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04_ 보컬 트레이너 로즈 쌤 (5)
“뭐지, 이 상황은?”
주아 누나와 뜨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핸드폰에 연락이 와 있는 의문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보통의 경우에는 새벽이니까 날이 밝고 연락을 했겠지만, 메시지는 불과 20분 전까지만 해도 내게 연락을 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토커인가?’
처음에는 스토커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엔 좀 찝찝했다.
한두 번 남긴 것도 아니고, 주르륵 스크롤을 내려야 할 정도로 연락을 했다가 싹 지운 상태였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 : (삭제 된 메시지입니다.)]
“뭐야, 존나 무서워.”
불과 20분 전까지 왔던 메시지였기에 분명 상대방도 잠을 자지 않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결국 나는 저장 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내가 모르는 급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헌데 통화가 연결 되자 나타난 상대는 스토커가 아닌, 술주정을 부리는 발정난 강아지였다.
‘본인을 박복순이라고 말하긴 했어도 그 목소리를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로즈 선생님은 목소리가 굉장히 독특했다.
더군다나 그녀에게 보컬 수업을 듣는지라 아무리 통화 속이라 해도 구분하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녀 또한 의도적으로 이름을 바꿔 정체를 숨기려는 것은 아닌 듯 해보였다.
통화 속 박복순 아니 로즈 선생님은 내가 오늘 그녀에게 끼를 부린 탓에 치솟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술을 먹었다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솔직히 그 말을 알아들은 것만으로도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아주 술에 찌들었네, 찌들었어.’
꽐라가 되어서는 발정난 걸 주체하지 못하는 강아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주아 누나와 뜨밤을 보낸 터라 내 정력은 텅텅 빈 상태다.
‘술에 취한 여자를 건드리는 것도 영 꺼림칙하고.’
남녀역전 세계이니 술 먹은 여자를 건드렸다고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지금도 어서 와서나를 따먹어달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통화는 자동 녹음이 되고 있는 중이기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증거로 쓰일 수 있었다.
‘아껴먹자. 오늘 코인은 충분히 벌었어.’
주아 누나가 정말 쪽쪽 빨아먹은 탓에 남 줄 게 없었다.
“오늘 너무 늦었어요. 내일 수업 하셔야 하잖아요. 술 그만 드시고, 주무세요. 오늘 일은 내일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고요.”
-………
“지금 혓바닥 풀려서 발음 제대로 안 나오고 있는 거 알아요? 당연히 모르겠죠. 음. 아무튼 전화 끊으면 무조건 자는 거에요? 저랑 약속해요.”
-………
통화음 속에서 옹알대는 뜻 모를 소리가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내 말에 반응하는 건지, 아니면 지 좋을 대로 떠들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내 할 말만 하고 끊을 거다.
“그럼 내일 술 깨고 얘기하는 거에요. 로즈 쌤?”
-새액- 새액-
“어…자는 거에요?”
어느 순간부터 숨소리가 들린다.
통화를 하면서 술기운이 확 올라와 잠이 든 것 같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여기서 더 투정을 부렸으면 계속 받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됐을 테니까.
“잘자요.”
성시경 흉내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바뀐 몸의 목소리가 워낙 좋아서 내가 한 말을 본인의 귀로 들어도
기억하진 못할 테지만, 이런 소소한 디테일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출석을 했다.
요즘 내 스케줄은 이렇다.
월요일은 댄스 수업
화요일은 보컬 수업
수요일은 연기수업&운동
목요일은 매너연습&언어수업
금요일은 합동수업
토요일은 자율 연습
일요일은 휴식
오전 수업은 보충수업의 의미로 진도를 나가기보다는 오후에 받은 수업의 심화 된 내용을 다룬다.
수요일에 배우는 운동은 수영, 테니스, 축구, 탁구 같은 운동이다.
나름 애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둔 거다.
더불어 운동 활동은 나중에 데뷔를 했을 때 도움이 된다.
협동심을 키울 수 있고, 각종 게임을 진행하는 예능에서 활약도 할 수 있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의 대부분은 월말 평가 준비를 위한 시간이다.
그와 더불어 돈이 없는 연습생들의 아르바이트 기간이기도 하고.
‘수요일은 연기 수업에 운동!’
현재 나는 수영을 배우는 중이다.
예능에서 물에 빠지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에 수영을 미리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연기수업은 솔직히 흥미가 가장 떨어지는 수업이다.
가수가 무슨 연기냐고 생각해서 흥미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올릴 게 얼마나 많은데…. 연기는 못 올리지.’
능력치를 올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연기는 뒷전으로 밀려나서 그렇다.
춤과 노래는 코인빨로 쑥쑥 성장하는데, 연기는 그렇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미도 떨어진다.
연기를 못한다고 데뷔 못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 또한 열심히 기초만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아이돌이 무대에서 지을 법한 표정 만들기 같은 것들 말이다.
오전에 연기 수업을 받고 나면 오후는 운동 수업을 받는다.
수영은 여자 연습생들과 남자 연습생들이 절대 마주치지 못하도록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게 하는 편이었다.
기우연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그런 거 없이 수영장을 개방했는데, 여자 연습생이 남자 연습생과 눈이 맞아서 탈의실에서 그 짓을 한 게 CCTV에걸려 난리가 났었단다.
‘그때 걸렸던 여자 연습생이 래퍼 간지.’
허니 엔터에서 걸그룹으로 데뷔를 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다가 마의 7년을 넘지 못하고 해체.
그 후 멤버 각자 뿔뿔이 흩어졌는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멤버가 바로 래퍼 간지라고 한다.
성공적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하여 현재는 허니 엔터의 든든한 캐쉬카우가 되어주고 있는 래퍼이기도 하다.
‘데뷔하게 되면 한 번쯤은 마주치지 않을까 싶은데.’
괜히 걸그룹으로 스타가 된 게 아니듯, 미모가 장난 아니었다.
카메라가 그녀의 미모를 반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실제로 보면 얼마나 예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 요즘 여자만 보면 잘 생각부터 해서 큰일이네. 이놈의 부작용!’
성 능력을 올린 부작용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여자 생각이 나고, 섹스가 땡긴다.
처음에는 내가 변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포니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 자식, 매번 바쁘다고 능력치만 올려주고 사라져버리니까.’
그나저나, 저 아가씨는 도대체 언제 말을 걸 생각인 거야?
일부러 여기에 앉은 건데.
마침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지금이야 말로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야 할 타이밍이라 확신한다.
“흠흠.”
‘그렇지!’
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미끼를 자처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걸까?
드디어 그녀가 기척을 내며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박복순 쌤이라고 짓궂게 놀리면 따귀 맞겠지?
순간 장난기가 돌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흠흠, 혹시 어제 그…음….”
로즈 선생님 아니, 복순 누나는 선뜻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는지 자꾸만 말을 빙빙 돌린다.
이대로 계속 시간을 보내면 누군가가 휴게실로 들어올 터.
나는 당돌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직도 그래요?”
“어? 뭐가?”
“아직도 나랑 섹스하고 싶냐고요. 새벽에 발정 나서 죽겠다면서요.”
“너, 너너…! 켈룩! 켈룩! 켈룩!!”
경악한 복순 누나가 침을 잘못 삼켰는지 사례가 걸려 켈룩거렸다.
아~ 저런 얼굴을 하면 안 그런 사람도 짓궂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복순 누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수업시간에 봤던 독설스러운 모습이 되레 신기하게 느껴진다.
무섭기만 하던 그녀도 결국 사람이고, 여자인 것이다.
당황해서 부들부들 떠는 그녀를 향해 자리에서 일어나 한걸음 다가갔다.
“얼굴 빨개졌네.”
“너! 내가 새벽에 실수했다고 그걸 핑계로 날 협박하려는 모양인데, 이런다고 내가 넘어갈 것 같아?!”
“협박이라뇨. 제 말을 그런 식으로 들으시면 되게 서운해요.”
“그럼 방금 그게 협박이지 뭐야?”
“전 그냥 물어본 거에요. 새벽에 했던 말, 지금도 유효하냐고.”
“…뭐?”
복순 누나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린다.
아직도 내 말에 숨겨진 진의가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중인 듯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복순 누나가 틀렸다.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
그녀의 ‘몸’이었으니까.
“저랑 자고 싶다면서요. 쓸모 있는 놈들이 하나도 없다며. 당신 눈앞에 쓸모 있는 남자 왔으니까 잡아요. 어렵게 꼬아서 들을 이유가 없는 얘기잖아.”
“…….”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랑 잘래요?”
꿀꺽-
복순 누나가 티나게 침을 삼켰다.
머릿속이 복잡한지 선뜻 손을 잡지 못했던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물었다.
“좋아, 자줄게. 대신 한 번이야. 이후로는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혹여나 다른 쪽으로 부탁을 하는 것도 안 돼.”
나참. 이 여자가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했네.
당돌한 소리를 하는 그녀에게 현실을 알려줘야겠다.
“로즈 쌤,지금 그 말을 해야 할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라 저인 것 같은데요? 발정 난 것도 로즈 선생님이고, 나랑 자고 싶다고 새벽에 연락한 것도 로즈 선생님이잖아요. 아! 물론 전 그런 말 할 생각 없어요.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막는 스타일이거든요.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가요. 그리고 오고 싶어도 언제든 오고.”
“익! 너 너무 건방진 거 아니니? 내가 어제 실수 좀 했다고 사람이 우습게 보여?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말을 들어 보니 날 협박하고 싶은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그게 먹힐 리가 없다.
이미 나는 허니 엔터 이사에게 데뷔를 약속 받은 입장이니까.
여전히 뾰족하게 대꾸하는 괘씸한 그녀의 턱을 잡아채,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말했다.
“연애 말고 섹스하자는 소리에 웬 말이 이렇게 많아요? 겁먹지 마세요. 내가 선생님한테 바라는 건 몸이지 다른 게 아니거든요.”
“읏!”
코인만 얻을 수 있다면야, 오는 여자를 막을 이유가 있겠는가?
더욱이 이렇게 몸매가 환상적인 복순 누나를 말이다.
가는 여자도 막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막을 거다.
욕심이라면 욕심인데.
남자가 부족해서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정력 능력을 높일 수 있는 내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한다.
“나 한 번 먹어보면 다른 남자는 시시해서 쳐다도 보기 싫어질 걸요?”
“건방 떨지 마.”
“하핫, 아무튼 발정나면 나한테 연락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녀의 턱을 놓아주자 복순 누나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한참 나를 잡아 먹을 듯 노려보던 그녀가 악당이나 할 법한 대사를 한다.
"다음에 또 이러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쾅!!
“아이고.”
누가 보면 절대 연락 안 할 것 같은 기세다.
앙칼진 고양이가 따로 없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 말에 발정이 나서 다리를 비비는 걸 분명히 봤다.
저렇게 가버린 건 발정을 숨기지 못하는 상황이 곤욕스러워 도망쳐 버린 거다.
내가 굳이 그녀에게 더 공을 들이지 않아도 곧 먼저 연락을 줄 거라고 확신한다.
“여자 꼬시기 쉽다, 쉬워.”
인생이 easy하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