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내가 금태양이다. (3)
“진호 이 개새끼야. 이리 와”
나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진호가 밖으로 나가 내가 시킨 일을 하려고 할 때였다. 종우가 인상을 쓰며 움직이던 진호를 다시 불렀다. 나는 이 재미있는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 어. 부. 불렀어. 종우야?”
“종우? 내가 니 친구냐?”
“미. 미안.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몰라서.”
퍽. 종우는 진호를 발로 찼다. 진호는 인상을 조금 썼지만 그대로 있었다. 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확률은 절대로 없으니 그는 종우에게 있어 샌드백에 불과하다. 둘의 위치는 하루 만에 백팔십도 변했다.
“미안하면 끝이야?”
“...”
“끝이냐고 새끼야!”
찰싹. 울분이 터진 종우가 진호의 뺨을 때렸다. 그는 진호에게 화장실 청소를 했던 대걸레로 얼굴이 비벼진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분노심이 계속 커졌다.
“이제 답하지 않으면 1초에 한 대야.”
“한 번만 봐주라.”
“내가 누구야?”
“너는 조. 종우지.”
퍽. 퍽.
종우는 힘껏 명치를 때렸다. 진호는 배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야. 별로 안 아픈 거 아니까 당장 일어서라.”
구경하던 나의 차가운 말에 진호가 번쩍 일어섰다. 약은 새끼답게 아픈 척 연기부터 했던 것이다.
“이 새끼가 진짜.”
종우는 화가 나서 진호를 마구 때렸다.
퍽. 퍽. 퍽. 아무리 약한 주먹이라도 계속 때리면 당연히 무지하게 아프다. 그렇지만 종우의 주먹은 참으로 약했다. 때린 놈이 자신의 손목을 만지고 있다. 어제 내가 그렇게 손목을 조심하며 때려야 한다고 알려줬음에도 저 모양이다. 약골은 어쩔 수 없지.
“나는 학교 통이야. 통.”
“아! 알았어. 종우야. 넌 통이야.”
어쩌면 종우는 그저 학교의 대가리가 하고 싶어 누나를 팔았는지 모르겠다.
이윽고 종우는 즐거운 표정으로 진호가 잡아오는 학생들을 기다렸다. 진호는 지나가는 일진이나 일진 비슷한 놈들을 착실히 데리고 왔다.
나는 반항하는 일진이 나오면 제대로 때리려고 했는데 아직 고삐리에 불과한 학생들이라 내 눈빛만으로도 심하게 겁을 먹었다. 하나씩 잡아서 겁을 주자 어느덧 이곳에 열 명 정도의 학생이 모이게 되었다.
종우는 내가 알려준 장소에서 벌벌 떠는일진 놈들을 교육한다며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제 등교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학교에 늦는 거야 상관도 없으나 계속 이곳에 있기 귀찮아진다. 마지막으로 교육을 한 번 시키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너희들 지금 여기서 뭐 해?”
골목길로 덩치가 좋은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났다. 워낙 다부진 체격이라 헬스장 관장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다.
“너희들 왜 엎드려 있어. 어서 일어나.”
아저씨가 다가오며 학생들에게 일어서라고 했다. 일진들은 입가에 안도감이 살짝 생기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누가 일어서라고 했어.”
나의 차가운 한 마디에 일어서려던 일진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너가 이런 짓을 한 장본인이구나.”
내 얼굴을 보자 더 화가 난 모습을 보이는 아저씨가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덩치도 좋고 성품도 빼어난지 외모에서 악함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였다.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평소 순한 사람이 화나면 정말로 무섭다. 지금 이 아저씨는 딱 그런 단계 바로 직전이었다. 제대로 화를 내기 직전의 상황을 가진 아저씨다.
그렇지만 나는 금태양. 이런 사람을 폭발하게 만들고 싶은 남자다.
“아저씨. 그냥 가세요. 곱게 보내 줄게요.”
“뭐?”
“가라고요. 말로 할 때!”
최대한 썩은 표정을 지었다. 금발 태닝의 버프가 작용한 탓일까 아저씨의 이성이 점점마비된 듯 보였다.
“너 이놈에 새끼!”
아저씨가 말을 하며 담벼락에 앉은 나의 멱살을 잡고는 그대로 들었다. 나는 아저씨의 목에 멱살을 잡혔다.
워낙 덩치가 좋은 사람이라 일진들의 기대심이 상당했다. 종우는 조금... 아니다. 많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나를 잡고 있는 남자의 풍채가 좋았다.
“다시 말을 해 봐. 이제는 가만두지 않을 거야.”
피식. 나는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다. 한 대는 맞아 줄게요. 덩치가 이렇게 좋아도 혹시 몰라 한 대 맞을 게요. 자 쳐요.”
“뭐?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퍽. 폭발한 아저씨는 결국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그대로 구석에 처박혔다. 비각성자를 기준으로 볼 때 엄청난 힘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나는 불사의 힘을 가진 존재. 바로 치료가 끝났다. 즉사할 정도의 파괴력이 아니라면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박에 구석에 날아온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손가락을 잔망스럽게 움직이며 아저씨를 도발했다.
“야 덩어리! 여기로 와.”
헬스장을 운영하는 심지훈 관장은 자신이 어느 정도 레벨의 훈련을 했던 사람인지 잘 알기에 평소 화를 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는 이 금발에 태닝을 한 양아치가 왜 이렇게 얄미운지 몰랐다. 사람 자체가 짜증을 유발하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잔뜩 흥분했고, 건방진 금태양을 혼내려고 달려들었다.
쉬잉. 턱.
그가 휘두른 주먹이 금태양의 오른손에 잡혔다.
[오른손으로 마비의 힘을 사용합니다.]
지지직.
심지훈은 특전사 출신이다. 자기 스스로 어떠한 경우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나이 중에 사나이라 믿고 살았다. 그런 남자인 그가 식은땀을 흘렸다.
강력한 힘으로자신의 손을 잡은 눈앞의 이 양아치가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하는 중이다.
심지훈을 들어 벽 앞에 놓으며 자리를 바꾼 금태양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왜 여기로 너를 부른 줄 알아?”
“???”
“여긴 CCTV의 사각지대야. 저기 엎드려뻗친 자리도 마찬가지고.”
“무슨 말이야?”
“넌 이제 나에게 뒤지게 처맞을 건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는 소리야.”
“???”
“그냥 생각하지 마. 어차피 너에겐 절망이야.”
퍽 퍽 퍽
나는 상처가 나지 않는 곳만 골라서 때렸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일진들. 그들의 눈에 담긴 두려움은 더 커졌다. 반대로 나를 보는 종우의 존경심은 더욱 두터워졌다.
그렇게 헬스장 관장을 혼낸 나는 그를 방치하고 일진들을 바라보았다.
“내 처남인 종우 밑에 들어오고 싶은 얘들은 일어서.”
내 말에 전부 일어섰다.
“종우하고 진호는 내가 이 아저씨에게 맞은 거 진술하고 학교로 가라. 알겠지?”
“알겠어요. 매형.”
종우는 유독 크게 매형을 강조했다.
“이제 학교에서 종우에게 시비 거는 놈 있으면 너희들 선에서 처치해라. 알겠지?”
모두가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예’라고 했다. 그렇게 등굣길에서 해야 할 일을 하나를 해결했다. 거기다 뜻하지 않은 보너스도 얻었다.
*****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심지훈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새끼는 악마야. 악마! 이제 어떻게 하지?!’
심하게 자신을 때린 건 아니라 통증에 대한 두려움은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이 문제였다.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그의 사이한 능력과 잔혹한 심성이 정말로 무서웠다.
CCTV에는 자신이 때린 영상만 나왔고, 구석에서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했다고 학생들이 추가로 진술마저 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상대는 증거가 있었다. 거기다 금발 태닝의 양아치는 누가봐도 자신보다 약하게 보이는 존재였다. 이건 양아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강하다며 평소 ‘인자강’ 소리를 듣던 자신이 문제였다.
그가 유치장에서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아내인 이유선은 경찰서로 와 형사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격투기 선수들은 함부로 싸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
“심지훈씨 특전사 출신에 용병도 했고, 격투기까지 했던 이력이 있어 살인 무기라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아무리 금발 양아치가 화가 나게 했어도 이건 잘못한 겁니다.”
“형사님 방법이 없을까요?”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정식으로 소장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저녁까지는 기다려드릴 테니까 양아치 새끼가 진단서 끊어 오기 전에 합의를 하세요. 딱 봐도 양아치라 돈을 주면 합의는 할 겁니다.”
이유선은 담당 형사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끼며 어떻게든 빨리 합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
불사의 힘이 다 좋은데 몸이 바로 치료가 되는 통에 진단서를 끊을 수가 없다. 사람이 두들겨 맞아도 너무 멀쩡하고 건강하니어쩔 도리가 없다.
의사를 협박해서 가짜 진단서를 끊을지 그냥 유치장에 조금 넣어두고 진단서는 건너뛰는 걸로 할지 잠깐 고민을 했다. 단순한 문제라 금방 답이 나왔다. 이건 무조건 의사를 협박해야 한다. 그럼 막 나가는 행동을 한 번에 두 개나 할 수 있다.
띠리링 띠리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 금태양입니다.
- 저....... 심지훈씨 아내입니다.
- 무슨 일이죠?
- 하. 합의를 좀 해주셨으면 해서요.
- 그래요? 제가 병원에 가야하는데 바로 이곳으로 오실 수 있나요?
- 바로 갈게요.
- 그럼 빨리오세요.
나는 그녀에게 주소를 불러 주고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나근나근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 일단 만난다. 물론 내 집이 아닌 종우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이미 이곳을 내 집으로 여긴다.
이십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벨이 울렸다. 이곳 주변에 사나? 나는 문을 열어주었다.
심지훈이노안이라 삭아서 그렇지 실제 나이는 30대 초반이라는 말을 들었다.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니 그의 아내는 이제 20대 중반 정도로보였다.
그녀는 오는 길에 구입했는지 홍삼액을 나에게 방문 선물로 건넸다. 나는 그녀와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남편 성질 좀 죽이라고 하세요. 제가 동생들하고 좀 과격하게 놀고 있었던 건 맞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무식하게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오백을 드릴 테니까 바로 합의를 해주세요.”
이유선. 그녀는 금발에 검게 그을린 이런 남자라면 돈으로 쉽게 해결한다고 믿었다. 애초에 돈이 목적이라 이런 짓을 하는 남자다. 합의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는 그녀다.
“합의할 생각은 없습니다.”
“돈이 부족한가요?”
“아닙니다. 그냥 합의할 생각 자체가 없어요.”
그녀는 갈팡질팡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똑같았다.
“칠백을 드릴게요. 그러니 합의를 해주세요.”
그녀는 서서히 당황했다. 눈앞의 이 양아치는 반응이 없다. 그녀는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이자는 정말로 돈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제가 분명히 이야기할게요. 일억을 주건 십억을 주건 봐주는 건 없습니다.”
“돈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나는 이곳 꿈에서 번 돈을 가지고 나갈 수 있으나 고작 이런 푼돈에는 관심이 없다. 합의를 하지 않으면 다양하게 괴롭힐 수 있어 더 흡족한 성공이다.
“제가 이천만원을 드릴게요. 이건 제가 영혼까지 끌어 모은 돈이에요.”
이유선. 그녀가 합의로 사용 가능한 최고 금액은 이천만원이다. 이건 그녀가 가용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었다.
그녀와 남편은 얼마 전 상당히 무리하며 헬스장을 오픈했다. 좋은 자리에 최고급 시설로 차려진 헬스장은 임대료와 각종 장비 등등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가 상당했다. 숨만 쉬면서 있어도 한 달에 돈 몇 천은 우습게 사라진다. 물론 잘 되면 그만큼 많이 벌 수 있다.
문제는 시기였다. 오픈 초기라 돈이 가장 없을 때가 지금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으면 PT 손님이 빠지며 부부의 인생은 암담하게 변한다. 구속으로 인하여 미리 받은 비용을 환급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그녀에게 오게 된다. 이유선은 누구보다 합의가 절실했다.
“이것 보세요. 합의는 없다고 했잖아요. 저는 진짜 돈이 필요 없어요. 건방진 아저씨에게 국가에서 주는 밥을 먹여주자 이 마음뿐이에요.”
“그러지 말고 제발 부탁할게요.”
그녀는 점점 필사적으로 변해갔다.
“나가세요. 처음부터 사과만 해도 봐줄까 말까인데 돈부터 불러 화가 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합의만 해주세요. 지금 남편이 들어가면 저희 집은 큰일이 나요.”
그녀는 시댁과 처가의 모든 자금을 끌어 모은 헬스장이 망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금태양은 절박한 그녀를 보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