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5)

四章. 토끼 고기를 줄 테니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연희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 아픈 데가 없고, 손끝 하나도 들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맙소사, 이게 무슨 꼴이람.”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보니, 선비의 방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다.

“왜 내가 여기 있지?”

놀라 얼른 사방을 살피는데, 다행히 방 안에는 그녀 혼자였다.

“망측하게 훌렁 벗고 이게 뭐람.”

이불 안에는 어제저녁 벗은 그대로였다. 쑥스러운 기분에 이불을 어깨 위로 올리는데 악 소리가 절로 났다. 손을 더듬자 어제 사내가 물었던 곳에 생긴 깊은 상처가 만져졌다.

“괘씸한 인간 같으니라고. 감히 나를 물다니.”

그나저나 영력이 아무리 떨어졌다고 해도 피부 재생이 이리 더딜 수가 있을까.

“구미호가 되지 못하면 이대로 소멸해 버릴지도 몰라.”

입술을 짓이기던 연희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다리속곳은 찢어져서 입을 수가 없었다.

“예쁘다 했더니 말이야. 그 망할 선비가.”

대충 속속곳에 저고리를 걸치는데 사내를 향한 원망이 터져 흘렀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어.”

아래가 홧홧하여 팔자걸음을 걷다 연희가 이불을 걷어차 버렸다.

“내가 이거 정리해 주나 봐라.”

이제 사흘 남았으니 사내를 그냥 자빠뜨려서 사정 봐주지 않고 먹어 버려야겠다고 작정했다.

“벌써 해가 중천이네?”

간밤부터 먹은 게 없어서 배가 허전했지만, 부엌에 갈 기운이 없었다. 마치 간밤에 누군가 그녀를 멍석말이라도 한 것처럼 욱신거렸다.

“망할 선비 놈!”

푹 구부러진 그녀의 몸이 자연스레 헛간을 찾았다. 푹신한 짚더미에 몸을 던진 연희는 그대로 대자로 뻗었다. 바람도 적당히 통하고, 익숙한 풀냄새에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무슨 냄새지…….’

한잠이 들어 있던 연희는 코로 흘러들어 오는 구수한 냄새에 몸을 비틀었다.

“뭐야. 누가 고기라도 굽나.”

눈을 뜨니 두꺼운 보료 위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운 연희는 화로 앞에 앉은 사내를 발견했다.

“내가,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소.”

“글쎄다.”

긴 머리를 포 뒤로 길게 늘어뜨린 사내가 등을 지고 앉아서 무심하게 입을 뗐다.

‘헛간에 누웠던 게 조금 전 같은데 언제 이곳에 기어들어 온 거지?’

장지문 밖을 내다보니 밤이 깊어 있었다.

“흠,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랬나 보오.”

기억은 전혀 없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가끔 굴에서 잠이 들었다가 나무 위에서 발견되기도 했으니까.

“으흠…….”

연희가 옷맵시를 정돈하면서 슬쩍 화로 위를 훑었다. 뭘 굽고 있었는지 몰라도 냄새가 기가 막혔다.

‘미쳤구나. 지금 그런 냄새에 현혹될 때가 아니잖아.’

어제 일에 대해서 단단히 따져 물어야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슴을 만지고 싶다고 했던 게 나였으니…….’

꼬르륵.

그때 그녀의 배 속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이리 오너라.”

분명 외면하고 방을 나서야 했는데, 오늘도 그녀의 몸이 의지를 배반했다. 화로 앞에 주저앉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눈물이 찔끔 났다.

“토끼를 좀 잡았다.”

사내가 들고 있는 기다란 꼬챙이에 토끼 고기, 은행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보자마자 침이 턱밑으로 흘렀다.

‘겉보기에는 토끼는커녕 개미 한 마리도 못 잡게 생겼는데 말이야.’

소매 밖에 드러난 손목은 그리 굵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희는 사내의 힘이 얼마나 센지 익히 알고 있었다.

‘저 바지 속에 몽둥이 같은 것을 숨겨두다니 말이야.’

어제를 떠올리자 얼굴이 달아올랐고, 주책없이 음부에서 더운물이 샘솟았다.

‘미쳤구나. 그 고생을 하고서 왜 이러는 게냐.’

입술을 앙다문 연희가 속으로 제 욕을 했다.

“다 익었구나.”

사내가 아무렇지 않게 꼬챙이를 건네주었고 연희는 넙죽 받아서 입으로 가져갔다. 냄새 때문에 오장육부가 뒤틀려서 지금 돌덩어리도 구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맛이……?”

고기와 은행을 한입 베어 먹었는데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 버렸다. 양념을 무엇으로 했는지 누린내도 없이 고소하기만 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맛이야.’

돌아가신 어미도 분명 좋아했을 맛이었다. 연희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면서 꼬치를 먹었다.

“하, 더 못 먹겠어요.”

내미는 족족 받아먹다 보니 이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녀의 옆에 나무 꼬챙이가 수북했다.

‘맙소사! 줏대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심한 허기로 정신이 나가서 저지른 짓을 깨달은 연희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체력이 약한 이에게는 토끼가 좋다고 하더군.”

“거참! 남의 체력을 왜 선비님이 걱정하시는 게요.”

잘 얻어먹을 때는 언제고 연희가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꽥 질렀다. 하지만 진짜 억울했다. 종일 몸져누웠던 것이 바로 이 선비 때문이 아닌가.

“왜 신경을 안 쓰겠느냐.”

그리 말하던 선비가 화로를 들어서 밖에 내어 놓더니 문을 등지고 가만 서서 포의 허리띠에 손을 댔다.

“뭐 하는 거요. 벗지 마시오.”

사내가 포를 벗으려고 들자마자 연희는 심한 딸꾹질이 났다. 저 바지춤에 감추어진 흉흉한 양물을 떠올리자 몸이 덜덜 떨렸다.

“걱정하지 말아라. 아픈 이를 탐하지는 않을 테니.”

다행히 그렇게 금수만도 못한 인간은 아니었나 보다. 연희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사내가 포를 벗더니 저고리와 바지를 순식간에 던져 버렸다. 합당고 하나 걸친 사내의 몸은 다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났다. 적당히 넓은 어깨와 탄탄한 가슴에 군살 없는 복부가 매끈해 보였다.

‘무슨 사내가 저리도 고와.’

당장 저 사내의 목숨을 가져가야 하는데 어째 자꾸만 주춤거리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몸이 성하지 않으니 말이다.’

또 하루를 미루는 그녀였다.

연희가 두 손으로 볼을 살짝 쥐는데, 사내가 그녀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약조를 지키거라.”

“아니, 아까 이야기와 다르지 않소.”

“내가 네 몸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한 것과는 다른 이야기 아니더냐.”

합당고 허리끈을 풀어 버리자 커다란 성기가 위아래로 덜렁댔다.

“어쩌자는 게요.”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연희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병풍 앞까지 몰린 그녀가 두려운 눈을 했다. 마치 사냥꾼에게 몰렸을 때처럼 초조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달아날 생각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사내가 무릎을 꿇더니 곧장 연희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우웁…….”

현은 곧장 그녀의 입술 사이로 그의 성기를 쑤셔 넣었다. 거친 손이 목을 흔드는 통에 뭉툭한 선단이 입 안 부드러운 살을 잔뜩 헤쳤다. 입 안에 비릿한 밤꽃 향이 번지는데, 연희는 참말 울고 싶어졌다.

“이를 세우지 말고 핥아라.”

이럴 작정이 아니었는데, 그의 말에 연희는 혀로 핏줄이 불거진 성기를 날름날름 훑었다. 목구멍까지 박아 대는 성기 때문에 몇 번이고 숨이 막혀서 토악질할 뻔했다.

“컥컥.”

어지러워진 그녀가 쓰러지려고 하는 찰나 그의 손길에서 벗어났다. 성기가 빠져나간 연희의 입가로 뿌연 덩어리가 굵게 떨어졌다.

‘이러려고 아까 고기를 먹였던 건가.’

화가 나는데, 너무 황당해서 할 말도 없었다. 싫어야 마땅한 행위에 자꾸 몸이 달아올랐다. 연희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사내가 그녀의 옷고름을 뜯어냈다.

“헉.”

“혼자만 빨면 억울하지 않으냐.”

적삼 없이 저고리만 덜렁 입고 있던 탓에 젖가슴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찬 기운에 소름이 자잘하게 돋았고, 사내의 시선에 유두가 곤두섰다. 연희는 그가 쳐다보는 게 부끄러워서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그러자 사내의 눈이 서늘해졌다.

“생긴 것은 괜찮은데, 그 성질머리가 고약하구나.”

“뭐라는 거요!”

그녀가 언젠가 했던 말을 따라 하는 사내가 얄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손을 당장 치우지 않으면 이것을 아래에다 박아 넣겠다.”

사내의 큰 손이 꺼떡대는 성기를 쓸자, 연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늘 잔뜩 부어서 화끈대는 음부에 저것을 넣으면 연희는 구미호도, 인간도 되지 못한 채로 세상을 하직할 게 분명했다.

“이것은 겁박이오. 겁박.”

“잘 보았다. 내 지금 너를 겁박하는 것이다.”

아무리 화를 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사내를 노려보다 연희가 손을 치웠다. 그러자 그녀의 몸 위로 덤벼든 사내가 가슴을 게걸스레 빨기 시작했다.

“흐앗. 조금만 살살…….”

어제의 정사로 유두가 따가웠다. 사내가 힘차게 빨아 대자 눈물이 절로 흘렀다. 하지만 그는 들리지 않는지 한 손으로 다른 가슴의 유두를 비벼 대면서 연희의 몸에 심취했다.

“선비님, 참말 이러기 있소. 흐아.”

이제 굵은 양물이 치마 위에서 연신 그녀의 다리를 찔렀다. 연희는 다리를 오므리려고 온갖 힘을 쓰는데, 선비가 고개를 들었다. 짙고 날카로운 눈썹 아래 새빨간 입술이 온통 번들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색정적인지 자꾸만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어디서 이리도 야한 냄새가 나는 게냐.”

“아무것도 아니오.”

“어디 짐승이 교배라도 하는 건가.”

봉창을 슬쩍 올려다보던 사내가 싱긋 웃는데, 연희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이대로 자빠뜨려서 한입에 삼켜야 하는데…….’

어찌하여 영영 그러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음성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가 만져 주는 게 참말 따스해서 좋았다.

‘내가 너무 외로워서 착각하는 게지.’

어미를 여의고 혼자 떠돌아다니다 보니 아무한테나 이렇게 애정을 구걸하게 된 모양이다. 연희가 그의 미소를 외면한 채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기다란 머리가 주렴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입을 맞추겠느냐. 연희야.”

“…….”

근사한 음성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연희는 울고 싶어졌다. 이대로 입을 맞추면 이곳에 와서 처음 세웠던 계획을 이루게 된다.

‘이대로 끝이야.’

한 번만 눈을 딱 감으면 사내의 입술을 통해서 기를 모조리 흡입할 수 있었다. 사내의 입술이 차츰 아래로 내려와서 곧 그녀의 것에 닿기 직전이었다.

“입맞춤은 싫소.”

그녀는 손을 들어서 입술을 가린 채 고개를 돌렸다. 사내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가면 사내는 많으니까, 굳이 외로이 사는 이 선비를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어.’

“그럼 다른 데 입을 맞추어야겠구나.”

입맞춤을 거절하자 사내는 그대로 그녀의 치마를 들쳐 올렸다.

“왜, 왜 이러는 게요.”

치마가 얼굴을 가려 버려서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 다리를 버둥대는데 버선도 속속곳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아직 내 체향이 남아 있구나.”

현은 그의 눈앞에 드러난 붉은 속살에 코를 박고 킁킁댔다. 콧대가 높은 탓에 코끝이 음핵을 건드리자 연희는 소피가 마려운 느낌에 미칠 지경이었다.

“여기서 나는 냄새였구나.”

사내는 그녀의 음핵과 질구를 적신 더운물을 샅샅이 핥기 시작했다. 어제의 통증으로 따갑기도 했고, 간지럽기도 했으며 동시에 몸이 펄펄 끓어오르는 것 같은 착각도 일었다.

‘이대로 저 굵은 것을 내 안에 쑤셔 넣으면…….’

어제 몸이 부서져라 느꼈던 그 생경한 감각을 떠올리자 연희의 허리가 절로 튕겨 올랐다. 이제 사내의 혀가 질벽을 파고들어서 할짝댔다.

“그만, 그만하시오.”

사내 앞에서 가랑이를 쩍 벌리고 누운 굴욕적인 자세에서 벗어나려고 다리를 버둥댔다. 그러자 억센 손길이 발목을 움켜잡았고, 굵은 성기가 허벅지 안쪽을 문질렀다.

“오늘은 아니 되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치마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사내의 음성이 무척 탁해졌다. 연희는 양손으로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끌어 잡고 낑낑댔다. 단단한 성기는 허벅지에 구멍이라도 낼 요량인지 연신 그녀의 살을 후벼 팠다.

“으, 읏.”

얼마나 오래 문질러 대는지 사내의 선단에서 흐른 액이 음부에 잔뜩 튀어서 연희는 손가락 하나를 입에 물고 신음을 참았다. 방은 온통 젖은 냄새로 가득 차서 숨만 쉬어도 절정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연희는 한 손으로 더듬더듬 제 가슴을 쓸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쉬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읏, 으읏.”

연희의 교성에 사내는 그녀의 허벅지를 오므리게 한 다음에 그 사이로 성기를 쑤시기 시작했다. 어찌나 강한 힘으로 다리를 붙잡았는지 연희의 아랫도리에 피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희야. 연희야.”

그가 이름을 불러 대는데 가슴을 만지다가 홀로 환락을 느낀 연희의 눈이 거물거물했다.

“으어, 빨리, 으읏.”

허벅지 사이로 뜨끈하고 미끄덩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연희는 그 따스함이 좋아서 자면서 배시시 웃었다.

* * *

연희는 목표를 바꾸기로 작정한 이상 이곳에 머무르지 않기로 했다. 자꾸 가슴이 벌렁대는 것도 하 이상하고, 사내의 손길에 익숙해지는 것도 불편했다.

“그 힘이 어찌나 장사인지 더 있다가는 내가 제 명에 못 살겠어.”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니까 사내의 품에 안겨서 잠을 청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대로 옷도 챙겨 입지 않고 헛간으로 달려왔었다.

“깨기 전에 얼른 씻고 내려가자.”

연희는 버드나무 아래 샘에 물을 담근 채 피로를 풀었다. 어제 토끼 고기를 먹어서인지 몸이 가벼웠다. 홧홧하던 음부도 오늘은 아프지 않았다.

“역시 고기는 옳구나.”

몸을 씻은 후 나와서 준비했던 옷을 걸쳐 입었다. 바람이 불어와서 젖은 머리가 금방 말랐다. 사내가 자고 있을 집을 흘끗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공간이 보름 만에 꽤나 정이 들었다. 그녀가 몰래 술을 훔쳐 먹었던 곳간이며, 잠을 청하던 헛간, 그리고 선비.

“뭐야. 사내 하나가 무슨 대수라고.”

옷을 툴툴 털던 연희가 그대로 낭떠러지를 향했다. 하도 가팔라서 내려가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녀가 어디 보통 여인인가.

“가자!”

연희가 주먹을 불끈 쥐는데, 그녀가 서 있는 곳을 시작으로 가시 돋친 탱자나무가 솟아올랐다.

“이게 뭐야?”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에 연희가 얼른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가 걷는 속도보다 나무가 솟아나는 게 더 빨랐다. 잠시 후 탱자나무가 선비의 집을 둥글게 에워쌌다.

“아침부터 웬 소란이더냐.”

장지문을 열고 나서는 선비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연희는 이 난리 통에도 세상 여유로운 선비를 보면서 다급한 음성을 냈다.

“선비님, 이게 안 보이시는 거요?”

“탱자가 아니더냐.”

연희가 탱자 가까이 가서 손가락으로 가시를 가리켰다.

“이게 갑자기 땅에서 막 자라났소.”

“꿈에서 덜 깬 것이냐. 이곳은 원래 저것이 있었다.”

그녀의 수선에도 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눈이 댕그래진 연희는 기가 막혀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대로 주먹을 쥔 채로 집 뒤를 향해서 달렸다.

아마 어딘가에는 빠져나갈 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 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꽉 막혔네.”

빽빽하게 들어선 탱자나무 사이로는 개미 한 마리도 드나들 수 없을 것 같았다.

“혹 나를 떠나기라도 하려고 했던 게냐.”

어느새 그녀의 뒤를 밟은 선비가 여유롭게 부채를 부쳤다.

“아니, 지금 부채질을 할 때요? 우리가 지금 산꼭대기에 갇히지 않았소.”

발을 동동 구르는 연희에게 그가 산뜻한 얼굴로 입을 뗐다.

“혼자도 아닌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저기 선비님, 나는 보름만 머물겠다고 했었고.”

막 이곳을 떠나려는 참이었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연희의 목소리가 자꾸만 기어들어 갔다.

“처음에는 그러하였지.”

연희의 말에 부채를 탁 하는 소리가 나도록 접은 사내가 그녀 가까이에 다가섰다.

“오늘따라 무척 곱구나.”

“아침 댓바람부터 그게 무슨 해괴한……!”

연희는 붉은 눈가를 한 선비의 말에 뒷걸음질 쳤다. 거의 탱자 가시에 찔리기 직전에 사내가 그녀의 허리를 붙들었다.

“조심하거라. 몸을 갈기갈기 찢을 가시란다.”

그 말이 꼭 떠나려고 했던 그녀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입을 맞추고 싶구나.”

“아니 될 일이오.”

다시 손으로 입을 틀어막자 사내가 싱긋 웃었다. 연희는 알다가도 모를 괴상한 성벽의 선비 때문에 애가 달았다. 이대로 떠나지도 못해, 사내를 잡아먹지도 못해.

‘이를 어쩐단 말이냐.’

발만 동동 구르는데 순간 그녀의 옷고름을 풀어 내리는 손이 있었다.

“뭘 놀라는 게냐. 약조를 지키거라.”

“무슨 약조 말입니까.”

“어제, 네 입으로 분명히 그랬었지. 오늘은 그만하라고.”

“그게 무슨 약조입니까.”

그녀가 화를 버럭 내자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몸만 허한 게 아니라 총명하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그 말인즉슨 내일 실컷 하자는 거 아니더냐.”

연희는 기가 막혀서 눈을 잔뜩 부라렸는데, 사내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그녀의 저고리를 벗기더니 곧장 치마를 찢듯이 벗겼다.

“금수도 아니고 이 바깥에서 뭐 하는 게요.”

“너도 알다시피 이곳은 노니는 새 한 마리도 없으니까.”

비릿하게 웃던 사내는 그대로 연희를 기둥 앞에 서게 했다. 이제는 대꾸할 기운도 없어서 그녀는 그대로 기둥을 움켜잡았다.

‘진짜 내가 미쳤나 보다.’

어제저녁에 해소되지 못한 정염이 그녀의 안에서 똬리 틀고 있었던지 그의 손길에 신음이 절로 흘렀다.

‘뿌리쳐야 마땅한데…….’

곧 그녀는 현의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간밤에 참느라 애먹었다.”

“쭉 참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리 질질 싸는 너를 보면서 말이더냐.”

그의 손이 음부를 슬쩍 건드리기만 했는데 연희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곧장 바지춤을 풀어 내린 사내는 전희 없이 그대로 성기를 삽입했다.

“으흡. 이러는 법이-.”

“아…….”

연희는 처음으로 붉은 속살을 파고든 단단한 성기가 주는 쾌락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몸 안에 파도가 치는 것처럼 찌릿한 감각이 밀려들고, 더욱더 밀려들었다.

퍽퍽. 쉼 없이 강하게 박아 대는 허리 짓에 연희의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산중에서 도대체 무엇을 먹고 이리도 기운이 좋은 건가.

“하으…… 미치겠어.”

질을 가득 채우고 남는 굵은 성기가 그녀를 끝도 없이 몰아붙였다.

“선비님, 숨을 못 쉬겠으니 제발, 읏.”

연희가 곧 쓰러질 것처럼 굴자 사내가 잠시 성기를 빼낸 후 바닥에 그녀를 눕히려고 할 때였다.

연희는 슬슬 그의 눈치를 보면서 빈틈을 노렸다.

‘지금이 기회야!’

기둥을 잡았던 손을 뗀 연희가 젖 먹던 힘을 다하여 그대로 달아났다. 이대로 저 사내를 더 받아 줬다가는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아니, 오장육부가 으깨질 것 같았다. 하지만 좁아터진 마당인지라 그를 피할 수도 없었다. 어찌나 다급한지 벗은 몸을 가릴 생각도 못 했다. 곳간 문에 기대선 그녀가 각목 같은 것을 덜렁대면서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서 고함을 쳤다.

“오지 마시오!”

“왜, 술이라도 한잔할 테냐.”

사내는 그녀의 행동에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연희는 그런 태연한 태도에 더 화가 나서 눈에 불을 켰다.

“술이라면 듣는 것만 해도 토악질이 날 지경이오.”

이게 다 술 때문이었다.

그 밤에 도화주를 마시고 선비를 찝쩍거리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비는 그의 회유에 끄덕하지 않는 연희를 보면서 팔에 걸치고 있던 포를 어깨에 살랑 걸쳤다.

‘신선이 따로 없구나.’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에 포 하나 걸쳤는데도 이미 명화가 따로 없었다. 검은 머릿결이 바람 따라 넘실거렸고, 가끔 앞섶이 열리면 몸에 어울리지 않는 흉흉한 성기가 언뜻 보였다.

‘어휴,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간다.’

벌써 음부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으려 했다. 교접이 무척 좋기는 했지만, 사내와 함께할 때마다 기가 쇠하는 것 같았다.

“좋은 말로 할 때 이리 오는 게 좋을 것이다.”

“겁박은 하나도 무섭지 않소.”

손으로 가슴과 음부를 가린 연희가 헛간 앞에서 꼼짝하지 않는 그때 어디서 낯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우우우우.

“늑대…….”

본능적으로 겁을 집어먹은 연희가 사방을 살피는데, 그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곧 헛간 뒤에서 시꺼먼 짐승이 나타나서 그녀의 몸을 찢어발길지도 모른다는 오싹한 예감이 스쳤다.

쿠르르쿠르르.

설상가상으로, 하늘이 시꺼메지더니 먹구름이 잔뜩 몰려들었다.

“맑은 하늘에 이게 무슨…….”

재수가 지지리도 없는 하루가 아닌가. 탱자나무에 늑대, 이제는 비까지 내린다는 건가. 어찌할 바를 몰라서 황망하게 서 있는 연희에게 선비가 온화하게 입을 뗐다.

“내게로 오너라.”

“아이, 정말…….”

‘다른 건 몰라도 비는 참말 질색이다.’

연희는 볼에 닿는 빗방울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대로 선비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지금은 비보다 살을 맞대는 사내가 더 귀했다. 그는 손으로 연희의 머리를 쓸어 주면서 낮게 속삭였다.

“진작 이랬으면 좋지 않았냐.”

훌쩍대는 연희가 입술을 짓이기자 사내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

“이리하면 상처가 생기니 하지 말아라.”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에 들어가자꾸나.”

사내는 그대로 연희의 몸을 안아서 방으로 향했다. 하늘은 지독한 빗줄기를 장장 나흘을 뿌려 댔고, 그동안 두 사람은 그곳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않았다. 드문드문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과 헐떡임이 들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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