주변에 세작을 심으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마로는 그 삼장로가 경계하는 후계자입니다. 서열은 5위지만, 진공 노사는 삼장로가 점지한 후계자가 아니라면 마로가 마교의 뒤를 이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진 모사(謀士)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다는 것이겠지.”
“마교는 본교가 넘어야 할 가장 큰 난관입니다. 그들은 정파나 사파와 달리 하나의 가치 아래서 단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파 쪽은…. 종칠? 들어본 적 없는 못한 이름이로군.”
“네. 이번 용호쟁패의 우승자입니다. 뒷조사를 했지만, 나오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신기한 놈입니다. 은거고수의 수제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일전승문의 수제자가 용호쟁패에서 우승하다니.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군.”
“그렇습니다. 본교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일한 후기지수입니다. 마로만큼은 아니지만 불편한 변수지요.”
“변수는 빠르게 정리하는 게 좋지만…. 용호쟁패 우승으로 관심을 잔뜩 산 상태인데, 지금 죽인다면 꼬리가 밟힐 가능성이 크군.”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속도 조절하고 있습니다. 변수이긴 하나, 큰 변수는 아닙니다. 언제든 처리할 수 있는 변수니까요.”
“그렇군….”
청년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반응에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좀 이상하군.”
영월신교의 교주 사검영은 개운하지 못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얼굴, 어디선가 한 번 본 것 같단 말이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로 말씀입니까?”
“아니, 이 종칠이란 후기지수 말이야.”
분명 종칠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 없다. 그러나 두루마리에 그려진 그 얼굴은 어디선가 한 번 본 것 같았다.
기억을 뒤적거리던 교주는 이내 생각을 멈추었다. 머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니까. 어차피 운명이 교차하면 그와 만나게 되리라.
*-*-*
탐은 중국 설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괴물이다. 흔히 묘사되는 모습으로는 용의 머리와 개의 몸, 소의 발굽, 원숭이의 꼬리, 뱀의 비늘을 가졌다고 한다. 시대를 한참 앞서간 키메라인 것이다.
탐에 대해 전해지는 설화는 여러 종류다. 팔선(八仙)의 법보를 훔치고도 만족하지 못하여 태양을 삼키려다 몸이 바싹하게 구워졌다거나, 땅 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동이 터오르는 태양을 삼키려다 동해에 수장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런 설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그래도 먹을 것이 없자 자기 자신을 먹어 치웠다는 이야기다. 이런 자기파멸 설화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데, 괴물은 아니지만 인간 버전으로는 테살리아의 왕 에리식톤이 있다.
풍작의 여신 데메테르가 아끼는 참나무를 함부로 베어서 기아의 신 리모스의 저주를 받은 에리식톤은 끓어오르는 식탐을 주체하지 못하고 딸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음식을 사 먹고도 고픈 배를 채우지 못해 스스로를 잡아먹는다.
뭐, 에리식톤 이야기는 탐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지나친 욕망의 결과가 파멸을 부른다는 것을 말하는 점에서는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일추원(日追園)의 술법가들이 소환한 탐을 바라보았다. 중국 설화에서 묘사되는 키메라 같은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멀리서 보면 검은 고무로 만든 둥근 공처럼 보이기도 할 것 같다. 눈조차 없어서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알 수도 없다.
“키릿!”
탐이 아가리를 쩍 벌린다. 탐의 앞뒤를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은 놈의 입을 보는 것이었다. 녀석은 천장에 닿을 정도로 크게 입을 벌렸다. 입천장에서 떨어지는 끈적한 타액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의외로 놈의 입 안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의 것과 비슷한 선홍색 혓바닥이 촉수처럼 꿈틀거리고, 커다란 목젖이 달랑거린다.
사람과 다른 점을 꼽자면 가시처럼 삐죽삐죽하게 돋은 이빨이다. 저건 송곳니가 아닌 그냥 송곳이라고 불러야 할 이빨이 잔뜩 돋아나 있다.
사람의 이가 사랑니를 제외하고 28개였던가?
탐(貪)의 이빨은 280개는 가볍게 넘을 것 같다.
“배고프냐?”
투웅!
질문을 던지자마자 탐이 몸을 날렸다. 육중한 몸이 지면을 즈려밟으며 탄력적으로 튀어 오른다. 척 봐도 수백 킬로그램은 족히 나갈 것 같은 몸인데, 신속하게 튀어 오르는 모습은 바닥을 향해 힘껏 내리친 농구공 같았다.
‘타임 엑셀러레이션.’
가속 능력을 사용했다. 저런 무게의 물체와 저런 속도로 충돌한다면 몸 성할 것을 보장할 수 없다.
쿵!
사원의 한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탐(貪)은 부서진 사원의 일부를 으적으적 뜯어먹었다. 놈의 커다란 입 안에서 벽돌이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빠그득 빠그득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분필로 칠판 긁는 소리를 수십 배 확대한 것 같았다.
“몸에 좋지도 않은 걸 먹고 있군. 다이어트하게 도와주지.”
라이트 세이버
빛의 검을 만들어 들었다. 맛있게 사원 먹방을 하던 놈이 내 쪽으로 아가리를 돌린다. 나는 녀석이 어디에 관심을 보내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놈의 관심은 내 라이트 세이버에 있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한 번 먹어봐라!’
검에 검기를 씌웠다. 라이트 세이버가 환하게 빛나며 검기를 생성했다.
[‘마나 소드’의 스킬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마나 소드 4Lv] (C급)
↳마나를 소모하여 검에 마나의 칼날을 두른다. 마나 소모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칼날의 강도가 올라가지만, 효율은 점차 떨어진다.
←스킬→
탐(貪)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열 개쯤 되는 초승달 형태의 검기가 탐(貪)을 향해 쇄도한다. 탐은 벌린 아가리를 다물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크게 쩍 벌렸다.
검기가 탐(貪)의 입 안으로 사라진다. 원래라면 녀석의 몸을 뚫고 녀석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야 한다. 생물의 내부는 외부보다 더 약하니까.
그러나 탐(貪)의 입 안으로 들어간 검기는 그대로 사라졌다. 탐(貪)이 검기를 먹은 것이다. 하긴, 검기 몇 번 날렸다고 뒤졌으면 일추원(日追園) 놈들이 수십 명의 생명을 바쳐서 소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빙궁과 세력 싸움을 할 정도다.
‘쉽게 갈 수는 없다는 건가?’
탐(貪)이 커다란 혀로 자신의 몸을 훑었다. 그 모습이 꼭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처럼 느껴졌다.
탐(貪)의 아가리가 다시 나를 향한다. 나를 먹이 공급원쯤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