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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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등을 스쳐 지나갔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용의 짝이 될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들은 어느 용의 짝으로 완전히 맺어지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용을 불러 모아.”

야누의 설명을 들은 에이라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의 시선이 다시 서른두 개의 마석으로 향했다. 야누가 솔라에서 머물면서 사냥한, 정확히는 제거한 용들의 마석을. 에이라를 바라보는 붉은 용의 시선에서 끈적거리는 소유욕이 뚝뚝 흘러내렸다.

“짝이 갓 태어나면 어느 용이라도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어. 막연하게 어느 방향에 있겠다는 건 알지만 정확한 위치를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까 한 장소만 배회하게 되지.”

야누가 넌 특히나 더 그랬어, 하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가 동족과 마주치면 경쟁자로 간주해서 죽이고 또 죽이는 거야.”

“그러면, 네 말은…….”

에이라는 자신이 얼마나 어린 나이에 미궁에 언제 들어갔는지를, 그리고 미궁에 얼마나 강력한 은신 마법이 걸려 있는지를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미궁의 마법사는 공간전이 마도구를 사용하여 에이라를 미궁에 데려갔다. 그 말인 즉, 에이라의 최종 흔적은 솔라에서 끊기게 된 것이다. 그가 미궁에 들어간 사이 수십 마리의 용이 자신을 찾아 솔라를 배회하는 상상을 했다. 절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짝을 못 찾는 경우가 드문 편이거든.”

에이라가 미궁에 머무르고 있던 시간은 자그마치 20년에 가까웠다…….

“소질에 따라 용을 불러들이는 수도 달라. 많아 봤자 서넛 정도에 그치는데 네가 유독 많긴 했지.”

야누의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 그건 모든 용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감정이었다. 바로 동족을 향한 뿌리 깊은 짙은 혐오와 증오다.

“이 좁아터진 땅에 얼마나 벌레같이 꼬이는지.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니 그나마 몇 년 전부터는 솔라에 얼씬도 하지 않더군.”

야누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에이라는 마치 정신적으로 얻어터진 것처럼 머릿속이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그 소질이란 게 뭔데?”

“죽은 용들의 기억에 따르면 대충 이런 느낌인 것 같았지. 과연 용과 얼마나 교류를 잘 이어 나갈 수 있는 인간인가…….”

야누는 그 소질이 에이라가 마수며 용에게 가지고 있는 강렬한 호감과 흥미라고 여기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에이라가 떠올린 건 돌멩이의 능력, 정확히는 자신의 개화 마법이었다.

마수며 용을 사랑하는 연구자지만 지금만큼은 온전히 기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미궁에 가 있는 사이에 솔라는 몇 번이나 잿더미가 될 뻔한 것이다. 야누가 솔라에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의 시선이 용의 마석에 못 박혔다. 영주들은 이 마석을 탐내 자신의 도시를 노렸고, 용들은 짝을 탐내 이 땅을 노렸다. 본의 아니게 한 용과 인간이 합심하여 솔라를 멸망으로 차근차근 몰아넣고 있던 셈이다.

그는 문득 야누가 카르칼을 토벌하던 날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의 방어막을 두드리던 어느 용의 손은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하던 일은 모두 내팽개치고 달려와 그 용을 단숨에 잡아 죽이던 야누의 고요하고도 무자비한 살기도 떠올랐다. 그 용도 분명 야누처럼 짝을 손에 넣고 싶어 했겠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이야?”

퍽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에이라가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인간의 다정함을 흉내 내는 짐승의 붉은 눈동자가 에이라의 얼굴을 핥듯이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그는 혹여라도 자신의 짝이 다른 용에게 가당치도 않은 동정심을 보이는 기색이 있을까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만약 그러기라도 한다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저지르고 말 표정이기도 했다.

에이라는 그제야 야누가 자신에게 다른 용들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를 완전히 이해했다. 야누가 경계하는 건 용에 대한 에이라의 호감과 인간이라면 응당 지니게 되는 동정심일 터였다. 자신이 야누가 세워 둔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을락 말락 하는 중이었음을 깨달은 에이라가 황급히 자신의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솔직히 말해 봐. 지금 솔라에는 용이 없지?”

“나 외에는 없어.”

“그럼 솔라 밖에는? 볼니와 소블래츠, 혹은 그 외의 다른 땅에는?”

이제는 더는 에이라에게 비밀을 숨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야누가 순순히 대답했다.

“있지. 한 몇 마리 정도.”

“몇 마리라면 정확히 몇이라는 거야?”

“글쎄, 나도 그것까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급기야 에이라가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솔라가 멸망을 달려가는 이유는 소블래츠와 볼니의 빚 때문도, 영주성 아래 파묻혀 있던 마석 때문도 아니었다. 이제는 차라리 소블래츠의 용이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가 행복할 지경이었다.

몇 마리나 되는 용이 솔라에서 뒤엉켜 싸우면 당연히 그 어떤 영지라도 멸망하겠지. 멸망하고도 남겠지, 아무렴……. 에이라가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는 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가 희미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제 비밀 연애는 관둬.”

에이라가 용 밭에서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신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신제는 내가 너의 짝인 걸 알고 있어. 분명히 그 사실도 소블래츠에 흘렸을 거야. 만약 네가 지난번에 죽인 용이 소블래츠의 용이 아니라면 더더욱…….”

인간을 얼마나 무시했는지 그저 용들에게 자신이 짝이라는 것만 숨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야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설명하는 도중에 에이라는 불현듯 또 다른 진실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지난번 야누가 죽어도 되는 인간을 내어 달라고 요구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야누는 에이라가 내준 사형수를 며칠 동안 곁에 끼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목적은 아마도 사형수를 야누의 짝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것일 터다.

용이 짝을 고르는 기준은 상대를 죽일 수 있는가, 없는가였다. 그렇다면 짝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죽인 건 아마도…….

두 동강 나 죽은 사형수, 두 동강 나 죽은 볼니의 병사들. 그리고 두 동강 나 죽은 그의 형.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그의 가족을 죽인 게 바로 소블래츠의 용이었다. 이가 빠득 갈리고 절로 주먹을 꽉 쥐고 말았다. 마음속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를 용을 향한 증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내보이며 에이라가 물었다.

“소블래츠의 용이 내 가족들을 죽였지?”

이 말을 듣자 놀랍게도 야누가 웃었다. 그건 에이라의 말이 웃겼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것이었다. 인간이라면 결코 웃기지 않는 상황을 진심으로 우스워하면서 야누가 불끈 악문 에이라의 턱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이제 왜 용들이 짝과 잘 안 되는지 이제 알겠지?”

“……그래, 아주 잘 알겠네.”

에이라가 소블래츠의 용을 증오하는 게 못내 마음에 들었는지 야누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저거 내가 처리해도 되나? 소블래츠에 나불나불 불지 말아야 할 것도 다 불어 버린 인간이잖아. 이제는 별 쓸모도 없을 텐데.”

“안 돼.”

에이라가 딱 잘라 말하자 신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는 곧장 절망에 빠져들고 말았다.

“지난번에 란 그래프니의 잘못을 봐주는 대신에 첩자에 대한 처분은 기사단장에게 맡기겠다고 약속했거든.”

“뭐? 에, 에이라! 원하던 건 모두 알려 줬잖아! 나, 날 풀어 주면 다시는 솔라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어! 평생 미궁 밖으로는 나가지도 않을게!”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기에 에이라는 신제가 애걸복걸하는 걸 손짓으로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읍읍, 하고 다급하게 무어라 말하려는 억눌린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에이라가 블룸에게 말했다.

“블룸 경, 말한 대로 첩자를 내줄 테니 그대가 원하는 대로 처리하도록.”

“감사합니다, 영주님!”

에이라가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 주었다는 사실에 몹시 감격하며 블룸이 몸부림치는 신제를 질질 끌고 나갔다. 카르칼에게 영지민들이 죽고 다친 걸 직접 본 사람이니만큼 블룸의 손속은 깨나 무자비할 것이었다. 신제가 질질 끌려 나가는 걸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야누가 에이라, 하고 불렀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용은 안 돼.”

“지금 내가 다른 용과 사귀면 안 된다는 게 문제야?”

에이라는 어떻게 하면 영지가 멸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에 잔뜩 열이 올랐다. 그나마 용마다 힘의 편차가 있고 야누가 개중 가장 강한 개체라는 건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대일로 싸운다는 가정하의 일이지.’

용이 아무리 서로를 적대한다고는 해도 엄연한 고지능 생명체이니만큼 머리가 제대로 달려 있다면 강한 놈부터 쳐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을 터였다.

“당연히 문제지.”

에이라가 깊은 고뇌에 빠지다 말고 야누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질투하는 게 좀 귀여웠다. 그는 물론 자신에게 애인은 야누밖에 없다고, 절대로 한눈팔지 않을 거라고 말하려다가 말고 멈칫했다.

‘그래도 상황이 잘 풀리면 그, 뭐…… 관찰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야누는 지금 에이라에게 있어 단순히 용 이상의 존재였다. 이제 와서 아무리 독특하고 아름다운 비늘을 소유한 용이 나타난다고 해서 냅다 애인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면서 용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걸 보는 건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텐데, 그냥 관찰 기록만 하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그런 에이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야누가 상대가 퍽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용들은 가능한 한 짝의 근처에서 싸우는 걸 피하지만 말이야……. 여의치 않을 때에는 제 배 속에 삼켜 버리는 걸 알아?”

에이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상대가 용이니만큼 절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절대 다른 용에게 한눈팔지 않을게. 솔라를 걸고 맹세해.”

“솔라는 이미 지난번에 걸었잖아. 이것도 걸고 맹세해.”

에이라의 가슴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돌멩이가 야누의 손가락질에 소스라치게 놀라 얼른 등 뒤로 도망가 버렸다. 그가 엄숙하게 돌멩이 대신 앞으로 10년마다 받을 야누의 눈알을 걸고 맹세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알림음과 함께 시스템 창이 떴다.

<퀘스트 완료!>

[유능한 돌멩이의 마지막 레벨을 올려 보자!]

*유령 첩자의 정체를 밝혀내기 (달성)

*성의 미스테리한 원동력 알아내기 (달성)

*소블래츠와 볼니의 영주들이 영지를 노린 이유를 알아내기 (달성)

*영지를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적 간파하기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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