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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제이 (2) (43/71)



〈 43화 〉제이 (2)

민준은 흙탕물이 우르르 떠밀려 내려가는 산사태 사이로 몸을 던졌다.

파앗! 파앗!

민준은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마력 컨트롤 기술도 훨씬 향상된 상태다.
산사태 사이를 뛰어 달리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민준이 동굴에서 멀어지며 뒤를 돌아보자 몬스터 무리가 민준을 뒤쫓아 나오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모두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거대한 몸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낸 거대 골렘.

민준은 이미 동굴에서 멀리 떨어졌다.
잠시 높은 나무 위에 올라 상황을 지켜봤다.

일대의 풍경은 설산이었다고는 상상도  할 만큼 바뀌어 있었다.
눈은 모두 녹아 흙탕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하늘에서는 폭설 대신 뜨거운 태양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크워어!!”

몬스터들이 괴음을 질렀다.
산사태에 쓸려가면서도 민준을 쫓아오고 있다.
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골렘은 동굴 입구에서꿈쩍도않고 있으니.

일단 민준은 산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시간을 버티기로 했다. 비교적 피해가 덜한지형으로 계속해 이동했다.

타앗! 타앗!

“크롸라라!!!”
“잡몹 새끼들이..!”

민준은 달리던 몸을 멈춰 녀석들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싸이클론!”

민준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콰과가가가

칼날같은 폭풍이 몰아치며 놈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타앗!

민준은 몬스터 무리 속으로 몸을 날렸다.

촤아악 쐐애액 촤악!

***

전투가 끝나고. 민준은 동굴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꼭대기에 앉아있었다.
전투로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고 있던 중이다.

“하아... 하아...”

웨이브로 소환된 몬스터는 모두 정리했다.
더이상 자신을 쫓는 몬스터는 없다.

그러나 민준의 머릿속은 깨질 듯이 답답했다.

23개월을 지내 온 보금자리가 박살이 났다.
시련을 끝내기까지 한 달이 남았으니 그 부분은 상관이 없다 치더라도 제이를 구해오지 못했다.
심지어 동굴에는 율리어트의 수첩도 남아있는 상황.

민준은 골렘이 등장했을 때 치솟았던 불길을 떠올렸다.
골렘이 사용한 기술인지, 단순히 골렘이 소환되며 일어난 현상인지는  수 없다.
중요한  제이가 있던 위치와 불길의 진원지가 꽤나 가까웠다는 것이다.

수첩은 움막이 박살 나며 동굴 외각으로 밀려났다. 운이 좋다면 멀쩡하게 남아있을 수도 있다.

‘...뭐하나 제대로 꺼내온 게 없어.’

수첩의 내용은 아직  익혀내지 못했지만, 수십 번을 보아왔던 것들이다.
거의 외우듯이 머릿속에 넣어놨으니 떠올리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

그렇다 해도 율리어트가 민준에게 남겨준 의미 있는 물건이다.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멀쩡히 남아있다 해도 저걸 어떻게 들고 올 방법도 없고.’

민준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보스 몬스터인 골렘은 동굴 입구에 앉은 채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차라리 자신을 쫓아오기라도 했다면, 다시 동굴로 들어가 제이와 수첩을 찾을 시도라도  보았을 것이다.

“...후우.”

녀석의 크기는 거의 집채만 했다.
머리도 동굴 천장에 닿을 듯했으니 높이 또한최소 5M는 넘을 테다.

놈이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도, 어느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제이와 수첩을 찾아내겠다고 동굴을 다시 찾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었다.

민준은 멍하니 골렘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한 달이야. 그냥 이대로레벨업이나 하다가 나가면 끝나는 일이잖아.’

당장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것도 아니다.
보스 몬스터는 고정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미 몬스터 웨이브도 다 처리했다.

아무리 제이가 소중한 친구였다지만 본질은 그저 평범한 목각인형일 뿐이다.

‘...정말? 정말 단순히 나무 인형일 뿐이라고?’

골렘을 처리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순간 제이를 물건일 뿐이라고 인정해 버릴뻔했다.

‘...아니 물건이면 어쩔 건데. 그렇다고 내 기분이 좆같다는 사실이 달라지나?’

자신에게 제이는 평범한 인형 따위가 아니다.
단순한 물건이라 칭한들 소중한 물건을 잃고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내 좆대로 할 거야. 이대로 시련을 나간다? 어림도 없지. 그냥은 안 나간다.’

민준의 마음속에 어떻게든 저 골렘을 부수어 내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달 후.

[축하합니다. 지옥 난이도의 최소 달성 기간을 충족하였습니다.]
[시련의 세계에서 퇴장하겠습니까?]

드디어 2년. 민준은 끝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시련의 탈출.
하지만 대답은 이미 다르게 정해져 있었다.

“좆까.”

[지금 퇴장하지 않을 시 다음 1년을 충족할 때까지 시련은 종료되지 않습니다. 시련 세계에서 퇴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남은 1년의 시련에서는 성장 속도에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현실 세계의 시간이 추가로 한 달 더 지나게 됩니다. 정말로 시련을 이어나가겠습니까?]

확실히 3년을 넙죽 주지는 않겠다는 듯.
처음 2년과는 다른 조건이 여럿 붙어있었다.
그러나 저 정도로 민준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다.

“계속 진행한다.”

[시간의 시련 - 난이도 지옥 2차 시기를 진행합니다.]

“...”
이제 돌이킬 방법은 없다. 시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또 1년을 버텨야 한다.

민준이 2년 가까이를 버티게 해 준 제이는 옆에 없다.
새로 말동무를 만든다? 그딴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와서 막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더럽게 힘들 거라는 건 각오했다.
자신이 원해서 결정한 일.

이 정신 나간 짓거리의 끝을 반드시 보고야 말 것이다.

***

민준은 어느  산꼭대기 위에서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동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1년의 시간을 더 버티는 것에 성공했다.
시련이 끝나기까지 남은 날은 단 일주일.
여전히 동굴 옆을 지키고 서 있는 골렘을 보며 민준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시련의 2차 시기를 시작하고, 처음 잠깐은 후회하기도 했다.

너무 충동적인 선택이었을까?
그냥 잊고 맘 편하게 나가는 것이 맞았을까?

민준의 정신은 이미 한 번  나락을 겪고 이겨낸 경험이 있다.
집념은 쉽게 부수어지지 않았다.

그리 편한 나날은 아니었다.
2차시기의 패널티로 인해 레벨을 올리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고, 시련 속 식량들도 전처럼 뛰어난 효능을 보여주지 않았다.

겨우 익숙해진 혹한에서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뜨거운대지는 매일을 불쾌한 일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짜증과 분노가 쌓여갈수록 목표에 대한 집념도 커져만 갔다.

2차 시기의 절반이 지났을 때 민준은 생각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골렘에게 복수하기 위해?
애초에 골렘이 복수의 대상이 맞기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골렘이 원흉은 아니지 않을까?

원래부터 시련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웨이브가 터지기 전 폭발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동굴에 남은 것들에 이렇게까지 집착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준은 그런 것 따윈 이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 분명한 것은 골렘을 때려 부순다면 자신의 막힌 답답함이 뚫릴 거라는 것.

솔직히 그는 골렘을 깨부수기 위해 어느 정도 무력을 쌓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주일. 일주일이 남았을 때 동굴을 찾아가자.

아무리 패널티가 있었다지만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새로 지났다.
골렘을 이기지 못할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민준은 천천히 동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부스스스스스

민준의 기척을 느낀 골렘이 오랫동안 멈추어 있던 거대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워어어어어.”
“뭐라는 거야. 돌덩이 새끼가.”

정말 뜻을 알고 싶어 던진 말은 아니었다.
절로 나오는 신경질적 말투.

쿵! 쿵!

놈은 걸어나오며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오랜 시간 굳어진몸을 푸는 것일까.

“어차피 굳어있는 암석 주제에.”
“그워어!!!”

쿵쿵쿵쿵!

후우우우웅!

덩치에 맞지 않게 얍삽한 수를 사용해오는 녀석.
골렘이 갑작스레 민준을 향해 달려왔다.

놈이 거대한팔을 휘두른다.

민준도 놈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폭발 마법을 사용했다.

“익스플로전!”

꽈아앙!!!
파바바박!

놈의 팔과 민준의 검이 격돌했다.
골렘의 팔에서 떨어진 파편들이 마구잡이로 빗발쳤다.

까가가가가각 촤아아아아악

골렘의 공격을 막아낸 민준의 검에서  새 없이 불똥이 튀었다.
지면에 닿은 민준의 발이 길게 흔적을 남기며 밀려났다.

‘더럽게 묵직하네...!’

무식하게  돌덩이의 주먹을 받아내고도 그저 묵직하다는 감상을 내뱉는다. 그만큼 민준의 무위도 강해졌다는 뜻이다.

화르르륵!

“흐읍!”

타앗!

골렘의 팔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민준은 몸을 뒤로 날려 거리를 벌렸다.

골렘의 전신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놈이 민준을 향해 쩌어억 입을 벌렸다.

“그워어!”

퍼어엉!

마치 포탄처럼 민준을 향해 날아오는 불타는 돌덩이 하나.

“기가웨이브!”

촤아아 퍼버버벙!

거대한 파도가 민준의 앞에 생겨났고 날아오는 돌덩이가 이에 막혀 거센 수증기를 뿜으며 폭음을 냈다.

퍼버버버벙!

파앗!

민준은 온몸에 신체 강화를 사용했다.
파도를 뚫고 다가오는 돌덩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돌덩이가 깔끔한 단면을 보이며 반으로 잘려나갔다.
민준은 이어서 놈의 하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마 독같은  절대 안 통하겠지. 하나 하나 다 때려 부순다!’

민준은 손에 쥔 검을 가로로 크게 내질렀다.
동시에 바람 마법을 사용했다.

“싸이클론!”

파바바바바박!!!

엄청난 충격과 함께 민준의 검이 골렘의 다리를 파고 들어갔다.
검이 파고든 결을 따라 거센 폭풍이 주변을 갉아먹는다.

‘끄으윽...! 겁나 뜨겁잖아!’

놈의 가까이에 딱 붙자 상당한 열기가 느껴졌다.
녀석의 몸은 마치 금방 굳은 용암처럼 뜨거웠다.

부수어진 파편이 튀는 충격도 보통이 아니다.
민준은 피부를 강화하는 마법을 사용했다.

“크윽! 스톤스킨!”

“그어어어!!”

더이상 깎아내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골렘이 민준을 향해 양손으로  주먹을 내려찍었다.

카아아앙!

“크학!!!!”

민준은 머리 위로 검을 들어 놈의 주먹을 받아냈다.
묵직한 고통이 팔에서부터 발끝을 통과한다.

카가가가가각

압도적인 질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민준의 발아래 지면이 움푹 파여 들었다.
마력으로 강화한 민준의 검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익스플로전!”

꽈아앙!

민준은마력을 엄청나게 끌어모아 폭발을 일으켰다.
동시에 검을 올려 베는 팔에 어마어마한 힘을 가했다.

파아앙!!

마치 이쑤시개로 바위를 밀어낸 듯한 광경.
골렘의 팔이 크게 밀려나며 녀석이 휘청거렸다.

민준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공략하고 있던 놈의 다리를 다시 공격했다.

“싸이클론!”

파파바바바박!

놈의 다리가 눈에 띄게 부서졌다.
녀석의 거대한 무게를 지탱하기 버거워진 다리는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아이스 에이지!”

민준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위력의 마법 중 하나.
놈은 기본적으로 화염 기술을 사용했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 있었다.

쩌저저저저적

민준이 찔러 넣은 검을 중심으로 매서운 한기가 퍼져나갔다.
단번에 얼어버린 놈의 다리는 큰 소리를 내며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후으읍!!!”

검을 들어 힘껏 놈의 다리를 향해 내려찍었다.

“익스플로전!”

꽈아아앙! 퍼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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