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02_ 데뷔조 연습 (1)
월요일이다.
인터넷을 하며 이곳에 대한 정보를 모으느라 새벽에 겨우 눈을 붙였다.
월요일이 되었으니 나는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한다.
연습생의 생활은 무척이나 빡빡하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20살이 된 내 몸은 소속사로 출근해서 하루 종일 수업과 연습을 반복하는 것이 유일한 스케줄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나?’
포니에게 받은 내 돈 2천만 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이 돈은 순식간에 쪼그라들 게 분명하다.
‘근데 곧 데뷔조에 들어갈 거잖아.’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해도 데뷔 준비를 시작하게 되면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데뷔할 때까진 내 돈 까먹고 버텨야겠지?”
근데 데뷔는 언제 하는 거야?
아직 데뷔조가 확실하게 결정 되지도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아이돌은 데뷔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1년 넘게 걸리는 건 아니겠지?’
오늘도 길거리에서 쏟아지는 여성들의 무수한 시선들을 뚫고 소속사에 도착했다.
어젠 너무 당황스러워서 택시를 탔는데, 앞으로는 걸어 다닐 생각이었다.
소설은 소설이고, 나는 현실이니 가장 현실성 있는 ‘금전’ 문제를 무시할 순 없었다.
소속사와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정도.
‘적당히 운동도 되고 좋네.’
얼굴을 뚫릴 것 같지만!
‘허니 엔터. 건물 입구부터 장난 아니네.’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 나를 덮쳐온다.
고급스러운 카페와 각종 스타들의 얼굴이 담긴 대형 포스터, 그리고 앨범과 굿즈들로 보이는 물건들이 진열 되어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너무 일러서 그런지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총 6층으로 되어 있는 허니 엔터 건물에서 내가 가야 할 장소는 2층.
그곳에 연습생들의 수업이 진행된다.
‘데뷔조 클래스는 오늘 댄스 수업이네.’
춤은 한 번도 안 춰봤다.
잘 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2층에 도착해 연습생 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혀진 대로 연습실 안에 들어가니 텅 빈 연습실이 보인다.
다만 직원이 있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어서와.”
반말을 하는 걸 보니 얘 아니, 나를 아는 것 같다.
이제 연습실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
“어디가? 출석체크 해야지.”
“아, 깜빡했네요.”
내가 그냥 연습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직원이 출석부를 쿡쿡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출석부를 살펴서 현재 시간을 적고 출석 체크를 끝냈다.
“오늘 데뷔조 수업 듣는 거 알고 있지?”
“어…네.”
데뷔조 소속이라고 해서 예전부터 데뷔조인 줄 알았는데 오늘이 데뷔조에 들어가는 첫날이었던 모양.
‘직원이 말 안 해줬으면 처음 보는 놈한테 혼자서 친한 척 할 뻔했네.’
“오늘 오전에 댄스 수업이 있어서 받으러 왔는데요.”
“어~ 맞아. 학교 안 가니까 오전에도 수업 받을 수 있다고 했었잖아.”
내가 그랬어?
“네.”
내 스케줄엔 오전 수업 1번 오후 수업 1번이 계획 되어 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12시까지 수업을 한 번 받고,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수업을 한 번 더 받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개인 자율 학습 시간이다.
하지만 어디 학교 야자의 자율이 자율인가.
다른 연습생들과 경쟁해서 데뷔조에 들어야 하는 연습생들이다.
‘입실 시간, 퇴실 시간 다 적는다는 건평소 태도를 본다는 거지.’
아무리 남녀역전 세계라 해도 상위권에 속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는 거다.
‘나는 그걸 몸 로비로 뚫어버린 거고.’
어쩐지 마음이 급해진다.
이런 실력으로 데뷔하게 된다면 욕이란 욕은 다 처먹지 않을까?
‘연예인이 악플 때문에 우울증 걸리고 공황장애 생기고 그런다는데. 그런 취급당할 바에야 섹스 열심히 해서 능력을 키우는 게 낫지.’
점점 내가 이세계에서 섹스를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늘어나고 있었다.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든 포니에게 박수를 보낸다.
으드득-!
♣♣♣
곧 수업이 있을 연습실에 들어갔다.
“어?”
놀랍게도 사람이 있다!
연습생으로 추측되는 남자는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단 인사부터 박아보자.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연습생이에요?”
“네, 이번에 데뷔조로 올라왔습니다.”
“다른 클래스라고 해도 얼굴은 알아야 정상인데. 언제 들어왔어요?”
“얼마 안 됐습니다. 진해솔, 스무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강경태. 21살이고.”
처음 보는 나짝이지만 이거 하나는 알 것 같다.
이 새끼가 나를 견제하고 있다는 거.
“다른 클래스에서 수업 받지도 않고 곧장 데뷔조에 들어온 거야?”
초면에 반말 까지 마, 새꺄. 여기가 학교인 줄 아나.
“아뇨, C클래스에서 한 달 정도 수업을 받았습니다.”
서류상 그렇다고한다.
“C클래스? C클래스면 방출되기 일보 직전인 애들만 있는 곳인데.”
그런 곳에 있던 놈이 왜 갑자기 데뷔조에 있냐는 시선이다.
“저야 모르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궁금하면 여기 직원 분한테 물어봐요.”
내가 얼떨결에 몸 로비해서 그렇다고 말 할 순 없으니까 그냥 모른다고 하고 땡쳤다.
초면에 반말 찍찍하는 놈한테 뭐 이쁘다고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있단 말인가?
“아까 스트레칭하고 있었죠? 같이 합시다.”
데뷔조에 들었다는 건 그만큼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는 뜻일 테니 옆에서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녀석이 똥 씹은 얼굴을 했다.
새꺄, 인생 그렇게 팍팍하게 사는 거 아니야.
좀 돕고 살자 어?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스트레칭 하는 법 좀 가르쳐봐.
“끄으으응~ 아이고 허리야.”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내 원래 몸보다 유연성이 좋았다.
하지만 그게 발레를 할 만큼 유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30대 똥배 나온 아저씨였던 내 전의몸보다는 낫다는 거지.
“…몸이 왜 이렇게 뻣뻣해?”
“이 정도면 평범한 축에 끼지 않아요?”
허리가 잘 접히면 유연한 거지 여기서 뭘 더 바란단 말인가.
그나저나 오전 수업은 얘랑 단 둘이서 받아야 하는 건가?
벌컥!
“안녕하세여!! 좋은 아침입니다아~”
오, 새로운 놈 등장인가.
요놈은 키가 작고 눈이 땡글한 게 강아지 상이다.
“어엇!! 이 형님은 누구심까? 처음 뵙는데요?”
“오늘 데뷔조로 올라 왔어요. 진해솔이라고 합니다.”
“으아! 말 편하게 하십셔! 저 17살이에요. 기우연입니다!”
“아~ 학생이었어? 근데 왜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어? 학교는?”
“학교 안 다닙니다. 헤헷!”
“아~ 그래?”
“여기에 인생 바쳤죠. 흐흐! 해솔 행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얘는 성격이 싹싹한 게 참 마음에 든다.
그래, 앞으로 우연이한테 붙어서 정보 좀 빼먹어야겠다.
“오전 수업은 그럼 우연이 너랑 강경태씨 이렇게 셋이서 받는 거야?”
“에이! 강경태씨가 뭐에요. 소름 돋게! 둘이 먼저인사 나눈줄 알았더니 아니었어요?”
“그냥 인사만 나눴어.”
“친하게 지내요! 팍팍한 세상, 우리끼리라도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의지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데도 굉장히 어른스러운 말을 했다.
강아지 이미지가 강해서 그냥 귀엽고 발랄하구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애늙은이인 것이다.
“너 애늙은이라는 소리 많이 듣지?”
“와! 10분 전에 처음 만난 형이 제 별명을 맞췄어요!! 설마 제 일호 사생팬?!”
“아니, 행동은 애 같은데 말하는 게 어른스러워서.”
“제가 여기 들어 온 게 12살 때거든요. 그래서 산전주선을 다 겪어서 그래요.”
여기도 지구와 똑같은 사자성어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산전주선이 아니라 산전수전(山戰水戰)이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이야.”
“앗! 산전주선인 줄 알았는데! 사자성어를 넘 많이외우다 보니 헷갈렸네용. 흐헤.”
“사자성어도 외워?”
“매너 수업 때 배워요. 별의 별 거 다 배우죠. 심지어 테이블 식사 매너까지도 알려주세요. 근데 형님은 어디서 오셨길래 이런 걸 모르셔요?”
“나 여기 들어 온지 한 달 됐어. 그동안 C클래스에서 수업 받다가 데뷔조로 올라오라고 해서 오늘 올라온 거야.”
내 말에 우연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키야~ 그래서 제가 오늘 행님을 처음 뵙는 거군요? 이해했어요. 그럼 포지션이어디세요?”
어제 아이돌에 대해 공부해오지 않았다면 포지션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어벙하게 있었을 거다.
어제 아이돌에 대해 조사하면서 포지션이라는 게 뭘 뜻하는지 알았다.
문제는 내 포지션이 뭔지 나도 모른다는 거다.
“어…글쎄?”
“포지션 안 정하셨어요, 아직? 그럼 여기 들어 올 때 뭐로 들어오신 거에요? 보컬? 댄스? 랩? 이런 것 중에 잘하시는 게 있으시니까 붙지 않았을까여?”
“…난 내 실력이 썩 자랑스럽지는 않아. 솔직히 제대로 배워볼 기회가 없었거든.”
“와, 그럼 정해졌네요!! 아무래도 행님은 비주얼로 들어오셨나 봐요. 과연, 이 정도면 허니 엔터도 픽할 만한 얼굴이긴 하네요. 부럽당!!”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는걸 당당하게 고백했는데도 우연이는 딱히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실력 없다고 말했는데 정말 괜찮아?”
“헤헤, 비주얼은 성형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데, 실력은 시간과 노력이 있으면 키울 수 있거든요. 행님 외모는 도저히 아이돌 안 하면안 될 얼굴이라서 아마 캐스팅 실장님들이 뽑지 않을 수가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포니에게 ‘아이돌’이라는 기준을 말했던 것 때문에 우연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한편, 이 대화를 들으면서도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입을 꼭 다물고 있던 강경태가 헛기침을 하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흠흠!!”
“행님, 어디 불편하심까?”
“곧 선생님 오실 텐데 스트레칭 안 하니? 몸 안 풀린 상태로 수업 하는 거 굉장히 싫어하시잖아.”
“악! 맞다. 몸 풀어야져. 제 몸은 소듕하니깐여. 흐흐~”
재간둥이 같은 우연이 히죽 웃더니 열심히 몸을 움직여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멀뚱히 서 있는 것보다 따라하는 게 낫겠다 싶어 나도 옆에서 우연이의 스트레칭을 따라했다.
“와~ 너 진짜 유연하다.”
“아휴! 부끄럽게. 제가 쫌 해요. 우하하!”
우연이의 몸은발레리나 부럽지 않게 쭉쭉 늘어났다.
“나 네 포지션이 뭔지 알 것 같아.”
“잉? 제 포지션이요?”
“응. 너 댄스 쪽이지?”
이걸 메인댄서라고 했던가?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곧바로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어제 늦게 잔보람이 있구만.’
아니나 다를까 기습적인 내 말에 우연이가깜짝 놀랜다.
“앗! 순식간에 눈치 채셨네요. 지금 저 앞조사하시는 거에여?”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이러는거 싫어?”
싫어도 형 좀 봐줘라.
앞으로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견뎌야 할 것들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
다행스럽게도 우연이는 발랄하게 대답했다.
"아이구! 괜찮아요. 얼마든지 앞조사 하세요. 전 괜찮슴다. 언제든 이 넓은 가슴으로 안아드릴께여."
"네 가슴에 안기라고?"
뜬금없이?
"흐흐, 팬이라면 누구라도 수용할 뜨겁고 넓은 가슴을 가졌다는 걸 어필한 겁니다. 행님!!"
우연이의 너스레를 감당할 수가 없다.
절로 웃음이 터진다.
이런 애가 바로 팬들이 댓글로 말하고 다니던 '무조건 데뷔조에 속할 것 같은 연습생'일 것이다.
이렇게 끼도 많고 성격도 좋으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거겠지.
'문제는 앞으로 아이돌을 하려면 내가 저래야 한다는 건데. 할 수 있을까?'
남자 아이돌.
어제까지만 해도 남녀역전 세계에서 아이돌을 하라고 하니 쉽겠다 싶었는데, 오해인 것 같다.
남녀역전 세상에서도 아이돌은 만만치 않은 직업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