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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법이 있으니 두렵지 않아-966화 (962/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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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헌터 : 금태양

백스텝을 밟으며 환위(換位)를 사용했다.

6레벨에 이른 환위(換位)는 잔상을 남기며 상대방의 공격을 완전히 벗겨냈다. 붉은색 혈기는 애꿎은 허공만 긁었고, 육중한 몸을 내세워 돌진하던 녀석도 반대편 골목벽에 쿵 하고 부딪혔다.

별로 다친 것 같진 않다. 뱀파이어의 육체니까, 이 정도로 크게 손상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몸놀림이 아니다! 도핑했다!”

“난 약쟁이가 아니야.”

녀석들이 내 몸놀림을 보고 착각했다. 편견에 기반한 상식적인 착각이다.

인간이 뱀파이어와 싸우기 위해선 도핑이 필수다. 인간의 육신은 뱀파이어의 것과 비교하기엔 너무나 연약하니까. 실제로 강화 약물은 뱀파이어 헌터의 필수품이다.

방금 내가 보여준 속도는 명백히 인간을 초월했다. 녀석들의 착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녀석을 포위해! 일대일은 힘들다!”

“다굴은 쉬운 줄 아나?”

행동대장에게 라이플을 겨눴다. 어떤 싸움이든 대가리를 먼저 죽이면 뒤가 수월해진다.

라이플에 장전된 것은 은탄환이다. 뱀파이어에게 쥐약인 무기다.

은탄환은 진조조차 꺼린다. 체내에 은이 간섭하면, 힘의 원천인 피가 정화된다.

졸개 뱀파이어는 이것만으로도 끝이다. 행동대장급은 총알 한두 발로 끝나지는 않지만, 치명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보통 두 발 정도만 제대로 박아도 전투불능이 된다.

“인간은 언제나 총알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지. 그건 오산이다.”

육중한 체구의 뱀파이어가 기합을 내지르며 내게 몸통 박치기를 해왔다. 범상치 않은 몸놀림이다. 생긴 건 무척 둔중하지만, 녀석은 굉장히 빨랐다. 저런 류의 상대는 은근히 까다롭다.

“오산이라니. 아무리 봐도 네가 총알만큼 빠르진 않은 것 같은데?”

“방아쇠를 당기는 네 손가락보다 빠를 거다!”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스피드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녀석이 제아무리 빨라봤자, 민첩을 500 이상 찍은 나보다 빠를 수는 없다.

게다가 내 사격술은 7레벨이다. 500의 민첩성이 주는 초월적인 동체시력과 7레벨의 사격술이 만나면 저런 이동 표정은 껌이었다.

탕! 탕! 탕!

세 개의 총성이 허공을 호령한다. 총구를 떠난 세 발의 은탄환이 육중한 체구의 뱀파이어에게 박혔다.

쉬리릿!

내 뒤에서 피웅덩이가 생겼다. 웅덩이에서 붉은 손톱의 뱀파이어가 튀어나온다. 순간적인 거리 도약이다. 녀석의 손톱이 내 등을 찌르듯 공격했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의외의 일격을 허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예상했다.

환위(換位).

소용없다. 나는 등 뒤에도 눈이 달렸다. 초고수의 감각은 사각을 무시한다.

뱀파이어의 조기(爪氣)가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긁었다. 스티로폼 부서지듯 콘크리트 벽이 무너진다.

놈이 행동대장급인 이유가 저거였다. 일단 닿으면 연약한 인간은 확실히 죽일 수 있다. 설령 도핑했다 하더라도, 저 손톱이 심장에 닿으면 생사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피웅덩이로 거리를 좁히고, 손톱으로 상대를 긁는다. 이 두 가지면 어지간한 뱀파이어 헌터는 필히 죽일 것이다. 문제는 내가 어지간한 뱀파이어 헌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자 새끼가 손톱을 그렇게 기르면 애미한테 욕 처먹지 않냐? 너는 애미가 없는 거냐?”

“미친놈. 살다 살다 인간한테 패드립 먹은 건 처음이다.”

“온실 속에서 자랐군. 그대로 온실 속에 있었다면, 더 길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총구가 놈의 머리에 겨눠졌다. 호흡을 고를 필요도 없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과 함께 은탄환이 총구를 떠났다. 고개를 돌려 피해도 소용없다. 그것까지 예상해서 쐈으니까.

총알은 시원하게 놈의 미간을 뚫었다. 약점 히트다.

은탄환이 아니었다면 실낱 같은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은탄환이 뇌에 간섭됬기에 놈은 가망이 없었다. 설령 진조라 할지라도, 은탄환에 대가리가 뚫리면 죽는다.

“미친! 대체 무슨 사격술이냐!?”

마지막으로 남은 올백 머리 행동대장이 경악했다. 라이플러를 상대로 거리를 좁혔기에 승리를 거의 확신했을 것이다. 소총수의 단점이 근접 전투에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니까.

내가 자기들을 유인하는 줄 알면서도 뒤를 밝은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니들 똘마니를 내 회사에 밀어 넣고 배운 것이 없는 것 같군. 나한테 이렇게 거리를 주다니 말이야.”

“젠장! 우리는 모두 계산했다. 네 녀석이 그 계산을 뛰어넘은 거란 말이다!”

“남자 새끼한텐 그런 칭찬 들어도 기쁘지 않아. 아첨으로 살아 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아첨이라고!? 난 고귀한 진조의 혈통이다! 인간에게 목숨을 구걸할 바엔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

“냄새나는 똥개가 고귀한 혈통을 운운하다니. 진조의 혈통? 웃기지 마라. 네가 진조의 혈통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질 리 없잖냐.”

“내 피를 모욕하다니!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네놈 피는 봐야겠다!”

뱀파이어에게 가장 큰 모욕은 그들의 피를 무시한 것, 즉 혈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잡종’들은 뱀파이어 사회에 잘 융화되지 못한다.

녀석의 등 뒤에서 붉은 안개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피를 사용한 혈마법 중 하나일 것이다. 평범한 안개일 리는 없다.

도트딜을 가진 독 안개나, 자신의 능력을 펌핑하는 버프의 일종,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다.

녀석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안개가 더 퍼지기 전에 죽인다. 그러나 총알이 발사되는 것보다 빠르게 놈의 몸이 안개에 스며들었다.

뱀파이어는 변신술에 능하다. 뱀파이어의 공통 능력 중 하나가 박쥐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번에 놈은 안개로 변신했다. 이러면 은탄환도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변신은 필수적으로 제약을 동반한다. 천년만년 안개로 있을 수 없겠지.’

에어 포켓.

공기의 막을 두르는 스킬을 발동했다. 나를 덮치려던 붉은 안개가 동그란 공기의 층에 막혀 접근하지 못했다.

“인간 주제에 마법이라고!? 설마, 마녀의 혈통이냐?”

놈이 놀란다.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은 극소수다. 대부분이 각성제를 통한 신체 강화와 무기, 성물로 싸운다.

“알 거 없다. 그나저나 이 안개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 태워버리면 되려나.”

파이어 컨트롤.

화르릇–!

용광로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불꽃이 맹렬히 타오른다. 불꽃은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붉은 안개는 불꽃에 뒤덮였다.

‘뱀파이어의 약점 중 하나가 불이지.’

이렇게 보면 뱀파이어는 약점이 참 많은 존재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뛰어난 신체 능력과 혈마법이 있긴 하지만.

붉은 안개가 한 점에 모인다. 녀석의 다시 인간폼으로 돌아왔다.

“젠장! 나 혼자는 무리다! 이 사실을 클랜에 알려야..”

“어딜 토낄려고.”

탕! 탕! 탕! 탕!

은탄환 네 발을 녀석의 팔다리에 쐈다. 놈의 몸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일부러 머리를 노리지는 않았다.

“크흐흑!”

“존나 쉽군. 아까, 내 제삿날 어쩌구 씨부리지 않았나?”

벌레처럼 바닥을 기는 녀석의 앞에 갔다. 나는 놈의 미간에 총구를 들이댔다.

“크흣…! 인간 따위에게 지다니. 아니, 마녀의 혈통이라면 어쩔 수 없나…. 내 패배다.”

놈이 패배를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정하지 않으면 정신 승리일 뿐이다.

바로 녀석을 죽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로비츠 클랜을 자극하는 좋은 방법 말이다.

“흐음. 나는 자비롭다. 비열한 뱀파이어와는 다르게 말이지.”

녀석은 운이 좋았다. 나는 나를 죽이려는 적을 대부분 죽였다. 그러나 이놈은 그중에 살아남는 소수에 속할 것이다. 물론, 몸이 온전치는 못하겠지만.

“흐흐흐! 많이 다친 것 같으니 치료해주지. 일단, 은탄환 박힌 그 팔다리부터 절제해야 할 것 같군.”

내가 음흉하게 웃자 녀석의 표정이 공포에 질렸다.

“이이잇! 죽여라! 나를 죽여라!”

누구 좋으라고.

*-*-*

진조 로비츠.

그는 로비츠 클랜을 이끄는 밤의 주인 중 하나였다.

종말시의 밤은 일곱 개의 뱀파이어 세력과 네 개의 인간 세력이 나눠갖고 있다.

종말시가 아무리 넓은 도시라 해도 세력이 지나치게 많다. 그렇기에 각각의 세력은 호시탐탐 다른 세력을 집어삼킬 야욕을 부렸다.

그러나, 세력간의 힘 차이가 크지 않고, 모두가 팽팽한 눈치 보기를 하고 있기에 자잘한 교전은 산발적으로 일어날지언정, 큰 충돌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지역적인 교전이 반복되는 것이 종말시의 역사였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놈이 나타났다.

-보스! 우리 정찰 보낸 우리 애들이 싸그리몽땅 뒤졌습니다!

금태양.

그는 밤의 세계에 갑자기 나타났다.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종말시의 수많은 뱀파이어 헌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돈을 위해 목숨 걸고 밤을 활보하는 얼간이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그들의 7할은 자신의 돈줄이라 생각했던 뱀파이어의 먹이가 된다.

그러나 개중 3할은 뱀파이어들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진짜 ‘사냥꾼’이 된다. 로비츠는 처음 금태양이란 녀석에 관한 정보를 들었을 때, 그가 7할에 속하는 먹잇감이라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계에서 오래 생존하는 녀석들은 규칙을 잘 지킨다. 그것이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의 규칙이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규칙이든.

녀석은 무법자였다. 뱀파이어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무법자였다. 녀석의 악명은 뒷골목을 가득 메울 정도로 무섭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놈은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보란듯이 뱀파이어를 학살하고 다녔다.

놈의 총구는 결코 빗나가는 일이 없었으며, 녀석이 한 번 거리에 나오면 어김없이 뱀파이어의 곡소리가 들렸다.

금빛 은탄.

그것이 녀석에게 붙은 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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