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앞에 상태창이 보여 (31)화 (31/100)



〈 31화 〉31화 인생 계타는 날

“강식씨.”

손목시계를 보며 기다리던 강식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거기엔 윤혜림이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짙은 색 청바지에 흰색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많이 기다렸어요?”

“저도 조금 전에 왔습니다.”

“괜히 저 미안해 할 까봐 그런 거 아니죠?”

“이거  이래요? 저 솔직한 남잡니다. 이런 걸로 거짓말  해요.”

“알았어요.”


작게 웃음소리를 낸 윤혜림이 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거예요.”

티켓을 받아든 강식은 어떤 뮤지컬인지 확인을 해보았다.


“프랑켄슈타인? 이거 유명한 거 아니예요?”

“네, 아주 유명하죠. 요즘 이 뮤지컬이 그렇게  하거든요.”

작년에 시작한 공연에서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많이 받았던 뮤지컬이었다. 그래서 올해 다시 하는 것이었는데 작년의 호평에 입소문을 타서 그런지 많은 이들이 보러왔다.


“이번에 친구하고 같이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지 뭐에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강식씨하고 봐도 괜찮을  같아 이렇게 물어본 거예요.”


“네... 프랑켄슈타인이라..”

프랑켄슈타인은 알아도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뮤지컬은  어떻게 내용이 꾸며질지에 대해서도 내심 궁금했다. 광고에서나 뮤지컬을 보았지 실제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문회회관으로 향한  사람은 예정 된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이미 자리가 절반 쯤 차있었는데 티켓에 적혀 있는 자리인 A석 중앙 7번째 열에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자리에 앉았다. S석에 비하면 거리가 좀 되었지만 시야는 나쁘지 않았고 공연무대도 잘 보여서 재밌게 관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는 강식이의 행동에 옆에 앉아 있던 윤혜림이 작게 쿡쿡 거리며 웃었다.

“처음 와서 신기한가 봐요?”


“예, 이런 공연은 처음인지라..”

“호평이 많았던 뮤지컬이어서 분명 강식씨도 재밌게 볼 거예요.”


시간이 되면서 무대는 어두워졌고 곧 무대가 펼쳐졌는데  장면은 19세기 전쟁 장면이었다. 거기서 나온 빅터라는 인물이 주인공처럼 보였다.

간간히 웃음을 주는 장면과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어서 그런지 처음에 신기하게 바라보던 강식이도 시간이 모르게 빠져들었다. 특히 앙리 뒤프레라는 인물과 만나 뜻을 함께하며 불우하게 부모님을 잃고 그 트라우마에 생명창조에 뛰어들었던 빅터와 그렇게 실험을 매진하는 스토리였다. 전쟁이 끝나고서도 고향으로 돌아와 프랑켄슈타인 성에서 계속해서 실험을 이어갔고 불우한 사고에 휘말렸던 앙리가 목숨을 잃으면서도 끝내 생명을 창조하는데 성공하는 내용이 1부공연의 주 내용이었다.


2부 공연을 하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진 틈을 타서 밖으로 나온 강식이가 입을 열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데요?”

“그렇죠?”


“앙리가 사건에 휘말리는 장면도 그렇고 무도회 장면에서의 춤도 일품이었어요.”

처음 보는 뮤지컬 공연이었지만 우렁찬 목소리도 그렇게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왜 사람들이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는지 이해   같았다.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른 재미였다.

“강식씨가 재밌게 보니까 기분이 좋네요.”

“이런 공연이라면 언제든지 재밌게 볼  같은데요?”

“그 정도였어요?”


“예~!”

그렇게 짧은 휴식 시간이 지나가고 2부 공연이 시작 되기 전에 다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2부는 1부 내용에 비해 상당히 분위기가 어두웠고 슬펐다.


프랑켄슈타인 성에서 탈출한 괴물로 인해 사라진 숙부인 슈테판을 찾다가 죽은 채로 함께 발견되고 그 옆에서 깨어난 빅터의 누나 엘렌이 누명을 쓰고 사람들의 광기에 몰려 목이 매달려 죽게 되는 장면에서 가슴이 아팠다. 빅터가 누나가 그런  아니라며 항변해 보지만 눈앞에서 목이 매달리는 모습은 정말 처절했다.


어릴  부모님을 잃고 집사의 손에 이끌러 떠나는 빅터를 애틋하게 안아주는 누나 엘렌을 회상하는 장면과 오열하는 동생 빅터의 모습은 정말 슬픈 장면이었다.


그렇게 점점 분위기가 달아오르며 클라이막스를 향해 나아가고 시간이 흘러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본 강식이는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이 잘 봤다는 듯 배우들이 인사를 하러 나올 때 박수를 치는 것에 따라 강식이도 같이 쳐줄 정도였다.

“공연 어땠어요?”

근처 카페에 들어와 아이스커피 두 잔을 시켜 마시면서 윤혜림이 물어왔다.


“아주 대단했습니다. 내심 기대가 커서 실망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죠?”

“특히 빅터를 연기했던 배우가 연기를 참 잘하더라고요. 누나가 처형을 당하며 죽는 장면에서 오열하는데 저 까지 심금을 울리더라니까요?”

“맞아요.”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왜 뮤지컬을 사람들이 보러 오는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어요.”

“강식씨가 좋은 감상평을 해주니 저 역시 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영화 말고 뮤지컬도 종종 보러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프랑켄슈타인말고도 찾아보면 다른 재미난 뮤지컬은 또 하니까 관심 있는 공연이 언제 하는지 잘 찾아보세요.”


“네, 그때도 같이 가줄 겁니까?”

“물론이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윤혜림이 강식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왜 보면 볼수록 이 사람 얼굴이 괜찮아 보이는 걸까.’


헬스장에 운동하러 오는 강식이를 보면서 윤혜림은 문뜩 이 남자 얼굴이  보다 괜찮아 보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처음엔 그저 자신을 도와주고 첫 인상과 달리 보여서 기분 탓으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마주하는 이 남자의 얼굴은 확실히 그 전보다는 괜찮아보았다. 그리고 오늘 또 이렇게 만나서 바라보니 어제보다 조금 더 괜찮아 보이는  아닌가.


이런 자신이 이상해 내심 당혹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묘한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3시간짜리 공연이어서 그런지 벌써 6시가 넘었네요.”

“강식씨 면 요리 좋아해요?”


“면 요리요?”


“여기 근처에 맛있는 냉면집 가게가 있거든요.”


“날도 더운데 냉면 좋죠.”


“잘 됐네요. 그럼 거기서 저녁 먹기로 해요.”


“예.”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카페에서 가볍게 휴식을 취한 후 가게를 나서 윤혜림이 추천한 냉면집으로 향했다. 과연 윤혜림의 말대로 가게엔 손님들이 제법 많아서 1층이 아닌 2층으로 올라가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물냉면  개를 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쟁반을 들고 올라온 아줌마가 두 사람 앞에 놔주었다. 겨자와 식초를 가볍게 치고, 가위로 먹기 좋은 길이로 자른 후 양념이 잘 섞일  있도록 저어서 맛을 보았다.

확실히 싱겁지도 않고 시원한 육수와 양념이 잘 조화를 이루어 맛이 좋았다.


“혜림씨도 드셔보세요.”

“네, 그럴게요.”

맛있게 먹는 강식이를 잠시 바라보던 혜림이 웃으면서 그제야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시원한 국물까지 먹은 강식이가 화장실을 다녀오고  후에 식사를 끝낸 혜림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갔다.


계산을 끝내고 나온 강식이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7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 근처에서 한  마시고 갈래요?”


“맥주요?”

“네, 이대로 헤어지기엔 뭔가 좀 아쉬운 거 같아서요.”


과감하게 술 한  하자는 강식이의 권유에 혜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그렇게 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바로 승낙하는 혜림의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부른 강식이었다.


근처 호프집으로 이동해 가볍게 치킨샐러드와 함께 500cc 생맥 두 잔을 시켰다.

꿀꺽꿀꺽꿀꺽.

“캬아~!”


머리까지 띵 할 정도로 차가운 맥주를 마시니 절로 추임새가 나오는 강식이었다.


“역시 더울 땐 시원한 생맥이 최고죠.”


“맥주 좋아하나봐요?”


“좋아 합니다~! 가볍게 즐기기에 맥주만큼 좋은  없잖아요.”

“저도 가끔 친구들하고 맥주를 마시긴 해요.”

“친구들하고는 자주 만나요?”


“가끔요. 유학  친구도 있고 직장에 다니는 애도 있고 대학원에 진학한 애도 있거든요. 각자 바빠서 주말에 한 번씩 만나거나 그래요.”

“저도 아주 친 한 친구가  명 있는데 확실히 평일에 일을 하다 보니 잘 만나지 않게 되더라고요. 만나도 주말에나 만나지.”

“그 친구가 혹시 강식씨 도와주었다던 그 분인가요?”

“예, 아주 잘 나가는 놈이죠. 그래서 저번에 보답으로 한  제대로 쏴줬어요.”


“어려울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강식씨는 참 친구를  뒀네요.”

박민호를 그렇게 해결할 정도면 확실히 능력 있는 친구인 건 맞는 듯 했다.

“혜림씨는 그럼 지방에서 올라온 겁니까?”

“아니요, 저희 부모님도 서울에 살아요.”


“아, 그럼 독립한 거예요?”


“네.”

“하긴 혼자서 살면 좋은 점도 있죠. 관섭 할 사람도 없고. 저 역시 고아원을 나왔을 때 같다고  수는 없지만 뭔가 좀 자유를 얻은 느낌 같은 건 있었어요.”

“괜히 미안하네요.”


“뭐가요?”


“부모님이 서울에 사는데도 따로 나와서 사는 게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런 거 크게 신경  써요. 혜림씨도 다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어서 독립해서 사는 것일 텐데 그걸로 나에게 미안해 할 게 뭐가 있어요?”


“강식씨는  긍정적이어서 좋은  같아요. 전 그렇지가  하거든요.”


“혜림씨가 몰라서 그렇지 저 그렇게 긍정적인 놈 아닙니다. 얼마나 불만이 많은 놈인데요. 헬스 할 때 보세요. 얼마나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지. 당장에라도 이런 힘든 운동 떼려치워야지 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니까요?”


“정말 힘들어 보이긴 했어요.”


특히나 런닝머신을 뛰고 난 후의 강식이는 숨이 넘어  것처럼 헐떡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매일 같이 운동을 하면 누구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것이었다. 그래서 혜림은 강식이가 대단해 보였다.

누가 강제로 시키지도 않는데 자발적으로 그렇게 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에서 하는 말인데 혜림씨가 저에게 뮤지컬 공연 보라 가자고 말했을 때 놀라기도 놀랐지만 정말 기분 좋았어요.”

“왜요?”

“혜림씨도 날 좋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말 그랬어요?”

“예,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분위기를 타며 맥주를 마시다보니 어느덧 강식이는 세 잔째를 비웠고 혜림역시 두 잔을 비웠다.

강식이가 다  잔 혜림이 세 잔을 비운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이 되었을 때에야 호프집을 나섰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준 강식이가 앞아 서는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조심해서 가요, 혜림씨.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네.”

그리곤 뒷문을 열어주었다.


택시에 타려던 혜림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강식씨.”

“예?”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실래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