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그저 단순히 포획할 대상으로만 여긴 용들은 그제야 짝이 한낱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법사!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진 짝을 놓친 분노는 가까운 곳에 있던 동족을 향한 혐오로 바뀌었다. 본능을 참지 못하고 곧장 두 마리의 용이 사납게 뒤엉켰다. 치열한 전투에 떨어져 나간 살점이 쿵,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하고 피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지면을 적셨다.
개중 가장 약한 개체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다가 비명을 질렀다. 늘어진 촉수가 단숨에 무더기로 베어진 탓이었다. 짝에게 신경이 팔려 있던 용이 그제야 야누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황급히 뒤돌았으나 그때에는 이미 아랫배가 쭉 갈려져 나갔다. 야누가 어느새 재생한 팔로 썰어 낸 촉수를 휘휘 흔들다가 집어 던졌다. 입매가 길쭉하게 찢어지며 위로 솟구쳤다.
“다른 곳에 신경 팔 여유도 있었나?”
흘러내린 용의 피와 살점은 천천히 증발하며 사라진다. 그럼에도 야누의 온몸은 계속 피로 젖어 있었다. 온통 벌건 빛이라 피부에 돋은 비늘과 피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손끝, 기다랗게 뻗은 날카로운 손톱에서 더운 피가 뚝뚝 떨어졌다. 흥분에 젖은 눈이 반들거리는가 싶더니 곧 신형이 흐릿해졌다.
카아아악! 곧장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치솟았다. 내장이 난자당하는 고통에 용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야누가 깊이 파고든 복부가 꿈틀거리고 연시 찌익, 찌지직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갈라진 뱃가죽 사이에서 내장 조각과 피가 와르륵 쏟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들의 동공이 흥분으로 가늘어지고 벌어진 아가리에서는 더운 숨이 쏟아졌다.
곧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살육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용의 몸통 속에 숨은 붉은 용을 잡겠다는 핑계로 여러 마리의 용들은 가장 약해진 개체를 물어뜯어 낱낱이 해체했다. 흰 뼈가 드러났다가 살점이 재생되기도 전에 이빨에 부러지고 으스러진다. 살점과 피를 집어삼키느라 용들의 목울대가 연신 꿀꺽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이라가 몸을 떨었다. 이는 야누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약해 빠진 동족을 잡아먹는 행위였다. 그 어떤 전략이나 언어도, 이성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싸움이다. 그야말로 태초의 날것 그대로의, 원시적이고도 야만적인 모습이었다.
피식자가 된 용도 얌전히 당하고 있지는 않아서 동족들의 팔과 다리를 물어뜯으며 상당한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에이라의 눈에는 용의 HP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HP의 숫자가 1의 자리까지 빠르게 감소하며 곧 얼마 안 가 넝마가 된 육신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이성을 잃은 용들이 흠칫하며 물러난 것은 각기 목이 깊게 베인 탓이었다. 죽은 용의 가슴을 찢고 나오며 용들의 목까지 갈라 버린 야누가 피에 젖은 악귀 같은 형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인간의 웃음보다는 크르르륵 하는 목울음 소리에 가까웠다. 잔뜩 흥분하다 못해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몸에서 살육의 쾌감이 핏줄기의 형태로 줄줄 흘러내렸다.
그의 손에는 피에 젖은 보석 같은 마석이 쥐여 있었다. 손에서 굴리다가 야누가 용들 사이에 돌멩이 던지듯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며 히죽 웃었다.
“싸우다 힘들면 아무나 주워 먹으라고. 아홉 마리로도 나 하나 감당을 못하는데 그럼 한 마리라도 좀 강해져야지.”
죽은 용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며 사라지는 가운데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용의 눈알 수십 쌍이 이리저리 구르며 야누와 땅에 떨어진 마석을 오간다. 돌멩이가 팔짝팔짝 뛰면서 에이라의 시야에 시스템 창을 띄웠다.
[Tip. 용의 마석은 흡수하는 방식에 따라 일시적인 파워업이 가능해집니다!]
일시적인 파워업이 가능하다면 그런 걸 왜 먹지 않고 용들에게 내준 거지? 에이라의 의문은 곧 풀렸다. 도저히 협력이라는 개념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용들의 집중력이 바닥을 굴러다니는 마석에 흐트러진 것이었다. 잔뜩 날을 세워 야누와 대치하면서도 눈이 연신 마석을 향한 탐욕으로 번들번들 빛났다.
에이라는 마력 소모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 내며 소블래츠 용의 스탯 창을 불러왔다. 이제는 돌멩이의 레벨이, 정확히는 개화 마법 사용이 능숙해진 덕에 스탯 창이 금방 떠오르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약간의 로딩이 있었다.
<모룬카티아 아이와>
HP: 999,999
MP: 1
물리 공격력: 9,999
마법 공격력: 0
호감도: 86♡
[상세 보기]
칭호: 머리
직업: 머리
힘: 999
지능: 193
스킬: 관통, 찢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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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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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싱 에이라: 짝, 목표 ‖ 86♡
현재 생각: 마석, 붉은 용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