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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압도적인 존재 (2) (12/71)



〈 12화 〉압도적인 존재 (2)

덜그덕 덜그덕.

짐차가 덜컥거리며 앞으로나아갔다.

‘좀 많이 덜컹거리긴 하네.’

그래도 민준이 탄 짐차엔 사람이 많지 않다.
앉은 자세는 맘대로 할 수 있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짐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총  명. 민준을 제외하고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이 타 있었다.

민준을 제외한 나머지  명은 같은 일행인 모양. 이들은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인상 좋아 보이는  남자가 민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며칠은 같이 지내게 될 텐데. 간단히 통성명이라도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는 마이트입니다.”

갑자기 말을 걸어온 마이트를 보며 민준은 생각했다.

‘딱 봐도 붙임성 좋은 타입. 그래. 하루종일 입 다물고 갈 순 없으니까.’

“반갑습니다. 강민준입니다.”
“강민준? 특이한 이름이네요. 어느 지역 출신입니까?”
“음... 말해도 모를 겁니다. 그냥 아주 멀리서 왔다고만 해두죠.”
“하하. 그렇군요. 그럼 강민준은 쿤잠에 무슨 일로 가는 겁니까?”
“저는 쿤잠을 거쳐 그라티에 가려고요. 그리고 그냥 민준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마이트가 살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 강이 성이었습니까? 혹시 귀족?”
“아닙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성을 붙이는 게 흔한 일이라서요.”
“그렇군요. 성이 있다고 다 귀족은 아니니까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하하.”

민준은 나머지 둘을 흘깃 보며 말했다.

“그쪽은 모두 일행인 거 같은데 쿤잠에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희는 함께 활동하는 모험가거든요. 아무래도 이 주변에는 몬스터도 거의 없고 모험가길드도 없어서 말이죠. 잠시 일이 있어 근처로 왔다가 큰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군요.”
“나머지 일행들도 소개해 드리죠. 여기는 미샤.”
“안녕하세요.”

눈꼬리가 올라간 게 매우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다.

“여기는 할리.”
“반갑습니다.”

덩치가 크고 푸근한 이미지의 남자.

“네. 다들 반가워요.”
“하하. 민준은 그럼 무슨 일을 하러 가는 겁니까?”
“저도 모험가입니다.”
“오! 그랬군요. 혼자 행동하는 모험가라니. 실력이 상당한 모양입니다.”

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아닙니다. 그 문제 때문에 그라티에 가고있는 거죠.”
“그라티에 동료가 있습니까?”
“뭐 비슷한 이유입니다.”

율리어트는 동료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아니지만.
어쨌든 곧 아는 사이가 될 테고 가르침도 받게될 것이다.

“하하 그렇군요. 이거 너무 여러 가지를물어보는 것도 실례니 그만하겠습니다.”

이어서 이들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동을 계속했다.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이동을 한 것도 세 시간. 갑자기 선두에 있던 말이 고꾸라졌다.

히이이잉!

철푸덕!

“뭐지?”

마이트가 짐차 밖으로 몸을 내밀며 자세한 상황을 살폈다.

말의 발에는 얇은 줄이 하나 묶여있었다.

“...! 다들 무기 꺼내!”

마이트 일행은 빠르게 자신의 무기를 들고 짐차에서 내렸다.
민준도 얼떨결에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마차에서 따라 내렸다.

‘...무슨 일인 거지?’

상단이 고용한 용병들도 각자의 무장을 고쳐 들었고 마차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복면을 두른 무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적? 미친 녀석들인가? 저런 인원으로 호위를 동반한 상행을 습격한다고?”

미샤의 말에 마이트가 답했다.

“기세가 심상치 않아. 조무래기들은 아닌 거 같다.”

민준은 갑자기 일어난 돌발 상황에 매우 겁을 먹었다.

‘...시발 이런 일을 염려해서 상단과 동행한 건데 설마 우리가 당하는 건 아니겠지?’

도적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선두로 나오며 외쳤다.

“어이! 상단주! 금괴를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 말에 마이트는 미간을 좁히며 얼굴을 찡그렸다.

“뭐? 금괴? 그런 값비싼 물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심지어 그 사실이 소문이  있다? 굳이 상단과 같이 이동할 이유가 없었다.

상단주는 마차에서 나오지 않은 채 마차에 연결된 창을 아주 조금 열어 용병 단장과 대화했다.

“...미안하네. 내  상황만 잘 넘어가면 원래 계약금의 열 배를 주지. 정말 미안하네.”

원래 계약금의  배. 용병 단장은 몹시 화가  보였지만 그 말에 조금 진정이 된  표정을 바꾸곤 창을 다시 닫았다.

협상 결렬. 이를 눈치챈 도적의 수장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쳐라!”
“우아아아악!!!”
도적무리가 소리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고 용병들도 대응에 들어갔다.

민준은 뇌정지가  상태로  상황을 지켜봤다. 그의 옆에 있던 미샤가 마이트에게 말했다.

“어떡하지 마이트?”
“우리가 합류 한다면 뭐 어렵지 않게 끝나겠지만... 괘씸한 놈들. 편하게 좀 가려 했더니 귀찮은 일이 생겼군. 일단은 저들이 해결하게 냅둬.”

사전에 상단이 비싼 물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자신들은 이미 돈을 내고 합류한 상태고.
마이트 일행이 반대로 저들을 보호해줄 의리 따윈 없었다.

 시각. 민준은 무기를 세게 움켜쥐고 긴장된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촤아악!
챙! 챙!

“끄악!!”
“죽어라!”

용병과 도적이 격돌하며 선혈이 낭자했다. 전세는 막상막하.
어느 쪽이 이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

팔랑팔랑

“에잇! 갑자기 무슨 나비가! ....어어?”

한 용병이 자신의 눈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나비를 손으로 쳐냈다.
나비를 치워낸 용병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말을 더듬었다.

“...”

팔랑팔랑
팔랑팔랑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마리의 나비 떼가 시야를 가득 채우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소음을 일으킬 만큼 압도적인 개체 수.

“이, 이게 무슨...”

이들은 전투 중 펼쳐진 기현상에 모두 얼떨떨해하며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덜덜덜덜덜덜

그리고 유일하게 한 명. 민준만이 엄청난 두려움 속에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씨발. 이건 아니지.”

민준은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왜 여기서 나타나냐고!’

갑자기 나비 떼가 출몰하는 이상 현상. 민준은  현상을 소설에서 보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도 없고, 절대 보고 싶지도 않았던 광경.

‘이 현상이 나타난다는 건.’

그녀 또한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비 여왕 버터필리네아.’

버터필리네아.
그녀는  마디로 재앙 그 자체다.
규격 외 몬스터인 녀석은 자리에 있는 모두가 힘을 합쳐도 발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민준이 지금 만나러 가는 율리어트의 전성기 무력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존재.

“고약한 피 냄새가 나는구나.”

“흐으읍...!!!!”

너무나 고혹적이고 매혹적인 목소리.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는 반대로 나비 여왕의 음성을 들은 모두가 격통을 느끼며 기절했다.

“감히 내가 지나가는 곳에 더러운 종자들의 천한 피를 뿌리다니. 아하하하 벌을 내려야겠구나!”

[상태이상 완전무력화에 빠졌습니다.]
[특성 정결지체-S의 영향으로 소폭 저항합니다. 모든 신체 능력이 상당 수준 약화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위력. 단순히 말을 내뱉으며 기운을 펼치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전투 불능이 되었다.

S급 특성을 가지고 있는 민준 조차도 간신히 정신을 잃지 않은  전부였다.

“끄...으윽...”

마치 주변 중력이 수십 배가 된 듯한 느낌. 민준은 고통을참으며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했다.

‘씨발 어떡해야 하지? 이번엔 진짜 방법이 없는 거 같은데...!’

민준은 두뇌를 총동원하여 아르키아 연대기 속 나비여왕의 설정을 떠올렸다.
그때, 아직 기절하지 않은 민준을 보며 버터필리네아가 말했다.

“찾았다. 고약한 악취 가운데서도 그 향을 잃지 않는 특별한 냄새... 게다가  기운을 받고도 멀쩡하게  있다니. 더 호기심이 생기는구나.”

민준은 그 말에 더욱 사색이 되었다.

‘찾았다? 찾았다??? 뭐야. 저거 설마  때문에  거야?’

“두려움에 흠뻑 젖은 눈이구나. 하지만 걱정말아라  너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어떤 방법으로 편하게 만들어 줄지는 몰라도 절대 그녀의 방법으로 편안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민준은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나비 여왕을 올려다보았다.
물리 법칙을 무시한 날갯짓도 없이 허공에 떠 있는 나비 여왕.

그의 눈으로 확인한 나비 여왕은 정말 아름다웠다.

날개를 제외한 모든신체는 인간과 똑같았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등허리 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
그리고 눈이 부실 듯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
등에서 연결된 날개는 마치 무지개를 찍어 반으로 나눈듯하다.
옷은 명인이 한 땀  땀 짜 내려간 듯한 형형색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반투명한 옷 사이로 은밀한 속살이 언뜻 보인다.

외견만 본다면 요정이나 실체화한 정령이라 착각할 지경.
하지만 녀석은 인간에게 전혀 이로울  없는 존재다.

‘...일단은 살고 보자. 시간이라도 벌어야 해.’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고고하신 버터필리네아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발언이다.
민준은 겨우 입술을 움직여 나비 여왕에게 아부를 떨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코웃음 치며 무시했을 테지만 민준은 확신했다.

‘나비 여왕은 눈에뻔한 아부라도 자신을 치켜올리는 걸 좋아했어...!’

민준의 예상이 적중한 것일까? 나비 여왕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미소를 지은 채 민준을 바라보았다.

“아하하하~ 인간치고는 예의를 아는 놈이구나. 그래 나를 본 게 영광이라고? 그건 당연한 일이지. 할 말은 그게 끝이더냐?”

최소한의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는 확실하게 그녀의 이목을 끌만한 주제를 던져야 한다.

민준의 머릿속에 라비스커스의 꽃과 줄기가 생각났다.

‘이 꽃과 줄기라면 분명 나비 여왕이 좋아할 거야. 하지만... 하지만...’

민준은 자신이 고생하며 얻은 라비스커스를 여기서 사용하는 게 너무 억울했다.

‘시발... 살아남으려면뭐가 아까울까. 그냥 줘버리자.’

순간. 민준은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나비 여왕은 아름다움, 순수함 같은 것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었다.
라비스커스 꽃에 관심을 가질 거라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비 여왕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잔혹한 존재였지만  자체로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라비스커스는 깨끗함의 정수라고  수 있는 식물.
나비 여왕이 무조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라비스커스를 줄 필요는 없지. 애초에 나비 여왕은 나한테서 나는 냄새를 좇아 온 거 아냐?’

자신을 박제해 간직할지 아니면 통째로 갈아 마실지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떻게... 적당히 만족시키고 살아날 방법이 없나...?’

아르키아 연대기  나비 여왕은 인간이나 짐승의 피를 먹는 것도 즐겼다. 물론 그녀의 말투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런 피나 빨아먹는 것은 아니다.

‘내 피는 아무런 피가 아니지. 무려 S급 특성을 가지고 있는 몸이라고.’

민준의 몸은 현재 라비스커스 열매의 영향으로 모든 노폐물이 빠져나가 매우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

일단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하니 한 번 정도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봐줄 것 같다.

“제, 제가 몸이 아주 깨끗합니다! 피 맛이 아주 마음에 드실 겁니다!”

‘시, 시발 이게 아닌가?’

내뱉고 나니 뭔가 말이 이상하다.
자신을 잡아먹으라는 소린가?

“아하하하~! 재밌구나. 마치 요리사가 자신의 음식을 뽐내는 듯한 모습이야.”

나비 여왕은 허공에서 내려와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사라락

나비 여왕이 손을앞으로 펼쳐 가로로 휘둘렀다.
주변의 나뭇가지가 자라나며 엉겨 붙었고 의자가 하나 만들어졌다.

나비 여왕은  위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이리 와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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