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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이 따먹히고 다닙니다-61화 (61/218)

< 61화 > 말대꾸를 하네?

다시 알바토르 왕국 중심부에 위치한 고급 여관.

델린은 이번엔 치치의 등에 업혀 있다.

"흐읏, 읍..."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닐 수 없는 실내이기에 카에데가 델린을 업는 것이 합당했으나,

치치는 카에데에게 델린을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대신 업겠다고 난동을 피워 결국 그 기회를 쟁취해냈다.

허나 마법 단련은 참으로 오랜 기간을 쏟아부었으나 운동 같은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치치이기에, 델린을 업은 그 등과 다리는 꽤나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다.

"저, 저기! 그냥 마법 쓰시면 안 될까요?"

"이 정도는 누나도 다 할 수... 있으니까아... 걱정하지 마...!"

괜히 똥고집을 부린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녀의 신체적인 부분을 들어 모욕을 퍼부은 카에데로 인해 치치는 상당히 열이 받은 상태!

그녀는 2인용 여관방 앞까지 기어이 그를 업어간다. 심지어 고급 여관이라서 다른 하인들이 도와줄 수도 있었는데!

"휴우... 봐, 봤니? 누나도 다 할 수 있단다..."

다른 건 몰라도 자존심 하나만큼은 꺾일 수 없는 여인들간의 팽팽한 신경전이기에 치치는 혼신의 힘을 다한다.

운동도 별로 안해서 금세 지쳐버린 듯 보여도, 그녀는 마치 이정도는 거뜬하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델린을 쓰다듬었다.

"네, 뭐... 그래요..."

여기서 꼬투리를 잡으면 또 말이 길어질 것이니 델린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열고 둘의 방으로 들어간다.

꽤나 큼지막하고 잘 정돈된 방.

판타지 만화에서 보면 이와 진드기가 득실득실한 싸구려 여관들이 자주 묘사되곤 하더니,

여긴 호텔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시설이다. 정말로.

"와아... 좋네요. 근데 여기서 잘 돈은 있나요?"

델린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어느 틈에 열린 문으로 쏘옥 들어온 카에데!

"물론이오! 소인은 이래 봬도 S급 모험가이니 벌이가 쏠쏠하지 않겠소? 부담스레 생각하지 말고 편히 쉬시오!"

그녀는 절뚝거리며 벽을 붙잡고 걸어가는 델린을 다시 끌어안아 침대 위까지 옮긴다.

"아, 아니! 이럴 필요는 없는...데..."

마치 공주님을 대하는 듯한 기분에 영 떨떠름한 델린이지만,

무어라 반항할 힘도 없으니 뭘 어쩌겠는가!

"아하핫! 남자를 위하는 것은 여인된 도리가 아니겠소?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호의를 받아주시오. 그게 우리네의..."

"됐으니까 빨리 나가요! 빨리 그 환단인지 뭔지나 먹어요. 그리고 제대로 발정기 끝날 때 까지는 델린한테 손 대지 말고요!"

치치의 앙칼진 고음에 카에데는 어깨를 한번 으쓱 올리고는 델린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저리 성질 사나운 여인하고 다니느라 델린 군이 고생이 많소. 그래도 이제 내가 도와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진 마시오."

아니, 뭐...

도와준다고 해도...

아까 카운터에서처럼 서로 말싸움이나 하는 거랑 다를 게 있나...?

"나가요, 나가! 당장!"

"네바나 필마르크를 걱정할 필요도 없소! 소인이 늘 주변을 지키고 있겠...!"

쾅-!

치치가 카에데를 기어코 밀어내어 방문을 힘껏 닫아버렸다.

그 바깥쪽에서 잠깐 무어라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나 싶었으나, 곧 별다른 다툼 없이 카에데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한 수 물러선 모양이다.

"휴우... 이제 둘만 남았구나. 저 여자랑 너무 자주 말 섞지는 마렴. 수인들은 믿어봤자 손해를 보니까."

"저기... 그렇게 따지자면 치치 씨야말로 절 붙잡아다가 다른 마녀들한테..."

"그, 그건!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단다. 응?"

"뭘 어쩔 수 없어요. 됐으니까 이제부터 어떻게 할 지나 말해주세요. 저도 알고는 있어야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죠."

사실 마음의 준비같은 것은 아니고, 세이브를 어디에 박을지 고민하는 중인 델린.

그는 세이브와 로드에 대해 꽤나 많은 고민을 마친 상태이다.

그리하여 그가 얻어낸 결론은?

[최대한 세이브를 앞쪽에 박아두고, 웬만하면 세이브 포인트는 자주 갱신하지 않는다.]

왜냐?

세이브를 계속해서 외치다가는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좆같은 세이브 지점에서 막혀버릴 수도 있으니, 최대한 앞쪽에 세이브를 박아두고 만약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이브 포인트를 차라리 여러 곳에 박아놓을 수 있다면 이곳저곳에 세이브를 박으며 돌아다니겠으나,

딱 한 개의 세이브 포인트만이 있다면 최대한 앞쪽에 박아둬야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다!

'일단 꿈속에서 나왔던 장소가 어디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니까... 최대한 그 정보를 얻어내면서 돌아다녀야 해.'

허나 우선은 그 정보를 얻어내는 것보다도 네바와 필마르크라는 발등의 불을 꺼야하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야 그녀들을 제압하고 본격적인 이세계 모험을 시작할 수 있을지 그는 진지하게 고민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고민을 위해서는 훌륭한 결론을 도출해낼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기에, 치치를 향해 어떤 식으로 두 괴물을 막아낼 것인지 묻는 것이다!

"...델린."

허나 정보를 캐내는 데에 너무 성급하게 임했던 것일까?

치치는 계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델린에게 점차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왜, 왜요?"

쫄아버린 델린!

그가 구사하는 세이브&로드 전략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한다면,

세이브가 아주 앞쪽에 박혀있기 때문에 로드 또한 자연스레 [더욱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

그 말인즉슨, 길을 돌아다니다가 몇 번 정도 따먹히거나, 갑자기 여자들이 흥분해서 하루종일 착정을 한다거나,

웬 양아치들한테 붙잡혀서 능욕을 당한다거나, 주점에서 성희롱을 당한다거나!

그 정도는 최대한 꾹꾹 참고 넘어가며 한 번의 [세이브&로드]에서 최대한 길게 버텨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언제까지고 이전 세이브 포인트 지점에서 머물게 될 뿐이다.

이세계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뭐, 각설하고!

아무튼 그래서 델린은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치치에게 쫄아서 벽에 등이 닿을 때까지 뒤로 물러났으나,

퍽-!

"델린. 누나 말 잘 들어."

그를 오히려 벽으로 몰아넣은 것이었을까.

치치는 델린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두 팔로 그의 어깨 너머의 벽을 퍽- 치고는,

그 상태로 아주 가까운 얼굴 간격을 유지하며 말하였다.

"미안하다고 했잖니. 응? 미안하다고 몇 번을 더 말해? 아르웬을 바래다준 다음에 내가 벌써 다섯 번이나 너한테 사과했어. 그렇지?"

"아, 아... 그, 그랬..."

"둘이 숲 속에서 걸을 때 말했잖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다섯 번이야. 처음에는 너한테 미안하다고 했고, 그 다음에는 진짜로 미안하다고 했고, 세 번째로는 용서해달라고 했고, 네 번째로는 정말 미안하다고...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너한테 다시 미안하다고 했어. 마지막에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했지."

그렇다.

둘 사이에서 흐르던 미묘한 분위기는 여러 번에 걸친 사과와 그 사과에도 제대로 마음을 풀지 못한 델린으로 인해 야기되던 것!

"네, 네엣... 그랬었...죠오..."

"근데 너, 방금 또 말했네? 그렇지? 좋아. 여섯 번째로 사과할게. 미안하다고."

이게 미안해하는 여인의 태도일까?

델린은 어이가 없긴 하지만, 당장 눈앞에 들이닥친 그녀의 매서운 감정 표현에는 찍소리도 꺼낼 수가 없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신체적인 차이가 둘의 행동을 결정짓는다.

델린은 벌벌 떨고, 치치는 그 벌벌 떠는 델린을 계속해서 쏘아붙인다.

"델린 너... 누나한테 그런 식으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도 너 때문에 추방당한 상황이잖니?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의 차갑게 타오르던 눈동자가 잠시 겁에 질린 델린의 눈동자를 떠나 아래쪽을 향한다.

그 눈이 델린의 몸을 훑는다...

"..."

갑작스레 다물어진 그 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에도 너무 많은 것을 델린에게 전해준다.

"자, 잠깐만요... 죄송해요. 네... 그냥, 저도 모르게..."

"..."

아니, 씨발...!

분명 잡혀서 이리저리 돌려먹히고, 능욕당하고, 괴롭힘 당한 쪽은 나인데...!

왜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되는 거지?

"죄송해요, 진짜... 안 그럴게요...!"

허나 어쩔 수 없다.

술을 처먹고 들어온 남편이 쥐잡듯이 패도 아무런 사회적 제재도 받지 않았던 시대가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그 시대보다도 더욱 인권이 바닥을 치는 세상이다.

델린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아니.

그의 생존 본능이 정신을 차리도록 만든다.

잠시 자신을 놓고 겨루던 두 여인 사이에서 [선택하는 쪽]이라 생각했으나,

그는 그저 [끌려다니는 놈]일 뿐이다.

몸을 보고, 외모를 보고, 성격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살갗을 느끼고!

그런 후에 자신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버린 여인들에게 [소유물]처럼 끌려다니는 입장이란 말씀!

"...그래. 미안하다고 했잖니. 누나도 후회하고 있단 말이야. 널... 널 만난 다음부터 뭔가..."

치치가 가슴팍에 손을 얹는다.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가슴은 작은 축에 속하지만,

그렇기에 그 심장과 마음에 더욱 빠르게 와닿을 수 있는...

그런 여인.

"뭔가 좀 이상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마..."

뭉클해지는 감각.

그러면서도, 어딘가 아려오는 감각.

"사랑이야. 그래... 누나는, 델린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정말로."

보통 사랑을 고백할 적에 이렇게 벽으로 확 밀어놓고 죽일듯 노려보다가 하나...?

"..."

치치는 잠시 말없이 델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망울에는 그녀 자신조차 느낄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델린. 그 수인하고 더는 이야기하지 마렴. 알겠니?"

"그, 그래도 네바나 필마르크한테서 도망치려면..."

"...누나한테 말대꾸를 하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었던 멘트였으나,

이번에는 엉덩이에 불이 붙을 만큼 짜릿한 손찌검이 이어지지 않고,

"...츄읏."

조금은 거칠면서도, 조금은 애틋한,

그런 진한 키스가 길게 이어졌다.

그 길고 긴 키스는 그렇게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다가도,

"델린 군? 출출하지 않소? 다같이 뭐라도 좀 먹..."

카에데의 갑작스러운... 노크 하나 없는 등장에 잠시 멈추었다가,

"...우읍, 페흣..."

오히려 그 늑대를 보고 더욱 세차게 혀와 팔을 감아오는 치치로 인해 보다 찐득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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