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버프는 마약이다 (41)화 (41/230)



〈 41화 〉41. 내 버프는 마약이다

6월 2일 오전 11시 50분
각성자 시설 주변 거리


나희연.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항상 처음 볼 때는 가슴 크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채화라.


처음엔 안 그랬는데 이상하게 나희연을 본 다음에 보면 묘하게 안쓰럽다.

혜용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파티원들은 서바이벌 용품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음식은 제대로 된 걸 해먹기 어려울 거야. 일주일  식량이니까 가급적 부피가 적은 즉석식품이나 통조림 같은 걸로 채워야 해."
"비상식량이나 칼로리 바 같은 걸로도 좀 채우면 어떨까?"
"가장 중요한  물이야. 일주일 치 물을 가져갈 순 없으니까 적당히 챙기고 정수 물통을 하나씩 구비해야 될 것 같아. 아! 토치도 하나 정돈 챙기면 좋을 것 같다."


물론채화라는 빼고.

최아영, 서하윤, 나희연이 그런 대화를 하는 동안 채화라는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여기서는 중2병 드립을 치기에도  그랬다.

"그럼  셋으로 나뉘어져서 사 볼까. 내가 혜용이랑 갈게."
"응! 희연아, 화라야. 우리도 가자."


각각 챙겨야 할 사람을 떠맡은 느낌으로 인원이 갈라졌다.

아영이 혜용을 챙기고하윤과희연이 화라를 챙겨주는 구조.

혜용 혼자서 못 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영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사라는 것만 사는 게 훨씬 편한 것은 분명했다.


"일단 배낭부터 사야겠네."

와, 배낭도 사야 하는 건가.

학생들의 자립심을 길러주려는 건지 그냥 나라가 수전노인 건지 구분이 안 간다.


과연 최아영의 말대로 주변 마켓에 서바이벌 용품들을 특별히 잘 보이는 곳에 구비해 놓고 있었다.


배낭도 마찬가지로, 벌써 많은 학생들이 점심도 거르고 와서 서바이벌 배낭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탄약도 넣어야 하니까.'

여분 주머니가 좀 많은 배낭이면 좋을 것 같다.


혜용도 배낭을 고르는 학생들의 반열에 끼어들어 열심히 배낭을 살폈다.

"이거 어때?"

최아영에게 물어봤더니 잘 골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준다.

"충분히 괜찮아 보여."


그럼 이걸로 사야지.

택을 보니 355 Point 라고 써져 있다.


'그냥 배낭 주제에 꽤 비싸네…….'


그래도 이번 시험을 잘 치르면 충분히 상쇄할 만한 포인트가 들어올 테니 투자하는 셈 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계속 레이드 못 가고 폐급으로 살았으면 거의 맨몸으로 시험에 도전해야 했겠구만.'


가난의 연쇄만큼은 막아서 다행이었다.

바코드를 단말기에 찍음으로써 포인트를 지불하고 배낭을 살  있었다.


일단 빈 배낭을 카트에다 깔아 두었다.


최아영도 자기 배낭을 골랐는지 혜용이 기다리고 있던 위치로 돌아왔다.


"이제 식량을 구하러 가야 되겠네.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이랑 통조림 위주로 사되 하윤이가 말했던 칼로리  같은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래. 그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식사를 바라면 안 되겠지."
"그래도 통조림 정도는 기호에 맞는 걸 고르는 게 좋아. 너도 적당히 일주일 먹겠다 싶은 만큼 식량 가져와서 카트에 넣어 줘."
"오케이."


혜용은 아영이 고민하고 있는 판매대 반대쪽으로 가 통조림들을 보았다.

'파인애플 통조림…… 복숭아 통조림…….'


과일 통조림은 적당히 복숭아로 하자.

'와. 햄버거 통조림도 있네? 구운 닭다리 통조림은 뭐야.안전한 건가?'

원래 혜용이 살던 한국과는 기업 같은  많이 다른지 똑같이 한국어로 적혀 있어도 회사 이름이 다 다르고 통조림의 종류도 꽤나 다양했다.

물론 통조림이니 만큼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존에 적절하다 싶은 통조림을 이것저것 가져간 다음 카트에 놓길 반복했다.


'칼로리 바는 치즈맛 딸기맛 초코맛 밸런스 있게 넣고…….'

일주일동안 이런 것만 먹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물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앞으로 있을 즐거움을 생각하면 이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때? 점검해 줘."
"음. 딱히 흠잡을  없네. 있다면 과자인데…… 이 정돈 나쁘지 않겠지."

여긴 혜용이 알던 헬조선이 아닌지 과자 봉지나 곽 안에  공간이 별로 없었다.

딱 안쪽의 내용물을 보호해  만큼만 공기가  있는 느낌.

그래서 과자도 나름 기분 전환이나 식량으로 괜찮을 것 같아서 몇 개 골라와 봤는데 다행히도 최아영의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제 구입할  나침반이랑 서바이벌 물통 정도인  같아."
"나침반도 필요하구나."
"보통 이런 시험을 치를 땐 단말기를 반납하니까."


빨리 움직인 덕분인지 별 혼잡함 없이 원하는 물품들을  고른 것 같다.

점심이 끝날 시간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마켓에 학생들이  밀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지금부터 한참 혼잡하겠군. 미리 거의  골라둬서 다행이다.'

다 사니까 어째 600포인트가 넘게 깨진다.


물론 배낭 값이 반 이상이긴 하지만.


돈 없으면 시험도 못 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랭크 유지 못 하면 퇴학인 학교 맞나.

'7년 2개월을 날려먹고 입학한 학굔데 학생한테 너무한  아니냐.'

물론 동기화 시술이 무조건 손해는 아니다.

퇴학당하긴 했어도 이면 세계를 큰 피로도 없이 마음대로 들락날락거릴 수 있다는 게 메리트가 돼서 받아주는 클랜이 많았으니까.

속으로 투덜거리며 계산하곤 산 물건들을 전부 배낭에 쑤셔넣었다.


"수납을 잘 해야 돼. 여기 식품만 들어갈 게 아니라 여분 옷이나 수건 같은 것도 들어가야 해서."

맞아, 옷가지랑 수건도 들어가야 하지.

빨아 입는다고 해도 하다못해 갈아입을 옷 정도는 필요했다.


세면 도구 같은 것도 필요하겠고.

'아, 씻는생각 하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설마 일주일 동안  씻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물 웅덩이 같은 걸 발견하면 찝찝해서라도 씻을 수밖에 없지.

같이 씻을  있는 건 기대도  하고 그냥 가드가 느슨해지면 좋은 구경이라도 할  있을지몰랐다.


그 정도로 발정난 건 아니지만 정말 아무런 재미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혜용으로서는 그런 청춘만이 누릴 수 있을 법한 가슴 간질간질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컸다.


'꼬추 다섯명이서 간다고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시무룩하네.'

혜용은 최대한 공간이 많이 남도록 열심히 음식과 물통 등을 쑤셔넣었다.

'생각해보니 이면 세계니까 쓰레기 같은 것도 아무렇게나 버려도 되겠다.'


더욱 즉석식품과 통조림이 좋아 보인다.

"어후."

다 넣고 등에 메 보니 꽤나묵직했다.

이거 이동할 때는 근력 증가 버프를 써야 할 것 같았다.

최아영도 물건을  싸고 배낭을 멘 채 혜용에게로 다가왔다.

"아직 애들은 안온 것 같네."
"좀 기다려 볼까?"


바깥에서 약간 기다렸더니 곧 서하윤, 나희연, 채화라도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나왔다.

'오우, 나희연…… 배낭에 찌찌 쪼이는  봐.'


혜용의 이상이 막 그렇게 커다란 가슴은 아니었다.


미나가 말했던 대로 적당히 커다란 사이즈가 가장 취향일까.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큰 가슴에는 취향 여부를 떠나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달고 사는 사람한테는 불편하겠지만 보기만 하는 나는 너무 기뻐.'

다들 모인 걸 확인한 최아영이 말했다.

"이제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여벌 옷이라거나 수건, 식기 같은개인적으로 필요한 걸 챙기자."
"응, 그러자."

나희연은 그리 대답하곤 배낭을 고쳐 메었다.


출렁!


'스읍, 오늘은 이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헤어져서 짐을 다 싸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기숙사로 돌아온 혜용은 개인적으로 챙길 걸 고민해 보았다.


'여벌 옷은 두 벌까진 필요하겠지?'

양말이랑 속옷은 하루 마다 갈아입을  있도록 챙겨두고.


세면 도구는 일단 오늘 씻어야 하니까 놔둔다.

'그릇은 얼마나챙겨야 되나.'


확실한 건 다 적당히 챙겨야 한다는 것.


벌써 배낭이 미어 터지려고 한다.


하긴 일주일 치 생존 아이템을 담는데 적으면 이상한 거다.


'탄약도 담아야 하는데…… 탄약은 그냥 백팩을 허리에 두를까?'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으로 보였다.


한 시간 정도 고민하다가 옆 주머니 쪽에 세면 도구 가방을 넣을 자리만 남겨두고 꾹꾹눌러 열심히 잠궈 놓았다.

시험 삼아 메 보니 아주 그냥 묵직함이 어깨를 짓누르는  같았다.


'군장보다  무거운 거 아니야 이거?'


날이 지날수록 가벼워지긴 하겠지만 이런 걸 들고 일주일 간 돌아다니면서 살 생각을 하니 마냥 핑크빛인 줄 알았던 앞날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 배낭 메기 스페셜리스트 ]
효율적으로 배낭 메는 법 3레벨
근력 스탯 3레벨 증가
자신에게만 사용 가능


'대충 코스트 좀 써서 이렇게 해 두면 편하지만 말이지.'

금나린이 혜용을 상당히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해주고 있는 건지 그냥 바이러스를 퇴치한 덕분에 널널해진 건지 기용할 수 있는 코스트도 꽤나 늘어났다.

이제는 모든 파티원에게 버프를 걸어주고 적당히 총기 숙련도와 사격 정확도 옵션을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스탯이 10레벨까지는 코스트가 적게 드는 편이다.

그 이상부터 곱절로 많이  뿐.

'그만큼 10레벨이랑 11레벨 차이도 크겠지만.'

어쨌든 다 챙겨놓은 걸 보니 꽤나 뿌듯하다.


다른 애들은  챙겼을까?


단톡방에 근황을물어 본다.

[ 최혜용 : 얘들아, 다 챙겼어?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다들 열심히 싸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남자랑 여자랑 준비하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겠지.'

앞으로 서바이벌을 하게 될 이면 세계는 어떤 느낌일까 상상이나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삐리리리!

기다렸다는 듯이 다들 연락이 온다.


이 다음은서바이벌에서 어떻게 해나가면 좋을지 카페에서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결국 안쪽 구조를 모르니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렇게 카페에모여서, 저녁 시간까지 떠들다가 헤어졌다.

'이제 저녁 시간인가.'


혜용은 메신저를 켜 보았다.


[ 금나린 : 뭐 해? ]
[ 금나린 : 같이 저녁 먹자! ]
[ 최혜용 : 죄송해요.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
[ 금나린 : 그래? 그럼어쩔 수 없고. 저녁 맛있게 먹어. ]

금나린이 저녁 먹자는 걸 거절해 놓은 대화 목록.

저거 말고도 속이 안 좋다고 거절한 것도 있다.


선약 같은 것도 없고 배가 아프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얻어 먹는 것 같아 미안해서였다.

'오늘은 괜찮은데…… 지금까지 사줘서 고맙다고, 내가 한 끼 살 테니까 같이 먹자고 할까?'


그러다가 그만두고 메신저 어플을 껐다.

'금나린도 시험은  테니까 엄청 바쁜 타이밍이겠지.'

오늘 저녁은 그냥 혼자서 학식을 먹기로 했다.

학식도 충분히 맛있어서 좋아한다.

선택한 메뉴는 소 불고기.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운동 가기 직전까지 침대에 누워 있기로했다.

'후우…… 역시 긴장되기는 하네.'

아직까지는 재밌는 데 놀러가는 느낌으로 기대가 더 크긴하지만 막상 시간이 임박하니 긴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혜용에게는 몰라도 다른 학생들에겐 미래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좋을 중요한 시험.

적어도 진지하게는 임해 줘야 했다.

'코스트도 제법 늘어났고. 스킬이 성장했다는 핑계로 전용 버프에 스탯 하나씩 다 올려 줄까.'

분명 좋아하겠지.

더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뭐 빼먹은  없는지, 더 필요한 건 없는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일, 힘내자 혜용아."
"기왕 하는 거 좋은 성적 받아야지. 더이상 우리가 떨거지 파티가 아니라는 모두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
"물론이야!"


최아영과 헤어져서는 완벽한 컨디션 관리를 위해 바로 샤워하고 잠들기로 했다.

그렇게, 내일 오전 9시.

시험을 치를 모든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들었다.

교관 제복을 입은 남자가 강당에 설치된 이면 세계 크리스탈에 전이석을 먹였다.


빛을 뿜어내는 이면 세계 크리스탈!

"자, 지금부터 시험 시작이다. 1열부터 천천히 걸어서 이면 세계로 들어가라."

전이석으로 공간이 연결되어 있는 이면 세계 크리스탈을 멀리서 보는 건 처음이다.

'저런 식으로 빛이 남아서 사람이 계속 들어갔다 나왔다  수 있게 되어 있구나.'

600명 가량의 학생이 거의 다 들어가고 제일 마지막 줄에 있던 혜용도 이면 세계로 갈 차례가 되었다.


'어우. 시작인가. 막 가슴이 간질간질거리고 그러네.'


지금까지의 이면 세계가 누군가가 준비해 놓은 사냥터로 가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뭐랄까 새로운 모험을 향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부디 위험한 일은 별로 없고 두근거리는 이벤트가 많이 벌어지길.

혜용은 그렇게 빌며 빛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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