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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 종칠
우리의 배가 앞으로 나아간다. 꽁꽁 언 얼음을 올라탄 우리의 배는 얼음을 짓눌러 깨며 얼어붙은 바다를 헤쳐 나갔다. 우드득! 하고 얼음 깨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배가 얼음을 올라탈 때마다 갑판도 위아래로 요동쳤다. 그 흔들림은 생각보다 컸다. 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멀미로 고생할 것 같다.
물론,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최소 절정 이상의 고수다. 뱃멀미로 고생하기에 그들의 육신은 강인하고 완벽했다. 술법가인 진사월 역시 흑암도사에게 배운 점혈술을 응용해서 멀미를 막았다. 그녀는 갑판 위로 쌩쌩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얼어붙은 바다의 광경을 구경했다. 나는 그런 진사월에게 한마디 했다.
“들어가 있지. 파도가 높아. 조심하지 않으면 물 맞은 생쥐 꼴이 될 거야.”
“종 소협! 저기 보세요! 철새들이에요! 추위를 피해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걸까요?”
“그런 것 같네. 갈매기처럼 보이는데. 분명 먹다 놓은 새우꽝이 인벤토리에….”
인벤토리에서 새우꽝을 꺼냈다. 그러나 저 위에서 편대 비행하며 날아가는 갈매기들은 본 체도 안 한다. 광고 같은 거 보면 잘 오던데.
진사월은 재난 영화의 주인공처럼 뱃머리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낭만적인 포즈를 취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그림으로만 본 바다를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얼어붙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라니! 정말, 낭만적이네요.”
현실에서도 쇄빙선을 타 본 적은 없다. 배에 관해 무지한 나라도 쇄빙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극검천선] 세계에서 쇄빙선을 처음 타보게 될 줄이야. 인생 모르는 법이다.
“크크. 소저. 낭만도 좋지만, 소저는 걱정되지 않소?”
갑자기 분위기를 깨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철산명이었다. 녀석은 자연스럽게 진사월 옆에 섰다.
좆같은 새끼가 누구 여자를 넘보는 거냐.
나는 진사월과 철산명의 가운데에 서서 두 사람의 사이를 갈랐다. 노골적인 제스쳐다.
“이런. 임자 있는 몸이었군.”
철산명이 장난스레 손을 들어 올리며 뒤로 물러난다. 의외로 순순히 물러난다. 큰 싸움을 앞두고 분란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뜻일까? 말하는 것을 보면 열혈 100퍼센트인 것 같은데, 의외로 이성적이다.
“우리가 상대할 적은 일추원(日追園)이죠? 사이한 술법을 사용하는 집단이라던데, 철 소협은 그들에 관해 잘 아시나요?”
“나도 주워들은 수준이오. 하지만, 정빙시에 살면 그들에 관해 듣는 것이 워낙 많지.”
철산명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들리는 소문만 종합해보아도 도저히 정상인으로 보이지 않는 미친 집단이지. 인신 공양은 기본이고, 술법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부모자식도 가리지 않고 실험 재료로 사용한다고 하오. 그들의 본거지에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생체 실험이 벌어진다지.”
“잔혹한 생체 실험이요?”
“소문이긴 하지만, 사람의 팔과 다리를 바꿔 붙인다든지, 이마에 세 번째 눈을 이식한다든지, 목을 자르고 얼마 만에 죽는지 관찰한다든지…. 여하튼, 아녀자가 듣기에 좋은 소문은 아니오.”
도무지 목적을 알 수 없는 실험이다. 키메라라도 만들려는 것일까? 아니면, 강시를 연성 중인 것일지도 모른다. 일추원의 사도술은 나중에 중원에도 널리 퍼진다. 대부분이 극도로 불결한 술법이다.
“헤에~ 저, 평범한 아녀자가 아닌데요.”
“알고 있소. 부궁주가 인정할 정도니까, 실력은 의심할 바 없지.”
철산명은 갑판의 앞쪽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하는 단유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흐흐.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두 명이나 있으니, 싸울 맛이 나겠군. 제도(蹄島)에 도착하면 이 철산명의 활약을 잘 보시오.”
그가 과시하듯 말한다.
“흐응~ 제가 눈여겨보는 남자는 종 소협뿐인걸요.”
진사월은 배시시 웃으며 내 팔에 팔짱을 꼈다. 그러자 철산명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한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까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은 건가?
나는 대놓고 그런 놈을 비웃었다.
“철 소협 말대로 사월이에겐 임자가 있습니다. 다른 여자를 찾아보셔야겠군요.”
“크흠! 다른 여자라…. 아무리 나라도 단 대협은 좀….”
일행 중 여자는 단유하와 진사월뿐이다. 부궁주인 설소예도 여자이긴 하지만, 그는 설랑이라는 남자로 남장 중이다. 그녀를 여자라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 진사월, 유하 님 말고 없으리라.
철산명이 단유하에게 집적거린다면 당장 따귀를 맞을 것이다. 아니, 그럼 다행이지.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유하 님도 손속에 자비를 두겠지만, 나중에라도 죽을지 누가 아나. 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그만큼 크다.
잘난척하며 등장했던 철산명은 영역 싸움에서 패배한 개처럼 물러났다. 저 새끼, 제도(蹄島)에서 죽여야겠다. 물러날 때의 표정을 보니, 진사월을 포기한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후환을 남길 필요는 없다. 내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남자 새끼는 몇 명이라도 죽일 수 있다.
“여행은 평안하신지요?”
이번에 말을 건 사람은 설소예였다. 설랑이란 남자로 변장 중이었기에 그의 모습은 중성적인 매력의 미남이었다.
“부궁주님 덕분에 구름에 누운 것처럼 편합니다.”
“항해가 많이 거친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뭐, 저희가 뱃멀미로 고생할 항렬은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혹여라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저에게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설소예의 대답에 진사월이 손을 번쩍 들었다.
“궁금한 거 있어요.”
“진 소저.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저희가 가는 제도(蹄島)라는 곳이 정확히 어떤 섬이죠?”
우리는 우리가 상륙할 섬에 관해서도 자세히 듣지 못했다. 설소예는 그러한 진사월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도착하기 직전에 설명해드리려 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모두 모아 설명해야겠군요.”
설소예는 뱃놈을 시켜 배에 탄 전투원을 모두 모았다. 전투원이라고 해도 나와 단유하, 진사월, 철산명, 양가, 이렇게 총 다섯 명이었다. 설소예 본인까지 포함해서 일추원을 공격하는 인원은 꼴랑 6명인 것이다.
인원을 이렇게 편성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충 예상되는 이유는 두 개였다. 하나는 일추원의 눈을 피해 움직이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얼음을 뚫고 이동할 수 있는 배가 이것 하나뿐이라 인원에 제한이 있어서.
아마 후자보다 전자의 이유가 클 것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이 배에 백 명은 더 태울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설소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격대가 모두 모이자 설소예는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제도(蹄島)까지 반 시진 정도 남았습니다. 여기서 제도(蹄島)가 어떤 섬인지 자세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도(蹄島)는 말 그대로 말발굽처럼 생긴 섬입니다. 정확히는 말발굽을 거꾸로 뒤집은 형상을 한 섬이죠.”
나는 머릿속으로 제도(蹄島)의 형태를 그려보았다. 뒤집힌 U자 모양의 섬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니, 이러면 그냥 n자인가.
“제도의 서쪽은 육지를 바라보는 부분입니다. 이곳은 볼록 튀어나온 지형이죠. 이곳은 깎아지르는 절벽과 거센 물살, 얕은 수심, 그리고 수많은 암초로 배가 접근하기 힘든 곳입니다. 날이 좋아도 상선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죠.”
“흐음. 그렇다면 우리는 섬을 돌아서 가는 것이냐?”
단유하가 질문을 던졌다. 설소예는 단유하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늦습니다. 저희는 바로 섬의 서부에 상륙할 겁니다.”
힘든 곳에 상륙한다. 적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다. 물론, 그 작전이 잘 수행되었을 경우에.
“방법은 있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설소예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를 위해 준비한 술법이 있는 것 같다. 이 쇄빙선처럼 빙궁이 오랫동안 준비한 비밀무기겠지.
“섬의 서쪽 절벽을 지나서 중심부로 이동하면 일추원(日追園)의 본거지가 나옵니다. 자기들이 스스로 춘화정(春花庭)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듣자 하니, 봄꽃으로 가득한 정원이라더군요.”
“크큭! 꽃으로 가득한 정원이라. 인두겁을 쓴 악마들의 소굴로는 어울리지 않는구먼!”
철산명이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일추원 놈들은 전원이 고절한 술법가라지? 그러나, 정면 대결에서 술법가가 무인을 상대로 이길 확률이 몇 할이나 되는가?”
양가의 질문이었다. 설소예는 침착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실력이 비슷하다 치면 1할입니다. 그러나, 제도는 놈들의 섬입니다. 아무런 대비 없이 대문을 열어 놓고 있을 확률은 낮지요. 술법가가 마음먹고 제집에서 농성을 벌인다면, 섣불리 접근할 수 없습니다.”
설소예의 설명이 없어도 수많은 기관진식과 방어용 술법이 그들의 본거지를 방어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그에 대한 대비책을 질문하기 전에, 설소예가 선수 쳐서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원을 둘로 나누겠습니다.”
“한쪽이 미끼, 다른 한쪽이 정면 공격이란 것이냐?”
“정확합니다. 단 대협의 말씀처럼 유인조와 공격조로 조를 나누겠습니다.”
“크하핫! 재미있군! 이 철산명은 당연히 공격조로 간다! 나는 미끼가 되는 데는 소질이 없거든!”
“흐음. 본녀는 어디든 상관없지만, 이 아이와 같이 가겠다.”
단유하가 내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러한 단유하의 말에 철산명의 표정은 또다시 똥 씹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그런 놈을 향해 두 번째 비웃음을 날렸다.
“저, 저도 종 소협이랑 같이 가고 싶어요.”
“조는 이미 제가 정했습니다.”
설소예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단 대협, 그리고 종 소협이 공격조입니다. 나머지는 유인조입니다.”
설소예의 대답에 철산명이 분개하며 외쳤다.
“이 철산명 보고 미끼가 되라고!? 부궁주! 이거 실망이로군! 설마, 부궁주는 내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오?”
철산명의 외침에 단유하가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야. 그렇다면, 네 실력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단유하의 시선을 받은 철산명은 몸을 흠칫 굳혔다. 자신만만하게 제 목소리를 외치던 그도 사파의 거두 앞에서는 작은 생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나찰마녀라 불리는 단유하의 카리스마였다.
“그, 그건 아닙니다만….”
“네가 얌전히 작전을 따른다면, 일이 끝나고 본녀가 상을 주겠다.”
“사, 상 말씀입니까!? 좋습니다! 이 철산명만 믿고 맡겨주십시오! 섬의 땡중들을 모두 제 쪽으로 끌어들이겠습니다!”
상이란 말에 녀석은 뛸 듯이 기뻐하며 자기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인다.
-후후. 질투하는 건 아니겠지? 어차피 저 아이는 네가 죽일 생각 아니었느냐?
단유하가 내게 전음을 보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생각을 어떻게 읽었지?
-네 얼굴을 보면 다 안다.
“......”
단유하는 생각보다 나를 더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