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04_ 보컬 트레이너 로즈쌤 (2)
일주일.
본격적으로 내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지 7일이 지났다.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이 생활이 좀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며칠 데뷔조 수업을 엉성하게 듣고 있으니 매니저 실장이 본격적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며 여러 가지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운동이 첫 번째 요구다.
첫 번째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로인해 파생 되는 것들이 많았다.
식단 관리도 해야 하고,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도 빡세게 해야 했으니까.
두 번째로는 외국어.
허니 엔터는 글로벌로 활동하는 아이돌을 만든다.
그렇다 보니 외국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데뷔조 멤버를 정하는데 외국어를 잘한다면 가산점을 받는다고 한다.
‘올려야 하는 게 왜 이렇게 많아?’
배우는 외국어는 일어, 영어, 중국어 중에서 선택을 하면 되는데 그나마 내게 가장 익숙한 영어를 선택해서 배우기로 했다.
그리고 데뷔하기 전에 간단한 시술을 해준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패스하기로 했다.
나를 자연 미인으로 홍보할 예정인데, 작은 시술로도 태클이 걸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더불어 주변 인간관계 관리도 들어갔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서 혹여나 ‘진해솔’이 데뷔 이후 문제를 만들 만한 인연이 없는지 확인을 한 것이다.
과할 정도의 사생활 침해였으나 기우연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학폭 미투가 터져서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허니 엔터도 기껏 키워서 대박친 그룹 하나가 활동을 아예 못하고 있고요. 차기 아이돌 그룹에선 그런 일이 아예 없도록 시작부터 깐깐하게 따져서 완전무결한 그룹을 만들 생각인 것 같아요.”
싫으면 나가라는 게 허니 엔터의 입장이었고, 데뷔를 해야 하는 연습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은 탓에 회사에서 이런 식의 조사를 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포니가 잘 만들어놨겠지, 뭐.’
아이돌 몸을 만들어놨는데 과거가 문제가 되도록 만들지 않았을 거다.
아무튼 회사에서는 나를 데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데뷔조를 관리하는 매니저 실장이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데려가는 게 계속 되자 연습생들 사이에서 내가 데뷔가 확실한 연습생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아무튼 요즘 그래서 분위기가 좀 쎄해요.”
기우연은 그런 분위기를 나에게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실장님이 행님을 챙기는 걸 보면서 질투도 나고, 위기감을 느끼나 봐요. 그렇게 견제를 한다고 자기가 데뷔조 확정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아무튼 행님, 최대한 조심하세요.”
“걔들이 날 견제한다고 무슨 일이 있겠어?”
“무슨 깽판을 칠지 몰라요. 지금이 벼랑 끝이라고 보시면 되요.누군 살고, 누구는 떨어져서 죽고, 둘 중 하나인데 제정신이겠어요? 겉으로 보면 평화로운 것 같은데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거에요.”
기우연은 조심스럽게 특히 내 상황이 조금 독특하지 않냐며 내가 그들에게 미움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굴러들어 온 돌 취급이란 말이구나.’
가뜩이나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쌓은 정이 있는 탓에 서로 미워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라는 존재가 불쑥 들어온 덕분에 마음 놓고 미워할 대상이 생긴 것이다.
여기서 만약 내가 연습생들에게 미움을 받을 빌미를 제공한다면?
“네 말 들으니까 진짜 몸조심 해야 할 것 같네.”
“네. 이번 그룹은 완전무결한 연습생들을 데뷔시킬 예정이니까요. 그걸 모르는 애들이 없거든요. 어떻게든 깽판이라도 쳐서 자리를 만들고 싶을 거에요.”
연습생들 사이에서 분란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데뷔가 확정 됐음에도 무산이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실력으로 붙은 게 아니라 비주얼 멤버로 붙은 것이지 않은가.
“고맙다. 근데 자꾸 이렇게 도움만 받아서 어쩌지?”
배시시-
기우연이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비밀인데, 행님한테만 말할게요. 제가 실장님한테 얘기를 들은 게 있어요.”
“얘기?”
이런 시기에 실장으로부터 얘기를 들었다는 건 하나밖에 없다.
“설마 데뷔?”
“네. 흐흐! 저번 주 금요일에 말씀해주셨어요. 데뷔조 확정 됐다고요.”
“헐! 미쳤네. 완전 축하해.”
요놈, 그걸 여태 숨기고 있었단 말이지?
녀석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장난을 걸었다.
꺄르르 꺄륵 장난을 치던 우리들은 다시 이야기에 집중했다.
“쉿쉿! 절대 공식 발표 나기 전에 미리 티내면 안 돼요. 아직 멤버가 완전 확정 된 게 아니거든요. 몇 명을 두고 고심 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확정 됐다는 소문이 나면 안 돼요.”
민감한 문제라는 걸 잘 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한층 더 낮췄다.
“너랑 나만 정해진 거야?”
“전 제 얘기만 들었어요. 제가 뭐라고 그런 중요한 정보를 다 알려줬겠어요. 다만 행님은 너무 노골적으로 매니저 실장님이 데리고 다니는 바람에 티가 난 거에요. 슬슬 솎아내기가 시작 된 것 같아요.”
위쪽에선 이미 상당수의 연습생들을 탈락 후보로 지정하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중일 거라고 한다.
“아예 가망성이 없는 애는 미리 눈치를 주기도 해요. 매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또 나름 배려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기획사에 연결해주는 경우도 있고, 다른 쪽으로 일을 할 수 있게 추천도 해주고요. 해지를 원하면 해지도 해주고. 아무튼 지금 이 기간이 제일 머리 아프고 서로 견제가 장난 아니게 일어나죠.”
그날 우연이의 조언을 머릿속에 기억해두면서도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생길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우연이가 걱정하던 일은 놀랍게도 진짜 벌어졌다.
그것도 그 말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날에 말이다.
시작은 아주 작은 일이었다.
“아, 씨발!”
춤을 추다보면 옆에 있는 사람과 부딪치는 건 흔히 벌어지는 사고다.
누가 누구에게 부딪칠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서로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
순간 욕이 튀어나온 것이라면 이 일이 사건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재훈아, 괜찮아?”
“괜찮냐? 발목 많이 아파?”
“하씨, 아까부터 옆에서 존나 민폐네. 뿌리는 파스 좀 줘.”
“!!”
“…!!”
흘리듯 말한 거지만, 춤 실력이 부족한 나를 까는 말을 대놓고 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기우연이 슬며시 내 옆에 다가와 팔을 잡았다.
여기서 발끈해서 일을 크게 만들면 나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말리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우연이에게 씨익 웃어준 뒤 뿌리는 파스를 가져와 재훈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많이 다쳤냐?”
“필요 없어.”
툭!
뿌리는 파스를 건네려는 내 손을 쳐버리는 걸 보면 나에게 시비를 걸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나를 힐끗힐끗 바라 보는 눈빛에 악의가 가득하다.
내가 진짜 20살 미숙한 성인이었다면 호의를 거절당한 것에 빈정이 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미성년자에 불과한 녀석이 중2병이 터져 짜증을 부리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이구~ 많이 화나쪄요? 아파쪄요?”
재훈이와는 몇 번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있었기에 장난을 거는 게 아예 어색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아구~ 짜증나쪄요~ 아파서 화나쪄요~ 형아가 고쳐줄게. 아야 했으니까 파스 뿌리자. 그래야 빨리 나아용.”
치이이익-!
“씨발! 꺼지라고!”
재훈이가 분위기를 험악하게바꿔보려는 것인지 내 팔목을 세게 잡았다.
그리곤 눈을 부릅뜨며나를 위협했다.
“뒤지고 싶냐? 나이 한 살 많다고 위세 부려?”
잔뜩 성이 난 어린 녀석.
얘 나이라고 해봤자 고작 19살이다.
슬픈 일이지만, 재훈이는 기우연이 말했던 ‘데뷔하기 어려운 멤버’ 중 하나였다.
그걸 본인도 알고 있다는 게 비극인 것 같다.
“괜찮아. 괜찮아. 살짝 빨개진 거야. 곧 월말 평가 있어서 재훈이가 많이 예민해졌구나. 형이 실수했네. 조심했어야 하는데, 그치?”
“씨…!”
재훈이에게 이번 월말평가는 데뷔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터.
발을 세게 밟은 건 아니었지만, 재훈이 입장에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을 거다.
‘다치는 순간 끝인 거니까.’
어른으로서 마음이 초조해진 아이의 투정에 화를 낼 순 없었다.
잔뜩 성이 난 재훈이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마사지해주고 계속해서 거친 말을 뱉는 재훈이를 달랬다.
그러자 점점 정신이 돌아왔는지 욕을 내뱉던 입이 다물어지고, 재훈이의 얼굴이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과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달은 거다.
더군다나 주변에서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여 더 창피할 거다.
“확실히 이번 월말 평가가 중요하긴 하지.”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다, 재훈아.”
상황이 수습 되어 가는 것 같아 보이자 눈치를 보던 연습생들이 하나 둘 나서기 시작했다.
얼마 뒤, 몸을 회복한 재훈이와 함께 다시 연습이 시작 됐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 크게 번지지 않았기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묻혔다.
연습실을 비추고 있는 CCTV에 고스란히 찍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 ♣ ♣
“슬슬 애들이 미치려고 하네요.”
“안쓰럽긴 한데 어쩔 수 없죠. 데뷔는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저 친구, 생각보다 성격이 좋은데요?”
데뷔조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습생들이 모르는 사이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에 찍혀 회사 수뇌부들에게 정보로전달되고 있었다.
아이돌 하나 키우는데 드는 돈만 해도 수십억이 든다.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대형 기획사라고 해서 신규 아이돌 그룹을 런칭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대형 기획사이기에 더 철저하게, 더 완벽하게 준비를 해야 했다.
때문에 회사는 연습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짓을 함에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저 정도 얼굴이면 여자들 많이 만났을 것 같은데, 과거 나온 건 없어요? 너무 완벽하니까 오히려 걱정이 드네.”
“본인 말로는 없다고 하는데, 저 얼굴을 여자들이 가만히 뒀겠어요? 먹혀도 한참 전에 먹혔겠죠. 이미지를 너무 깨끗한 쪽으로 잡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얼굴에 색기가 좔좔 흐르잖아.”
“음, 확실히 애가 아직 스무살밖에 안 됐는데 여자 많이 만나 본 느낌이 나긴 해요.”
“쟤는 배우 비주얼인 것 같던데 나중에 연기 할 생각은 없대요?”
“연기 실력은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대형 기획사라 해도 데뷔하는 모든 아이돌 그룹을 스타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조를 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거나 자칫 삐끗해서 실수를 하면 묻혀 버리는 게 연예계 바닥이었다.
어떤 경로이든 얼굴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써야 했다.
“아무튼 성격 부분은 패스하시죠. 우연이가 나이가 어려서 중심을 잘 잡아줄 수 있을지 걱정 됐는데, 해솔이랑 함께 하면 잘 어우러지겠어요.”
“멘탈도 나쁘지 않은 것 같더군요.”
“겉으로 유들유들해 보여도 독기가 장난 아니에요. 내 수업 받고 눈물 한 번도 안 흘린 애는 쟤가 유일하거든요.”
로즈 트레이너의 증언까지 합해지니 진해솔의 멘탈리스트 부분을 의심하는 사람은 싹 사라졌다.
“공부를 하는 태도도 매우 협조적이고 기본적으로 영어를 익혔는지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네요. 다만 전형적인 수업을 받았는지 영어 회화가 약해서 그걸중심으로 수업을 받는 중이라고 합니다.”
“근데 노래랑 춤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닌가요? 아무리 잘생겼어도 데뷔조에 첫 번째로 넣을 것 가지는 없는 것 같던데. 그리고 비주얼이라면 강준이도 나쁘지 않잖아요.”
“강준이는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잖아요. 자기 얼굴을 쓸 줄을 몰라.”
“해솔이 실력은 좀 어떻습니까, 트레이너 선생님들.”
“재능 있어요. 배워보지 않아서 그렇지 배우기 시작하니까 엄청 빠르게 늘어나더라고요. 제가 깜짝 놀랐을 정돕니다. 이대로 계속 성장한다는 걸 가정하면 데뷔하는데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우연이랑 비벼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더군요.”
댄스 트레이너인 황성만의 예상치 못한 말에 회의실에 모인 소속사 직원들 모두 깜짝 놀랐다.
“우연이랑 비벼볼 정도라고요?”
“지금 말고 나중에 말입니다. 적어도 몇 년은 더 배워야죠. 다만 재능이 부족해서 도중에 막힐 것 같아 보이지는 않더군요. 어제까지만 해도 오징어처럼 흐무적 거리던 애였는데 며칠만에 애 몸에 각이 잡히더라고요.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얘는 왜 이런 재능을 썩히고 있었던 거지? 싶은 생각이 들고 아까워 죽겠더라고요. 춤 재능 쪽으로는 깔 게 없습니다. 시간만 넉넉하게 주세요.”
“와~ 그럼 나중에 우연이랑 해솔이 둘이서 유닛 활동시키면 딱 이겠네요! 둘이 친해서 유닛 활동 하자고 하면 분명 좋아할 거에요.”
“캬~ 이게 이렇게 터진다고? 어쩐지 얼굴 보자마자 얘는 무조건 붙잡아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거든요. 뭐랄까, 운명 같다고나 할까요? 역시 제 촉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비주얼로 뽑아놨더니 춤까지 잘 춘다라. 하하하! 전 해솔이가 대박날 줄 알았습니다. 해솔이 제가 데려 온 거 다들 아시죠?”
뜬금없이 터진 자화자찬에 회의실에 한 바탕 웃음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