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02_ 데뷔조 연습 (4) -수정
‘데뷔조라고 해서 애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몇 안 되네.’
숫자를 세어보니 나까지 합쳐서 16명이다.
하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자 16명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할 수 있는 숫자는 많아도 9명이 넘지 않을 테니 반 이상이 탈락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가뜩이나 치열한데 거기에 뜬금없이 나까지 추가 됐으니, 얘네들 입장에선 날벼락 같겠네.’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 중 나이가 좀 되는 사람들, 그러니까 강경태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선 받지 못하면 허니 엔터에서 나가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진다.
그래서 강경태도 처음에 나를 만났을 때 까칠한 경계심을 보여주었을 것이고.
‘그나저나신기하네. 얘네들이 데뷔를 하면 아이돌이 된다는 거지?’
아이돌 지망생이니까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생각보다 하는 행동들이 또래 철없는 애들이랑 다르지가 않았다.
쓸데없는 데 깔깔 웃어대기도 하고, 거침없이 욕을 하기도 한다.
누가 쟤들을 스타라고 생각할까?
아무리 봐도 평범한 청소년들이었다.
‘생각보다 눈에 띄는 애들이 별로 없지만, 관리를 받아서 그런가 중간은 하네.’
그렇다고 해서 중간이 오전에 봤던 기우연과 강경태가 그나마 잘 생긴 편에 속한 모양이다.
그리고 내 눈에도 오?! 하는 감탄사를 나오게 하는 애가 한 명 더 있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키가 좀 작더라.
내가 새로 받은 몸은 183cm의 매우 흡족한 키를 가졌는데, 나를 기준으로 확인해보니 170cm 초반인 것으로 예상이 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쟤 이름을 알았다.
“강준 행님! 인사 나누세여.”
“…강준입니다.”
“강준?”
내가 아는 눈치를 보이자 기우연이 놀라서 물었다.
“어? 우리 준이 형 알아요?”
“응. 데뷔조에서 엄청 유명한 것 같던데.”
“맞아여!! 우리 준이 형이 유일하게 팬클럽까지 있는 분이세여.”
팬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하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팬클럽이 있을 줄은 몰랐다.
기우연이 적극적으로 나를 소개시켜주는 것에 비해 강준은 소극적으로 나를 대했다.
머쓱하게 인사를 나눈 후로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 것이다.
기우연은 내게 이해하라는 듯 변명을 해주었다.
“강준 행님이 낯을 좀 가려요. 자주 보고 친해지면 정말 진국이시거든요. 두 분이 친해지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굳이?”
“어차피 하루 이틀 만날 사이도 아닌데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요.”
기우연은 적극적으로 강준을 나에게 추천하고 있었다.
얘가 괜히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꼭 친해지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 보면 얘는 대충 누가 데뷔할지 못할지 구분을 해놓고 있는 중인 거야. 그래서 나한테 친해지라고 눈치 주는 거고.’
같은 그룹이 되어 데뷔하게 된다면 적어도 친분은 쌓아두고 시작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거다.
기우연의 행동이 기분 나쁘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저렇게 계산이 빠른 녀석이 데뷔조에 드는 게 나에게도 이득이었다.
답답하고 멍청한 사람이 동료가 되어 속을 썩이는 것보다야 훨씬 좋지 않은가?
아직 대면대면한 강준과 시종일관밝은 기우연, 그리고 주변에서 슬쩍슬쩍 나를 관찰하는 연습생들, 마지막으로 이쪽에 아예 관심 없어 보이는 강경태와 그들 무리까지.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곧이어 선생님이 들어와 수업이 시작 됐다.
“쟤 왜 저렇게 못해?”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후.
연습생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 생긴 놈의 등장에 잔뜩 긴장했는데, 춤 솜씨가 누가봐도 초보 실력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큭큭큭! 쟤 휘청거리는 것 좀 봐."
"뭐야, 잔뜩 긴장했는데 별 것도 아니잖아?"
데뷔조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반이 있다.
A클래스, B클래스, C클래스까지.
그런데 C클래스 출신인 내가 A와 B클래스를 무시하고 데뷔조로 곧장 직행했다.
연습생들은 당연히 춤과 노래에 어느 정도 실력이 있으니 그게 가능했을거라고 생각했고,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헌데 정작 까보니 춤 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나는 연습생들의 따가운 시선을 꿋꿋하게 무시했다.
계속 이 실력으로 있을 생각이 없었으므로 당당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 비웃어. 비웃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을 테니까.’
이놈의 콧대를 뭉개주려면 내가 해야할 일은 뭘까?
‘쎅쓰!’
그래, 그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 ♣ ♣
진해솔의 핸드폰 번호를 따간 그녀, 진주아.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철저하게 이성에 대한 관심을 끊었었다.
남자 아이돌에 비해 여자 아이돌은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연습생 주제에 남자와의 스캔들이 난다?
곧장 퇴출이다.
‘이제 연습생이 아니야.’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이번 달이 지나면 연습생 계약이 해지 된다.
이성을 사귀어도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녀 정도 되는 외모면 남자를 충분히 사귈 수 있는 상위권에 속하는 인재다.
‘하씨, 처녀티 많이 났으려나? 뭐라고 보내야 하지?’
다만 진주아는 한번도 이성에게 먼저 호감을 표시해본 적이 없어서 속으로 많이 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깜짝 놀랐다.
저렇게 잘 생긴 남자는 처음이었으니까.
어릴 때 허니 엔터에 들어와 본의 아니게 잘난 얼굴을 가진 남자들을 많이 만나봤다.
하지만 오늘 만난 진해솔의 미모는 그녀의 수준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어버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남자 중 가장 최고였고, 앞으로도 진해솔을 뛰어넘는 미모의 남자를 만나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연습생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자포자기와 이판사판의 마음이었다.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구!”
놀랍게도 진주아는 진해솔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너무 기뻤고, 이후에는 어떻게 말을 적어서 메시지를 보낼까 설렜으며, 연애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서투른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다.
[주아 : 안녕하세요, 오늘 점심시간 때 만났던 진주아입니다.]
“하아~ 너무 밋밋한데.”
어떻게 해야 확!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데뷔조에 들 확률이 높은 연습생이다.
바빠서 시간을 내기 힘들 게 뻔했다.
진지하게 사귀게 될 거라는 생각도 애초에 하지 않았다.
다만.
꿀꺽-
‘처, 처음은 그런 남자랑 하고 싶어.’
배우로 데뷔하기 전까지, 지금껏 꾹 눌러왔던 이성에 대한 욕망의 고삐를 풀어내려는 진주아.
하지만 그녀도 로망이라는 게 있었기에 처음을 아무나와 함께하고 싶지가 않았다.
“데뷔만 성공하면 무조건 뜰 남자란 말이야.”
나중에 친구들에게 자랑 할 수 있을 거다.
저 남자가 내 첫 남자라고.
아마 네 주제에 그게 말이 되냐며 거짓말 하지 말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인증 사진, 꼭 찍어야지. 흐힛!’
물론 이런 모든 것들은 그녀의 망상에 불과했다.
정작 현실은 메시지를 하나도 보내지 못한 모태솔로 처녀만 있을 뿐.
♪♬♪♪~
“꺅?!”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깜작 놀란 그녀가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멋!! 어떡해!!”
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한 그녀가 비명을 내지르듯 화들짝 놀랬다.
방금 전까지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했던 상대의 이름이 떠 있었다.
“여, 여, 여보세요?”
‘시발나왜말더듬지찐따도아니고제발정신좀차리자.’
-안녕하세요. 진해솔입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오늘 점심 때 만났는데. 우연이랑요.
‘목소리존나좋아어떡하지뭐라고대답해야하냐병신같은나새끼야머리를굴려!’
“네에.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아! 그러셨어요?
“…….”
-…….
침묵이 돈다.
진주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럴 때 여자가 남자를 확 이끌어줘야 하는데!’
이대로 실망시킬 순 없었다.
진주아가 이빨을 까드득 깨물고 흐트러진 호흡을 정돈하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이, 이번 주말에 뭐하시나요! 제가 저녁을 사고 싶습니다!”
쩌렁쩌렁!!!!!
-…아, 그러시구나.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텐데. 아니, 근데 정말 저녁을 사주실 건가요? 아무 이유 없이?
“이유라뇨. 당연히 귀한 시간을 저한테 쓰시는 건데 그 정도는 해야죠. 비록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엔터에서 나올 예정이지만, 해솔씨한테 저녁 살 능력은 됩니다.”
빡빡한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두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의 대부분 미용에 쓰였고, 나머지는 저축했다.
남자와 친구를 만날 시간에 연습을 했기에 돈은 무리없이 모였다.
그때 돈을 미리 모아두길 잘했다 싶다.
불끈!
‘큰 거 온다!!’
-알겠어요. 근데 꼭 주말이어야 하나요?
예쓰!!!!
“주, 주말이 아니면 언제가 편하신가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
설마 내년에 보자는 건 아니겠지?
두근두근!
진주아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 ♣ ♣
한편.
음흉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 전화번호를 따갔던 여자에게 먼저 연락을 넣은 나는 그날 저녁 데이트 약속까지 쉽게 잡는데 성공했다.
‘2D 미녀랑 데이트도 아니고 실사 미녀랑 데이트라니. 미쳤네, 미쳤어.’
워낙 인상적인 미모인지라 피곤하게 춤을 추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얼굴이 잊히지가 않더라.
결국 한참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었고, 놀랍게도 또 다시 먼저 데이트 신청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남녀역전, 대단해.’
남자로서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세상에 떨어졌다는 게 조금씩 실감이 나고 있었다.
여자가 먼저 번호를 따고 데이트 신청을 하는 세상이라니.
물론 지구에서도 먼저 호감을 표하고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일을 당할 만큼 잘생겨졌다는 게 진짜 중요한 부분이다.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것뿐인데도 여자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받았다.
진주아, 그녀를 보지 못했다면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 중 한 명에게 내 전화번호를 넘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여자가 날 잡아먹어달라고 하고 있는데, 엉뚱한 곳에 한 눈을 팔 순 없지.’
주말 데이트를 위해서 준비가 필요했다.
2천만 원이라는 통장 장고는 데이트를 대비하는데 훌륭한 자금이 되어주었다.
일단 가장 급한 건 옷이다.
장롱 속에 있는 옷은 모두 내가 30대에 입었던 옷들.
본래의 집과 똑같이 꾸며준 것은 센스있었지만, 소소한 물품들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모양이었다.
집에 있는 옷은 당연히 바뀐 몸과 맞지가 않았다.
때문에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옷이었다.
“다행이 남자들 패션도 지구랑 크게 다르진 않네.”
역겨워서 토하진 않아도 될 것 같다.
패션의 완성이라고 불리는 얼굴을 이미 장착하고 있는 덕분에 옷을 고르는 난이도가 Easy 모드로 낮아지긴 했지만 워낙 근본 없는 패션인지라 걱정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다고자부한다.
아이돌은 연예인.
패션에 눈을 떠야 할 필요가 있었다.
‘메모에 적어둬야겠다. 급한 것부터 사람 수준으로 올려놓은 다음에 이걸 올려야지.’
패션 센스도 까먹지 말고 코인으로 꼭 올리도록 하자.
진주아 씨와 만나기로 한 날은 바로 내일이었기에 당장 내일 점심을 먹고 시간을 내서옷을 사러 갈 생각이었다.
자율 연습을 하지 않는다 해도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다만 연습을 하지 않은 대가는 나중에 평가를 받을 때 반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됐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데뷔조에 들어갈 것이 확실한 상태였고, 연습을 하는 것보다 옷을 구매해서 코인을 얻는 게 연습보다 효율이 좋다는 걸 알았다.
‘원나잇 까짓 거 해보지, 뭐!’
내가 굳이 주말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녀와의 약속을 잡은 이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