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06_ 데뷔 준비 (1)
새로 추가되어 들어 온 멤버의 이름은 남은규.
나이는 18살로 강준과 동갑이다.
연습생들끼리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지만, 16명이나 되는 반에서 끼리끼리 다니는 그룹이 만들어지지 않을 리 없었고, 때문에 남은규와는 가까이에서 함께 놀아 본 기억이 없다.
이제 웬만큼 특이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이 멤버대로 데뷔를 하게 될 것이기에 우리들은 넓은 마음으로 새로운 멤버를 받아들였다.
앞으로 몇 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낼 사이인데, 사이가 나빠 봐야 서로에게 손해가 아니겠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하지만 그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긴장으로 굳어져야 했다.
본격적으로 데뷔를 준비하게 되면서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매니저 실장님이 다음 주부터 카메라가 따라 다닐 거라고 했는데, 정말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회사에 오니 카메라가 나를 반겼다.
“벌써부터 찍는 거에요?”
“카메라 최대한 의식하지 말고 행동해. 너희들 카메라에 익숙해질 수 있게 미리 경험시키는 취지도 있으니까.”
나보다 먼저 회사에 도착한 강경태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정승처럼 서 있는 게 보였다.
녀석을 찍고 있는 카메라가 무려 3대였고, 연습실 벽에 부착시킨 카메라도 있었다.
‘숨 막히네. 숨 막혀.’
강경태의 옆으로 가서 녀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괜찮아, 형?”
“어.”
“얼굴 완전 굳었는데.”
“…이게 원래 내 얼굴이야.”
“풋!”
나도 모르게 비웃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여튼 강경태 센 척 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내가 얘를 형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게 애석하다.
강경태도 자신의 변명이 썩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걸 알았는지 귀가 빨개지고 있었다.
나는 능글맞게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우, 사실 형보다 제가 더 긴장한 상태에요. 카메라 엄청 부담스럽네요.”
“카메라 앞에 서본 경험이 별로 없지?”
“네. 저번에 프로필 사진 찍는다고 했을 때가 처음이었어요.”
“어~ 맞다. 마침 말 잘했네. 그때 찍었던 프로필 사진 나왔어.”
경태 형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매니저 실장님이 끼어들었다.
“어? 프로필 사진이 벌써 나왔어요?”
“어디 잡지에 거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경험시켜주려고 한 건데 보정이 뭐 오래 걸리겠냐. 잠깐 기다려봐.”
매니저 실장님이 가져 온 사진들이 펼쳐진다.
“그때 찍었던 사진이 이거라고요? 보정 들어가니까 분위기가 엄청 좋아졌네요.”
“갖고 싶으면 메일주소로 보내줄게.”
“보내주세요.”
“저도요.”
앞으로 이런 사진들, 엄청나게 많이 찍겠지만 처음으로 찍은 사진은 챙겨두고 싶었다.
강경태가 자기 사진을 보다가 힐끗 내 사진을 보더니 눈을 댕그랗게 떴다.
내가 봐도 내 사진은 누가 사기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 나오긴 했다.
“저 잘 나왔죠?”
“…….”
대답 못하는 거 보니까 자기가 생각해도 내 사진이 잘 나오긴 했나보다.
강경태는 내 사진과 자신을 찍은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시무룩해졌다.
얘도 나름 잘 생긴 축에 끼는데 옆에 있는 놈이 나라서 상대적으로 못 생겨보이기는 한다.
위로라도 해줘야 하나 싶은 순간, 매니저 실장님이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 숙소 마련 됐으니까 부모님께 말하고 짐 챙겨서 들어와.”
어-시발, 숙소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억누르고 되물었다.
“…숙소요?”
“그래. 팀워크도 높일 겸 다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데뷔 이후로 시간을 내기 힘들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숙소는 리얼리티 카메라와 맞먹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다.
숙소에 들어간다는 건 하루를 모두 멤버들과 함께 한다는 뜻.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만나던 주아 누나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몰래 밤에 나가는 건 누가 봐도 수상하게 여길 일.
리얼리티와 숙소 생활이라는 난관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시련은 그뿐이 아니었다.
“우웩-”
“야, 밥 먹는데 헛구역질 좀 하지 마.”
“으~ 먹어도 배고파.”
식단.
데뷔조에 올라왔을 때부터 식단이 따로 나오기는 했지만, 매니저 실장님이 하루 종일 지켜보지는 않았기에 몰래몰래 음식을 사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데뷔 멤버로 확정 된 순간부터 칼로리 높은 음식은 아예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됐다.
리얼리티 카메라가 식사를 하는 내내 우리를 촬영하고 있었기에 도저히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질 않았다.
리얼리티에 재미를 주기 위함이라는 핑계로 몰래 음식을 훔쳐서 계단에 숨어 멤버들과 초콜릿을 나눠먹었던 때를 제외하고서 정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지 까마득했다.
‘진짜 너무 억울하다. 난 먹어도 안 쪄서 막 먹어도 되는데!!’
포니가 열심히 준비해준 환상적인 육체는 다이어트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만약 내가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찐다 해도 치트키인 코인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놀랍게도 코인으로 내 몸의 몸무게를 늘리거나 줄일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멤버들과 함께 식단 관리를 받는 것에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괴롭게 헛구역질 하면서 풀떼기 먹고 있는 애들 앞에서 혼자 햄버거, 피자 먹을 순 없으니까.’
식단 관리에서 가장 힘들어 한 건 의외로 강경태였다.
뚱뚱한 체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에서 유난히 부해 보이게 찍히는 탓에 평균 이하의 몸무게를 유지해야만 다른 멤버들과 차이가 나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돌겠네. 이럴 줄 모르고 정력을 너무 많이 올려놔서 아오!!’
숙소에 들어오고 본격적으로 무려 2주일이 지나도록.
코인 수급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탁탁탁탁탁-
‘시이이바아아아아알~!!!!!!’
멤버들 사이에서 내 정력이 금새 들통이 날 정도로 넘치는 정력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꼿꼿하게 서 있으니 들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똑똑똑-
“행님, 또 하십니까.”
“…네 목소리 듣고 가라앉았다. 고오맙다.”
“방해해서 죄성함다. 똥이 너무 마려워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행님.”
“죽여버릴거야, 기우연.”
여자 없는 2주일.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싶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 ♣ ♣
이대로 하루에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오른손으로 일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
바로 포니.
그 녀석이 필요했다.
“나 미칠 것 같애.”
[…그런 것 같아 보여. 얼굴이 왜 이래?]
“이주일 금욕했더니 이렇게 됐어. 식단 관리 때문에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정력을 해결 못해서 살이 빠진다.”
아이돌.
여자들에게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멀어져야만 하는 존재.
숙소 생활과 리얼리티 카메라라는 감시가 더해지니 도저히 여자를 만날 틈이 생기질 않는다.
포니는 이런 내 상황을 해결해 줄 의무가 있었다.
“나 미치는 꼴 보지 않으려면 네가 해결해줘야 돼.”
[어…음….]
“검토해보겠습니다, 공감합니다. 이 지랄 할 건 아니지? 제발 대책 좀 알려줘! 이대로 있다간 나 해탈해서 성불할 것 같다.”
[그건 절대 안 돼!! 너한테는 여자를 잔뜩 임신시킬 위대한 임무가 존재한다고!! 고자는 절대절대 안 돼!!!]
“나도 절대 그러기 싫으니까 방법 좀 찾아봐. 나 지금 엄청 진지하다.”
[그냥 네가 좀 영리하게 굴어서 시간을 내면 되잖아. 그 얼굴에 도대체 왜 여자를 못 만나는 거야?]
“사방에서 날 감시한다고!! 하루 종일 기우연이 옆에서 떽떽거리는 탓에 귀에 아직도 그 녀석 목소리가 맴도는데 어떡하라는 거냐!! 편의점 간다고 하고 싶어도 식단 관리를 해서 먹질 못하니까 핑계 될 게 없어. 난 최선을 다 했다고!”
주아 누나도 이주일간 못했더니 몸이 잔뜩 달아서 1시간 만이라도 시간을 내달라고 매달린다.
이건 정말 주아 누나한테도 몹쓸 짓이고, 나한테도 몹쓸 짓이었다.
[끄응, 방법이야 당장이라도 제시해줄 수 있긴 한데….]
“방법이 있다고? 왜 그걸 이제야 말해!!”
[문제가 있으니까 그렇지! 네가 가진 코인이 너무 적어! 그래서 해결방법을 제시해도 네가 못 하는 거야.]
“코인이 있으면 그 방법을 쓸 수 있는 거냐?”
[응.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어딨니? 문제는 지금 너한테 있는 코인으로는 절대 못 사는 물건이라는 거야.]
“뭐하는 물건인데?”
[물건이야 많지. 가장 싼 거라면 도플갱어 인형이겠다. 이거는 너랑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잔다고 하고, 넌 숙소를 몰래 빠져나오면 돼.]
“새벽 시간을 이용하라는 거네? 근데 사람들 눈에 안 띄면서 쓰는 게 가능해? 숙소 생활이 방 혼자만 쓸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코인으로 살 수 있는 게 그런 평범한 물건일 리 없잖아.]
도플갱어 인형을 침대 위에 올려두고 외출을 한다고 치자.
볼 일을 모두 본 후에 도플갱어 인형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 도플갱어 인형과 내 몸이 교체 된다고 한다.
즉, 내가 다시 현관문으로 몰래 들어가서 도플갱어 인형을 치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 거다.
“일회용이야, 혹시?”
[비싼 물건인데 설마 그러려고. 네 몸이랑 교체가 되는 순간 인형고리로 변해.]
“와, 그거 진짜 나한테 완전 필요한 물건인데?”
[너한테 필요한 물건은 얼마든지 있어. 네가 그 물건의 값을 지불 할 돈이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이게 제일 싼 물건이라는 거지?”
내가 보기에 기능이 되게 좋아 보이는데, 싼 거라고 하니 그만큼 성능이 떨어진다는 뜻 아닌가?
[그냥 인형이니까.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제일 싼 거야. 이거의 상위 버전으로 도플갱어 안드로이드가 있어.]
“걔는 왜 더 비싸?”
[굳이 자는 척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
“자는 척을 안 하면?”
[일반적인 생활이 가능해.]
“설마 날 흉내 내서 행동한다는 거야?”
[응.]
세상에.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들을 파는구만.
“그럼 가격은?”
10코인 20코인으로 저런 물건을 가질 수 있진 않을 거다.
내가 가진 것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보니 벌써부터 식은땀이 흐른다.
[너무 놀라지 마. 도플갱어 인형의 가격은 4,000코인이고, 도플갱어 안드로이드는 20,000코인이야.]
4,000코인과 2만 코인.
“어메, 시발! 양심 없네. 그걸 어떻게 사냐?”
[그러니까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어떻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어? 나 이대로 절대 못 참아.”
[네 능력껏 해야지!!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게 다야.]
“하…미치겠네.”
머리를 존나게 굴려봐야 한다.
이대로는 절대 못 산다.
2만 코인을 모으려면 6천번이 넘는 섹스를 해야 하기에 쳐다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4천 코인이라면?
‘어떻게 감당이 될 법도 한 것 같은데 말이지.’
“야. 대출은 안 돼냐?”
얘네도 지성이 있는 존재가 살고 있으니 은행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뭐시???? 대-출??? 너 대출이 얼마나 무서운 건 줄 알아?!]
“내가 설마 그걸 모르겠냐? 혹시 이자가 많이 빡세?”
[넌 신분도 없으면서 잘도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가 빌려주면 되잖아.”
[내가 왜!!! 그리고 절대 싫어.]
“은행이 안 되면, 네가 빌려주는 건?”
[그럴 돈 없어!!!]
“다 안 된다고? 그럼 상태창 팔아?”
[헉! 뭐래!!! 미쳤어? 그게 얼마짜린데!! 그리고 그거 내 거잖아!!]
“피해 보상금으로 줬으면서 아직도 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코인 나올 구석이 상태창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빌려줄게. 빌려준다고! 빌려주면 되잖아!]
코인 없다더니 역시 꿍쳐 둔 게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 지가 준 상태창인데 아직 미련을 못 버렸나보다.
어떻게든 수작을 부려서 내게서 상태창을 뺏어갈 것 같다.
‘역시 믿으면 안 될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