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02_ 데뷔조 연습 (2)
오전 데뷔조 댄스 수업 9시 정각.
댄스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 황성만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황성만은 자신의 춤 실력에 대단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
실력이 뛰어나서 현역댄서로 활동을 하며 허니 엔터의 데뷔조 훈련까지 맡고 있는 그는 오전반 댄스 수업을 진행하기 앞서 처음 보는 새로운 연습생에게 시선을 두었다.
‘잘 생겼네.’
일단 첫 인상은 얼굴에 대한 감탄이었다.
많은 연습생들을 보아왔던 지라 얘는 되겠다 싶은 애가 가끔 나오는데 바로 오늘 처음 본 연습생에게서 그 촉이 왔다.
“네가 그 신입인가?”
“넵. 20살 진해솔입니다!”
“씩씩하네.”
지금 이 순간 데뷔조에 저런 애를 올렸다는 건 무척 의미심장한 일이다.
“오늘 수업 끝나고 점심 먹은 다음에 사무실로 와. 계약서 써야하니까.”
“계약서요?”
“아직 연습생 계약서 안 썼다며. 그거 쓰면 본격적으로 관리 들어갈 거다. 스트레칭은 다들 했니?”
“넹!”
“예.”
기우연과 강경태의 대답을 들으며 황성만은 새로 들어 온 연습생 진해솔의 몸을 유심히 살폈다.
여자들이 이런 시선을 보내면 성희롱이라고 신고를 당하겠지만, 남자인 황성만은 남자 연습생들의 몸을 유심히 살필 권리가 있었다.
“운동했니? 몸이 예쁘네.”
“딱히요?”
“왜 의문형이야. 했으면 한 거고, 안 했으면 안 한 거지.”
“안 한 것 같습니다.”
진해솔 연습생의 이상한 화법에 황성만이 직접 손을 움직여 몸을 만지작거렸다.
“으어.”
“남자끼리 좀 만지는 거니까 괜찮지? 춤을 추는데 문제없겠다. 근육도 적당히 붙어 있네.”
“그게 만지는 걸로 알 수 있어요?”
“대충은? C클래스에서 어느 정도 배웠니.”
“하하, 글쎄요. 기초만 조금?”
“네 얼굴 보니까 영 아니었던 모양이네. 하긴, C클래스 쓰레기한테는 뭘 배우는 게 아니라 성추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일 테지.”
그년은 정말 배경이 아니었다면 진작 허니 엔터에서 쫓겨났을 거다.
안타깝게도 하필이면 허니 엔터 대표의 조카라서 쫓아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A반 클래스 수업을 맡았었는데, 능력 부족이라는 사실이 너무 명명백백하고 성희롱 사건이 여러 차례 터지면서 C클래스로 좌천 된 상황.
그런 년이 제대로 교육을 할 리가 없었다.
“C클래스에서 했던 태도를 여기서 까지 끌고 오면 안 될 거다. 너도 데뷔조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C클래스에서는 네가 무슨 행동을 해도 제어하지 않았지만, 네가 데뷔조에 속해진 이상 모든 걸 관리 받게 될 거다. 아마 연습생 계약서를 쓰면서 설명을 다 들었을 거야.”
“네에.”
대답이 영 시원찮다.
‘실력에 자신이 없나?’
오로지 얼굴만 믿고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는 놈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런 놈들은 빡빡한 연습생 생활과 다른 연습생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얼굴이 잘 생겨도 이 바닥에서 버티려면 끈기와 노력이 중요한데, 과연 이놈이 그럴 능력이 있는 놈인지 모르겠군.’
요즘 남자애들은너무 의지가 부족하다.
남자가 너무 귀해지다 보니까 주변에서 애지중지 하니까 힘들고 피곤한 일은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쉬운 길을 내버려두고 굳이 자기가 이런 걸 해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덕분에 허니 엔터는 남자 연습생들이 가장 많이 지원하는 엔터이기도 하면서 가장 많은 남자 연습생들이 나가는 엔터이기도 했다.
황성만은 신입 연습생 진해솔의 태도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이제 수업 시작하지.”
♣♣♣
힘들다.
“허억! 허억!”
“누가 쉬라고 했어!! 연습이 장난이야?! 뛰어!!”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귀가 아팠다.
하지만 귀보다 더 힘든 건 심장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와중에도 나는 뛰어야 했다.
춤을 배우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든 거였나?
나만 이렇게 힘든 거야?
고개를 힐끔 돌려 강경태와 기우연을 훔쳐봤다.
이들도 땀을 흘리고 있기는 했지만, 나보다 훨씬 잘 추면서 잘 버티기까지 하고 있었다.
‘시발시발시발.’
욕이 튀어나온다.
이런 생활을 기우연은 12살 때부터 견뎌왔을 것이고말이다.
나는 어떻냐고?
아무런 각오 없이, 아무런 꿈도 없이 그저 아이돌의 화려함만 보고 여기까지 들어 온 놈이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포니는 내가 아이돌 데뷔에 성공하지 못하면 폐기시킬 것이라고 협박을 했다.
그게 뻥카일 확률이 매우 높지만, 그렇다고 무시를 할 순 없었다.
하기 싫다고 도망쳤다가 뻥친 게 아니라면 나는 죽어야 하는 거다.
함부로 시험해볼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떡하지?’
병신, 어떻게 하긴.
당연히 섹스 해야지.
애초에 섹스만 해도 능력치를 올려준다는데, 고자 새끼도 아니고 싫다고 뺀 내가 병신이었다.
“그딴 실력으로 여길 들어왔다는 게 믿어지질 않네. 허니 엔터도 이제 지려고 하나봐. 어떻게 이런 애를 데뷔조에 넣을 생각을 했지? 너는 또 무슨 자신감으로 데뷔조에 덜컥 들어오겠다고 말한 거냐? 괜히 허니 엔터에서 버티면서 물 흐리지 말고 그냥 포기하고 나가는 게 어때?”
처음에 나를 경계하던 강경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동정하고 있었다.
내 실력을 본 황정만 선생님의 폭언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내 멘탈은 못 흔들지.’
적어도 이건 내가 춤을 잘 못 추니까 받는 호통이지 않나.
하지도 않은 일로 억울하게 엮여서 상사에게 혼나는 씹극혐인 일보다야 훨씬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였다.
나는 일부러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말했다.
“노력하겠습니다!”
“과연 노력으로 이게 될까? 내가 보기에 너 몸치야. 아이돌이 몸치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제 곧 남자 데뷔조 정해질 예정인 건 알지? 연습생들 사이에 소문 난 거 다 알아. 이 실력이면 이번 데뷔조에 드는 건 무조건 불가능해. 나이가 20살이라고 했지? 다음 기회를 노린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과연 20살 중반이 된 너를 회사에서 데뷔시켜줄 것 같니?”
데뷔하지 않은 연습생이 20살 이상이 되면 데뷔 할 확률이 팍 줄어든다.
아이돌 평균 연령대가 워낙 어리기 때문이다.
‘아니, 듣고 있는 너희가 왜 즙을 짤라 그러냐?’
댄스 선생님의 독설을 들은 당사자인 나는 멀쩡한데, 오히려 옆에서 듣고 있던 기우연과 강경태의 얼굴이 엉망이다.
특히 선생님이 말한 대상에 속해 있는 강경태는 거의눈물을 쏟기 바로 직전이었다.
‘쟤 완전 멘탈 나간 것 같은데.’
내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서 선생에게강경태를 보라고 신호를 보냈다.
“지금 말하고 있는데 어디서 눈알을 굴…겨, 경태야?!”
기어코 뚝뚝 눈물을 흘리게 된 강경태.
그걸 본 선생은 그제야 자기 말이 일타이피였다는 걸 깨달았는지 실수했다는 표정이 된다.
“네, 네가 왜 울어?”
“흐흑…! 선생님, 제가 정말 데뷔할 수 있을까요? 저 벌써 21살이에요. 이번에 데뷔 못하면 여기 나가야 되는데, 제가 데뷔조에 들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생겨요. 흐흑…! 아이돌 되려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대체 뭐가 부족한 건가요?”
통곡을 한다.
나는 슬쩍 기우연과 합류해 너무했다는 비난을 담아 황성만 선생을 쳐다봤다.
황성만 선생님은 펑펑 우는 강경태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다.
“행님은 괜찮아요?”
“엉? 뭐가.”
“아까 선생님한테 심한 말 들으셨잖아요.”
“에이, 그게 뭐 심한 말이냐. 팩트 말한 거지. 나도 내 춤 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알거든. 너도 짐작했겠지만, 내가 잘 생겨서 여기 들어온 거지 실력이 있어서 들어 온 게 아니거든. 욕 먹을 거 예상하고 있었어.”
“우와…. 멘탈 진짜 강하시네요. 제가 만약 행님이었으면 경태 형처럼 울었을 텐데.”
“아이돌을 해야 하는데 이 정도멘탈은 유지해줘야지. 벌써부터 흔들리면 쓰겠냐.”
남자 아이돌이 돈을 많이벌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는 대가로 어느 정도 자기 몸에 대한 성희롱을 감내해야 했다.
여기서 잠깐!
성희롱과 성추행 부분을 지구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걸 미리 말해두겠다.
‘허락 없이 손만 잡아도 성희롱인 세상이야. 뚫어져라 쳐다 본 것만으로도 성희롱이 성립되고.’
남자 아이돌은 팬을 위해 손을 잡거나 바라봐지는 걸 감내해야 한다.
여기 남자들은 개복치도 아니고, 여성들의 시선과 관심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근데 문제는 말로 들었을 때는 그게 뭐야? 하고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실제로 겪어보면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시선이 그렇게 따가울 수가 있다는 걸 새롭게 알았지.’
남자 아이돌은 그걸 견뎌야 할 의무가 있었다.
“행님, 대단하심다. 같이 데뷔하게 되면 되게 든든할 것 같아요.”
“내가 데뷔조에 들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해? 내 실력 봤으면서.”
“솔직히 제가 실력은 자신 있는데 얼굴이 안 되거든요. 근데 행님은 얼굴도 잘 생기셨는데 멘탈도 좋으시잖아요. 멘탈 좋은 사람 옆에 있다 보면 제 멘탈도 덩달아 치유되는 경우가 있구요. 히힛, 아직데뷔 멤버가 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너무 설레발치는 건가 싶긴 한데, 상상하는 것만으로두 설레서 자꾸 생각하게 돼요. 흐흐!”
17살 소년의 순수한 미소.
기우연도 데뷔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좀 미안해지네.’
12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면 5년을 노력했다는 뜻이 된다.
내가 데뷔조에 들어가는 건 기정 사실.
‘이 아이한테 미안해하지 않으려면.’
답은 섹스밖에 없는 것 같다.
“크흠. 경태는 화장실 다녀오고 잠깐 휴식하자.”
펑펑 눈물을 쏟아서 눈이 두 배가 되어 있는 강경태가 화장실로 사라졌다.
그리고 연습실에 남은 우리들과 황성만 선생님의 눈이 마주쳤다.
“…진해솔, 너는 괜찮아?”
여기서 나까지 즙을 짜면 황성만 선생님의 멘탈을 완전히 갈아버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괜찮습니다. 제가 춤을 제대로 못 춘 건 사실이니까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혼내주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만두라는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것만 아니면 따끔하게 해주시는 충고, 뼛속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제가 멘탈 하나는 튼튼하거든요. 실력만 기를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내 말이 제법 취향에 맞았던 모양이다.
황성만선생님의 표정이 부드럽게 펴졌다.
“…아무래도 내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네.”
“예? 오해요?”
황성만 선생님과 만나서 한 거라곤 춤 배우고 욕 처먹은 것밖엔 없는데 이 상황에서 오해를 쌓을 만한 일이 있었던가?
“네 각오가 그 정도라면, 좋아. 나도 최선을 다해서 널 가르쳐주마. 대신 말한 것처럼 단단히 각오 하는 게 좋을 거야.”
“예!”
황성만 선생님에게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호의였다.
솔직히 섹스로 능력을 올릴 생각 중인 나에게 이런 열의는 당황스러웠지만, 최선까지는 필요 없다고 할 순 없었다.
‘아무래도 나 말을 잘못한 것 같은데.’
불길하다.
하지만 옆에서 흥분한 기우연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으와앗!뭐하시는 거에여!! 저만 빼놓고! 저도요. 저도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 더 가르쳐주세요.”
“너는 연습생 중에 제일 잘 추면서 나한테 뭘 더 빼먹으려고 그런 소릴 하냐?”
“데뷔조에 들려면 이제 연습생 중 최고로는 부족하다고요. 더 가르쳐주세요~ 쌤!!”
기우연이 황성만 선생님에게 매달렸다.
저런 넉살은 나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