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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이 따먹히고 다닙니다-172화 (172/218)

Chapter 172 - Ep.11 - 흑마법사와 세계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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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은 내 눈까지 틀어막은 채로 끌고갔다. 세계수라는 목적지만을 알뿐 나머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외부인임에도, 그녀들은 내 눈을 꽁꽁 묶어 경로를 외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삼엄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세계수로 끌려가는 동안에도 갑옷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외치는 경직된 목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소리가 끈임없이 들려왔다.

"흐으으..." '적당히 좀 하지...'

양 옆으로 엘프들에게 팔을 붙들린 채 걷는 입장에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어차피 눈을 뚫어놨어도 길도 다 못 외울 것 같구만, 뭘...

"아가야, 세계수 님께는 실례를 범하면 안 된단다. 알겠지? 엄마들이랑 누나들은 널 믿을게. 세계수 님께도, 우리 가족들한테 했던 것처럼 착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렴."

가족은 무슨. 세상에 어느 가족이 자지를 붙들고 하루종일 쪽쪽 쥐어짜냐고.

그 어이없는 호칭에 비웃듯이 콧방귀를 뀌는데도 엘프들은 방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진짜 미친년들이다. 말도 안 통하는 답없는 미친년들.

"우리 아가는 잘 할 거야. 세계수 님을 잘 보필해드리렴. 알았지?" '미친년들. 보필은 무슨.'

나무에다가 대고 물뿌리개라도 뿌려줘야 하나?

아니면 뭐, 세계수가 살아서 움직이기라도...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만화나 소설에서도 세계수가 인간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옛날에 했던 게임에서도 하나 있었고...

그리고, 그 뒤늦은 깨달음처럼, 내가 마주한 세계수는 높디 높은 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엘프들이 눈을 가린 안대를 벗기자마자 눈치챌 수 있었다.

다른 엘프들과는 다르게 나무줄기나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있고,

그런 상태로 큼지막한 나무, 세계수에 등을 기대어 잠자고 있는 여인... 아니, 소녀.

"흐읍..."

몸은 새하얗고, 머리는 나무를 닮은 초록 빛깔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모양새는 마치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사춘기 소녀같은 모습.

"하아암..." "세계수 님, 부르셨던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엘프들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그들의 앞까지 끌려가 본의아니게 세계수를 마주하게 된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 잠시 당황하지만,

"아, 정말?"

세계수의 당돌하고 귀여운 음성이 내 당황을 황당함으로 바꾼다.

"안녕! 안녕안녕안녀엉!"

그것은 폴짝 뛰어서 내 앞으로 달려와서는, 두 손을 꺼내어 잡고 위아래로 잽싸게 흔들며 악수를 나눈다. 여전히 묶여있는 손목이 조금 아플 정도로, 그녀의 환영은 격하다.

"다들 이제 가도 돼요! 안녕!" "부디 좋은 시간 보내시길..."

엘프들이 물러난다.

끝도 보이지 않고, 얼마나 큰지 잴 수도 없는 나무 아래에는,

나와 헐벗은 소녀 하나만이 남는다.

"나 진짜 감동했어! 너가 준 선물, 진짜 최고였어!"

이 해맑은 소녀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잠깐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난 곧 그녀가 맛있게 즐겼다는 [선물]의 의미를 깨닫고야 만다.

'내, 내 정액 말하는 건가?'

어떤 식으로 즐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세계수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니 나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나쁜 쪽으로 흘러간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 볼래? 응? 빨리!"

세계수는 곧바로 내 손을 이끌고는 굵직한 나무 기둥 아래를 폴짝폴짝 뛰며 어딘가로 향했다. 물론 그녀의 손에 이끌린 나는 곧바로 엎어져서 머리를 나무에 박고야 말았다. 다리가 족쇄로 묶여있는데, 걷는 건 괜찮아도 뛰는 건 무리다.

"으, 으읍...!" "아아, 그거 때문이구나! 잠깐만~"

그녀는 곧바로 내 족쇄에 손을 얹는가 싶더니...

"짠! 이제 됐지?"

곧바로 그것을 흙으로 뒤바꾼다. 두꺼운 가죽으로 된 족쇄가 일순간에 사라지고, 다리에는 자유가 돌아온다.

"읍? 으읍!" '푸, 풀어줄 수 있는 건가?'

난 곧바로 세계수의 앞에 손까지 들이밀었다. 손을 막고 있는 수갑까지만 푼다면, 곧바로 재갈을 풀고 로드를 외칠 수 있으니까.

"읍! 읍!" '이것도 좀 풀어줘...!'

그렇지만, 손을 내미는 행위를 잘못 이해한 것일까.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잡고, 그대로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빨리 가자!" "으으읍!"

'그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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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딘가의 어둠 속, 어딘가의 깨어진 공간...

그곳을 거닐고 있는 세 여인이 있다. 온몸을 문신으로 도배하듯 새긴 고대의 엘프 하나와, 비틀거리며 걷는 마녀 하나와, 걸으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시가를 피우는 성녀 하나.

그들은 칠흑과도 같은 암흑 속에서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걸어간다. 별빛조차 없어서 고통스러운 어둠 속을 힘겹게 걸어나간다.

"언제까지 걸으려는 건데...!"

마녀가 이를 갈며 엘프의 뒤에 대고 외친다. 길게 늘린 지팡이로 체중을 지탱하며 걷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녀는 지쳐있다. 마법의 반동이 그녀를 갉아먹고 있다.

"..."

그런 마녀의 물음에도 엘프는 계속해서 걷기만 한다. 아니, 마녀가 말을 한 뒤에는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도 같다. 그렇지만 엘프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녀는 계속 걷는다.

"난 곧 죽는다."

걸어나가는 엘프의 발걸음 뒤로, 청아한 목소리가 넘어온다. 보랏빛 마나를 흩뿌리며 나아가는 엘프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치치와 헬렌은 서로를 쳐다본다.

"너희들, 강하군. 내 힘을 다 썼다. 마지막 남겨둔 힘마저 다 썼지. 이젠 죽을 일만 남았고."

갑작스레 시야가 밝아진다. 빛줄기 하나 없던 애매한 공간에 바람이 불고, 햇빛이 들어온다.

"...여긴?" "내가 지내는 곳이다. 들어와라.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치치와 헬렌의 앞에는 묘한 집이 나타나 있다. 삐쩍 말라버린 나무들이 허리를 꺾어 모여든, 둥글고 넓지만 비참한 공간...

그곳의 앞에 엘프가 다가서자 죽어있는 나무들이 몸을 열어 문 역할을 한다. 사람 하나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된 그 문으로 엘프가 들어서고, 치치와 헬렌도 잠시 망설이다가 그곳으로 따라 들어간다.

"우린 세계수를 만나러 간다. 여긴 잠시 들린 거니까."

그 내부는 외부와는 달리 나름대로 집처럼 꾸며져 있다. 그리고, 그 집의 주인인 엘프는, 제법 잘 정돈되어 있는 선반이나 탁자 위를 조심스레 훑으며 짐을 챙긴다.

보랏빛 마나에 일렁이는 그녀의 머리칼을 보며 치치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묻는다.

"다, 당신 도대체 뭐예요? 뭐하는 엘프냐고요!" "네가 알 필요는 없다. 곧 죽어서 재가 될 악마니까."

엘프의 말처럼, 그것의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마나는 어딘가 이상하다.

마치 도망치듯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 마나들이 빠져나간다는 건, 곧 그것의 본래 주인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과도 같으니...

"...선을 넘었나요?" "그래."

이번에는 헬렌이 엘프에게 물었다. 그리고, 엘프는 짧게 대답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둘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선을 넘었다는 게 뭐예요? 무슨 말이냐고요!"

그 대화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찾는 건 마녀 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용서하지 않았다. 늘 완벽했고 늘 모든 걸 알았던 자신보다도, 술이나 담배에 빠져서 사는 여인이 무언가를 자세히 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당신, 전부터 수상해... 아니, 그 얘기는 나중에 해요. 나중에 따로 하자고요. 지금은... 흑마법사! 아니, 리치! 당신! 빨리 말을 좀 해봐요!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다 끝내러 간다. 너희는 날 따라오면 되는 거다. 다른 여자들을 죽이기 싫으면 조용히 하고 따라오면 되는 거지."

다시 암흑이 찾아든다. 엘프의 굴곡진 몸 위에 조심스레 얹어진 짐들은, 마지막으로 주인과 함께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알트리샤!"

그리고, 그 주인의 이름을, 치치가 마지막으로 외친다.

"당신 이름, 맞죠? 당신이 아까 쓴 마법, 그건... 고문헌에나 적혀있는 마법이에요. 몇 세기 전에 살았던 천재 마법사가 만든, 전설에나 나오는 마법이라고요...! 당신 도대체 뭐야?"

그녀를 연구하며 공부했던, 알트리샤라는 전설적인 마법사를 우상으로 삼아 나아갔던 치치만이 알고 있다.

전설 속 마법사가 사용했던 마법과, 그녀의 흔적들을...

"..."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이름에 엘프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본다.

그것의 눈에는 무표정하고 시니컬한 시선이 아니라, 구슬픈 과거가 담겨있다.

"그 이름은 버렸어." "당신이 왜 리치가 된 거예요! 다 가졌잖아! 부, 분명... 마왕까지 다 물리치고, 온 세상 사람들한테 환영받으면서 돌아왔잖아! 그런데 왜..."

장생종인 엘프라고 하여도 영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진작에 죽었어야 하는 존재이다.

알트리샤, 전설 속에 나오는 용사 파티의 일원이자,

가장 널리 이름을 알렸던 마법사이자,

위대한 마법사. 최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마법사. 완벽했던 마법사.

고귀했고, 그녀를 따라갈 자가 없었고, 모두가 그녀를 칭송했고,

모두가 그녀를 노래했다. 그녀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상관없는 이야기야."

알트리샤는 보랏빛 마나를 흩뿌리며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걸음은 흔들릴 줄을 몰랐다. 전설 속의 마법사는 여전히 위대했다.

"이제 다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알트리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지팡이를 대신해 쥐고 있는 작은 목걸이 하나를,

그녀는 조심스레 어루만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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