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05_ 월말평가 (1)
정력에 과감히 6코인을 배팅했을 때.
솔직히 부작용을 생각 못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정한 거였다.
그리고 지금 상태창으로 확인이 가능한 보유 코인을 보며 결코 헛된 선택이 아니었음을 확신했다.
[보유 중인 코인 : 6 (3+3)]
정력을 올려서일까?
간간히 터지던 보너스 코인+2가 연속으로 터졌다.
덕분에 6코인을 소비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6코인이 남아 있는 상황이 됐다.
“내 선택은 완벽해쓰~”
정력을 올리는 게 코인을 더 많이 버는 방법이었다.
더욱이 복순 쌤과 주아 누나, 두 사람으로부터 코인을 바짝 챙긴다면 코인은 더더욱 빠르게 쌓일 것이다.
잔뜩 쌓인 코인으로 사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역시 게임에는 템빨이 최고인 법.
얘네들 상태창을 통해 접속 할 수 있는 마트 물건에는 코인을 단순히 능력 상승용으로 쓰는것보다 훨씬 효율이 좋은 것들이 많았다.
씻고 욕실에서 나오니 복순 쌤이 깨어 있었다.
“잘 잤어요?”
“어제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질러 놓고 멀쩡한 거야?”
“엄청난 짓이요?”
내가 대수롭지 않은 밤이었다는 듯 대꾸하자 복순 쌤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너 진짜 특이하다.”
결국 한소리를 한 복순 쌤이 힘이 하나도 없어서 일어나질 못하겠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온 몸이 결리는 듯 해보이는 복순 쌤이 어기적어기적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
서로 옷을 다 입고, 호텔을 나선 우리들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호텔 앞에 서자 복순 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 함부로 이런 쪽 얘기 하고 다니는 성격 아니지?”
“설마요.”
지구에서라면 몰라도 여기서는 음담패설을 함께 할 친구도 없었다.
“앞으로도 쭉 그렇게 행동해. 데뷔하게 되면 자지 함부로 놀리지 말고. 그러다가 논란 한 번 생기면 훅 갈 수 있어. 너는 특히 회사에서 관리 빡세게 당할 줄 알아.”
“와~ 자긴 즐길 거 다 즐기고 다른 여자들한테는 기회를 안 주겠다는 거에요?”
“뭐,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한 번도 맛을 보지 못했으면 몰라도 맛을 알면서 끊는 건 불가능하다.
“서로 좋은 추억 만들었다고 생각하자.”
괘씸한 소리를 하는 복순 쌤의 엉덩이를 콱 쥐고 주물렀다.
“꺄읏! 어, 어제부터 내 엉덩이는 왜 자꾸 건드리는 거야?!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잖아요. 밤에 그렇게 앙큼하게 굴어놓고 아침 되니까 새침하게 구는 게 괘씸해서 엉덩이 때려주려다가 만 겁니다. 혼내는 게 아니라 상을 주는 게 될 것 같아서요.”
“이잇!”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아들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구요. 사적인 만남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뜻이잖아요.”
“…맞아. 우리는 이걸로 끝나는 게 옳아. 다 널 위해서 하는 소리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 마. 곧 데뷔해야 하는데 조심해야지. 나 말고 다른 여자들더 있으면 지금이라도 서둘러서 정리하고. 그런 것 때문에 기껏 데뷔할 수 있게 됐다가 탈락하면 억울하고 아깝잖니.”
복순 쌤은 철없는 어린애 달래듯이 나를 다독이며 인연을 끊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정말 괘씸하다.
다음엔 엉덩이가 빨개지도록 때려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혼내주고야 말 것이다.
“알았어요. 그렇게 어린애 설교 하듯이 안 해도 괜찮아요. 앞으로 보컬 선생님으로만 대할게요.”
“어? 으응, 그래.”
뭔가 이게 아닌데? 싶은 얼굴이다.
찜찜하겠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너무 쿨하게 나왔을테니까.
어쩌면 그녀는 내가 매달리는 걸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림없는 소리다.
내가 왜 매달린단 말인가?
이 얼굴에, 이 몸매에,
자랑스러운 똘똘이 오너인 내가 한 여자 때문에 자존심을 구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저 노래 잘 가르쳐주셔야 해요, 로즈 선생님?"
"당연한 소릴 하네."
"하하,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옷이 구겨져서 집에 들렸다가 회사 가려면 빠듯할 것 같아요.”
“잠깐만, 내가 데려다줄게.”
로즈 선생님이 다급하게 날 붙잡았지만, 잡혀주지 않을 거다.
“괜찮아요. 택시 가면 됩니다. 나중에 봐요~”
호텔 앞이라서 그런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택시가 대기를 타고 있었기에 바로 탈 수 있었다.
창문으로 힐끗 살피니 로즈 선생님이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게 보인다.
저렇게 미련이 잔뜩 남은 얼굴로 나를 떼어놓으려고 하다니.
참으로 괘씸하지 않은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훗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한 번도 못 먹어 봤으면 몰라도.'
이미 먹어 본 맛 좋은 나를 과연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처녀였던 주아 누나가 요즘 나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자는 메시지를 괜히 보내는 게 아니다.
로즈 선생님이 절절하게 후회를 해서 나에게 혼내달라고 엉덩이를 까기전까지.
결코 그녀에게 내 자지를 보여주지 않을 것을다짐했다.
♣ ♣ ♣
“야야야야야야! 빅뉴스! 빅뉴스!!”
“왜왜왜??”
“재훈이 회사 나간대!!!!”
"말도 안 돼!"
"진짜?"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매니저 실장님이랑 대화하는 거 들었어. 거짓말 아니야.”
“하, 시x. 조졌네.”
저번에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고 연습생들을 데려간 이후 데뷔조 분위기가 굉장히 안 좋아졌다.
이번에 새롭게 런칭하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인원이 5명으로 결정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쫙 퍼진 것이다.
언제 한 번 들은 적 있었던 ‘솎아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 된 듯하다.
“아직 월말 평가 남았잖아. 갑분 퇴사 뭐냐?”
“병신아, 그런 걸로 뒤집히겠냐고. 상황을 비벼보려고 해도 안 될 것 같으니까 런한 거잖아.”
“대놓고 말은 안 해도 구성원은 이미 결정 난 거야, 분명히.”
“8명은 될 줄 알았는데 고작 5명으로?”
“충격이다. 진짜.”
“이제 우린 어쩌지?”
“몇 년 더 날릴 각오 하든가, 다른 회사로 이적 해야지.”
“아…나는 자신 없는데. 진짜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해보고 끝이라고?”
이번 월말 평가.
다들 이를 갈고 열심히 준비 중이었다.
월말 평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데뷔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연습생 한 명이 탈주했다는 소식에 다들 허탈감 큰 모양이었다.
자신도 결국 재훈이와 같은 절차를 밟게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으로 보였다.
“……”
“……”
이런 분위기에서 함께 월말 평가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인 우리들은 말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절망하는 애들한테 섣불리 위로를 해줄 수도 없고,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연습생들과 두루두루 친한 기우연은 마음이 안 좋았는지 좌절하는 연습생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나는 기우연의 후드티를 잡아당겨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만류했다.
“하지 마.”
“그래도….”
“오히려 기분 나쁠 수도 있어. 그냥 닥치고 있는 게 최선이야.”
“그래, 내가 봐도 해솔 형 말씀이 맞는 것 같다.”
드물게 제키까지 나서서 말하자 기우연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 완전 씹창 났네.’
가장 멘탈이 아슬아슬해보였던 재훈이가 탈출을 선언했다.
꿋꿋이 버텨서 월말 평가를 보고서 결정을 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월말 평가를 앞둔 연습생들의 멘탈이산산조각 났다.
자기들도 재훈이와 같은 꼴이 될 거라며 우울감에 가득 차 있는데, 연습이 될 리가없다.
“연습 안 하고 다들 뭐하는 거야?!”
그때, 매니저 실장님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헉!”
연습생들에게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하는 존재가 바로 매니저 실장이었다.
“월말 평가가 고작일주일 밖에 안 남았는데, 이렇게 쉬고 있어도 되는 거야? 빠져가지고 말이야. 이 중에 나 벌써 다 익혔다, 완벽하다 하는 놈 있으면 손 들어. 열외시켜줄 테니까.”
“…….”
“…….”
당연하지만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한 마디 호통을 치고 돌아갈 줄 알았던 매니저 실장이 연습실 안으로 아예 들어와 우리들을 모았다.
“여기저기서 다람쥐처럼 소문 모으고 다녔을 테니까 너희들도 대충 알긴 할 거다. 위에서 슬슬 데뷔조 멤버 후보를 짜놓은 상태야. 너희들이 불안해 하는 거 다 안다. 그래도 흔들리지 말고 월말 평가 준비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
“이제와서 월말평가가 뭐가 중요해요? 벌써 후보를 확정 지으셨다면서요.”
“정말 너무하세요.”
“맞아요! 데뷔는 실력 순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왜 열심히 노력하라고 하셨어요?”
데뷔가 미끄러지기 일보 직전의 아이들은 용감했다.
그동안 불만을 꾹꾹 눌렀지만, 내가 데뷔조에 속해 있는 게 확실해지자 쌓였던 불만을 너도 나도 터트렸다.
“여기서 갑자기 실력이 왜 나와? 그리고 실력없어도 연예계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철 없는 소릴 하냐? 더군다나 확정 됐다고 한 적없다. 후보를 짜놓은 상태라고 했지!”
“확정이 아니라고 해놓고 프로필 사진은 왜 찍으셨는데요?”
“재훈이가 회사 나가기로 했다는 것도 다 들었어요.”
연습생들의 예상치 못한 반발에 다소 당황하던 매니저 실장이 한숨을 쉬곤 목소리를 높였다.
“데뷔 멤버는 언제든 바뀔 수 있어. 고작 이런 사소한 일에 멘탈이 흔들려서 때려치우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게 해주마. 우리는 그런 나약한 놈들이랑 같이 일 못 한다.”
“!!”
매니저 실장이 세게 나가자 왁왁 대던 연습생들이 흠칫 나며 뒤로 물러난다.
이들의 불만이 쌓인 것도 데뷔하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니, 나가라고 배짱 장사를 해버리면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애들 잘 다루네. 들었다 놨다 하니까 정신을 못 차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으로서 매니저 실장이 연습생 애들한테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자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직 애들인지라 확실히 다루기가 쉽다.
마음 약한 애는 울기까지 하니 오죽할까.
데뷔하고 싶은 마음에 반항했지만, 결국 진짜 속마음은 자신에게도 데뷔할 기회가 왔으면 하는 거였다.
‘1~2년 고생한 게 아니니까 저럴 수밖에 없지. 아이고~ 안타까워라. 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
형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양심에 찔리는 30대 넘은 아저씨로서 이런 애들을 짓밟고 데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미안하다.
‘그래도 어쩌겠냐. 아저씨도 먹고 살아야지. 나는 아이돌 데뷔 못하면 폐기 처분 당해서 양보는 못 해준단다.’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도 냉정한 현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그들의 눈물에 공감은 해도 무언가를 나서서 할 생각은 없었다.
기우연은 어느새 연습생들의 눈물에 동조하여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펑펑 울고 있는 쟤도 끝까지 자리 양보하겠다는 말 한 마디도 안 하잖아.’
현실이라는 건 결국 그런 거다.
저 애들을 짓밟고 데뷔에 성공한 우리들이라고 해서 스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듯이.
“너네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어. 월말평가가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훌쩍…! 거짓말 하지 마세요.”
“거짓말 아니야, 인마! 속고만 살았냐? 너희들한테 이번 월말평가는 수능이나 다름없어. 인원을 다섯으로 결정지을지, 아니면 더 추가해서 넣을지 그날 확실하게 결정할 예정이거든.”
“헉?”
“!!!!!!”
“저, 정말요?”
“우왓!”
훌쩍거리며 울던 아이들에게 기적과 희망이 찾아 온다.
내 입장에서 추가 인원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위협이었기에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래! 그날 대표님도 오실 거야. 얼마나 중요한 평가인지 이제 알겠어?”
“여, 연습해야겠어요!”
“바로 그거야. 지금 울고 있어봤자 너희들 앞날에 도움 될 거 하나도 없어. 지금은 죽어라 연습만 해라. 나도 너희들이랑 같이 지낸 세월이 있는데 이런 걸로 거짓말 안 친다.”
“우와앗! 실장님!!! 감사해요!!!”
태세변환 오지네.
“그럼 재훈이는 왜 퇴사를 한 거에요?”
아직 월말평가라는 기회가 남아 있으니 재훈이가 퇴사한 게 말이 되질 않는다.
혹시 이 소식을 몰라서 퇴사한 거라면?
연습생들 표정이 복잡 미묘해지려는 순간, 매니저 실장이 말했다.
“진짜 소식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다, 너네. 이래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나 봐.”
“흐흐.”
“재훈이한테 지금 했던 말 전부 똑같이 설명했다. 그런데도 퇴사를 결정한 거야. 원래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재훈이 설득하려다가 말해서 너희들한테도 설명해준 거고.”
월말 평가에 대표님이 참석한다는 건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다.
하지만 갑자기 퇴사하겠다는 재훈이를 설득하기 위해 월말평가에 대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다른 연습생들에게 공지할 수밖에 없었다.
재훈이 녀석이 나가면서 친한 애들한테만 정보를 풀면 공정하지 못한 월말평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떨결에 재훈이 덕을 봤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재훈이 오면 너희들이 잘 다독여줘. 포기하기까지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겠냐.”
““네에….””
재훈이의 퇴사 때문에 좋은 정보를 얻은 연습생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재훈이의 퇴사 소식 때문에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