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 개같이 따먹힐 예정 (1)
“…”
아주 자연스럽게 의식이 돌아온다. 꿈 하나 꾸지 않고 오로지 깊고 곤한 잠에 빠져든 다음날처럼, 기상은 여느 때보다도 달콤하고 상쾌하다.
“하아암…”
몸도 참 가볍다. 어찌 이렇게 가벼운지 믿을 수가 없다. 이 정도의 컨디션이라면 월요일 아침이라고 하여도 당장 회사나 학교로 뛰쳐갈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완벽한 아침이 아닐까?
감겨진 눈 너머로 햇살이 느껴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뷰븃~ 부뷰븃~”
어여쁜 새소리가 귀를 스치고…
“…?”
잠깐만.
참새나 비둘기였다면 몰라도, 난생 처음 듣는 낯선 새소리에 문득 불안감이 찾아든다.
뭔 새가 뷰뷰븃~ 거리고 울지?
한번 피어나기 시작한 불안감은 내게 들어오는 모든 감각들을 의심하게 만드는데,
머리에 베고 있는 푹신한 베개가 마치 잔디처럼 느껴지고,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은 마치 숲 속의 바람같으며,
편하게만 느껴지던 몸의 가벼움은 옷을 벗어재낀 알몸의 감각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어라?”
시발, 뭐지?
눈을 뜬 곳은 5평 남짓한 자취방이 아니라, 웬 동글동글하게 생긴 새들이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다니는 이상한 숲 속이다.
“뭐야! 뭔데!”
평소엔 혼잣말을 잘 해본 적도 없는데, 당황하니 온갖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분명 자취방에서 잠을 잤는데 눈 떠보니 알몸으로 숲 속에 유기된 채라고?
급히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본다. 잔디밭 위에서 걸리는 쯔쯔가무시 병이나 이타이이타이 병 같은 것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어라? 이타이이타이 병은 풀밭 위에서 걸리는게 아니던가?
아무튼 급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내 옷이 어디에 있는지를 뒤적거린다. 허나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빼곡하게 자란 잔디들 뿐이다.
이것이 몰래카메라라면 상당히 공을 들였을 터이니 아주 훌륭한 리액션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보기엔 속옷 한 장도 없이 벗겨진 내 알몸이 문제인데, 요즘 방송국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인권유린 행위를 했다간 모두 모가지가 날아가니 그들이 준비한 몰래카메라는 아닌 것 같다. 내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추론이다.
“뷰븃~ 뷰뷰븃~”
아까부터 한 마리씩 공중을 날아가는 동그란 새는, 평생에 본 적도 없는 기이한 모양이다.
새라고 말하기 보다는 동그랗게 뭉친 솜뭉치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저딴 생김새를 하고 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신경을 쏟을 시간은 없다. 현재의 상황이 몹시도 위험하니 말이다.
숲이라니! 자고 일어나보니 난데없이 숲에 혼자 있다니! 이 어찌나 위험한 상황인가!
허나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를 받아들이니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시발. 이세계 전생이구나. 이건 백 퍼센트 이세계 전생이야! 아니지. 전생이 아니라 전이인가?’
그렇다. 이것은 여기저기서 들었던 이세계 전생이 아니겠는가!
전생인지 전이인지 따지는 바보같은 짓은 할 필요가 없다. 현재로서는 나 자신이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놓였다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해야하는 일은 명확하니 그것부터 해치워야 한다.
‘좋아, 상태창!’
…
상태창은 없다. 씨발.
아무래도 상태창을 볼 때마다 ‘이딴거 말고 글이나 더 써주지’ 라고 생각하곤 했으니 그럴 만도 한데,
막상 새로운 세계로 덩그러니 떨어지니 별 조잡한 상태창이라고 하여도 제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아. 괜찮아… 일단 상태창이 없으면 게임 판타지 같은 건 아니군. 그래도 이세계로 오면 분명 특전 같은게 있으니까, 그걸 찾아내기만 하면 돼.’
가끔씩 아무런 능력도 없이 다짜고짜 어딘가로 날려보내는 개같이 무책임한 상황들이 있긴 하지만,
설마 내가 그런 끔찍한 비극을 겪지는 않겠지.. 하며 최대한 빠르게 몸을 살펴보았다.
몸 어딘가에 새겨진 문양같은 것들로 이세계의 위기를 막아내는 일도 있지 않겠는가.
‘옳거니!’
역시 손목 부근에 아주 특별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재빠르게 그것을 살피며 사용법을 알아내려고 하는 그 순간!
‘아. 기억났다.’
기억이 되돌아온다.
어제도 평소처럼 노벨피아의 작품들을 읽었다.
그러다가 한 소설을 읽었다. 웬 얀데레 소설이었다.
평소부터 후회-집착-피폐 3종 세트와 얀데레 태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품고 있었던 나였으나, 그들의 문화를 한번쯤 이해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어서 ‘찍먹’만 해볼 심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