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章. 구미호를 탐하는 선비
“진아, 잘 놀고 있었어?”
허름한 갈색 치마에 무명으로 지은 저고리, 앞치마를 걸친 여인이 머리에 광주리를 인 채 싸리문을 열고 들어왔다. 작은 평상에 앉아 있던 아이가 여인을 보고 방긋 웃었다.
“또 하늘 구경을 했니?”
“네. 저기 하늘에 새들이 노니는 것을 봤습니다.”
아이의 눈이 까맣게 반짝였다. 코는 어찌나 높은지, 입매가 또렷하고 선이 고와서 손바느질로 만든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어도 하나도 추레하지 않아 보였다. 연희는 얼른 광주리를 내리면서 흰떡을 꺼냈다.
“오늘 일을 거들어 주고 이것을 얻었지 뭐니. 얼른 먹어 보렴.”
“어머니는 드셨습니까.”
“그럼. 나는 거기에서 배가 터질 만큼 먹었단다.”
곧 쓰러질 것처럼 마른 어미가 티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아이는 떡을 나누더니 더 큰 쪽을 내밀었다.
“같이 드셔요.”
연희는 이제 갓 다섯 살이 된 아이의 의젓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또 우십니까.”
울기도 전에 아이가 입을 열었고, 연희는 얼른 소매로 눈가를 쓱쓱 문질렀다.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래.”
하는 양만 봐서는 누가 어미고 누가 아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떡을 나눠 먹는데, 아이가 입을 뗐다.
“오전에 까치가 울었습니다.”
“그랬어?”
연희는 아들의 어깨를 안으면서 싱긋 웃었다. 어찌나 똑똑한지 가르친 것 없이도 아는 게 많아 오히려 그녀가 아이에게 배우는 게 더 많았다.
“가져다주신 책에서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 했습니다.”
“그 책 말이니?”
일전에 양반댁 잔치에 일을 거들러 갔다가 버리는 서책을 가져왔었는데 아이가 그것을 읽었다는 건가.
“하지만 그건 어려울 텐데…….”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코를 흘리면서 새총 놀이나 할 나이가 아니던가. 남들과 한참 다른 진이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났다.
‘전부 내 잘못이지.’
그 불순한 피 탓에 아이는 보통의 인간처럼 살기 글러 먹은 것일 터.
연희는 아이를 낳고 죽은 어미가 어떤 심정으로 그녀를 키웠을까 자주 생각했었다. 인간인 아비와 구미호의 소생이 연희였다. 그런 연희는 또 인간과 정을 통해서 이리 아들을 낳은 것이다.
‘어미가 이 모양이라서 미안하구나.’
혹 아들에게 해가 갈까 봐 그녀의 능력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끽해야 작은 들짐승이나 물리치는 수준이긴 해도 진이에게 그냥 평범한 어미 노릇을 하고 싶었다.
까악까악.
“저런. 까마귀가 아니니.”
별안간 시꺼먼 까마귀 떼가 하늘을 뒤덮더니 맑았던 하늘이 곧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날씨가 심상치 않구나.”
연희는 아이를 보듬으면서 얼른 광주리를 정리했다.
순간 세찬 바람이 불어 집의 울타리가 흔들거리더니 싸리문이 떨어져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람을 타고 불어닥친 온갖 부유물이 주변을 덮어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열린 문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들짐승이 그녀의 집에 들어왔다.
“맙소사! 이리가…….”
짙은 털을 한 이리에서 그치지 않았다. 오백 근은 족히 넘어 보이는 멧돼지에 사나워 보이는 짐승이 사방에서 그녀와 아이를 에워쌌다.
“이 밖으로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짐승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포를 걸치고 길고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사내였다. 잊고 싶었지만, 한순간도 잊지 못한 그녀의 정인.
“내 것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한 손에 부채를 가만 쥐고 흔들던 사내가 비릿하게 웃자 연희는 얼른 아들의 몸을 감쌌다.
“……사람을 잘못 보셨나이다.”
두려움을 간신히 떨친 그녀가 입을 열자, 그가 성큼 다가와서 연희의 초라한 모습을 훑었다. 낡은 앞치마며 닳아 버린 손톱, 흙이 묻은 짚신까지 모조리.
“나를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더냐.”
그의 손이 연희의 숨통을 틀어쥐었다. 연희가 간신히 입을 달싹였다.
“선비님.”
“아직도 선비님이더냐. 내 이름을 일러 주지 않았니.”
그때 사내의 세조대를 움켜쥔 채 덤벼드는 작은 머리통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를 해치면 가만있지 않겠다!”
“진아, 이리 오렴.”
사내의 손에서 벗어난 연희가 얼른 아들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사내가 손을 뻗어서 아이의 앞섶을 쥔 채로 그대로 위로 올렸다.
“이건 뭐지.”
사내의 입에서 삐딱한 음성이 흘렀다.
“나를 내려라!”
짧은 팔다리를 버둥대면서도 아이는 이현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붉은 기운이 서린 현의 눈이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는데, 연희가 달려들었다.
“내 아들을 이리 주세요.”
“아들……?”
생경한 단어라는 듯 현의 눈빛이 무척 흔들렸다. 현은 연희의 품에서 강제로 아이를 뺏어서 뒤로 던졌다.
그걸 지켜본 연희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달려온 이리가 아이의 뒷덜미를 낚아챈 덕에 진이는 다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연희는 몸을 떨면서 손을 뻗었다.
“돌려줘. 내 아이를…….”
“데리고 잘 감시하고 있거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이리에게 아들을 뺏긴 연희는 두려움도 잊고 현에게 매달렸다.
“제발 진이를 돌려주세요.”
“어머니, 저는 괜찮아요.”
이리의 아가리에 붙잡혀 있으면서도 아이는 평소처럼 태연하기만 했다. 그녀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서 가슴이 찢어졌다.
“괜찮기는, 지금 이리 밥이 되게 생겼는데…….”
연희가 아들을 데려오려고 팔을 뻗는데, 이리가 집 밖으로 어슬렁어슬렁 움직였다.
“안 된다. 내 아들은 두고 가!”
너무 놀라서 몸을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허리를 억센 손이 휘감았다.
“지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비겁한……!”
“이리의 송곳니는 무척 날카롭다고 하던데.”
연희는 한때 그녀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사내의 치졸한 짓거리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들의 안위였다.
“원하는 것을 말해 보세요.”
“네가 더 잘 알지 않더냐.”
사내가 그녀의 귓가에 더운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더니 곧장 연희의 손목을 낚아채서 방으로 질질 끌고 갔다. 아들을 물고 가는 짐승의 사라지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연희는 그대로 방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래. 나를 버리고 가더니 고작 이거냐.”
작은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방은 너무 좁아서 사람이 누울 자리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가재도구 하나 온전한 것이 없었다. 초점이 풀린 눈으로 방바닥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를 향해서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묻지 않느냐.”
“현…….”
아주 오랜만에 부르는 그의 이름이었다. 사내의 눈이 시뻘게졌다.
“감히 네가 내 이름을 입에 담더냐.”
현은 곧장 연희의 숨통을 틀어쥔 뒤 벽에 밀쳤다.
“헉, 숨이…… 막힙니다.”
“숨이 막히는 것뿐이더냐.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온몸에 피가 마르는 기분은 어떨 것 같으냐.”
잔뜩 으르렁대는 사내의 음성과 달리 연희의 목을 조르던 손의 힘이 약해졌다. 붉은 자국이 남은 목을 내려다보던 사내는 걸치고 있던 포를 벗어 던지더니 저고리까지 풀어 헤쳤다.
“……!”
고통으로 눈가에 눈물이 고였던 연희는 그의 벗은 몸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뽀얗고 곱기만 하던 사내의 몸이 온통 흉터투성이였다. 길게 늘어선 흉이 뱀이 지나가는 것처럼 우툴두툴했다.
“네가 내게 한 짓을 보아라.”
“나는, 나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연희는 사내의 몸에 손톱 한 번 세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이것이 그녀의 탓이라는 건가.
“나를 기만하고 네가 도망가 버린 날부터 하나씩 새겨 넣은 것이다.”
“왜, 왜 그러셨습니까.”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입을 틀어막은 연희가 말을 더듬댔다.
“내 것을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
순간 연희는 그녀를 무던히도 거부하던 사내의 냉랭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랬었지.’
싫다고 그녀를 밀어내던 사내에게 계속 다가선 것은 연희였다. 어쩌면 사내의 상흔은 그녀의 책임이 팔 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가 그곳을 떠난 것에는 다 이유가 있-.”
“무엇 말이냐.”
연희는 입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가 실은 여우이고, 그와 낳은 아이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고 차마 고백할 수 없었다.
‘당신의 아이에게 불순한 짐승의 피가 섞였습니다.’
연희가 입술을 지그시 짓이겼다. 변명조차 하지 않는 그녀를 보던 사내의 눈이 번들댔다.
“그리하지 말라고 했거늘, 오늘에야말로 그 버릇을 고쳐 주겠다.”
갑자기 그녀에게 입술을 겹치는 사내의 입술은 불덩이와 같았다. 그는 이를 세워서 피가 맺힌 연희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입술은 안 됩니다.”
황급히 사내에게서 떨어진 연희가 손을 뻗어서 입술을 가리려고 들자, 사내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양손을 결박했다. 그의 혀가 연희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모조리 핥더니 꽉 다문 입술을 두드렸다.
“벌리거라.”
“읏, 으읏.”
신음을 흘리면서도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연희를 보더니 사내는 한 손으로 저고리의 가슴께를 세차게 움켜잡았다. 곤두설 대로 곤두선 유두가 사내의 손안에 들어갔다. 사내가 싱긋 웃었다.
“내 손길이 그리웠더냐.”
입을 꾹 다문 채 연희가 도리질 치자 사내가 검지와 엄지로 유두를 살살 당기고 비볐다. 그의 손길에 연희의 몸이 들썩였고, 허리가 비틀렸다.
“거짓을 이르는 네 세 치 혀보다 이쪽을 믿는 편이 낫겠구나.”
이내 옷고름을 풀어 내리자 적삼 속으로 뿌옇고 둥근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개를 내린 사내가 적삼 위로 입을 가져가서 가슴을 세차게 빨기 시작했다. 연희는 참지 못하고 그만 신음을 내었다.
“아니, 아니 됩니다. 흐앗.”
“아니 될 게 무어란 말이더냐.”
어느새 고개를 든 사내가 그대로 벌린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놀란 연희가 두 손으로 사내의 머리를 떼려고 안간힘을 썼다.
‘절대 아니 됩니다!’
발로 사내의 무릎을 차고, 격렬하게 막아 보았으나 사내의 혀는 외려 더욱 격렬하게 연희의 젖은 속살을 탐했다. 연희의 타액을 연신 삼켰고, 목젖을 훑었다.
“참말 달구나. 연희야.”
고개를 든 사내의 입가가 타액으로 번들번들 젖어 있었다. 그 모습에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어쩌자고 그러셨습니까.”
이제까지 숱하게 서로의 몸을 탐하였어도 입맞춤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 이유가 있었는데…….
“사내를 꿀꺽 삼키면 네가 인간이 되는 거란다.”
죽은 어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제 사내의 숨을 모두 삼켰으니 인간이 될 터인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정인을 죽게 하고 홀로 인간이 되면 무엇하냐는 말이다. 연희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그대로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당신을 은애하는 바람에 이제 모두 망쳐 버렸습니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연희의 앞에 사내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의 말에 사내의 노기 어린 음성이 조금 흔들렸다.
“나를 은애하였더냐.”
“그럼 이 마음을 뭐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내가 싫증이 나서 다른 사내를 찾아 떠난 줄 알았다.”
“말도 안 됩니다.”
연희는 생각지도 못한 사내의 말에 더 속상해서 펑펑 울었다. 사내의 아이를 가진 그때 그녀로서는 떠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멀리 떨어져서 죽을 때까지 그리워해야 하는 형벌을 받긴 해도, 그를 언제나 떠올릴 수는 있었으니까.
“네가 그리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 줄 모르겠다만…….”
“이러지 마십시오.”
조금이라도 더 정인의 모습을 눈에 담아 둬야 했는데, 눈물이 흘러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의 손이 연희의 치마와 속속곳을 훌렁 풀어 내렸다.
“지아비가 아내를 품는 것은 당연하니, 내 너를 품을 것이다.”
이리가 잡아간 아들 걱정에 곧 죽어 없어질 정인 걱정까지, 연희의 머릿속은 새하얘지다 못해 멍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몸은 사내의 거친 손길을 기억하는지 연신 들썩였다.
‘정염에 빠지는 것이 무에 의미가 있다고.’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그녀의 살을 더듬는 커다란 손 때문에 자꾸만 신음이 터졌다.
“이리 젖어서 아니 된다고 하느냐.”
사내의 손이 축축해진 다리속곳의 중심을 거칠게 훑었다.
“이래도 거짓을 고하겠느냐.”
“현, 당신을 잃기 싫어서-.”
“닥쳐라.”
흥분한 사내는 손을 뻗어서 적삼을 찢어 버렸다. 이내 연희는 비부를 가린 작은 천 쪼가리 하나만 걸친 반나신이 되었다.
“하읏.”
사내의 손이 천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부풀어 오른 음핵을 쓸었다. 연희는 몇 년 만의 손길에 극도로 흥분해서 목을 뒤로 꺾었다.
“다른 사내를 받아들인 적이 있더냐.”
“그럴 리가요.”
“너는 나를 버린 계집이 아니더냐.”
“그건 그런 게 아니옵고-.”
“설산 봉우리처럼 순결한 나를 모조리 짓밟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게 너란 말이다.”
사내의 형형한 눈이 연희를 모조리 삼킬 것처럼 으르렁댔다.
“억, 억울합니다.”
누가 들으면 가만있던 사내를 건드리기라도 한 것으로 알 게 아닌가.
그녀가 유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중에 연희를 산 채로 삼킬 것처럼 군 것은 사내였다. 손을 잡은 것도, 안은 것도 모두 그가 먼저였는데.
“인제 와서 그게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거친 음성이 연희의 귓가에 번지더니 이내 허벅지 여린 살에 길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이제 죽어도 너를 보내지 않을 테니.”
귀두에서 진득한 것이 나와 그녀의 다리를 타고 흘렀다. 곧 방 안에 눅눅하고 시큼한 냄새가 가득 들어찼다. 그를 피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성큼 다가온 사내의 손이 그녀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어서 벽을 잡고 서거라.”
“현, 제발 이야기를 좀 해요.”
“네 얄팍한 거짓말은 더 듣고 싶지 않다.”
사내의 큰 손이 그녀를 밀어붙였고 연희는 벽을 붙잡고 섰다.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서 쓰러질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도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자꾸만 뒤를 흘끔대는 연희였다.
“앞을 보아라.”
“그간 이야기를 해 줄 터이니…….”
“닥쳐라.”
어찌나 다급한지 다리속곳을 풀지도 않고 천 틈을 비집더니 그의 성기가 곧장 질구를 파고들었다.
“제발……. 아읏.”
뜨거운 양물의 갑작스러운 삽입에 연희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 감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흥분으로 속살이 단단한 성기를 잔뜩 조였다.
“네 몸은 이리 반겨 주는 나를 너는 어째서 끝까지 거부하느냐.”
두 사람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강하게 밀린 탓에 연희의 팽팽하게 선 유두가 벽에 짓눌려서 엄청난 자극이 전해졌다. 사내의 추삽질로 예리하게 달궈진 음부의 열기로 머릿속이 온통 불구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아앗, 아……! 너무 세…….”
사내는 비녀를 풀어서 긴 머리 타래를 붙들었다. 뒤로 가벼이 잡아당기니 절로 몸이 앞으로 구부러졌다.
“제발 살살…… 읏.”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연희가 붙든 것은 아마 궤일 것이다. 그녀가 두 팔로 더듬더듬 그것을 움켜잡자 사내의 성기가 더욱더 거세게 속살을 짓쳐 올렸다.
“하아…… 너를 원망한다.”
그녀의 등에 가슴을 밀착한 사내가 귓가에 저주라도 퍼붓듯이 속삭였다. 그의 낮은 음성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는데,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쩌다 이리 틀어져 버린 것일까.’
사내가 이리 변한 것도, 아프게 한 것도 모두 제 탓인 것 같아서 연희는 소리를 내어 울 수도 없었다.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그녀의 흐느낌에 현이 더 강한 힘으로 연희를 짓누르면서 거칠게 입을 뗐다.
“기필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사내가 두 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뭉개듯 움켜쥔 채로 연신 추삽질을 이어 나갔다. 지나친 쾌락으로 연희의 다리가 후들거리자 그는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연희의 눈에 그리운 사내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겼다. 하고 싶었던 말은 삼킨 채 그녀가 헐떡거리는 음성을 냈다.
“아윽, 아아앗! ……선비님.”
“다시 선비님이더냐.”
연희는 몽롱한 눈을 간신히 뜬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도무지 사내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선비라고 부르는 것도 싫다, 이름도 싫다.
손으로 땀을 훔친 그녀의 앞에 상처투성이 사내의 몸이 있었다.
‘당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하지만 모든 일은 어그러졌고, 이제는 솔직해져야 했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움직여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여우요.”
“여우……?”
사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나와 입을 맞추면 인간 사내는 사흘 안에 죽소.”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눈앞의 정인이 죽는다고 생각하자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우리 진이가 아비 얼굴을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겠구나.’
그녀의 고백에 어째서인지 사내는 화를 내기는커녕 아까보다 더 부드러운 음성을 냈다.
“그러면 나는 이제 사흘 안에 죽는 건가?”
“……그렇소.”
“나를 속인 게 미안한가?”
연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랑하려고 접근한 것이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푹 빠져 있었노라고 밝힐 수 없었다. 연희가 대답하지 않자 사내가 선득하게 웃었다.
“그럼 사흘간 내게 너를 허락하겠느냐.”
“현, 당신은 어째서 이런 나를 원한다는 겁니까.”
“지난 오 년간 매일 너를 원망했다. 남은 것은 사흘뿐인데, 그럴 수야 없지 않으냐.”
욕망으로 붉어진 눈을 감추지 못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그대로 연희의 입술을 다시 모조리 덮었다. 입술이 맞닿자 연희의 본능이 꿈틀댔고 봉인해 두었던 구미호의 피가 들끓었다. 혀가 잔뜩 엉킨 두 사람의 입 주변으로 묽은 타액이 흘렀다. 연희는 두 손을 사내의 목에 두른 채 그의 숨을 들이마셨다.
“안 돼.”
퍼뜩 이성을 찾은 연희가 입술을 떼려고 몸부림치자 사내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붙들었다.
“참지 말고 모두 마시거라.”
“그러고 싶지 않소.”
“처음처럼 나를 모조리 먹어 치우거라.”
연희는 거의 체념 상태였다. 이제 모든 것을 고백했으니, 남은 시간 그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 주고 싶었다.
‘사실 나도 늘 그에게 안기고 싶었으니까.’
한참 입술을 맞닿은 채로 숨을 주고받다가, 곧 서로의 성기에 손을 뻗었다. 금방 사정이라도 할 것처럼 꿈틀대던 사내의 성기를 손으로 훑던 연희가 달뜬 숨을 뱉었다.
“현, 참말 뜨겁습니다.”
“아직 말을 할 여유가 있더냐.”
그녀의 밀지에 손가락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던 사내가 손가락 두 개를 질구로 밀어 넣었다. 흥분이 가시지 않은 주름진 내벽을 손가락이 긁어 대자 연희의 입에서 교성이 터졌다.
“흐앙! 읏……, 세게!”
“이리 말이더냐.”
비스듬히 누운 사내가 질구로 손가락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연희는 흥분을 감당할 수 없어서 바르르 떨면서 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한 손으로 성기를 쓸면서 다른 한 손으로 사내의 상처를 더듬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상상하자, 심장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나 같은 것 때문에.”
그녀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사내였다. 고고한 학처럼 더없이 지조 높은 선비를 그녀가 바닥까지 떨어뜨렸고, 이리 고통을 받게 했다.
‘그뿐인가. 죽게 했으니 이 죄를 무슨 수로 갚을까.’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하느냐.”
“…….”
연희는 더욱 거칠게 속살을 탐하는 손가락 때문에 겨우 입을 달싹거렸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은 참이고, 세상이 이런 그녀에게 돌팔매질하겠지만.
‘내 후회는 없습니다.’
이런 연정이란 것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를 빼닮은 진이를 낳은 것도, 현을 사랑했던 시간도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었다.
“후회하냐고 묻지 않더냐.”
진득진득한 애액으로 범벅이 된 긴 손가락을 빼낸 사내가 물었다. 연희는 그에게 진심을 전하기로 작정했다. 눈물로 얼룩진 까만 눈이 사랑하는 사내를 응시했다.
“후회 없습니다.”
“처음으로 참말을 하는구나.”
현은 긴 손가락을 야살스레 빨아 대면서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그녀가 반했던 그는 이리도 아름다운 사내였다.
“새삼 반하기라도 한 것이냐.”
사내의 태연자약한 태도가 더 슬프게 다가온 연희는 그의 상처를 핥았다. 그에게 해 줄 것이 없어, 그녀의 여우 구슬을 꺼내서 상처라도 치료해 주고 싶었다.
“그만두거라.”
사내는 연희의 턱을 강하게 움켜쥐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리하면 상처가 낫습니다.”
“네 생명을 갉아먹는 짓 아니더냐.”
연희는 사내가 어찌하여 구미호의 비밀을 아는지 따져볼 여유도 없었다.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뿐인데, 하지 말라니 서럽기만 하였다.
“왜 나를 막는 게요.”
아이만 없었다면 그와 함께 죽어 버리는 게 나았다. 연희가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울먹거리자, 눈을 휜 사내가 가벼이 입을 뗐다.
“같이 죽기라도 할 셈이냐?”
“…….”
“그깟 아이 걱정은 그만하고 나만 보아라. 이제 살날이 사흘밖에 남지 않은 불쌍한 사내가 아니더냐.”
사내는 그대로 연희의 몸을 그의 위에 앉혔다.
“어서 나를 기쁘게 해 주련.”
그의 말대로 지금 일각이 아쉬울 때였다. 한참 울던 연희는 사내의 진심이 담긴 말에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울지만 말고, 응?”
“……현.”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연희가 그대로 엉덩이를 슬며시 움직였다. 젖은 음부가 단단한 다리에 쓸려서 찌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울먹이던 그녀가 몸을 뒤틀면서 신음을 뱉었다.
“아읏.”
핏줄이 불거진 그의 성기가 옆으로 휜 채로 꿀렁거렸다. 연희는 고개를 숙여서 귀두를 슬쩍 핥았다. 그러자 이제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사내의 반듯한 이마가 일그러졌다. 그의 반응을 살핀 연희가 입 안 가득 성기를 물자 귀두가 목젖을 쿡쿡 찔렀다.
“정녕 네가 나를 삼켰구나.”
만족스러운 신음이 터졌다. 연희의 입술이 빨아대는 귀두에서 비릿한 정액이 연신 흘렀다.
“으으…….”
입술 사이로 앓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가 몸을 세워 곧장 그녀를 아래에 깔고 누웠다. 사내의 긴 머리카락이 주렴처럼 사방으로 늘어졌고, 그 속에 연희의 동그란 눈과 젖은 입술이 갇혔다.
“두 번 다시 나를 떠날 생각은 하지 말아라.”
그녀의 발목을 한 손에 움켜잡은 현이 그의 앞에 훤히 드러난 붉은 속살을 보면서 속삭였다.
“현, 이런 자세는 부끄럽습니다.”
잡힌 발목을 뒤틀면서 연희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사내의 단단한 성기가 허벅지 연한 살을 문질렀다.
“늘 나를 보라고 하지 않았더냐.”
쾌락으로 잔뜩 붉은 눈을 한 연희가 그를 응시하자, 그제야 사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움켜쥐고 있던 발목을 그의 어깨에 올린 채 한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을 따라 흰 피부에 붉은 꽃이 점점이 피어났다.
“흐, 흐앗. 더 못 참겠습니다.”
그의 시선과 사소한 손길에 연희는 제 몸이 전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허리를 들썩이면서 그녀를 애태우는 사내에게 애절한 시선을 던지자 현은 고개를 숙여서 혀로 음부를 핥았다.
“아앗……!”
지나치게 흥분해 있던 터라 까칠한 혀가 닿기만 했는데도 연희는 그대로 절정에 이르렀다. 음부에서 흐르는 질척한 액을 사내의 혀가 모조리 빨았다.
“혀만 대어도 가 버릴 정도라니, 이 얼마나 음탕한 여인인가.”
다리를 오므릴 기운도 없어서 손을 뻗어 은밀한 곳을 가리려 들자 사내의 거친 손길이 다리를 벌리게 했다.
“제 욕심만 채우면 다인가.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더 감당할 수가-.”
두려운 마음에 누운 채로 몸을 움직여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으나 어림없었다. 현은 곧장 그녀의 몸을 돌렸다.
“가만있으면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
앞으로 기어서 달아나려는 그녀의 양손을 깍지를 껴서 위로 길게 결박한 그는 성기를 엉덩이골에 문질러 대더니 음부에 삽입했다. 순간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거친 교성이 터졌다.
“그, 그만……. 너무 깊습니다.”
“지금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는 없다.”
느리게 성기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방금 절정에 이르렀던 속살이 덜덜 요동쳤다. 그의 성기가 내벽을 쑤시고 들어오자, 연희는 땅과 하늘이 뒤바뀐 것처럼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대로 죽어 버려도 여한이 없다.’
신음을 쏟으면서 연희는 그리 생각했다. 그를 막을 것이 없다는 사내는 이후로 몇 번이나 파정했는지 모른다. 세 번 정도 세었을까. 더 버티지 못한 연희가 그대로 까무러쳤다. 잠이 드는 그녀의 귓가에 사내의 다정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으나, 하 몽롱하여 무슨 말인지 채 알아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