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 근처에는 에이라가 탈 마차가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근심 걱정 가득한 얼굴로 블룸이 그 곁을 우직하게 지키고 서 있었다.
소블래츠 출장.
에이라가 소블래츠로 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외가인 조번 가문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지나스도 에이라도 이 출장에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워낙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낮은 확률이라도 한번 걸어 보자는 시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영지는 먹고 죽으려도 뭐가 없었으니까.
영주인 그가 직접 가는 것도 사실상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무능한 행정관 란 그래프니를 보내는 건 말도 안 되고, 유능한 총관은 유능하기 때문에 안 된다. 아직 영지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총관은 그런 면에서 에이라보다 배는 더 많은 일을 해치울 수 있었다.
기사단장인 블룸을 보내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 안 그래도 저 허접한 목책이 지난밤에 떠돌이 마수의 습격을 받아 일부 부서진 데다 지나스에게 블룸의 실력이 꽤 괜찮은 편이라는 말까지 들은 이상 에이라는 기사단장을 영지 밖으로 내보낼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도움을 요청하는 건데, 최소한 혈육인 그가 나서야 좀 정성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 외에 성벽 석축 작업 때문에 석공도 구해야 하고, 식량이나 여러 잡화가 부족하니 좀 더 싼 가격에 새 무역상도 터야 하고, 간 김에 여러 정보도 구해 봐야지. 겸사겸사 일 잘했다고 지지율도 오르면 좋을 텐데.’
에이라가 퀘스트 창을 불러왔다. 12퍼센트였던 지지율이 13퍼센트까지 올라 있었다. 요즘 그의 지지율은 계속 12퍼와 13퍼를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15퍼센트를 넘어야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을 터.
굳게 마음을 다지며 마차로 향하자 아니나 다를까 굳은 얼굴을 한 블룸이 간절하게 말했다.
“영주님, 지금이라도 말씀만 내리신다면 바로 말을 타고 출발하겠습니다. 부디 제게 영주님의 호위를 맡겨 주십시오.”
볼니의 군대가 몰려왔을 때처럼 블룸은 몹시도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지 없이 에이라가 ‘이거 항명?’ 하고 묻자 간단히 패배하고 말았다. 에이라는 이거 보라며 지나스를 쳐다보았으나 이 젊은 총관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곧 최종 점검이 끝나자 얼마 안 되는 가신들이 나란히 서서 에이라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영주님.”
에이라는 잠시 가신들을 바라보았다. 망해 가는 빚더미 영지에 그나마 충심과 애정으로 남아 있는 소중한 가신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에이라가 마차에 올랐다.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로 새벽을 요란하게 깨트리며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솔라의 가신들은 마차가 멀어져 점처럼 보일 때까지 바라보다가, 이내 각자의 근심을 품고 흩어졌다.
영주성, 멸망까지 219일 남은 때였다.
❄
“으윽, 내 엉덩이.”
마부가 마차를 멈추고 문을 열어 주자 에이라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마차에서 내렸다. 여기까지 충실하게 말을 달린 마부가 깊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영주님, 그럼 저는 저기 저 여관에 가 있을 테니,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응,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했어.”
식사라도 든든히 하라며 에이라가 소량의 마석을 쥐여 보내 준 뒤 피곤한 한숨을 쉬었다.
솔라에서 소블래츠까지는 마차로 달려 약 열흘 거리였다. 거의 쉬지도 못한 채 승차감이 별로 좋지 않은 마차에 내내 실려 오려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달움 협곡으로 향할 때와 달리 그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 따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끙, 하고 기지개를 펴던 에이라가 깊은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소블래츠의 대도시군.”
맛집이라고는 고기찐빵집 하나뿐, 도통 상권이 발전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솔라와 달리 소블래츠에서는 여기저기서 부티가 흘렀다. 항구에 인접한 도시답게 이국적인 향신료와 바다 냄새가 훅 풍겨 왔다.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보석점, 잡화점, 고급 레스토랑, 다채로운 이국의 물건들과 더불어 활발한 상거래가 특징인 도시였다.
에이라가 솔라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이었다면 놀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에 열심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 대륙에서 가장 번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영지 트라스타사의 대도시에 가 본 적이 있는 그에게 이 상업 도시는 그렇게 놀라운 풍경은 아니었다.
‘소블래츠에서는 이자에 대해 별말이 없었지.’
이자를 갚을 기한이 촉박해 왔을 때도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볼니와는 달리 솔라에 있을 ‘무언가’가 그렇게까지 탐나지는 않은 것일까? 에이라는 소블래츠와 볼니의 태도가 차이 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에이라는 일단 그의 외가인 조번 가문을 찾아 나섰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 길은 알 수가 없었지만 그에게는 유능한 정령이 한 마리 있었다. 그가 손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우리 총명한 돌멩이, 조번 가문이 어디에 있지?”
[:3♡ 총명하고 똑똑한 돌멩이 로딩 중…….]
10여 분의 로딩 끝에 주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조번 가문에 대한 지리를 읽어 낸 돌멩이가 반투명한 지도 창을 띄웠다.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차에서 지낸 탓에 온몸이 뻐근했던 에이라는 굳은 몸도 풀 겸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조번 가문으로 가는 길에 소블래츠를 살펴보니 확연히 솔라와 비교가 됐다. 기후도 좀 더 따뜻하고 옷에 사용된 옷감에서부터 팔고 있는 다채로운 음식들까지 무엇 하나 솔라보다 빠지는 게 없었다. 예전이라면 별생각이 없었겠지만 영주가 되어 보니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여유로운 걸음을 옮기던 중 갑자기 알림 창이 떴다.
[Tip. 소블래츠의 영지민들 사이에 용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결코 무시 못 할 내용에 에이라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용에 대한 소문? 미간을 찌푸리며 알림창을 노려보고 있자니 곧이어 새로운 퀘스트가 떴다.
<서브 퀘스트!>
*소블래츠의 영지민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20 이상의 호감도를 쌓아 보세요. (0/5)
보상: 용에 대한 소문 (1), 용에 대한 소문 (2), 용에 대한 소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