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버프는 마약이다 (39)화 (39/230)



〈 39화 〉39. 내 버프는 마약이다






빠아악!


"흣……!"

작은 신음을 내뱉은 미나가 코를 움켜쥐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히잉…… 아파요."


그러면서 손을 떼고 맞은 얼굴을 보여주는데 코가 깨져서 코피가 줄줄 흐르는 중이다.

예쁜 얼굴이 주먹  방에 망가져 버렸다.

'오, 오우…… 뭐야. 느낌이 이상해.'


뭔가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기분이다.

아무리 상대가 미나라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때린 본인의 주먹도 얼얼한데 저렇게 맞은 사람은 얼마나 아플까?


"너…… 고통 껐다지 않았어?"
"다시 아프게 만들었는데요? 저는 아픈 것도 좋아해요."
"아프면 기분 좋아?  마조히스트 그런 거야?"
"그런 아닌데…… 그냥 풍족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간의 감각으론 설명하기 힘들겠네요."

그, 그래.

아무튼 뭔가 있겠지.

"아, 그리고 때리는 거 말고도 그냥 이 신체를 범하셔도 돼요."
"어…… 그래?"
"네! 솔직히  어때요? 예쁘지 않나요?"


한 대 맞고 시뻘개져서 코피 줄줄 흘리는 얼굴 가리키면서 예쁘냐고 물어보면…….

물론 그러고 있어도 예쁘긴 했다.

"좀 촐싹대서 그렇지. 예쁘긴 예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어요. 이 신체의 형태는 크리에이터 님의 무의식에서 뽑아온 외형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의 몸이니까요."

무의식에서 뽑아온 이상형?

그럼 이 눈앞의 미나가…….

"제가 크리에이터 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성이 되는 거죠."


"윤기 있는 금발 머리, 맑은 하늘색 동공, 오똑한 코, 아담한 분홍빛 입술. 너무 창백하지는 않고 약간 홍조 끼 있는 하얀 피부."


"신장 162cm, 몸무게 49kg, 가슴 82, 허리 55, 골반 85. 발 사이즈는 235mm. 음모 없음."

"가슴 형태는 늘어지지 않고 봉긋한 걸 특히 좋아하시고 음부는 벌려보지 않으면 그냥 선으로 보일 정도로  다물어진 걸 원하시죠. 색은 당연히 핑크고요."

"체취나 체액의 맛은 복숭아 향을 선호하시죠. 이유는 어릴 때부터 복숭아만 먹고 자란 창녀 이야기를 듣고 '존나 개쩐다'고 생각하셔서. 제  냄새 맡아보시면 진짜 복숭아 향기 날 걸요?"

"무엇보다가장 좋아하셨다던 캐릭터랑 외모가 닮았잖아요? 그래서 제 이름도 미나로 해주셨구요."

읊는 말을 듣고 있자니 대략 정신이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이렇게까지 취향을 들키면 좋다기보단 뭔가 기분 잡치는데……."
"엑. 그런가요? 저, 지금 힘으론 외모를 바꿀 순 없을 것 같은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얘기를 들으면서 잘 떠올려 보니 과연 그랬다.

이상형…… 인가.

"그래도 여기 있는 저라면 다른 사람에겐 해선 안 되는 뒤틀린 욕망도 채울 수 있는데요?"
"뭔 말을 하려는 거야?"
"상대의 의사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섹스 말이에요! 코를 막고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목구멍 깊은 곳만 찌르는 질식 이마라치오! 하다가 정말로 죽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진심 목조르기 섹스! 범하는 중에 얼굴을 마구 때려 곤죽을 만든다거나, 절단 플레이를 즐기신다던가. 저는 다 좋아요."

오…….

오 마이 갓.

혜용은 소리없이 중얼거렸다.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소리였다.

"진짜 인간의 반응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상당히 인간에 근접했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학습했거든요."


보통 야한 만화를 보면 그런 말이 있다.


'자극이 너무 세잖아' 같은 느낌의 독백…….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라 진짜 자극이 강해도 너무강해 보였다.

미나의 말을 듣고 있자면 약간 사람으로서 넘어선 안될 선 같은 게 느껴진다.

저런 거에 맛 들리면 진짜 평범한 인간으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게다가  「처녀」라구요? 크리에이터  말고는 이런   수 있지도 않고요. 심지어 자위조차 해본  없어요. 저는 혼자서는 자극 자체를 느낄 수가 없거든요."

미, 미친 년.

미친 년. 미친 년.


여기서 처녀 드립을 치다니.

'니미 시발 진짜 죽여도 상관없는 진심 목조르기 섹스 하자는 년이 자길 자위도 안 해본 처녀라고 어필하는 거야 지금?'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고 있는 혜용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 하실 거에요? 진심 목조르기 섹스."
"그……."

아니 뭔가.


그.

딱 잘라  한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하다.


그런데 또 좋다고 하기에도 좀 그렇다.

흥분되기보단 부랄이 팍 쪼그라드는 느낌.

쫄았다고 하는  정확한 표현이었다.


"크리에이터 님, 저는 말이죠. 크리에이터 님이 여기 온다고 수락해 주셨을  크리에이터 님의 무의식을 거의 전부 봤어요."
"그, 그래서?"
"방금 제가 말했던 것들 전부 크리레이터 님의 무의식 속에서  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에요."
"무, 무슨 소리야. 저런 거 누가 해달라고 해도 거절하지."
"그건 학습된 윤리에 의해서 그런 거잖아요. 하면 안 되는 게 맞아요. 크리에이터 님이 살던 세계에서 사람한테 저런 짓을 했다간 잡혀 들어가서 평생 자유를 억압당한 채로 살아야 하겠죠."
"잘 알고 있네!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거랑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엄연히 달라. 마약 같은 것도 그래. 호기심은 있지만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해도 절대 안 해볼 거야."
"그래요.  보편적인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어요."

미나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강조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요? 잡아갈 사람이 누가 있나요? 피해 받을 사람이 누가 있나요?  신체가 훼손당하는  저로서는 그냥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가까워요. 아프다는 느낌도 저한테는 양분 비슷한 것이 되고요. 그렇다면 그냥 즐기면 그만이잖아요?"

맞는 말이긴 했지만 혜용은 일단 자제하기로 했다.

"어후. 내가 쫄보라서 그런가 봐. 그런 얘기 들으니까 이상하게 성욕이  생기네."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 거절하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언제든 할 수 있을 테니 그냥 나가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미나를 보면 목 꺾여 죽은 거나 창에 꿰뚫려 죽은 거나 죽은 모습밖에 연상이 안 된다.


"후엥…… 크리에이터 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에……."
"이번 보상은 아무래도 됐어. 머리가 띵해 지금."
"바이러스를 처치할 때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달라요. 이런 기능을  집어 강화시켜 드리긴 힘들어요."
"그래 알겠어. 여기선 어떻게 나가는데?"
"아! 문을 만들어 드릴게요."

미나가 손짓하자 방 안에 문이 하나 생겨났다.


문을 열고 미나의 내면 세계에서 나온 혜용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난…… 소프트한 순애물이 좋아…….'

미나가 말한 것같이 하드코어한 것들은 경험할 건 다 경험해보고 자극의 역치가 있는 대로 올라갔을 때나 시도해 보자고.


아직 경험해볼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단번에 역치를 하늘까지 올려버리는 건 아깝다고 생각되었다.













5월 27일 오전 10시 56분
고등부 교실


오늘은 일요일.


원래 레이드를 갈 시간이지만 느긋하게 방에서 단말기나 만지며 빈둥거리다가 산책이나 하려고 바깥에 나왔다.


곧 3학기라 그런 걸까?


일요일인데 교내에 사람이 꽤나 많이 보인다.

카페 가서 커피  잔 빨면서 클래식 음악이나 들으러 갈까 하던 차에 서하윤과 나희연이 지나가는  보였다.


"여기서 만나네."
"아, 혜용아. 안녕!"
"안녕."

 혜용이 반가운지 웃으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여기서 뭐 해?"

서하윤이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해 준다.


"신학기 준비를 하고 있어. 3학기까지 4일밖에 안 남았잖아?"
"그, 따로 준비할 게 있는 거야?"
"신학기에는 고정적으로 랭크 등락이 있으니까. 전리품 같은 걸 판매하지 않았다면 팔기도 하고. 포인트에 여유가 있으면 풀리는 전리품이나 스킬을 사기도 하고."
"아. 거래소 말고 학생들끼리도 사고 팔고를 하는구나."
"학생들끼리 개인적인 거래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거래소를 이용하는 게 편하니까 그러는 편이야."

으흠, 어떤 느낌인 줄 알겠다.

포인트로 성적이 결정되기도 하다 보니 신학기가 다가오면 장터 아닌 장터도 열리고 여러모로 분주해지는구나.


물론 포인트만 많다면 성적이 무조건 올라가는 건 아니다.


포인트가 많다고 해서 올릴  있는 랭크는 C까지.

B부터는 포인트도 필요하고 자격 시험도 쳐야 한다.

'난 스킬 같은 건 아무런 관심 없으니까 됐고 장비나 좀 보러 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애매한 거 샀다가 포인트를 낭비하면 좀 그러니까.

그러면 기분이 좀 나쁠 것 같았다.


'축복술사 친구가 있으면 이것저것 편할 텐데.'

최혜용은 축복술사 클래스에서 동정만 받는 외톨이 컨셉 같아서 친구 따위 있지도 않을 것 같다.

'아니면 금나린 찬스?'

금나린이라면 자신이 사달라는 것 정도는 이것저것 다 사줄 것 같았다.

금나린 찬스를 써볼까도 생각했지만 이것도 그만두었다.


이유는 가오가 안 사는 데다 지금 써봤자 손해일 것 같아서였다.

'그래 뭐. 지금 절박한 것도 아니고 생활이 쪼들리는 것도 아니고.'

원래 이런 찬스는 남발하면 좋지 않다.

가장 필요하고 절박할 때 써야 했다.

우선 서하윤이랑 나희연을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준비하는지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따라가도 돼? 어떤 식으로 준비하는지궁금해져서."

 말에는 나희연이 대답했다.


"응, 좋아. 그런데 우리도 구경만 하는거야. 딱히 처분할 것도 급히 해야 할 것도 없거든."
"그래도 상관없어. 오늘 좀 심심했던 차라."
"그럼 우리 같이 점심도 먹자!"
"오케이. 난 뭐든 좋아."


서하윤은 밥 같이 먹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처음 서하윤과 밥을 먹었을 때가 생각났다.


구석진 데서 혼자 학식을 먹고 있었지.

옆에서 의자 끄는 소리만 나도 잔뜩 긴장해서는 말을 더듬었었다.


점심도 학식 말고 식당에서 많이 먹는 걸 보니 주머니에도 여유가 생긴 모양이고.

'역시 소심한 사람은 마음을 허락한 상대한테는 활발해지는구만.'

그런 점도 왠지 서하윤 다워서 귀여웠다.




5월 27일 오후 5시 41분
남자 기숙사 

'결국 신학기 준비는 커녕 먹고 놀기만 했군.'


그래도 귀여운 여자애들이랑 웃으며 먹고 즐긴  보람차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실 뭐 신학기 준비라는 게 별  없기는 하다.


삐리리리!


단말기가 울린다.

[ 금나린 :  해? ]
[ 금나린 : 같이 저녁 먹자! ]

'들어가서  쉬려고 했는데…….'

바이러스는 분명  나타날 것이다.

해치우고, 해치우고, 해치우다 보면 엄청난 인싸가 돼서 하루에 개인 시간은  시간도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상상하니 현기증 비슷한  났다.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하지 않을까?


'그래도 금나린이랑 저녁은 어쩔 수 없지.'


금나린이랑 밥 먹는 게 좋은 점은 그녀가 예쁘고 귀여운 여자애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비싼 음식을 무조건 혜용의 것까지  준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요즘 매일 금나린이랑 밥을 먹으니까 입이 고급이 될 지경이다.






5월 27일 오후 7시 41분
최혜용의 방

'무슨 음식이 끝도 없이 나오냐?'


비싼 한정식 집이 뭔가 다르긴 하다.


찔끔찔끔씩 계속 나오는데 하나같이 맛있어서 계속 먹다 보니 끝이 없다고 느껴질 수준이었다.

원래 이런 집은 무조건 며칠 전 예약이 필수지만 여기는 각성자들이 이용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아침에만 연락해주면 저녁에는 먹을  있었다.

금나린이 아침에 같이 먹으려고 예약해 뒀다고 한다.

'진짜 밥 먹고 얘기만하다 왔는데 시간이 이렇네.'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체력 단련실로 가야 했다.

"안녕."


아예 체력 단련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최아영.


"안녕."

오늘도 인텔리하면서 예쁘구만.

 세계에 와서 좋은 점은 항상 눈이 즐겁다는 것이다.

함께 런닝머신에서 달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오늘 밖에 나가보니까 애들 신학기 준비한다고 난리던데."
"그럴 때가 되긴 했지."
"아영이 너는 뭐 준비할 거 있어?"
"요즘 안정적으로 레이드를가니까. 랭크 유지 정돈 할 수 있게 됐어. 한 시름 놓았다는 느낌?"
"이야,  됐다. 너라면 C랭크까지 금방 복구 할 거야."
"후훗. 고마워. 그러는 너는 어때?"
"나도 E랭크로 올려야지."
"2학기 만에 F랭크를 탈출하는 거네. 기분이 어때?"
"뭐, 감격스럽고 그래."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와중.


[ 체력 스탯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오?'


삐리리리리리리!

체력이 상승했다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단말기가 울렸다.

평소와는 약간 다른 음이었다.

"혜용이  단말기 갖고 운동하는구나. 방금 그거 스탯 올랐다는 소리 아니야?"

맞을 것이다.

방금 체력 스탯이 올랐다는 시스템 메세지를 봤으니까.


"잠깐, 확인해 볼게."

런닝머신을 잠시 멈추고 단말기를 꺼내 확인해 보았다.

칩을 넣어 파장을 읽는다더니 정말 스탯이 실시간으로 바뀌어 있다.

"와, 체력 4레벨 됐는데?"
"드디어 운동을 시작한 보람이 있게 됐네. 축하해!"

과연!


이게 노력의 재미인가, 하고 혜용은 깨달았다.


노력한 끝에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느낌이 기분 나쁠 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현실에서는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중간에 머리 좀 띵했던 것만 빼면 여러모로 기분 좋은 하루다.

신학기가 다가와도 잘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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