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97. 내 버프는 마약이다
혜용도 놀지 않고 버스트 울프를 들어 탱커 뒤에 있는 장검 근거리 딜러에게 겨누었다.
전에 만들어둔 성물을 통해 총기 숙련도와 정확도 버프를 받은 상태인지라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탕-! 탕-! 탕-!
그러나 총알이 근거리 딜러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염동력자가 염력으로 막아준 듯했다.
'저런 식으로도활용하는구만.'
그럼 염동력자를 노려 봐야지.
다음 타겟이 자신이란 걸 알았는지 염동력자가 운용하고 있던 돌을 자기 근처로 모았다.
그러나, 총기 숙련도와 사격 정확도를 충분히 받고 있는 혜용에게는 빈틈이 다 보였다.
'여기서 이렇게 쏘면…….'
탕-! 탕-! 탕-!
"큭!!"
염력을 끌어올리기위해 정신을 집중하던 염동력자가 이마 부근에 두 발, 어깨 부분에 한 발을 맞고는 주변에 띄워둔 돌덩이들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총알을 막으려고 잔해를 자기 주변에 모은 것 같은데 혜용이 받고 있는 총기 숙련도와 사격 정확도는 그 작은 틈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공격을 위해 염력을 사용할 때는 방어가 약한 걸까?
마나가 전혀 없이 쐈는데도 집중을 흐뜨려놓기에는 차고 넘치는 위력이었다.
'특성 없어도 잘만 쏘면 쓸만하구나.'
애초에 백윤서도 비각성자라고 했다.
관련 특성 같은 것도 없다는 뜻.
이형종 상대로는 쪽도 못 쓰지만 같은 각성자가 상대라면 마나 없는 총격이라도 충분히 거슬리게 할 수 있었다.
"코벨!"
"염력 재정비할 동안 날 지켜야 돼!"
척!
방패를 들고 있던 탱커가 팀원을 보호하며 앞으로 나선다.
이제는 혜용도 팀원에게 맡길 차례였다.
턱! 턱!
방패를 공격하다가 빈틈을 노리길 반복하는 란팡.
란팡의 움직임이 탱커보다 더 빠른 탓에 빈 곳을 노리는 공격을 할 때마다 탱커는 몸을 비틀며 자세를 망가뜨려야 했다.
그렇다고 방패 밀어치기 같은 스킬로 반격하자니 금방 피할 것 같아 틈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로 박유리가 비어 있는 탱커의 허벅지 쪽으로 주먹을 내리찍으려 했다.
그러나, 탱커를 호위하는 근거리 딜러가 휘두르는 검 저지당해 잠시 물러난다.
그때를 노린 염동술사의 공격.
잔해의 뾰족한 부분을 앞세워 목 쪽에다 박으려는 것 같다.
하지만 혜용 역시 그걸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투웅!
곧장 생성된 보호막에 그대로 튕겨나가는 잔해.
총을 쏠 틈이 나오긴 했지만 너무 자신만 활약해도 좀 그럴 것 같아 총질은 자제하고 축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거라면 안심해도 되겠어!'
안전을 확신한 박유리가 몸을 돌보지 않는 맹공을 시작했다.
근거리 딜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란팡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탱커의 빈틈만 노려 주먹을 뻗었다.
빠악!
"크윽!! 호위 안 하고 뭐 해!!"
팀원의 다급한 질책에 크게 검을 휘둘러 보는 근거리 딜러였지만 박유리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에 맥을 못 추고 튕겨져나갔다.
"아니, 무슨 보호막이……."
빠악! 빠악! 빠악!
그 사이에 등허리를 마구 후려치는 박유리의 너클!
크진 않지만 푸른 잔상을 남기는 마나의 주먹이 몸을 때리고 지나갈 때마다 탱커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방패를 앞세운 탱커를 앞뒤로 패 대는데 뒤쪽의 인원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웃긴 상황이 되었다.
파바바바박!
다시금 잔해를 모아 최대 출력으로 날려 보는 염동력자였지만 혜용이 조금만 집중해도 방어막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애초에 수준 차이가 심하게 난다는 뜻이었다.
'신성력 소모가 있지만 뭐…… 충분히 버틸 만하네.'
유지아가 준 신성력 5레벨이 큰 도움이 된다.
어찌보면 부정행위가 아닐까 싶었지만 뭐 어떠랴.
허용 범위니까 교관이란 사람이 스탯을 준 거 아니겠는가?
"뭐라도 좀 해보라고!!"
"하긴 뭘 해!!"
빡! 빡!!
탱커의 처절한 외침을 끊으며 연신 로우킥을 차대는 박유리.
탱커가 자세가 완전히 무너져 마침내 방패가 내려가고 란팡에게도 피해를 입게 되었다.
퍽, 퍽!
블레이드 톤파로 빠르게 베어 대는데 프로텍션마법 때문인지 베는 느낌은 안 났다.
다만, 그 공격으로 결착이 났다.
삑!
"크아아아악!"
파지직!
발찌의 불이 꺼짐과동시에 전류에 휩싸인 탱커가 무릎을 꿇었다.
"윽……!!"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무력화 될 정도의 화력.
대전에서의 사망 판정이었다.
철컥-
탕-! 탕-! 탕-!
혜용이 총을 치켜드는 걸 보고 급하게 잔해를 끌어와 막는 염동력자.
그러나 그 사이 박유리가접근해 주먹을 당긴다.
다른 한손으로 염력을 조종해 겨우 박유리의 주먹을 막아내지만 염력의 저지력보다 박유리가 힘을 줬을 때의 돌파력이 더 강했다.
"흐럅!"
빠악!
결국 얼굴에다 주먹 한 방을 허용하게 된다.
그 이후부터는 완전히 박유리의 러쉬 타임이었다.
대항할 시간도 없이 쉴 새 없이 뻗는 주먹에 쉬지 않고 얻어맞는다.
"코, 코벨!"
염동력자가 당하고 있자 눈에 띄게 동요하는 근거리 딜러.
저 쪽이 C랭크. 팀의 중심인 듯했다.
"여기도 있어요."
"허억!"
앞쪽에 란팡이 나타나서 블레이드 톤파를 휘두르자 검을 몇 번 휘적이더니 결국 공격을 허용.
그 이후에 3연참을 허락하면서….
파지지직!
"으갸아아악!"
감당할 수 있는 피해의 한계를 넘어 리타이어 당했다.
"하아압!"
동시에 내질러지는 박유리의 기합.
이것이 끝이다 하고 말하는 듯 강력한 한 방이 휘둘러진다.
빠악!!
파지직!
"크으으윽!!"
주먹을 맞자마자한계를 맞이한 프로텍션 마법이 사라지며 전원 탈락 처리 되었다.
이면 세계 안쪽에 한 교관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것이 울려퍼졌다.
ㅡ 시험 종료! 대기실로 이동하세요.
싱겁긴 했지만 승리는 승리.
혜용은 순수하게 기뻐하는 마음으로 양 팔을 들고선 외쳤다.
"하이파이브 함 하자!"
"하이파이브!"
"이겼으니까 해주는 거야!"
짝, 짝!
두 손을 다 쓰는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
ㅡ 하이파이브 함 하자!
ㅡ 하이파이브!
ㅡ 이겼으니까 해주는 거야!
ㅡ 짝, 짝!
'후후, 보기 좋군요. 다들 한창 때라는 느낌이라…….'
주변을 둘러싼 수십 개의 모니터.
앉아서 그것을 지켜보는 수십 명의 교관들.
여기는 학생들의 대련을 다각도에서 보며 점수를 매기는 판독실이었다.
이번 판독에 들어간 수십 명의 교관 중에는 축복술사 교관 유지아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혜용이 보이는화면의 근처만을 향했다.
'친한 친구들도 꽤 많아 보이는 것 같고. 무엇보다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네요.'
승리를 기뻐하며 웃는 최혜용의 얼굴.
적어도 가식으로 웃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렇게, 친구들과.
청춘을 즐기며, 그저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다른 교관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코벨이라는 학생도 C랭크 평균보단 뛰어난 능력인데……."
"네, 시간이 흐르면무난하게 B랭크 이상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이번엔 저 최혜용 학생이 압도적이라는 느낌이군요."
"보호막 활용도를 보면 절대 D랭크는 아니에요."
"보호막 말고도 강화 버프가 따로 있었던 것 같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F랭크였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멍하니 듣고 있으니 한 교관이말을 걸어왔다.
"유지아 교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상념에 빠져 있다가 겨우 돌아와서는 말했다.
"네, 보호막 강도부터 생성 타이밍까지. C랭크 최상위권을 놓고 봐도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어요. 강화 버프도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스탯이 8레벨 급은 되는 것 같고요. 당장 B랭크까지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네요."
유지아의 말을 참고하며 다른 교관들이 말을 나눈다.
"B랭크로 올려도 손색없다라… F랭크에서 성장한 게 맞다면 궤를 달리하는 성장속도로군요. 물론 그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아마 숨기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저 정도 성장 속도는 말이 안 돼요."
"별로 좋은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가끔 있지요. 랭크를 올릴 수 있는데도 올리지 않고 힘을 숨기는 학생들이."
"이 자율 갱신이라는 게 참 문제에요. 이 시설은 자율이 너무 많은 게 흠이라니까요. 자기 힘을숨겨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어쩌겠어요? 시설 방침이 그런 걸. 이사장님이 정해둔 걸 저희가 어떻게 할 순 없죠."
"암만 성인이래 봐야 생각하는 걸보면 아직 애들이나 다름없는데…… 언젠가 이 건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긴 하네요."
잠시 시설의 시스템에 불평을나누던 교관들이 다시 혜용의 성적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주제로 돌아왔다.
"이 최혜용이라는 학생, 사격 솜씨가 굉장히 뛰어나던데…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거지만 총기 관련 특성은 없겠지요?"
"아니요. 학생부에는 축복술사 특성 뿐이었습니다. 아직 체력 증진이라는 버프 말고는 갱신되지 않은상태지만요."
"아마갱신해도 총기 관련특성은 없을 겁니다. 아직 축복술사 특성과 총기 관련 특성이 함께 발현됐다는 사례가 없어요."
"분명 코벨 학생이 잔해로 몸을 방어했었는데 그 작은 틈새를 정확하게 보고 탄환을 우겨넣었었죠. 순수 실력이라면 타고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제대로 된 총기 관련 특성이 있었다면 방어 사이로 총격을 허용한 순간 무방비 상태였던 코벨 학생이 큰 피해를 입었어야 합니다. 총격의 위력이 현저히떨어지는 걸 보면 특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이건 이것대로 아쉽습니다. 순수 실력이 저 정도라면 총기 관련 특성과의 시너지가 엄청났을 텐데요."
"개인적으로는 사격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총기를 오래 사용하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로 보이네요. 총기는특성이 없는 이상 숙련도가 올라 봤자 위력이 상승하지 않으니까요."
"사격 실력이 뛰어난 건 작은 어드밴티지 정도로 보고… 보호막과 축복만 보고 점수를 책정정하는 게 좋겠지요. 유지아 교관이 B랭크로 올려도 손색없다 했었으니 저는 이번 시험에서 가산점을……."
언제 또 질문이 들어올지 몰라 교관들의 얘기를 경청하려 노력하던 유지아였지만 결국에는 다시 집중력이 흐려지고 상념에 빠지게 된다.
아무래도 혜용이 신경 쓰여서였다.
'그냥, 모든 걸 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다른 생각이 난다.
아직 혜용의 재각성에 대해서는 시설 측에 알리지 않았다.
교관들이 말했던 대로 이 시설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는 것은 자율.
그것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게 애로사항이 있더라도 이사장은 자율을 고집했다.
하여 본인이 알리지 않겠다면 교관인 자신도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녀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지아로서는 혜용의 앞길을, 혜용이 하려는 일을 도우면 도왔지 방해하거나 가로막을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직 성능 자체는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신성력 활용도 하나만큼은 이미 아버지를 넘어섰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지아의눈썰미는 속일 수 없었다.
보호막으로 공격을 막자마자 팀원 두 명에게 거의 동시에 버프가 걸리는 것을 유지아는 분명히 보았다.
어설프다.
어설프게 힘을 숨기고 있다.
위력은 스스로 조절해 줄였을지 몰라도 타고난 우월함을 제어하는 데는 미숙함이 보였다.
현역 중에서도 탑 클래스 수준의 캐스팅 속도와 축복 전환력.
각자의 능력에 맞게 주어지는 맞춤형 축복.
그러나, 메인은 역시 보호막…….
최혜용은부모의 피를 잘못 물려받은 게 아니었다.
부모의 능력을 섞어, 뛰어난 부분만을 활용하는 중이었다.
마치내가 그들의 자식이다 하고 말하듯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봤는데 고작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착잡한 기분이 되었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어놓고 감정 변화는 사춘기 소녀 저리 가라 할 정도.
스스로 주책이라 생각하면서도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유지아는 혜용에게 질문하고 싶은 내용을 그대로 옮기듯 속으로 독백했다.
예전, 혜용을 부르던 명칭까지 써 가면서.
'조카님…… 정말로 재각성인 건가요?'
'사실은 그 실력을 지금까지 꾹꾹 숨겨 오신 건 아닌가요?'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척을 하신 건 기억을 잃었다는 연기일 뿐이었나요?'
'그토록 증오하던 제게 웃어주셨던 건 단순히 저를 속여넘기기 위해서였나요?'
'어쩌면 그 오랜 실어증도…… 그저 스스로를 숨기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던가요.'
만약, 최혜용이 힘을 숨긴 것이었다면.
F랭크 패배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아랑곳않고 혼자 힘을 갖고만 있던 것이었다면.
그건 역시…….
'역시 조카님께 그날 밤은 숨이 끊어지는 때까지 잊지 못할 순간이었나요.'
'지금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건 그날 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인가요.'
'만약에, 만약에 그렇다면.'
ㅡ 만약, 혜용이가 각성 같은 걸 해서 우리 복수를 하려고 들면 네가 꼭 막아 줘.
ㅡ 난 내 아들이 허무밖에 안 남은 삶을 사는 걸 바라지 않아.
ㅡ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만 살아갈 수 있게 해 줘…….
'저는 조카님을 막아설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당신의 어머니가 제게 남긴 유언이자 죄 많은 인생에 남은 마지막 숙제니까요.'
[ 조카라고 부르지 마. ]
[ 내 가족인 척 하지 마. ]
[ 나는 당신, 역겹다고. ]
최혜용이 자신에게 처음으로 보여 주었던 쪽지가 생각나 입 안이 썼다.
유지아는 절박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조카님이 제게 보여주신 모습들이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길 빌어요.'
'부모에 대해서도, 저에 대해서도 모두 잊고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길 빌어요.'
'제가 봤던 조카님의 활기찬 웃음이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고 믿고 싶어요.'
'부디… 먼 발치에서 지켜볼 수만 있게 해 주세요.'
'부디…….'
유지아의 애절한기도.
그 대상인 혜용은 지금…….
'아, 유리 찌찌 만지고 싶다. 전에 하다 만 개발도 마저 하고 싶은데. 그냥 오늘 몰래 따라다니면서 기숙사 들어가는 순간에 덮칠까?'
성욕에 미쳐서 인생 같은 건 생각지도 않는 양아치나 할 법한 계략을 꾸미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