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07_아현이 (4) (36/849)



〈 36화 〉#07_아현이 (4)


“너 이사님한테 불려갔다며?”

조이사의 방에서 나와 연습실로 들어가자 강경태가 물었다.
아마도 매니저 실장님이 내가 어디로 불려갔는지 애들에게 말을 했던 모양이다.

“응.”
“무슨 얘기 했는지 물어봐도 되냐? 혹시 우리들이랑 연관  일이야?”

조이사와 있었던 일을 적나라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조 이사님이 우리 그룹 맡는다고 하시더라.”
“조 이사님이?!”
“헉! 진짜요?”

귀를 열고 슬쩍슬쩍 훔쳐 듣고 있던 멤버들이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몰려들었다.
강경태는 내 말에도 여전히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어서 물었다.

“근데 그걸 너한테 얘기해? 리더는 제키잖아.”
“어? 진짜 그러네요.”
“실장님이 조이사님이랑 너랑 아는 사이인 것 같다던데 사실이야?”
“아니야, 그런 거.”
“그럼 뭔데?”

강경태의 까칠한 질문.
나는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마침 떠오르는  있어서 내키지 않는다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사실 나를 좀 걱정하시더라고.”
“걱정?”
“내가 비주얼 멤버로 데뷔조에 들어온 거잖아. 실력이 너희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니까 데뷔하고 난 이후를 걱정하셨어.”
“아…!”
“…….”

연습실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이 말을 밝히는  내게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따지고 들었던 강경태도 당황한 얼굴이다.

“내가 너희들을 질투해서 엇나갈까봐 걱정하셨던 모양이야. 앞으로 날 열심히 서포터 해줄 생각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너희들이랑 어울릴 만큼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보조해주실 건가봐.”
“에, 에이~ 아니에요, 행님! 행님은 얼굴이 실력이잖아요. 그리고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지 몇 개월되지도 않았는데 엄청 빨리 따라오고 계세요.”
“맞아. 선생님들 전부   실력 느는  보고 재능이 엄청나다고 칭찬하셨잖아.”

멤버들이 쩔쩔매면서 나를 달래기 시작한다.
하여튼 순한 것들.
겉으로 보면 강경태나 제키 같은 애들의 생김새가 거칠어서 성격도 그럴 거라는 오해를 할 수 있는데, 정작 속은 순하고 맹하다.
특히 강경태는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는 고슴도치다.
가시에 집중하고 있으면 모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볼 줄 알면 말랑말랑한 분홍 배때기를 볼 수 있다고나 할까?
멤버들은 더 이상 조이사와 관련 된 일을 추궁할 생각이 없는지 연신 나를 달래느라 바빴다.

“조이사님한테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고 왔어. 그러니까 너희들도 걱정하지 마.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죽어라 노력하고 있어.”
“저는 그런 쪽으론 한 번도 걱정 해본  없어요!!”

기우연이 펄쩍 뛰며 내게 매달렸다.

“나, 나도 그래. 형!!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남은규와 강준까지합류하여 나를 우쭈쭈하기 시작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강경태와 제키가 끼어주지 않아 다행이다.
덩치  녀석들까지 합세했으면 정말 비명을 내질렀을 거다.

♣ ♣ ♣


청량함을 컨셉으로 잡은 소년 그룹 ‘에어플레인’.
앨범의 메인타이틀 곡과 앨범명은 동일하게 ‘FLY’다.
뜻은 직관적이다.
세상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처럼 세계적인 스타가 되라는 뜻이니까.
앨범의 타이틀곡인 fly의 초입부는 나직한 목소리의 강경태의 랩으로 시작한다.
나직한 강경태의 목소리가 담은 랩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경쾌한 리듬이 귀를 사로잡는다.

하늘 위엔 뭐가 있을까
구름 위 태양 아래
무지개가 너를 기다릴 거야

강준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본격적인 노래의 시작을 알린다.
매력적인 강준의 목소리에절로 귀를 쫑긋 세우게 되면 다음 순서로 기우연이 나와 잔망을 떤다.
얘네 뭐지? 문득 치솟는 의문.

날개를 달고 고개를 들어
포기할  없어
날아올라 목청껏 외쳐 high high
변치 않을 꿈으로 힘차게 high high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기우연이 들어가고 다음 순서로 진해솔 내가 나타난다.
탄탄하고 꽉 찬 음색을 가진 내가 정면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면, 스스로가 말하기 쑥스럽지만 비주얼 때문에라도 우리의 무대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진다.

두 손을 잡고 뛰어
누가 뭐래도
날아올라 fly
나는 끝까지
날아올라 fly

남은규와 강준이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제키가 나타나 화려한 랩을 뽐낸다.
강경태가 바톤을 이어받아 랩을 하고.

준비가 되었을까 (망설이지마)
작은 소망을 담아 속삭여 go go
바람을 딛어 fly fly
햇빛을 밟어 for you
둥실~ 둥실~
하늘을 날아
꿈이 담긴 대륙으로 떠나는 여행
그건 기적일 거야

제키와 강경태의무대가 끝나면 기우연과 내가 번갈아 노래를 부를 차례다.
기우연이 중심이 되어 화려한 춤을 뽐내고 나는 노래로 그걸 보조하는 식이었다.

함께 하자
너와 나 그렇게 우리가
두 손을 잡고 뛰어 fly
누가 뭐래도
날아올라 fly
나는 끝까지
날아올라 fly
준비가 되었을까
작은 소망을 담아 속삭여 go go
하늘 위엔 뭐가 있을까
구름 위 태양 아래
무지개가 너를 기다릴 거야

“허억…허억…!”

짝짝짝짝!!

라이브 쇼케이스 무대.
그러니까 진짜 데뷔까지 두  전.
우리는 실수없이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끝마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으아아!! 성공이다!”
“만세!”
“완벽했던 거 맞아? 실수한 사람 없어?”
“난 실수  했어!”
“카메라로 찍었잖아. 확인해보자.”
“모니터링~ 모니터링~”

촬영본까지 확인을 하자 누구 하나 실수 없이 무대를 마쳤음이 증명 되었다.
만세를 부르며 호들갑을 떨다가 진이 빠져서 연습실 바닥에 대(大)자로 뻗었다.

‘이게 진짜 되네.’

댄스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라이브로 무대가 과연 가능할까 싶었는데 사람이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정말 하니까 된다.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거나 연습량이 줄어드는 건 아니겠지만, 일단 해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진짜 고생을 많이  탓에 밀려오는 뿌듯함이 장난 아니었다.

“오늘 드디어 성공했는데 파티 안 해여?”
“콜!!!”
“파티 좋지!!”
“이예~”
“여기서 몸무게 아직 목표량 도달 못한 사람 있어? 성공 못했으면 실장님이 허락  해주실 것 같은데.”

제키의 질문에 순간 연습실에 긴장감이 맴돈다.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뭐야? 다들 목표 몸무게 다 찍었어?”
“우왓!! 그럼 먹자!! 실장님한테 빨리 가서여쭤보자.”

얘네들은 몰래 먹는다는 선택지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순진하게도 증거 영상과 함께 매니저 실장님에게 파티해도 되냐고 물으러 갔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할 매니저 실장님을 설득하기 위해 기우연과 제키가 함께 출동했으니 좋은 결과를 만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오늘 주아 누나가 시간이 되려나?’

아현이와 밤을 보내고 난 이후.
일주일에 3~4번 정도 도플갱어 인형을 이용하여 밤마실을 다녔다.
대상은 주로 아현이와 주아 누나가 됐는데, 아현이는 회사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에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게 전부였고 대부분 주아 누나를 불러다가 함께 시간을보내곤 했다.

[나 : 누나,오늘 밤 시간 돼?]

나는 당연히 오늘도 주아 누나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메시지를 넣었다.
기우연과 제키가 매니저 실장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고 왔을  답장이 왔다.

[주아 누나 : 어쩌지? 나 오늘은  될 것 같아.]
“안 된다고?”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남을 거절한 적 없던 주아 누나의 예상치 못한 답장에 잠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우리는 주로 새벽에 만났기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못 만나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나 : 무슨 있어?]
[주아 누나 : 응. 그래서 당분간은 못 만날 것 같아.  일주일 정도.]
[나 : 일주일이나?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거야?]

주아 누나가 여행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라 여행 때문이라면 그럴 듯한 이유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아 누나 : 대충 비슷해.]
“대충 비슷? 말이  이상한데.”
[나 : 알았어. 아쉽다. 누나 보고 싶은데.]
[주아 누나 : 엊그제도 봐놓고 또 보고 싶어? 히히! 사실 나도 그래.]

문자 자체에서 이상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나한테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겠거니 생각하다가 이내 여자들의 마법날이 떠올랐다.

“아~! 멍청이.”

그게 걸렸으면 일주일 정도 만나지 못한다는 게 이해가 된다.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나에게 말하기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나 : 몸조심하고, 아프지 말구! 시간 나면 문자 보내. 기다릴게.]
[주아 누나 : 응~ 그랭~! 울 해솔이두 몸 챙기구 파이팅해! >ㅁ
“스윗한 남자는 모른 척 해줘야지.”
“뭐가 스윗해여?”
“왁! 깜짝이야!”

이놈의 기우연!
멤버 애들이랑 뭐 먹을지 상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왔나 싶다.

“왜 왔어.”
“행님은 뭐 드시고 싶으세여?”
“나? 그냥 너희들끼리 정해. 다 괜찮아.”
“지금 의견이 나뉘어서요. 한 표,  표가 중요합니다!”
“음, 선택지가 뭔데.”
“김떡순, 짜짱탕이요.”

김밥, 떡볶이 순대.
짜장, 짬뽕, 탕수육.

“분식 대 중화인 거네.”
“넵!”
“우연이  뭔데?”
“저는 분식임다.”
“그럼 분식으로 해.”
“오예! 역시 저 생각해주는 사람은 행님밖에 없어요! 형형형형!! 해솔이 행님은 분식이라십니닷!”

우다다 멤버들에게 달려가서 외치는  보니 내 선택으로 결과가 바뀌는 모양이었다.

“아아아~! 돼!”
“자자 재투표 들어가져! 재투표!”

호들갑 떠는 애들의 수다를 뒤로하고.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쓰읍, 주아 누나가 안 된다면 아현이한테 가야겠지?’

고심하다가 아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순간이었다.

[복순 누나 : 바쁘니?]
“어?”

한동안 연락이 없던 복순 누나의 컴백이었다.

[나 : 복순 누나?]
[복순 누나 :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언제까지 내 본명 부를 거야!]
[나 : 제가 그렇게 부르는 게 정말 싫어요?]
[복순 누나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잠깐 내 개인실로 와.]
[나 : 무슨 일인데요?]
[복순 누나 : 귀찮으니까 묻지 말고 빨리 오라면 와!]
[나 : 공적인 일이에요, 아님 개인적인 일이에요?]
[복순 누나 : 후자면 어쩔래?]
[나 : 당장 튀어갈게요.]

개인적인 일이라면 두 말 할 것도 없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디가요. 우리여기서 시켜 먹을건데.”
“나 잠깐 선생님 좀 만나고 올게. 오래 걸릴  같으니까 너희들끼리 먹고 내  따로 남겨줘.”
“엥? 어떤  만나러 가시는 건데요.”

기우연의 질문을 못 들은 척 하며 연습실을 나왔다.
복순 누나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고 해서 그녀를 놓아주겠다고 생각한 적  번도 없다.
그녀와 함께 했던 뜨거운 시간들이 아직까지 추억으로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내가 데뷔 준비 하느라 바쁘다는  아니까 연락을 자제했던 거 아닐까?’

이미 나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쾌락이 무엇인지 잘 아는 그녀가 나쁜 마음으로 나를 멀리한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런 마음이 있었으면 마지막 수업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불 태우진 못했을 터다.

‘참고 참다가 못 참겠어서 나를 부른 거겠지.’

그리고 내 예상은 잘 맞아 떨어졌다.
그녀의 개인 연습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아당겨 소파에 눕혔다.
그리곤 다시 문 쪽으로 가서는 문을 잠궈버렸다.

딸칵!

“부르셔서 왔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순진하게 물었다.
복순 누나가 내 질문에 풋-! 하고 비웃음을 터트렸다.

“나랑 이런 짓 저런 짓 다 해놓고 순진한 척 하면 그렇구나 넘어갈 줄 알았니?”

문을 잠그고 온 그녀와눈이 마주친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본 복순 누나는, 색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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