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같이 따먹히고 다닙니다-130화 (130/218)

< 130화 > Ep.8 - 미안하지만, 이제 그 여자들은 못 옵니다

드워프들은 기쁜 마음으로 기울어진 건물들을 다시금 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가에는 다시금 미소가 찾아왔고, 모두들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르뮌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고자 부지런히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세 분은 그냥 즐기고만 계시길! 아이고, 은인 분들한테 드릴 맥주 저장고는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운좋게도 맥주 저장고를 빗겨간 용의 습격 덕분에, 세 명은 질 좋은 드워프의 맥주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델린도 분위기에 취해 맥주를 들이켰고,

에바도 거절하지 않고 잔을 받아들었다.

"근데, 에바 씨는 술을 마시면 안 되지 않나요...? 아직 어린데..."

"어리다뇨! 제가 당신보다 나이도 더 많을걸요, 흥!"

드워프들의 보답을 받으며 둘은 함께 잔을 기울였다.

"저보다 나이가 많아요...? 몇 살이신데요?"

"스물 하나요."

입이 뾰루퉁하게 튀어나와서는 작게 중얼거리는 에바의 말을 듣고, 델린은 그만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스물 하나라고?

아니, 스물 한 살인데 발육이 저렇...다고?

네바의 동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몹시 작았고, 마치 아이같게 느껴졌다.

"이제 말 좀 그만 거시죠!? 남자랑은 말 안 섞을 거니까!"

다만 그녀는 마치 작은 고슴도치처럼 늘 말에 날이 서있었다.

델린은 이런저런 사연이 있나보다- 하고 넘기고는, 드워프들의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였지만, 드워프들의 맥주는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맥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맛이 좋았고, 술을 잘 모르는 델린조차도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

그런 훌륭한 술을 즐기지 않는 건 네바 뿐이었다.

네바는 어째서인지 술을 그다지 마시지 않고, 그저 몇 모금 마시는 시늉만 하고는 델린과 에바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아까 전에는 펑펑 울면서 계속 먼저 말 걸어놓고는..."

"내, 내가 언제 그랬는데요! 조용히 해요! 하여튼, 이래서 남자들이란! 죄다 멍청하고 더러워!"

맥주의 거품이 잔뜩 묻은 작은 남녀의 입가와는 달리,

네바의 입가에는 흐릿한 미소만이 묻어있었다.

그녀는 점차 취기가 오르는 둘을 바라보며 그저 가만히 앉아, 조용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근데, 네바 누나. 왜 다른 누나들은 안 돌아와요? 벌써 한 시간이 넘었는데..."

델린은 까탈스러운 에바와의 대화를 마치고, 네바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 질문에 네바는 잠시 맥주를 몇 모금 들이마시고는 뜸을 들이다가, 작게 대답했다.

"나중에 따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나중에요...?"

"용의 둥지에 있는 보물들을 챙기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내려와서 둘을 지키고 있기로 했어요."

델린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용같은 무시무시한 존재를 잡았으니 아마 이것저것 챙길 게 많겠지-' 라며 생각하고는 자신의 잔을 마저 비웠다.

맥주는 평소보다도 맛이 좋았다.

그렇기에 평소보다도 많이 마시게 되고,

점점 머리가 알딸딸-해진다.

"그래요, 네... 그, 그래도... 빨리 떠나야해요. 그러니까, 빨리 그쪽으로 데려다 주세요. 빨리 출발해야..."

취기가 오른 델린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네바에게 어서 떠나자며 재촉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내일부터는 더 빨리 이동할 수 있으니까."

네바는 비틀거리는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안고는, 그를 대신해 에바의 옆자리에 앉는다.

에바는 삐쭉 내민 입을 더욱 멀리 내밀며 고개를 홱 돌렸지만.

"..."

이전과는 달리, 딱히 자신의 언니에게 모진 말을 내뱉거나 하지는 않았다.

셋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맥주와 피로의 노곤함 속에서...

***

“으음… 흐으응…”

델린이 다시 눈을 뜬 건,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문득 위화감을 느낄 때였다.

덜컹거리는 느낌과는 달리 그의 몸은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이상하게 경직되어 있었고,

“으응… 읍…?”

그와 마찬가지로 입 또한 바싹 말라서는, 이상한 헝겊으로 틀어막혀 있었다.

힘이 약한 그는 본능적으로 신체의 위협을 느꼈다. 그것은 약자를 위한 신의 배려와도 같았다.

약자는 더욱 민감해야했다. 그렇기에, 여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눈을 뜬 것일지도 모른다.

“…”

델린은 네바의 등 뒤에 얹혀져 있었다. 마치 지게같이 생긴 것에 꽁꽁 묶인 채로 말이다.

“흐읍… 끕…”

델린은 발버둥을 쳤다. 그가 묶여있는 지게가 몸짓을 따라 덜컹거렸고, 그 덕택에 옆에 함께 묶여있던 작은 마녀 또한 눈을 떴다.

“흐읍!?”

“흡, 흐읍…”

둘은 서로를 마주본다.

숙취가 아직 가시지 않아 지끈거리는 머리와 불편한 시야 안에서, 둘은 서로를 보며, 자신도 지금 저렇게 묶여있다는 작은 추측을 해낸다.

“하아…”

어딘가로 끌려가느라 덜컹거리고 있던 시야가 멈춘다. 그와 동시에, 델린은 뒷편으로부터 들려오는 네바의 목소리를 듣는다.

“델린, 일어났습니까.”

먼저 델린을 찾는 네바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뒤를 슬쩍 엿보고는, 자신의 동생까지 깨어난 걸 눈치챈다.

“에바. 너도 일어났구나.”

마치 짐짝처럼 네바의 등에 얹혀진 둘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해 바들바들 떨며 몸부림친다.

“으읍! 으그읍!”

“흐으읍…!”

다시 시야가 움직인다.

셋은 사뭇 싸늘한 밤공기를 느끼며 어딘가로 향한다.

“서둘러야 신의 정원까지 갈 수 있으니, 쉬는 건 나중으로 미룹시다. 아시겠죠.”

네바는 둘을 짊어진 채 걷는다.

힘든 기색 따위는 내비치지도 않는다.

실제로 힘들지 않으니까.

그녀는, 둘을 업고 가고 있다는 게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네바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다.

그녀의 발은 제법 험한 드워프들의 땅조차 사뿐사뿐 즈려밟으며 나아간다.

“…”

그럼에도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씩 늦춰지는 건,

“아니, 조금만 쉬었다 가죠.”

그동안 미뤄왔던 사랑 때문일 것이다.

평탄한 바닥.

작게 피워진 모닥불.

살포시 깔린 얇은 모포.

“에바. 잠시 누워서 눈 좀 붙이고 있으렴.”

“으으읍!”

네바는 자신의 여동생을 한켠에 눕혀두며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춘다. 에바는 이리저리 꿈틀대며 무어라 말하려는 듯이 저항하지만, 그래봤자 묶여있는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델린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해 있다. 꽁꽁 묶인 그는,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도록 눕혀진 에바를 바라보다가, 곧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네바를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흐으읍! 으으읍!”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개를 젓는 일 뿐이다. 그 외의 일들은 전부 네바의 몫이다.

“델린.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제 그 여자들은 못 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셋이서 돌아다니게 됐습니다.”

네바는 델린의 위에 살포시 올라타서는, 식은땀으로 가득한 그의 뺨을 조심스레 쓸어내린다.

“으으으읍!!”

그 상냥한 손길로부터 델린은 공포를 느끼고 발버둥을 치지만.

네바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갑옷을 풀어헤치며 정사를 준비한다.

“그동안, 정말 많이 참았습니다. 계속 참았다고요…”

힘겨운 사투는 물론이고 몇 시간에 걸친 행군으로 인해 네바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선 악취라 할 수 없는 고혹적인 내음이 새어나온다.

델린은 그것의 아래에 깔려, 틀어막힌 입을 대신해 코로 네바를 온전히 느끼며 바들바들 떤다.

이미 몇번이고 강압적으로 당했던 경험이 있으니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여기사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그것들과는 달리,

차라리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다.

“으으읍! 브읍…!”

델린은 틀어막힌 입으로나마 네바의 이름을 외치며 자비를 구한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닥쳐온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네바의 고요한 눈을 바라보며 애원한다.

“끄흡, 으으읍…”

델린의 울먹거리는 눈이 네바의 푸른 눈동자에 새겨지지만, 네바는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망가져버린 기사에게는 사내의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저, 그의 음란한 몸뚱아리와 색기만이 전해질 뿐.

“저도 사랑합니다.”

몸을 한껏 달아오르게 만드는 델린의 모습으로 인해 네바는 그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욕정을 풀어헤치려 하였…

으나.

“…”

결국 그녀는 그저,

조용하게 델린을 끌어안았다.

그러다가 문득,

무엇인가 떠오른 것처럼 일어나,

델린을 끌어안은 채 그를 에바의 옆에 눕혔고.

“둘 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지킬 거니까…”

부드러운 품으로 둘을 끌어안아 노곤한 몸을 달래었다.

다행히도 그들을 탐하러 오는 마물들 따위는 없었다.

네바가 뒤집어썼던 용의 피와, 신성력이 가득 담긴 성녀의 피는,

감히 마물들이 다가설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혈이었으니까.

그들의 보금자리에는 불안정한 숨소리 세 개만이 가득했다.

매끈하면서도 탄력적인 기사의 몸에 끌어안긴 채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작은 숨소리 두 개.

그리고, 애써 욕정을 참았으나.

“…흐읏, 읍…”

자신이 진정 지키고자 하는 두 소중한 존재를 느끼며, 달라오른 몸을 어루만지며 내뱉는 숨소리 하나.

델린은 점차 풀어지는 네바의 모습을 새기며 제발 그대로 혼자 위로를 마치길 간절히 빌었으나.

“하아…”

네바는 그 간절한 기도에는 아랑곳않고 다시 일어나서는, 델린을 품에 안은 채 나아갔다.

헌데 그러다가도 또 멈춰서고,

또 델린을 품에 안고…

마치, 네바의 불안한 마음을 말해주듯이,

그녀의 발걸음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끕, 흐읍…”

하지만 네바는 결국 여인들에게 교태를 부리며 헤실헤실 웃던 델린의 모습을 떠올렸고.

결국 마지막에는 훌쩍이는 델린의 소리가 에바에게 그대로 들릴 법한 짧은 거리에서.

그의 옷을 한꺼풀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