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버프는 마약이다 (77)화 (77/230)



〈 77화 〉77. 내 버프는 마약이다



"죽은 거야?"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죠?"


여학생의 시체를 살핀 나린이 덜컥 겁이 났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지, 진짜 죽은 건 아니지?"
"아니에요. 이것도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꿈 속 같은 세계에요. 다 해결되면 살아서 깨어날 거에요."

금나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정말. 살인자가 되는 줄 알았잖아."

혜용은 다시 한 번 목 꺾여 죽은 여학생의 시체를 살폈다.

[ 1년 차 ]
[ 권진아 ]


'이름, 권진아라고 하는구나.'


이 여학생 자체한테는 별 감정이 없지만 이름 정도는 기억해두는 게 좋아 보였다.


"헉, 헉. 어떻게 됐어?"
"몸은 괜찮은 거에요?"


희연과 란팡이 뒤늦게 몸을 추스르고 걸어왔다.

"와……."


금나린이 감탄해서 뭔가 했더니 나희연의 가슴을 보고 있던 거였다.

제복 입을 때도 볼륨감이 장난 아닌데 속옷만 입고 있으면 확실히 누구든 눈이 가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잘 해결됐어."
"다행이다……."
"정말 십년 감수했어요."


그리고 금나린을 가리키며 가볍게 소개했다.

"이 사람은 중등부 2년 차 금나린 선배. 악령 퇴치에 도움을 주셨어."
"어…… 안녕."
"감사합니다, 선배."
"감사합니다……."

셋이참으로 어색하게 인사했다.

'이 애들도 최혜용의 도움을 받은 걸까.'
'이 사람도 혜용이한테 구해진 건가……?'


그 와중에 금나린과 나희연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살인마 바이러스도 제대로 처형시킨  같은데  안 끝나지?'


터벅, 터벅, 터벅.


혜용이 그리 생각하자마자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둔중한 느낌이 묘하게 익숙하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갤 돌려보니 그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훌륭하다.놈을 처형하는  성공했군. 어엿한 사형집행인이라 불러줄  있겠어."


[ 당신은 「견습 사형집행인」에서 「사형집행인」으로 전직했습니다! ]

지금으로서는 전혀 쓸모 없어 보이는 전직.

그래도 전직했다니까기분은 좋았다.

스르르르…….

말을 마친 남자의 모습이 흩어지더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임시 클래스, 「사형집행인」이 소멸되었습니다. ]


'바로 사라질 거면 왜 전직시켜준 거람?'

약간 어이가 없긴 해도 일이  풀린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한  해결!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으음…… 여긴."


완전히 죽어 있던 권진아가 멀쩡해진 모습으로 정신을 차렸다.

아마 목 졸려 죽은 학생이나 사형 집행 당한 사람들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혜용은 깨어난 권진아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네가  했는지 기억나?"

권진아가 멍하니 혜용의 얼굴을 보고는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ㅡ 끅, 까학, 큭, 크, 학. 까흐…….


ㅡ 뚝!

몽롱했던 정신이 번쩍뜨인다.

걷잡을 수 없던 살인 욕구.


결국 참아내지 못하고 행해 버린 선명한 살해의 기억.


살해당한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 이후부터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더 많은사람을 죽였을지도…….

권진아가 마구 고개를 저었다.

"내, 내가 안 했어!! 난, 난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억 안 나!!"

과민 반응을 보이는 권진아를 보며 혜용은 무언가를 눈치챘다.


'분명 살인마 바이러스는 몸에서 나갔을 텐데 살인이라도  것처럼 행동하네…….'

 이 등장인물이 살해당하던 순간이 내면 세계 구현의 시작인  같아요.

미나가 했던 말이생각난다.


'어쩌면 이거…….'


지금은 가볍게 넘어가기로 했다.


"누가 뭐랬어? 네가 뭘 했다고. 그냥 여기 정신을 잃고 있길래 물어본 것 뿐이야."


혜용이 그리 말하며 시선을 보내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희연이 상냥한 목소리로 놀란 듯한 진아를 달랬다.

"왜 여기 쓰러져 있었던 거야? 무슨  있었던 건 아니지?"


권진아는 안심했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말을 더듬었다.

"그, 그, 기억이,  나. 머리가 어지러워……."
"쉬는 게 좋겠다. 혼자 돌아갈  있겠어?"
"으, 응! 돌아갈 수 있어, 혼자!"

일단은 그렇게 보내주고 제대로 상황이 정리되었나 둘러보기로 했다.

"저희는 고등부 1년  기숙사 쪽으로 가 볼테니 선배는 선배 쪽 기숙사를 살펴  주세요."
"응, 알았어."

금나린은 원래 거리에 있는 주택에 살았지만, 기숙사에 살면서 시설 위주로 동선을 잡다 보면 혜용을 마주치고 자연스럽게 대화할  있을까 싶어 기숙사로 이사한 지 좀 되었다.

물론 혜용은 몰랐지만.


'제대로 도울 수 있었어……!'

악령 퇴치를 도울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린은 간만에 싱글벙글했다.


처음엔 악령에게 달려든다는 생각만으로도 공포에 휩싸였으나 이 악물고 의외로 주먹을 날려보니   아니었다.


'오늘도 멋졌지이…….'


자신의 도움으로 승기를 잡은 혜용이 악령을 처형시킬 땐 너무 기뻐서 짜릿한 전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후훗. 최혜용이 날 다시 봤을 거야.'


기숙사로 옮기길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나린이었다.

"그럼 가볼까?"
"자, 잠깐. 나  입어야 돼!"



-


고등부 1년 차 여자 기숙사.


약간의 혼란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다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근처의 편의점을 왔다갔다거린다.


각성자는 군것질을  하고자도 살이 별로 안 찌기 때문에 밤에 마음 놓고 군것질을 하는 인원들이 많았다.


'일반인들이 인터넷에서 존나게 부러워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짜고 달콤한 걸 실컷 먹고 퍼질러 자도 운동 조금만 하면 나이스 바디를 유지할 수 있다니, 각성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존재 자체가 사기다.

"하아암~."

입을 쩍 벌리고하품을 하면서 밤길을 걷는 채화라의 모습도 보였다.


희연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채화라를 보자 무척이나 반가웠는지 양 손을꼭 잡고 기쁨을 표출했다.

"화라야! 무사했구나!"
"응? 그야 무사하지. 이 몸은 항상 '그 분'의 가호를……."

파지지직!

"으갸갸갹!!"
"히야아앗!!"

손을 잡고 있다가 언니가 심어둔 전류에 의해 함께 감전되어 버린 나희연과 채화라.

"풉!"
"흡!"


보고 있다가 란팡과 동시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걸 바로 앞에서 보고 웃음을 참을  있다면 감정을 잃은  아닐까 싶다.



-





[ 최혜용 : 아영아, 잘 들어갔어? ]
최아영 : 응. 왜? 무슨 일 있는 거야? ]
[ 최혜용 : 아니. 그냥. 왠지 걱정돼서. ]
[ 최아영 : 헤, 알겠어. ]


'최아영도 무사하구나.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기억 못 하는 것 같네.'


분명  난장판이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화롭던 나날로 변했다.

백윤서가 흘리고 간 탄피도, 자습실에 죽어있던 학생도 없다.

그야말로 모두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인 듯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아마 바이러스가 처형되던 자리에 있던 사람 뿐이었다.

[ 미나 : 굉장해요, 크리에이터 님! 이번에도 해치워 버리셨군요!! 저는 끝까지 믿고 있었어욧!!]
[ 최혜용 : 아, 참.  정돈 별 거 아니지. ]
[ 미나 : 역시 크리에이터 님은 최고에요! ]

미나가 하는 칭찬이야 귀가 박히도록 들어와서 칭찬 같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았으므로 기쁘게 듣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마치 날 위해 판을 짜 둔 느낌이랄까…….'

이 세계에서 혜용 말고는 그 누구도 이 일을 해결할  없었을 것이다.

버프 커스텀으로 그런 버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사형집행인에게 저항하고 정보를 얻어 살인마를 처형했겠는가?

'조금만 머리를 굴려봐도 해결법이 보이긴 하니까 할만하다는 생각이드네.'

혜용이 똑똑한 게 아니었다.


할만 하니까해결한 것이다.

자신이절대 평균 이상의 두뇌라고 생각하지 않는 혜용도 이럴진대 그보다 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이 여기로 왔으면 훨씬 쉽게 해결하고 다녔을  분명하다.


크리에이터.


 세계의 공동 제작자.


미나가 말했던 것처럼 혜용의 존재 자체가 바이러스를 처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키 카드였다.

이런 중요한 중요한 포지션에있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존감이 충만해졌다.

내가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다 싶은 마음.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최혜용 : 그런데 미나. ]
[ 미나 : 네? ]
[ 최혜용 : 이거 바이러스한테 삼켜졌을 때 기억을 잃는 기준이 뭐야? ]


바이러스에게 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나 함께 싸운 금나린, 나희연, 란팡과 감염된 본인인 권진아는 기억이 남아있는 듯했다.

기준을 바이러스와 접촉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 치면 직접 감염되었던 금나린과 나희연, 권진아는 그럴 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란팡은?


왜 기억하고 있는 걸까?

[ 미나 :  번째는 감염자에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전력이 있으면 바이러스로 인한 난리가 걷힌 이후에도 기억을 잃지 않죠. ]
[ 미나 : 두 번째는 아마 크리에이터 님과의 관계, 그러니까 씨앗의 크기와 활성화된 정도가 기준일 거에요. ]
[ 미나 : 그때 봤던 란팡이라는 등장인물은 거의 완전히 크리에이터님께 종속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같네요. ]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력 말고도 씨앗의 크기가 영향을 준단 말이지……?

이번에는 정말 동료들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나희연이 아니었다면 놈에게 접근할 기회조차 없었고, 란팡이 시간을 끌어준 게 아니면 붙잡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나 금나린의 어시스트는 기가 막혔다.

거기서 튀어나와 도와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만약 이전에 금나린을 구하지 못했다면?

이전에 걸어왔던 발걸음이 이번 바이러스를 잡을 포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다.

'나 혼자서는 해결할  없는 일들이 분명 있을 거야. 키 카드는 나라고 해도 분명 동료들도 큰 도움이 된다.'

[ 최혜용 : 지금까지는 내면 세계에 혼자 들어가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동료가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 혹시  제한 같은 거 있어? ]
[ 미나 : 이렇게 바이러스가 현실에 덮쳐오는 경우에 동료 제한 같은  딱히 없어요. 그 등장인물이 얼마나 크리에이터님을 도울  있을까의 문제겠죠? ]
[ 최혜용 :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네? ]
미나 : 그렇죠! 바이러스에 직접적으로 감염되는 사람은 한정적이니 인식의 씨앗을 많이, 그리고 크게 키우는 게 중요해요! ]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 만들기!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물론 인식의 씨앗 심기라는 원래 목표와 그렇게 다른 점은 없었다.

'권진아…….'

살인 용의자라고 지목되기라도 한 것처럼 불안한 눈으로 떨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혜용이 추측하건대, 그녀는 아마 최아영을 죽인 기억까지만 갖고 있을 것이었다.


그 이후 그녀에게 접촉해 있던 살인마 바이러스의 인격에 잡아먹혀 내면 세계가 현실을 집어삼키듯 확산되었음이 분명했다.

'좋게 대해줘서 천천히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게 마음은 편하겠지만…….'

ㅡ 친절과 사랑으로 빠져들게  수만 있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겠지만 그건 너무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ㅡ 하지만 마음을 깎아내고 주변을 무너뜨려 모든 것을 잃게 한 뒤 의존하게 만드는  비교적 손쉽죠.


미나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밟힌다.

만약, 란팡에게 철저하게 친절과 사랑만을 베풀었다면 이렇게 손쉽게 자신에게 의존하게 되었을까?

아니다.


혜용이 란팡에게 한 것은 기만이었다.


협박과 폭언 등으로 현실감과 제대로 된 판단력을 잃게 하여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외톨이라는 사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무기력함을 계속해서 머릿속에 쑤셔박아 줌으로써 정신을 황폐화시킨 뒤 감언이설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네가 인간임을 포기하고 내 애완견이 된다면 내가 대가 없는 사랑을  수 있다.


꼬리 흔들며 주인에게 애교만 부리면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거 할 필요 없다.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의 무기력함과 애완동물 취급 받을 때의 간극을 확실하게 느껴 버린 란팡은 그것을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혜용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무작정 잘해주기만 했어도 결국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의존하게 되기야 했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했어도 지금처럼 굳센 의존과 충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시간도 분명 몇 배로 들었을 것이다.

'협박할 껀덕지가 있다면…… 역시 하는 게 좋은가.'

이건 장난이 아니다.


내면 세계 안이라면 몰라도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에게 죽임당하면 혜용도 죽는다.

'나중에 권진아를 만나면, 한  찔러나 보자.'

혜용은 이건 자신이 살기 위한 거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권진아를 어떻게 해 볼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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