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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05_ 월말평가 (3) (23/849)



〈 23화 〉#05_ 월말평가 (3)


허니 엔터에는 남자 직원도 물론 있지만, 아무래도 여자 직원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개중에는 어릴 적 허니 엔터의 연습생이었다가 데뷔를 하지 못하고 떨어진 후 허니 엔터의 직원으로 취직을 한 경우의 직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예쁜 여자 직원들이 많아.’

어릴 때부터 소속사를 들락거린 탓에 이 바닥의 생태를  알기에 전혀 모르는 곳에서 직원을 뽑는 것보다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탈락한 아이를 직원으로 뽑는 게 훨씬 효율이 좋다고 한다.
독기 하나는 나무랄 게 없으니 말이다.
다만 여러 가지 제한 된 생활을 하다가 자유도가 높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연습생 직원들이 가끔 사고를 치는 경우가 있었다.
더 이상 빡빡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풀어져서 살이 찌거나 하는 건 개인적인 일이니 문제없지만, 백이면 백 연애에 대한 의욕이 너무 강해서 사고를 치는 것이다.

“안녕.”

수줍게 내게 인사를 건네 오는 여자 직원.
낯이 익은 직원이었다.

“이 시간에 네가 왜 여기서 그러고 있어?”
“나 직원으로 들어 왔어.”
“연습생 그만두고?”
“응.”
“쓰읍- 아쉽네. 너 엄청 예뻐서 잘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춤도 엄청 잘 춘다고 들었는데.”

내가 여기 와서 한 가지 새롭게  것이 있는데, 지구에서 여자에게 외모 칭찬을 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여자에게 외모 칭찬을 하는 것이  효과가 좋다는 것이다.
엄청 수줍어하며 배시시 웃은 그녀가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그녀는 많이 예뻤다.
토끼를 연상시키는 분홍 분홍하고 하얀 느낌의 순수하고 귀여운 여자.

“그러고 보니 머리 염색했네?”
“응, 이제 연습생 아니니까. 기분 전환하려고 한 번 시도해봤어. 혹시 이상해?”
“분홍색 머리라서 눈에 확 띄긴 하는데,  어울려.”

연습생이 염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은 없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검은 머리를 유지하는 게 대세이긴 하다.
주아 누나를 보며 얻은 정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연습생들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일탈을 하고 싶어 하는 편이었다.
주아 누나에게 일탈은 나였고, 얘한테는 염색이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이상하다고 할까봐 걱정 많이 했거든.”
“남들 시선이 무슨 상관이야. 네가 만족했으면  거지.”
“지금 둘이 뭐하는 거죠?”

그때, 갑자기 날카롭게 찢어지는 호통 소리가 들린다.

“꺅! 엄마!”

오전 수업 시간에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나온 터라 호통의 대상은 아마 나였을 거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습생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아현이가 기겁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가뜩이나 키가 작아 귀여운 편인 아현이가 저렇게 화들짝 놀라니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매우  마땅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로즈 선생님.”
“지금 수업 시간인 걸로 아는데?”
“죄, 죄, 죄송합니다!!”
“너는 이제 직원이라서 상관없는데  죄송하다고 하는 거야? 너한테 한 말 아니거든?”
“아차!  이제 연습생 아니죠? 헤헤.”
‘귀엽네.’

아현이가 배시시 웃는 게 귀여워서 바라보고 있으니 로즈 선생님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진해솔, 지금 옆에서 히죽대고 있을 때야? 빨리 수업 들으러  가니? 그렇게 한가해?”
“아닙니다. 갈게요.”

며칠 전  아래에서 앙앙 울어대던 그녀가 지금은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혼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유로운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아현이는 눈치 채지 못한 듯하지만, 그녀가 저렇게 날카롭게 나오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박복순(가명-로즈)]
[상태 – 질투/짜증/흥분/욕구불만]

물론 내 눈치가 빨라서 그걸 안 건 아니다.
상태창의 도움을 받아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녀를 꼬셔야 회사에서도 코인 수급이 가능할 텐데,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어서 상태창을 킨 것인데, 잭팟이 걸렸다.
아현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게 그녀의 질투심을 제대로 자극한 것이다.

‘질투심을 이용해보면 더 타오를 수 있겠는데.’

좋은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아현이에게 눈으로 찡긋 윙크를 해준 뒤, 수업을 받는 연습실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였다.
그 모습은 당연하지만, 필연적으로 로즈 선생님도 볼 수밖에 없었다.

씩씩-

로즈 선생님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저렇게 질투할 거면서 그때 그런 소릴 했단 말이지.’

하여튼 재밌는 여자다.

 ♣ ♣

거친 숨소리.
삑- 삑-
바닥과 운동화 밑면이 스치면서 나는 삑삑소리가 이젠 정겨워질 지경이다.
쿵~♪♬ 쿵~♬♩♪

거친숨만큼이나 스피커에서 시작 되는 음악 소리가 심장을 쿵쿵 뛰게 한다.
3분 41초의 음악이 하루처럼 길었다.
땅에 발이 닿는  찰나 뿐.
월말 평가에 많은 게 걸린 탓인지 아이들 저마다 욕심을 부려 화려함과 기술이 잔뜩 들어가 있는 무대가 만들어졌다.
그로인해 고통 받는 건 아직 초보자인 나였다.

‘뒤지게 힘들다!’

포기하고 싶었다. 이대로 발을 멈추고 잠깐 숨을 고른다면 훨씬 세상이 아름다울 것 같다.
하지만 생각만 그렇게 하는 것일 뿐.
발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팔은  있게 휘두르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두둠칙! 두둠칙-! 지이잉~~

그렇게 괴로움을 견디고 견디다 보면 어느새 음악은 끝이 난다.
한 곡을 견뎌냈다는  깨닫는 순간 찾아오는 뿌듯함.
세상에 시작이 있으면 끝은 반드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허억…허억…!”

지금 입을 열면 심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헐떡였다.
나 혼자만 이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라면 위안이 되는 일이다.

“아이고 죽겠다.”
“으허억~ 나 죽는다.”
“진영…이가 추가시킨 부분 다시  생각 없냐? 헉헉…시발, 존나 힘드러.”
“…….”

나는 그냥 입 다물고 바닥과 한 몸이 됐다.
저렇게 말을 하는 것도 기운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피곤했다.
이내 호들갑이 잦아들고.
아이들이 너나  것 없이 심란한 마음을 터놓는다.

“뭔가 되게 멀게 느껴졌었는데 이제 며칠  남았네. 월말평가.”
“진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본  오랜만인  같아요.”
“다들 장난 안치고 진지하니까, 나도 위기감 들어서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달까?”
“요즘 잠이  와. 그러다가 겨우겨우 잠들면 악몽을 꾸고 깨어나고.”
“뭔 악몽인데?”
“쫓겨나는 꿈.”
“뭐 그딴 꿈을 꾸냐? 기분 더럽겠다.”
“엄청 더럽지.”

그 꿈이 실현 될까봐.

월말평가가 얼마 남지 않은 현재.
연습실은 꿈과 희망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악몽과 스트레스만 남아 있었다.

“진해솔, 잠깐 나와 봐.”
“…저요?”

움직이기 싫은데.

“잠깐이면 돼.”
“끄응.”

딱딱하고 사무적인 로즈 쌤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나저나 왜 부른 거지?
실장님도 아니고 솔직히 로즈 쌤이 날 부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세요?”
“월말평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데뷔 준비 들어갈 건데, 아무래도 다른 애들보다 연습생 기간이 짧은 너는 부족한  많다 보니 보충 수업을 할 거야.”
“노래 수업만 받는 건가요?”
“네가 부족한  어디 노래뿐이니? 그래도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선택과 집중을 해야  때라 춤이랑 노래만 빡빡하게 받을 거야.”
“수업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그럼?”

로즈 쌤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내 스케줄의 오전 부분은 모두 댄스 수업과 보컬 수업으로 대체 될 거라고 한다.
연기, 매너, 언어 수업들이 모두 댄스와 보컬로 대체 될 예정이기도 했다.
정말 선택과 집중으로 빡세게 내 실력을 늘릴 예정인 듯하다.

“운동 수업도 헬스로 대체  예정이야. 이제 사람들 앞에 보이게 될 테니 보기 좋은 몸을 만들어야 하니까.”
“근데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궁금한  있으면 다 물어봐.”

로즈 쌤의 말을 덥석 문 내가 질문을 했다.

“그걸 왜 실장님이 아니라 로즈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건가요?”
“…실장님이 바쁘다고 하셔서 내가 대신 전해주는 건데.”
“아~ 실장님이 바쁘다고 하셔서 부탁받으셨구나.”

허니 엔터에서 로즈 선생님의 이미지가 어떤지 알고 있는 나는 그녀의 말이 거짓말임을 간파했다.
능글맞게 웃어 보이자 로즈 선생님의 얼굴이 일으러진다.

[박복순 (가명-로즈)]
[상태 – 당황/창피]

장난치는 것도 재밌지만, 너무 과하게 감정을 건드리면 역효과가 날 수 있었기에  정도만 건드리고 빠지기로 했다.

“아무튼 알겠어요. 전달해주셔서 감사해요.”
“…이게 네 새로운 스케줄표야.”
“넵!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연습실로 들어갔다.
뒤에 남은 로즈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뒤돌아볼까 고민했지만, 참기로 했다.
쓸데없이 쿨한 여자에게 더 쿨하게 행동해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스케줄표는 정말 빡빡했다.
다른 수업들은 좀 한 눈을 팔면서 들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댄스 수업과 보컬 수업은 듣는 내내 집중을 해야 하는 수업이다.
그런데 그 수업을 일주일 내내 듣게 되었으니 내 몸과 정신이 버텨 줄지 모르겠다.

“오지게 힘들겠다. 하.”

하지만 이런 생각은 본격적으로 보충 수업에 들어가면서 180도 바뀌게 됐다.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보충 수업은 나 혼자만 듣는다.
즉, 로즈 쌤과 나의 보컬 수업은 1:1로 진행 된다는 뜻이다.

“정말 여기 있어도 괜찮을까?  혼나는 거 아니야?”

나는 일부러 아현이를 보컬 수업이 있는 연습실로 잠깐 불렀다.

“괜찮아, 괜찮아. 잠깐인데 문제  리가 없잖아. 기다리고 있어봐. 가져 올 테니까.”
“응!”

아현이는 항상 늦잠을 자서 아침을 먹지 못하고 나오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기에 사용할  있었던 술수다.
나는 오늘 샌드위치를 넉넉하게 사왔다.
보충 수업을 받는다는  아현이에게 말했기에 갑자기 음식을 사온 것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나는 배고파하는 아현이를 슬쩍 불러 먹을 걸 쥐어주는 것이 목표였다.

“고마워! 잘 먹을게.”
“밖에서 먹으면 눈치 보이잖아. 여기서 먹고 가. 금방 먹잖아.”
“그럼 그럴까? 헤헤.”

자기가 이용 당하는  모르는 아현이가 해맑게 웃는다.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긴 하는데, 그래도 맛있는  사줬으니까 샘샘으로 하자고 속으로 생각했다.

“직원 생활은  어때?”
“처음에는 기분이 되게 묘했어.  애들 사이에 내가 끼어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자괴감도 들고, 우울하고 슬펐거든.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야. 며칠 전만 해도 하루 종일 땀 흘리면서 지냈는데, 이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전화 몇 번 받는 게 하루 일과 전부야.”
“용케 안 울고 참았네.”
“사실 울었어. 울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왜 언니들이 회사에 취직시켜준다고 해도 안 했는지  것 같았어.”

꿈을 포기한 사람에게,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을 가까이 보게 하는  고문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을 거다.

“설마 퇴직하려는 건 아니지?”
“에이~ 그건 당연히 아니지. 여기 나가면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아직 젊으니까 다시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아냐.  공부 되게 못해. 지금 시작해도 내년에 수능봐서 대학에 들어가는 건 절대 불가능일 걸?”

아현이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

벌컥!

문이 열리고 로즈 선생님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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