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05_ 월말평가 (7)
“저 친구가 조이사가 추천했다는 친구인가?”
여태까지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던 허니 엔터 대표가 처음으로 한 질문은 조연주 이사에 관련 된 것이었다.
“네, 제가 추천했습니다.”
“조이사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지. 역시 이번에도 대박날 것 같은데? 조 이사 덕을 보겠어.”
“아닙니다.”
“저 정도 비주얼이면 실력이 좀 부족해도 괜찮지. 실력이야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 키울 수 있는 거니까.”
“대표님, 실력도 기대 이상이실 겁니다. 저 친구가 예술 쪽으로 재능이 있어요. 가르친 지 이제 두 달 조금 넘었는데 단체 무대에서 모나지 않게 따라오고 있거든요.”
“두 달? 와~ 그렇게 말하니까 새삼 신기하네요. 이 정도면 쟤 천재 아닌가요?”
두 달 만에 몇 년을 노력하던 연습생들 사이에 끼는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건 천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다.
“진짜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도대체 조 이사님은 어디서 저런 괴물을 척척 데려오시는 거에요? 눈썰미 정말 본받고 싶네요.”
“그게 본받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겠어요? 타고나야죠.”
선생님들이 호들갑스러운 수다를 떠는 사이.
♬♪♩♬♪♩
음악이 켜졌다.
순간 동네 아줌마 모임처럼 바뀌었던 공간이 다시 냉철하고 차가운 비즈니스 공간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잘 생겼네.’
조연주 이사는 탄탄한 기본기를 볼 수 있는 댄스였고, 노래도 기본기를 잘 갖춘 것이 드러났다.
“선생님들께서 잘 가르쳐주신 모양이네요. 기본기가 제대로 잡혔어요.”
“로즈 트레이너님의 실력이야 더 칭찬하는 것도 우스울 지경이죠.”
“기특하게 해솔이가 잘 따라와 줬어요.”
“겸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즈 트레이너 실력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죠.”
뛰어난 인재인 로즈 트레이너는 비싼 월급을 받는 만큼 그 능력을 보여주는 직원이었다.
언제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서 그녀를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여러 모로 신경 썼었다.
음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선생님들의 평가가 시작 됐다.
“지난 두 달간 기본기를 완벽하게 잡았다는 게 눈에 보이는 무대였어. 다만 데뷔 멤버로서 다른 연습생들보다 모든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네.”
“그래도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게 참 마음에 든다.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감사합니다.”
서 있는 자세도 고와서 보기가 무척 좋았다.
행동이 경박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진해솔처럼 평소 행동에 기품이 흘러나오는 이도 있다.
조연주는 저 아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한테서 소유욕을 느끼게 만들다니…….’
경국지색.
과연, 나라를 망하게 할 미모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조연주만의 것이 아니었다.
허니 엔터의 대표님도 진해솔을 향해 눈을 반짝 빛내고 계셨다.
“분위기가 있네, 저 친구.”
“그렇죠?”
“응. 연기는 좀 어때?”
“연기는 잘 안 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도 춤이랑 노래에 비해서인 거고요.”
“잘 키워봐. 크게 될 상이야.”
“네.”
마지막 순서가 모두 끝나고.
선생님들과 조연주 이사는 데뷔조 멤버를 확정 내렸다.
미리 결정 되어 있는 5명의 멤버는 확실히 눈에 띄어서 모두가 찬성을 한 상태였고, 다른 연습생들 중에서 몇 명을 더 뽑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사실 굳이 월말평가를 볼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다섯 명이 뛰어나더군요.”
“네, 다른 친구들도 실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워낙 그 다섯 명이 눈에 띄어서 다른 아이들은 묻히는 감이 많았습니다.”
“요즘 대부분 8명이 기본인데, 다섯은 너무 적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 3명을 더 뽑는 게 좋을까요?”
“문제는 그렇게 뽑은 3명이 병풍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거에요.”
“오늘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름 각자만의 매력이 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보죠.”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건 알지만, 연습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입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데뷔하는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게 사실이었다.
“컨셉이 겹치지 않은 이미지로 넣고 싶은데….”
“우연이는 귀염둥이, 해솔이는 우아한 귀족 미소년, 제키는 강렬한 카리스마 리더, 경태는 만능 재능꾼, 강준이는 천재 보컬리스트.”
“이렇게 나열해놓으니까 부드러움이 좀 부족한 것 같네요.”
“부드러운 그 뭐랄까, 학교 선배 느낌? 미대 오빠 같은 이미지인 연습생 없나요?”
연습생들이 들었으면 숨이 꼴깍꼴깍 넘어갈 것 같은 얘기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넣었다가 빼보고, 빼다가 넣어보기도 하면서.
신인 남돌 데뷔를 전담하고 있는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약 1시간에 가까운 회의가 이어졌다.
“그럼 이렇게 결정하시죠. 이의 있으신 분 없으시죠?”
“네, 없습니다.”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이게 다 선생님들이 원석을 잘 깎아주신 덕분인 것 같습니다.”
“다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실 연습생들에겐 혹평을 하긴 했지만, 속으로 많이 놀랐을 만큼 연습생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어 있었다.
독기가 가득해 보이는 아이들이 하나 같이 죽기 살기로 무대를 보여주는 걸 보며 대견함을 느끼기도 했다.
“요즘 남자애들한테 독기를 보는 게 쉽지 않은데, 다들 의욕이 넘쳐 보이는 게 참 마음에 들더군요. 이번 데뷔에 실패해서 마음이 많이 상할 텐데, 선생님이 잘 다독여주셨으면 합니다.”
신인 그룹이 런칭 될 때가 연습생 아이들이 가장 많이 계약을 해지하고 나갈 때이다.
다른 소속사에 추천을 해주는 것도 한 둘이지, 기껏 키워놨는데 우르르 다 나가버리면 회사로서는 큰 손해가 되는 것이다.
연습생은 최대한 잡아두고 묵혀두는 게 회사 입장에선 가장좋은 일이었다.
“아! 그리고 실장님, 애들한테 그거 이제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리얼리티요?”
“네.”
허니 엔터가 처음 아이돌을 데뷔시켰을 때부터 전통적으로 해왔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이번에도 여지없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할 예정이었다.
멤버가 확정 되면 그때부터 카메라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영상에 남길 예정이었다.
♣ ♣ ♣
“마지막으로 추가 멤버는 한 명이다.”
웅성웅성-
겨우 한 명이라고?
너무해! 3명은 될 줄 알았는데.
제발제발제발…!!
월말평가를 끝내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연습생들에게 매니저 실장님이 들어와
매니저 실장님에게서 결과를 듣던 연습생들의 안색이 창백했다.
우리들도 꽤 충격적인 추가 멤버 숫자에 놀라 귀를 쫑긋 세우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남은규. 네가 마지막 데뷔 멤버로 확정 됐다. 축하한다.”
“으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단 한 명의 합격자 발표.
10명의 데뷔조 연습생들의 얼굴에 좌절이 깃든다.
끝끝내 눈물을 삼켜내지 못하고 쏟아내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망연자실한 분위기 속에서 매니저 실장님은 냉정한 현실을 일깨웠다.
“이번에 데뷔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다. 너무 상심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포기하는 건 쉽지만, 그 이후는 좌절뿐일 거다. 그리고 데뷔조는 당분간 없어지고, A클래스 반으로 합쳐질 예정이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얘기였다.
유명무실한 C클래스 반은 넘기고, B클래스에서 A클래스로, A클래스에서 데뷔조로 단계를 밟아 겨우겨우 올라왔던 연습생들에겐 치명적인 말이기도 했다.
울고 있는 연습생들을 뒤로하고, 매니저 실장님은 데뷔 멤버들을 모아 회의실로 이동했다.
회사 직원 분들과 트레이너 쌤들이 모두 모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모여 있는 거 보니까 벌써 흐뭇하네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요?”
“그림이 그려지잖아요.”
“홍 팀장님은 정말 예술적인 감각을 타고 나셨나 봐요. 얼굴만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니까 신기하네요. 그 감각으로 미술을 하지 그러셨어요. 아깝네. 예술계에서 천재 하나 잃었어요.”
“호호, 자기야 말로 감이 너무 없다. 이런 애들을 모아놨는데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는 게 말이 돼? 이쪽 일은 어떻게 해? 감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 텐데.”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면서도 서늘했다.
‘싸우네.’
직장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이야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하다.
다만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멤버들이 바짝 굳어 있는 게 느껴져서 솔직히 좀 웃겼다.
‘얘네가 어리긴 어리구나.’
어이구야~ 이런 애들 데리고 아이돌 활동이라니.
이젠 좀 실감이 나려고 한다.
진짜 아이돌이 되는 거구나.
‘술김에 내뱉은 말 때문에 진짜 아이돌이 될 줄이야. 모든 화근이 입에서 시작 된다는 말이 딱 지금 이 상황이구만.’
직원들은 우리들을 진열 된 미술 장식품처럼 둘이 서게도 하고, 셋이 서게도 하면서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점검시켰다.
아무래도 아이돌 그룹은 단체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자리를 정하는 것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제일 예쁜 게 이 순서인 것 같네요.”
한참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겨우 정해진 자리 순서.
남은규 기우연 진해솔 제키 강경태 강준이 되었다.
강준도 비주얼이 되는 친구였으나 키가 너무 작아서 가장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고, 제키는 리더로서 내 옆자리에 위치했다.
새로 멤버로 추가 된 남은규는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순순히 납득하는 눈치였다.
기우연도 강경태도 딱히 불만이 없어 보였기에 그대로 낙점.
“앞으로 카메라 앞에 설 때 이 순서 잘 기억해두고 이대로 서야 되는 거야.”
“넵!”
“예.”
“그룹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혹시 너희들끼리 후보로 정해놓은 그룹 이름이 있니?”
“아니요.”
“이틀 정도 줄 테니까 몇 가지 생각해놔. 너희들 의견을 100%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참고는 해줄게.”
우리들이 활동할 그룹명을 정하는 일이었지만, 정작 우리들의 의견은 겨우 ‘참고’만 할 정도인 듯 했다.
아이돌의 그룹명이라는 게 얼굴이나 다름없다 보니 저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살짝 서운했다.
‘노래도 우리들이 결정해서 부르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정해준 걸 부르겠지?’
이게 아이돌 그룹 멤버의 차가운 현실이다.
연차가 좀 쌓이면 회사에 의견을 낼 수 있게 되겠지만, 지금은 의견을 낼 자격조차도 갖추지 못했다.
“아참, 그리고 너희들 다음 주부터 리얼리티 카메라 따라다니게 될 거야. 예상은 했지? 데뷔 과정 전부 찍어서 팬들한테 보여줄 텐데, 잘해야 되는 거 알지?”
리얼리티? 카메라가 따라다닌다고?
얼핏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자세한 내용을 들어 본 바가 없었다.
하지만 나 이외의 다른 애들은 모두 아는 일이었는지 무덤덤하다.
나는 ‘리얼리티’라는 단어에서 시작 된 불길함에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